소설리스트

황금가-234화 (234/524)

황금가 (234)

“손님께서 말씀하신 이름은 만물상 주인밖에 없습니다.”

식당 주인은 말했다.

“그러니까 만물상이란 곳을 찾아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거죠?”

“네.”

“그 사람은 늘 만물상에 있습니까?”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물상은 어디 있습니까?”

“큰길을 따라 오 리 정도 가면 시장이 나옵니다. 그 시장 끝에 있는 가게가 만물상입니다.”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또 물어볼 게 있으면 제 가게에 들러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식당 주인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은 곧바로 일어났다.

“바로 가서 만나 보려고?”

“아닙니다. 만인물성의 가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이곳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나가겠다는 거야?”

“네.”

“며칠이나 걸리는데?”

“이 정도 규모면 최소한 열흘은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오래 걸려?”

“열흘도 짧게 잡은 겁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무혼은 자신의 방으로 가며 말했다.

시간 있을 때 본격적으로 십만마도법을 익혀 볼 참이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장군을 데리고 방으로 갔다.

그가 쓰는 방은 커다란 방 하나였다. 대규모 상단이 투숙했을 때 사용하는 방으로, 침대는 열 개였다.

중간 간부급들이 사용하는 곳인 욕실도 따로 있고 집기들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금장생은 팔장군에게 가부좌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혹시 생각하는 게 가능하다면 아무거나 떠올려 보세요. 피곤하면 침대에 누워 쉬셔도 되고요.”

금장생은 침대를 가리켰다.

“나는 나갔다 올게요.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열흘 이상 걸리는 일이니까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금장생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이 나가고 나자 실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상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후!”

갑자기 특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한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불여하였다.

또르르!

불여하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강시의 눈동자가 움직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불여하는…….

“흐흡!”

불여하의 입에서 다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그녀의 배가 불룩해졌다.

불여하는 시선을 내렸다.

그녀는 부풀어 오른 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천천히 공기를 내뱉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는 다시는 숨을 쉬지 않았다.

호흡이 멈췄던 불여하가 두 번째 숨을 내쉰 건 저녁 무렵, 약 두 시진 만이었다.

“흐흡!”

공기를 한껏 머금자 배가 불룩해졌다. 이번에는 손을 들어 배를 만져 보았다.

그 상태가 약 일각 동안 이어졌다.

그런 다음 천천히 내뿜었다.

그녀가 내뿜는 공기는 기름을 태울 때 나오는 연기처럼 검었다.

그러고는 다시 호흡이 멈췄다.

그 상태에서 불여하의 눈동자는 다시 주위를 살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이 감겼다.

그녀가 세 번째 호흡을 한 건 두 번째 호흡이 끝나고 한 시진 반 만이었다. 이번 역시 두 번째 호흡처럼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한 번을 끝으로 호흡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네 번째 호흡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불여하는 시간을 당겨 가며 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확하게는 검은 기운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였다. 그녀의 입에서 비교적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흡과 호흡 사이의 간격은 아주 길었지만 숨을 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후!”

“후!”

“후!”

바로 그때 옆에서도 숨을 내뱉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불여하는 고개를 돌렸다. 각 장군들의 얼굴 앞에서 검은 기운이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여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옆으로 밀려 올라갔다.

불여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호흡은 여전히 느렸지만 몸 안으로 들어온 공기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직 장기가 움직이는 기색은 없다. 하지만 멈췄던 장기들이 뭔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시간.’

이제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긴 어딜까? 적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 후예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할 것 같은데 당장은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아 안타깝기까지 했다.

‘불여하!’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서른둘. 가부연, 가운영, 가순.’

이어 나이와 이름 몇 개가 더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름들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울러 영혼이 누군가에게 강하게 속박돼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금장생.’

그녀는 내심 중얼거렸다.

그 이름 역시 머릿속에만 남아 있을 뿐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여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흐릿했다.

‘시간.’

내심 중얼거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아무 생각 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귀가 열려 있는 상태라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가장 특이할 만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간격이 짧아지는 호흡이었다.

문득 자신도 저렇게 해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안개가 조금씩 걷혀 간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사노왕?

불여하의 눈초리가 꿈틀한 건 가부좌를 한 지 닷새 만이었다.

느닷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들려온 소리였다.

‘마노왕!’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름이 떠올랐다. 마노왕 적사월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적사월을 보았다.

―팔왕 맞습니까?

다시 적사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왕은 그들이 불여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맞아요.

불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살아난 겁니까?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심장은 뛰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팔왕 맞습니까?

세 번째로 정신을 차린 자는 화노왕 금웅이었다.

―정신을 차렸나요?

불여하는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나 흐른 겁니까?

―몰라요.

불여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어딥니까?

―그것 역시 몰라요.

―우리 마지막을 기억하십니까?

―팔왕 맞습니까?

―팔왕?

―팔왕이십니까?

이어 나머지 팔장군들이 차례로 깨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입은 물론이고 장기들이 완전하게 깨어나지 않아 말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이 대화를 하는 건 주인으로 불렀던 이방인들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방인들이 달아 놓은 장치다.

팔장군들은 각자 특이한 물건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귀고리 형태로 걸려 있는 것도 있고, 이마에 박힌 것도 있고, 문신의 일부가 돼 박혀 있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서로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사용하는 마법 장치다.

마법 장치는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의사 전달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대일 대화밖에 할 수가 없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붓과 죽편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불여하는 혈노왕 신무를 보며 말했다.

―내가 찾아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신무는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붓과 먹 그리고 종이를 가지고 왔다.

―죽편은 없고 이것뿐입니다.

혈노왕 신무는 종이를 들었다.

―암노왕 생각은 어때요?

불여하는 암노왕 염라를 보았다.

생긴 건 야차가 울고 갈 만큼 험악하지만 팔장군의 머리 역할을 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 암노왕 염라였다. 아울러 염라는 사노왕이 되기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정리할 시간을 주십시오.

암노왕 염라는 앞으로 나가 붓을 들었다.

―그냥 허공에 쓰겠습니다.

그는 먹물을 묻히지 않은 채로 허공에 글을 몇 자 적었다. 그리고 일행을 보았다.

일행은 모두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붓이 더 필요하겠군.

혈노왕 신무는 붓을 찾았던 곳으로 가서 일곱 자루를 더 가져왔다.

먼저 우리 상황을 정리해 보겠소.

암노왕 염라가 허공에 글을 썼다.

좋소.

나머지도 일제히 글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우리는 깨어났소.

둘째, 얼마 만에 깨어났는지는 모르오.

셋째, 전쟁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오.

넷째, 우리 몸에는 금제가 걸려 있소.

현재까지 내가 파악한 점이오.

암노왕 염라는 붓을 내렸다.

어떤 금제죠?

불여하가 물었다.

모릅니다.

내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금웅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도달할 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금웅이 우뚝 멈췄다.

머릿속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감각을 끌어 올려 보았다.

감각도 다르지 않았다. 귀를 최대한 열었는데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허공에 글을 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나갈 수 없다는 거요?

마노왕 적사월이 물었다.

그러네.

화노왕 금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휙!

그때 사노왕 불여하의 붓이 허공으로 올라갔다.

일행은 일제히 불여하의 붓을 보았다.

이거 무슨 무공이죠?

불여하는 군림천하보를 펼쳐 보였다.

휙!

마노왕 적사월이 붓을 들어 올렸다.

나도 압니다.

허공에 글을 쓰고 나서 곧바로 군림천하보를 펼쳤다.

나는 적신천사마공도 알고 있어요.

불여하가 허공에 글을 썼다.

그건 가장 잔인했던 화천신가의 무공인데?

화노왕 금웅의 눈이 커졌다.

그의 가문인 화가를 만들고 화가의 가주에게 화노왕이란 직함을 준 가문이 바로 화천신가였다. 방금 불여하가 읊은 적신천사마공은 그 화천신가의 최강 무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놀란 얼굴로 불여하를 보았다.

나도 내 머릿속에 적신천사마공이 왜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해요. 아마 방금 우리가 펼쳤던 무공과 함께 배운 것 같아요.

불여하는 허공에 글을 썼다.

휙!

불여하에 이어 적사월이 붓을 들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모두가 익히고 있는 그 신법은 우리 마가 무공이오.

그게 정말이오?

전노왕 묵천야가 물었다.

내가 익힌 것보다 더 발전된 형태이긴 하지만 우리 가문 무공이 확실하오. 그것도 일반 무공이 아니라 가주 무공이오.

마노왕 적사월이 글을 썼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요?

전노왕 묵천야가 되물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우리를 깨운 자예요. 궁금한 건 그자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

불여하가 글을 썼다.

그에게 우리가 정신을 차렸다는 걸 알리자는 겁니까?

혈노왕 신무가 물었다.

그건 아니에요. 나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본 후에 우리가 깨어난 사실을 알려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끝까지 알리지 않아도 상관없고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나도 팔왕과 같소.

마노왕 적사월이 가장 먼저 불여하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나도.

이어 다른 이들도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요.

그런데…….

불여하가 붓을 내리자 해노왕 혁장운이 붓을 들어 올려 글을 썼다.

일행은 해노왕 혁장운의 붓에 시선을 집중했다.

우린 잠들기 전에 철갑괴인과 함께했소. 혹시 철갑괴인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 있소?

맞아, 그랬지.

몇 명이 붓을 들어 올려 빠르게 휘갈겼다.

나는 카바야의 존재가 느껴져요.

가장 먼저 불여하가 대답했다.

나도 렉탄을 느낄 수 있소.

이어 마노왕 적사월이 대답했다.

나도 카루라를 느낄 수 있소이다.

나도 타호너를 느낄 수 있소이다.

화노왕 금웅과 해노왕 혁장운이 동시에 글을 썼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자신의 철갑괴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불러내 보도록 할까요?

불여하가 일행을 보며 글을 썼다.

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까지 높이가 일 장밖에 안 되는 실내에서 오 장 크기의 철갑괴인을 불러내면 집이 부서지고 만다는 걸 알아차린 이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여덟 명은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카루라!

불여하는 허공에 글을 썼다.

강한 힘을 쏟아부은 듯, 그녀가 쓴 글은 한동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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