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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33화 (233/524)

황금가 (233)

깨어난 팔장군

감숙성에는 두 개의 유명한 성이 있다.

하나는 용병들의 쉼터라고 부르는 낭인성이고, 다른 하나는 상인들의 쉼터라고 부르는 만인물성이다.

만인물성의 시작은 작은 시장에서부터였다.

한 상인이 서역으로 가는 상단이 가져온 말과 낙타를 교환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자 다른 이들도 낙타 교환 사업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서역으로 떠나는 상단들도 덩달아 시장으로 몰렸다.

시장 상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낙타에 이어 사막을 건너는 데 필요한 생필품을 팔았다.

생필품을 팔고 숙박업까지 하게 되면서 시장은 점점 커졌다.

시장은 커졌지만 아직은 개인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덩어리에 불과했을 뿐 현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시장이 만인물성으로 불리게 된 건 그 시기에 등장한 만인물상이라 불렸던 가게 덕분이었다.

만인물상에서 파는 물건은 대부분 상단이 서역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사막을 건너온 상단은 물건을 팔기 위해 중원의 대도시까지 가야 하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적이나 수적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도시까지 가는 호위를 구하기 힘든 상단들은 감숙성에서 물건을 넘기고 싶어 했다.

만인물상 주인은 그 점을 파고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서역 물건을 팔기 시작하자 중원 각처에서 소매상들이 몰려왔고, 그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잤다.

돈이 있는 곳에 날파리가 꼬이는 건 당연했다.

건달은 물론이고 힘깨나 쓴다는 조직과 단체에서 손을 뻗쳐 왔다.

시장 상인들은 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했다. 그 조직이 바로 만인물성이었다.

조직 이름이 만인물성이 된 건, 조직을 만든 자가 바로 만인물상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만인물성은 물건을 파는 일은 물론이고 사막을 건너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안내인과 호위까지 공급해 주었다.

만인물성의 성쇠는 얼마나 많은 상단이 서역으로 떠나느냐에 달려 있었다.

많은 상단이 오가면 발전했고, 서역으로 떠나는 상단이 줄어들면 쇠락했다. 더하여 계절적인 요인도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숨마저 얼어붙는 한겨울에는 상행을 떠나는 상단이 없기 때문에 십일월부터 다음 해 이월까지는 거의 공을 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기 위해 성안에 시장을 활성화시켜 손님을 끌어들이곤 있지만 상단이 오갈 때만큼 활기는 없었다.

낭인성을 떠난 무혼과 금장생이 만인물성으로 들어온 날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또 보네.”

무혼은 손바닥을 내밀어 눈을 받았다.

환수각을 공격할 때 보고 두 번째다. 같은 눈인데도 느낌은 달랐다.

눈은 금세 녹았다.

이번엔 손바닥을 약간 차게 했다. 그러자 눈이 손바닥 위에 쌓였다.

눈이 약간 쌓이자 입으로 가져가 혀로 핥았다.

시원한 것 말고는 아무런 맛도 없었다. 그런데도 공연히 가슴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수천 년 만에 맛보는 고향의 눈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단지 눈 맛을 보는 것만으로 감상에 젖은 무혼과 달리 금장생은 쏟아지는 눈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을씨년스럽네.”

금장생은 몸을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무드 없는 자식.”

무혼은 찌푸린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우리 장사꾼이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금장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눈이라는 거냐?”

“비와 눈입니다.”

“왜?”

“장사란 모름지기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아무리 멋지고 좋은 가게를 열어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 집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는 그래도 눈이 오는 날에는 사람이 많지 않나?”

“눈도 마찬가집니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많게 보일 뿐이지 구매로 이어지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사꾼들은 눈 오는 날을 강아지 날이라고 부릅니다.”

“강아지 날?”

“개들만 좋아한다고요.”

“풋!”

“큭!”

무혼과 바타르는 피식 웃었다.

마침 멀지 않는 곳에서 개 몇 마리가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저기로 가죠.”

금장생은 개들이 뛰어다니는 곳 앞에 있는 식당을 가리켰다.

“그렇게 하자.”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오십시오.”

열네 명이 안으로 들어오자 주인의 얼굴이 활짝 폈다. 점심때가 지나서 이렇게 많은 손님을 받는 건 드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인의 미소는 곧 울상으로 변했다. 무혼 일행이 시킨 음식은 오 인분뿐이었던 것이다.

“나도 많이 팔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저들은 이미 먹었거든요.”

주인의 내심을 눈치챈 금장생이 팔장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적을 떼고 무복에 장포를 입은 그들은 사람과 별 차이 없어 보였다.

“넌 안 먹을 거냐?”

무혼인 바타르를 보며 물었다.

“너희 먹는 거 보고.”

“음식이 맛있으면 시키고 아니면 안 먹겠다는 거냐?”

“응.”

“그럴 거면 왜 먹냐?”

드래곤에게서 가장 이상한 점이다.

마나를 먹고 사는 족속이라 굳이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바타르는, 아니 바타르뿐만 아니라 드래곤들은 식사를 한다.

물론 세끼를 다 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하루 한 끼 이상은 반드시 먹는다.

굳이 먹을 필요도 없는 음식을 왜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종족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 건 진정한 유희라고 할 수가 없거든.”

“좀 더 인간처럼 살기 위해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는 거냐?”

“그렇다.”

“그게 돼?”

“되고 안 되고는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의 그러한 노력이 인간을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기나긴 우리 삶에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아무튼…….”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이 아닌 이상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들은 어때?”

그리고 턱으로 팔장군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인시가 되면 가장 먼저 말을 하게 됩니다.”

“말?”

“네.”

“먼저 말을 하고 그다음엔 먹고 싼다는 거지?”

“네.”

“경이롭네.”

“이건 내 느낌인데,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시체는 어디로 가져다주면 되냐?”

무혼은 여전히 강시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정말로 하실 겁니까?”

“전보다 더욱 간절해졌다.”

천마와 싸우고 나서 느낀 점이었다. 하자가 있는 몸이 아니고 완벽한 상태였다면 그렇게 패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크로노마스와 싸우기 위해서도 새로운 얼굴과 몸이 필요했다.

“북망산의 망루로 가져다주면 됩니다.”

“내 시체를 나보고 가져가라고? 그건 너무 잔인한 거 아냐?”

“그렇긴 하네요. 시체는 제가 직접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비용은 삼천 냥입니다.”

“무슨 비용?”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돈도 안 주고 공짜로 시키려고 했습니까?”

“우린 친구잖아, 자식아.”

“친한 사이일수록 더 확실하고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일로도 친구가 원수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돈을 받는 건…….”

“운송 비용만 그렇다는 겁니다. 인시가 될 때까지 제가 데리고 있어야 하니까, 그 비용까지 합치면 만 단위가 훌쩍 넘어갈 겁니다. 추가 비용은 계산이 되는 대로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독한 자식.”

무혼은 금장생을 흘겨보았다.

바늘로 찔러 피 한 방울 안 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말로만 들었지 실제 보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장사꾼이잖아요.”

금장생은 히죽 웃었다.

“알았어, 새꺄! 죽기 전에 반드시 지불할 테니까 전부 계산해서 청구해!”

무혼은 버럭 소리쳤다.

그때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일행은 대화를 멈추고 식사를 했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금장생은 자리를 옮겨 주인을 불렀다. 둘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끝낸 금장생은 주인에게 은자 다섯 냥을 건넸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금장생은 만족한 얼굴을 한 채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한 거냐?”

무혼이 물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를 모르거든요.”

“그래서 뇌물을 준 거냐?”

“그건 뇌물이 아니라 심부름값입니다.”

“심부름값?”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공짜로 부탁할 수는 없잖습니까.”

“갖다 붙이기는.”

무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계속 여기 있을 거냐?”

“며칠 걸릴지 모르니까 먼저 객잔을 잡아야죠.”

“타루!”

무혼은 타루를 불렀다.

“네, 주공.”

“나가서 객잔 좀 알아봐.”

“알겠습니다.”

타루는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타루가 돌아온 건 한 식경 후였다. 일행은 점소이에게 객잔 이름을 말해 놓고 자리를 옮겼다.

얼마 후 일행은 만물장이란 이름의 객잔에 들어섰다.

만물장은 만인물성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객잔이었다. 대규모 상단이 머물러 가는 곳답게 방도 많고 시설도 좋았다.

건물은 본관과 별채 세 곳으로 구성돼 있었다.

금장생 일행은 대문에서 보았을 때 왼편에 있는 별채를 통째 빌렸다.

물론 별채를 빌린 비용은 무혼이 지불했다.

“밥값은 내가 내겠습니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금장생이 한 말이었다.

“됐어, 인마. 벼룩의 간을 빼 먹지, 구멍가게 몇 개 하고 있는 녀석에게 밥을 얻어먹겠냐? 내가 다 살 테니까 넌 젓가락이나 제대로 챙겨라.”

무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말 밥값까지 전부 낼 건가요?”

“내 직책이 뭔지 알아?”

무혼은 되물었다.

“황제라고 들었습니다.”

“여기 황제가 돈이 많을까, 아니면 내가 더 많을까?”

“무 형의 돈이 더 적으면 굳이 물어보는 수고를 하지 않겠지요?”

“맞다. 내가 백배는 더 부자다. 땅도 수십 배는 더 넓고.”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중원보다 수십 배가 넓습니까?”

금장생은 바타르를 보았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아서 그렇지 수십 배가 더 큰 게 맞다.”

“그럼 인구는 얼마나 됩니까?”

“일억 정도 된다.”

“일억 명이면 엄청나군요. 헤이람 대륙은 몇 명이나 됩니까?”

“인간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하는 거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그래도 오천만 명은 될까요?”

이번에는 무혼을 보았다.

“나도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는 되지 싶다.”

“그럼 일억 오천만 명이네요. 그 인원이면…….”

금장생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역대 어느 왕조에서도 중원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한 적이 없다. 유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단들은 독자적으로 파악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황금전가를 비롯한 삼대상단에서 파악한 중원의 인구는 육천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무혼이 살았던 곳의 인구가 일억 오천만 명이란다. 이곳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럼 상단의 규모도 두 배가 넘는다고 볼 수 있다.

오고 가는 건 차원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니까,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는 것보다 덜 위험하다. 잘만 하면 최고의 시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뭔지 알아?”

무혼이 주머니에서 황금색 물체를 꺼내 보여 주었다.

“황금 아닙니까?”

“만져 봐.”

무혼은 황금색 물체를 내밀었다.

금장생은 받아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황금보다 훨씬 가벼웠다.

“황금보다 더 가볍지만 강도는 훨씬 강하고, 반마법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서 마법 무구로 사용되기도 해. 우리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는 황금보다 열 배가 더 비싸.”

“반마법적인 성질을 지녔다면 사악한 기운도 물리치는 역할을 할까요?”

“언데드를 물리치는 데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의 귀신까지는 모르겠다.”

“혹시 이걸로 만든 무기 있습니까?”

“무기?”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서요.”

“하나 정도는 있을 거야.”

무혼은 자신의 아공간 창고를 뒤졌다.

잠시 후 황금색 단검 한 자루를 꺼내 금장생에게 내밀었다.

“이제 귀신만 찾으면 되겠네요.”

금장생은 검을 들고 방긋 웃었다.

“여기 장생 대협 계십니까?”

바로 그때 객잔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깁니다.”

금장생은 손을 들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종업원의 뒤를 따라 식당 주인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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