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30)
얻으려면 먼저 먹여라
그는 왼편을 향해 양팔을 쭉 내밀었다.
두 손바닥 사이에 있던 검은 구가 무혼을 향해 폭사되었다.
“타하!”
무혼의 입에서 거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바닥을 차며 솟구친 그는 검은 구체를 향해 혼천을 내리그었다.
스악!
혼천은 검은 구체를 잘랐다.
푸악!
잘려 나간 구체에서 새하얀 광채가 폭사되었다.
콰앙!
그리고 커다란 소성과 함께 폭발했다.
순간 빛의 폭풍이 몰아쳤다.
“엇!”
무혼은 전력을 다해 호신강기를 펼쳤다.
퍽! 퍽퍽퍽!
“크윽!”
무혼은 비명과 함께 물러났다.
잠시 후 빛의 폭풍이 걷히고 상황이 드러났다.
무혼과 귀마존은 각기 오 장씩 물러난 상태였다. 양쪽 다 내상을 입은 듯, 두 사람의 얼굴은 창백했다.
“타하!”
먼저 움직인 쪽은 무혼이었다.
무혼은 귀마존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그는 혼천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였다.
휙!
귀마존은 날개를 펼쳤다.
펼쳐진 날개에서는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황금색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 상태에서 왼손 손바닥과 오른손 손바닥을 가슴 앞에서 마주 보게 한 채로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활짝 펼친 날개 안쪽에 검은 구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구체는 순식간에 마흔네 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귀마존의 양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두 손은 계속해서 위아래로 방향을 바꾸었다.
“차하!”
그는 펼쳤던 날개를 힘차게 접었다.
슈아악! 슈아악!
양쪽 날개 안쪽에 매달려 있던 검은 구체 마흔네 개가 일제히 무혼을 향해 쏘아져 갔다.
무혼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자 검은 구체도 무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기어검술의 응용이네.”
무혼의 얼굴에 감탄사가 어렸다.
보통 이기어검술은 검 한 자루나 도 한 자루로 펼친다. 다수의 무기로 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기 하나하나가 펼치는 자의 심령과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심력은 물론이고 내공의 소모가 어마어마하다.
열 자루만 넘어가도 상대를 없애기 전에 자신의 머리가 먼저 터져 버린다.
그런데 귀마존은 사십여 개의 구체를 모두 조종하고 있다.
엄청난 심력과 내공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위력은 어느 정도인지 볼까?”
무혼은 뒤편을 위를 흘끔 바라보았다.
십여 장 위에 천장이 보였다. 그는 허공을 차고 그곳으로 날아갔다.
슈아악! 슈아악!
사십여 개의 구체가 그를 쫓아 날아왔다.
천장 바로 앞까지 간 무혼은 발로 천장을 차 방향을 틀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천장이 무너진다!”
“무너진다!”
“아악!”
“아악!”
위쪽 천장이 무너지면서 비명과 함께 수백 명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들 대부분 무기를 찬 무인들이었다.
그런데 무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괴물로 보이는 것들이 무인들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무인들이나 마물들에게 이십 장(60미터)은 감당할 수 없는 높이였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퍼억! 퍽! 퍽퍽!
“크아아악!”
“으아아악!”
“아악!”
케엑!
꽥!
사방의 바닥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맨바닥으로 떨어진 자는 온몸이 으깨져서 죽고, 먼저 떨어진 자들 위로 떨어진 자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광장 바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아래로 추락하는 자들은 낭인성 무인들이었다.
“문도들은 한곳으로 모여 방어 진형을 구축하라! 한곳으로 모여라!”
낭인성 성주 막거성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를 비롯한 낭인성 문도들이 괴물들을 만난 건 반 시진 전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괴물들은 키가 일 장에 달했고 사람 몸에 늑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톱 길이는 한 자에 달했는데, 강기가 어린 무기가 아니면 잘라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얼마나 빠른지, 괴물들에게 죽은 문도들의 수만 해도 백 명이 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닥이 꺼지면서 수십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크아앙!
“아악!”
“으아악!”
살아남은 괴물들이 무차별하게 무인들을 공격했다.
슈캉! 슈캉! 슈캉!
켁! 끄아악!
그런데 낭인성 문도들만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니었다. 괴물들 또한 목이 뎅겅뎅겅 잘려 죽임을 당했다.
괴물들을 없앤 자는 낭인성 문도가 아니라 하급 천사들이었다.
하급 천사들의 날개는 괴물들의 몸통을 쉽게 잘라 냈다.
“저들은 서, 설마 신족?”
천사들의 등장에 막거성은 경악했다.
콰콰콰콰쾅!
바로 그때 천장 부근에서 커다란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막거성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맙소사, 정말 신족이었어.”
황금색 날개를 발견한 그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막거성이 바라보는 두 사람은 무혼과 귀마존이었다.
“많이 발전했구나, 무혼.”
귀마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삼백 년 전 자신이 당한 건 방심과 무혼의 기습이 합쳐진 결과였다. 결코 무혼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무혼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 또한 삼백 년 전에 비해 몇 배 강해졌지만 무혼도 그때의 무혼이 아니었다. 조금 강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한두 해가 아니고 삼백 년이나 지났잖아.”
“그렇지, 삼백 년이지.”
귀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백 년은 변하기 싫어도 변할 수밖에 없는 긴 시간이다.
“널 죽이면 다른 놈들도 다 만날 수 있겠지?”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게다. 왜냐면 네놈은 내 손에 죽게 될 테니까.”
귀마존은 오므렸던 날개를 활짝 폈다.
날개 안쪽에는 검은 구체가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슥!
무혼은 혼천을 오른편 다리 옆으로 사선으로 내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손잡이 위를 가볍게 쥐었다.
“가라!”
귀마존은 버럭 소리치며 날갯짓을 했다.
활짝 펴졌던 날개가 하나로 합쳐지고, 안쪽에 과일처럼 매달려 있던 검은 구체가 무혼을 향해 쏘아졌다.
구체의 수는 백여덟 개였지만 무혼은 수를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차하!”
무혼은 기합과 함께 사선으로 늘어뜨리고 있던 혼천을 왼편 위쪽으로 걷어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 늑대 머리가 나타났다.
입을 쩌억 벌린 늑대 머리는 전면을 노려보았다.
무혼은 왼편으로 올라간 혼천을 오른편으로 이동시키더니 왼편 아래로 내리그었다.
또다시 늑대 머리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 상태에서 무혼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혼천을 휘둘렀다.
혼천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늑대 머리가 생겨났고, 그것들은 무혼 앞에 겹겹이 늘어서 방패가 됐다.
퍽! 퍽퍽! 퍽퍽퍽! 퍽퍽! 퍽!
검은 구체가 늑대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차하!”
그 순간 귀마존이 날개를 하나로 모은 채 무혼을 향해 폭사되었다.
그가 최후의 일격으로 준비한 공격은 바로 하나로 합친 날개였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날개는 검 모양이 되었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늑대 머리가 폭발했다.
귀마존은 검으로 변한 날개를 앞세운 채 무혼을 향해 폭사되었다.
휙!
무혼은 전면을 노려보며 혼천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혼천에서 붉은 광채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차아아아!”
우레와 같은 기합과 함께 무혼은 혼천을 힘껏 내리그었다.
쩌억!
순간 허공이 좌우로 쩍 갈라졌다.
지진에 의해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허공은 계속해서 갈라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헉!”
귀마존의 눈이 커졌다.
전면에서 밀려온 거력이 날개 안으로 파고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날개에 모든 내공을 밀어 넣었다.
단전이 텅 비는 걸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이번 공격이 끝나고 죽는다고 해도 지금은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할 때였다.
그의 날개에서 더 짙은 광채가 흘러나왔다.
황금색 광채는 귀마존을 완벽하게 감싸, 귀마존은 황금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차아아!”
무혼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목과 팔의 힘줄이 불뚝 돋고, 장포는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슥!
혼천이 날개 안쪽으로 살짝 파고들어 갔다.
“크아아아아아!”
무혼은 기합을 내지르며 혼천을 밀어 넣었다.
혼천은 좀 더 깊이 들어갔다.
파아아아아아! 파아아아아아!
혼천이 파고든 자리에서 강렬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아주 느렸지만, 혼천은 조금씩 귀마존의 날개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윽!”
귀마존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날개를 노려보며 내공을 밀어 넣었다. 전보다 더 강한 광채가 날개에서 폭사되었다.
하지만 무혼의 혼천을 밀어내지 못했다.
잠시 멈칫했던 혼천은 다시 시뻘건 광채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익!”
귀마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짜낼 내공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혼의 검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다.
그건 곧 무혼의 내공이 더 강하다는 걸 뜻했다.
‘난 질 수 없다. 상급 천사인 내가 인간에게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인간에게 진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귀마존은 이를 악물고 내력을 집중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무혼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크아아아아!”
무혼의 입에서 다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쑥!
혼천이 한 자가량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헉!’
귀마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설마 무혼에게 아직 여력이 남아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귀마존은 이를 악물었다.
인간과 신족의 가장 큰 차이는, 신족에게는 진원지기가 없다는 점이다.
왜 진원지기가 없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 삼황에게 진원지기를 대신할 뭔가가 신족에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치천검황 심무극은 신족은 몸을 태워서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즉, 팔이나 다리를 태워 그때 발생하는 힘을 내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누군가에게 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선…….’
귀마존의 시선이 왼팔로 향했다.
강렬한 광채가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고, 잠시 후 왼팔이 쩍쩍 갈라지며 불그스름한 광채가 터져 나왔다.
“흐흡!”
단비가 메말랐던 대지를 적시듯 온몸에서 힘이 돋았다.
귀마존은 그 힘을 날개로 밀어 넣었다. 날개에서 더 강한 광채가 흘러나오며 혼천을 서서히 밀어냈다.
“크아아아아!”
무혼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밀려났던 혼천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그 순간 귀마존의 시선이 제 왼 다리로 향했다.
곧 왼 다리가 쩍쩍 갈라지며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다리가 소멸하면서 나온 힘은 곧 날개로 들어갔다.
혼천은 처음보다 더 많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잠시 후 무혼의 기합과 함께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몸을 태워 힘을 얻는 건 마약과 같았다. 귀마존은 남은 팔과 다리를 모두 태웠다.
하지만 혼천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다.
―이제 뭘 태울 겁니까?
바로 그때 귓전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무혼과 싸우느라 잊고 있었던 금장생이었다.
‘난…….’
귀마존은 자신의 몸을 보았다.
팔다리가 사라지고 몸통과 날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적신천사마공을 거두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습니까.
금장생의 말에 귀마존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빌어먹을…….”
욕설이 비어져 나오며 힘이 쑥 빠졌다.
카카카캉!
그 순간 무혼의 혼천이 날개를 가르며 다가왔다.
귀마존은 멍한 눈으로 혼천을 바라보았다.
스악!
붉은 광채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