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28화 (228/524)

황금가 (228)

“누군가 이 안에서 싸우고 있다.”

바타르가 무혼을 보며 말했다.

무혼은 천마와 함께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낭인성 무인들이 가디언과 싸우는 거 아냐?”

무혼이 물었다.

“아니다. 다수가 한 명 아니면 두 명을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한 기운도 감지된다.”

“특이한 기운은 뭘 말하는 건데?”

“신성력이다.”

“신성력?”

“그렇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인이나 승려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높은 도력을 가진 도인이나 불심이 깊은 승려에게서는 신성력이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바타르가 이미 말했을 것이다.

“아니다.”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신성력이라는 거냐?”

“그것도 아니다.”

“하면?”

“제사광력除邪光力과 악마천력惡魔天力이 섞여 있다.”

“제사광력과 악마천력이면 혼천오대천력을 말하는 거 아냐?”

“맞다.”

“제사광력은 신족의 능력을 말하는 거고 악마천력은 마족 중에서 소위 악마라고 부르는 자들이 지닌 능력 아닌가?”

“인간들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우리 드래곤은 다르다.”

“드래곤은 어떻게 알고 있는데?”

“제사광력과 악마천력을 동시에 보유한 자들이 있다.”

“그들이 누군데?”

“신족이다.”

“정말이냐?”

무혼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금까지 그는 제사광력은 신족이, 악마천력은 악마가 보유한 능력으로 알고 있었다.

“천사와 악마가 같은 신족이라는 걸 아느냐?”

“그게 무슨 소리지?”

무혼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는 지금껏 천사와 악마는 전혀 다른 종족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타르는 둘 다 신족이라고 한 것이다.

원래 거짓말을 못 하는 종족이 드래곤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사안은 거짓말할 것도 아니다.

“악마는 천사의 존재 이유이며 그림자다.”

“존재 이유라는 건, 악마가 없으면 천사도 없다는 말?”

“그렇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천사와 악마는 대척점에 서 있는 종족이다.

그들이 한 종족이라면 나무 한 그루에서 영과와 독과가 함께 열린 셈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신족은 신족, 천사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악도 없고 죄도, 욕심도, 질투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완전한 세상이 주는 만족감은 무력감으로 이어졌고, 신족과 천사족은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느냐?”

“자살을 한다는 건가?”

“자살이 아니고 멸종이 일어난다. 네가 말한 자살은 멸종의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멸종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의지가 개입해서 일어나는 거 아냐?”

“그건 일반적인 멸종의 의미일 뿐, 인과율에 의한 멸종은 다르다.”

“인과율에 의한 멸종은 어떤 건데?”

“스스로 멸종하게 된다.”

“종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멸종한다는 거냐?”

“그렇다. 인과율에 지배를 받는 개체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존재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남는 건 멸종뿐이다.”

“너희 드래곤도 그래?”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드래곤은 철저하게 중간자 역할을 하게 돼 있다. 만일 우리의 역할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면 우린 멸종하게 될 것이다.”

“그럼 악마는 천사들이 멸종을 면하기 위해 만들어 낸 종족이라고 봐야 하는 거야?”

“그렇다. 멸종의 위기에 처한 신족은 살아남을 방도를 강구하기 시작하였고, 악의 천사를 만들어 내기로 한다.”

“그건 혹시 마법으로 만들어 낸 키메라라는 거야?”

“그렇다. 키메라의 후손과 천사를 교배시켜 후손을 만들고 그 후손과 키메라를 교배시키는 방법으로 해서 악의 화신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들이 바로 악마다.”

“아직 있어?”

“악마 말이냐?”

“응.”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천사와 악마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 악마가 이겼다고 하더구나.”

“그럼 지금 신족은 하프가 되는 거냐?”

“선악을 모두 지니고 있으니까 네 말처럼 하프가 맞을 수도 있다.”

“혹시 진짜 악마도 있을까?”

“진짜 악마?”

“천사들이 만들어 냈다는 그 악마를 말하는 거야.”

“그건 아무도 모른다.”

“존재하는지 사라졌는지 모른다는 거네.”

“그렇다.”

“수만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멸종했겠지. 그보다 아까 하던 말인데, 이 안에 그 제사광력과 악마천력을 합친 기운을 지닌 자들이 있다는 거냐?”

“그렇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생각은?”

무혼은 천마를 보았다.

“자네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전사의 성에 신족은 없었네.”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중에 들어왔다는 거네?”

“나중이 아니라 자네들이 발견한 입구를 통해 오늘 들어왔을 거네.”

“오늘 들어왔고 한두 명과 싸우고 있다면, 내 친구 장생뿐이네.”

무혼은 바타르를 보았다.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달라는 거냐?”

“더불어 힐링 마법으로 나도 치료해 주고.”

“내가 해 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응.”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느냐?”

“두 가지를 다 해 주지 않으면 그 녀석을 절대 찾아가지 않을 거니까.”

“그 녀석이면 누구를 말하는 거지?”

“네가 꿈속에서조차 보고 싶어 하는 권말남이지 누구겠냐?”

“나, 나는…….”

“장생 그 친구가 죽기라도 하면 정말로 권말남을 못 만나, 바타르. 권말남과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가 장생 그 친구라고.”

무혼은 손을 내밀었다.

“끙!”

바타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곧바로 마법을 펼쳤다. 그가 펼친 마법은 마법의 눈인 매직 아이였다.

매직 아이를 보내고 나서 곧바로 무혼의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힐링 마법을 펼쳤다.

그의 손에서 새하얀 광채가 흘러나와 무혼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하트 한 조각만 먹으면 더 빨리 나을 것 같은데.”

무혼은 바타르의 가슴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죽고 싶냐?”

바타르의 몸에서 살기가 요동쳤다.

“조금만 떼어 주고 나서 힐링 마법을 펼치면 금세 본래대로 회복되는데 너무 쫀쫀하게 구는 거 아냐?”

“내가 아무리 하트가 남아돈다고 해도 인간에게 줄 건 없다.”

“너 그거 아냐?”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바타르는 불안한 눈빛으로 무혼을 보았다.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무혼이 말할 것만 같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냐?”

“이곳에는 샤이칸드리아 대륙의 사제들과 같은 신분을 지닌 승려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중이라고 불러. 그런데 그들은 머리카락을 전부 밀고 다녀.”

“왁싱을 한다는 거냐?”

“왁싱?”

“털을 미는 걸 왁싱이라고 하잖느냐.”

“그건 털이고, 자식아. 내가 말하는 건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

“머리카락도 털이다.”

“아무튼 머리를 깎는 족속들이 있는데, 자기 손으로는 절대 머리털을 깎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혼인도 중이 머리를 깎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야. 숫기가 없는 남녀를, 아니 여기선 남남이 되겠네, 아무튼 그 둘을 합방시키는 데는 주변에서 부추기는 사람, 이곳 말로는 뚜쟁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거지. 즉, 나와 장생은 뚜쟁이라는 거야.”

“그, 그러니까…….”

“아주 조금만, 손톱만큼만 있으면 돼.”

무혼은 집게손가락 반 마디 끝에 엄지를 붙인 채 바타르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네게도 하트가 있는 걸로 아는데?”

무공 비급과 함께 얻은 블랙 드래곤 하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비록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같은 드래곤인 바타르가 상자 안에 드래곤 하트가 들어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건 따로 쓸데가 있어.”

“따로?”

“이 몸에는 쓰지 않을 거라는 거야.”

“너……?”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그건 나중 일이니까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아무튼 줄 거야, 말 거야?”

“……나쁜 새끼.”

바타르는 무혼을 흘겨보았다.

무혼을 가만히 노려보던 그는 자신의 가슴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헉!”

둘을 지켜보던 천마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바타르의 손이 가슴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바타르의 손에는 황금색 물체가 들려 있었다. 크기는 밤톨만 했다.

“받아라.”

바타르는 무혼 앞으로 내밀었다.

“합방은 반드시 성사시켜 줄게.”

무혼은 히죽 웃고는 드래곤 하트 조각을 복용했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하고 운기행공에 돌입했다.

바타르는 운기행공을 하는 무혼의 가슴에 손을 대고 힐링 마법을 펼쳤다. 또다시 희끄무레한 광채가 흘러나와 무혼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 * *

푸아악!

가공할 기운을 내포한 기운이 허공을 뚫었다.

새하얀 광채가 만들어 낸 대기의 동굴 속은 한순간이었지만 진공상태로 변했다.

쭈우욱!

진공상태가 본래대로 메워지면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흡!”

태양마존은 심호흡을 했다.

이화기와 태양강을 백 번도 더 펼쳤다. 이화기와 태양강이 뿜어낸 열기에 의해 광장 안은 한증막 안처럼 푹푹 찐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단전은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애꿎은 부하 서른 명이 죽었지만 금장생은 여전히 허공 어딘가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물론 공격을 전혀 성공 못 한 건 아니다.

세 번을 맞닥뜨렸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공격을 끝내고 숨을 고르는 순간을 이용해 놈이 공격을 해 왔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바람에 허벅지 세 곳에 검상을 입고 말았다.

다행히 세 번 중 한 번은 전력을 다한 공격을 성공시켰다. 놈은 피를 토하고는 허공으로 숨어들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놈을 찾는 게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점점 더 강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단전에 들어 있는 내공이 줄어들면서 감각이 떨어진 탓이었다.

저편에 있는 귀마존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면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아니, 무능력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다.

귀마존의 도움으로 일호를 없애게 되면 삼신의 귀에 들어갈 게 분명하고, 삼백 년 동안 제대로 수행을 하지 않았다고 책망 들을 게 뻔하다.

문제는 단순한 책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신은 이곳에서 벌어질 무혼과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먼저 중원의 주인이 되고 크로노마스를 없앤 후 샤이칸드리아 대륙과 헤이람 대륙을 정복하여 신의 땅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신족의 위대한 사명이 끝난다고 하였다.

그 성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능한 자라고 낙인찍힐 수는 없다.

“개자식!”

“사노는 나오세요!”

“차앗!”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태양마존은 날갯짓을 했다.

곧바로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하급 수십 명이 모여 있는 곳이라 무공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일단 금장생을 몰아붙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의 신형이 금장생을 쫓아 가공할 속도로 쏘아졌다.

그사이 금장생은 이미 장소를 이동한 후였다. 태양마존은 곧 조금 전 금장생이 머물러 있던 장소를 지나쳤다.

슥!

금장생과 태양마존이 떠나고 난 자리로 불여하가 나타났다.

불여하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방으로 시위를 당겼다.

퉁! 퉁퉁! 퉁퉁퉁!

퍽! 퍽퍽퍽! 퍽퍽퍽!

“커억!”

“크윽!”

“으윽!”

하급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파아앗! 파아앗! 파아앗! 파아앗!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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