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26화 (226/524)

황금가 (226)

시간은 계속 흘렀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기온이 차가웠음에도 불구하고 삼신회 문도들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뚝! 뚝! 뚝!

워낙 조용해, 볼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땀방울이 흘러내리면 간지러워 손을 올라가기도 하는데 워낙 긴장한 상태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슥!

어디선가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슥! 슥슥슥!

그리고 비슷한 소리가 이어졌다.

은신해 있던 자들이 이동하면서 나는 소리였다. 하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놈이냐, 부활전사단이냐?’

이호는 내심 중얼거렸다.

먼저 들려온 소리는 금장생이나 부활전사단 대원 둘 중 한 명에게서, 그리고 나중 건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이동하면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후두둑!

갑자기 허공에서 액체가 떨어졌다.

‘저건?

이호의 눈이 커졌다.

‘다, 당했…….’

그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시체 한 구가 아래로 추락했다.

천객 이십이호였다가 부활전사단이 된 심적기였다.

“자중하라!”

이호는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런데 이호 목소리는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삼 장 떨어진 오른편에서 흘러나왔다.

자신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본래 있는 곳과 다른 장소에서 목소리가 나오게 하는 회절전성이라는 무공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자신의 위치는 숨겼지만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에 천객 출신 부활전사단 대원이 은신해 있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천객 사십칠호 호민이었다.

“제기랄!”

호민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중얼거림처럼 작은 소리였다.

―그러게.

문득 귓전으로 차가운 전음이 흘러들었다.

‘여…….’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일…….’

호민은 일호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금장생은 호민의 뒷목에서 붉은색 검, 즉 혈사아를 뽑았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슥!

그가 움직이자 숨어 있던 호민의 모습이 드러났다.

털썩!

호민은 거칠게 쓰러졌다.

호민이 시체로 발견되자 대기가 출렁댔다. 그건 은신하고 있던 자들이 동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젠장!’

이호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호민이 당한 게 조금 전 자신이 펼친 회절전성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결국 호민을 죽인 건 그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상태로는 놈을 잡지 못한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 방법뿐이다.’

이호는 결심을 굳혔다.

“부활전사단은 들어라. 작전을 변경한다. 지금 바로 천라은영을 펼쳐라!”

그는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천라은영은 놈도 알고 있습…… 커억!”

사내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명을 내질렀다.

휙!

슉!

휘익!

은신해 있던 부활전사단 수십 명이 동시에 암기를 내던졌다.

푹! 푹푹푹! 푹푹!

암기 수십 개가 박혀 들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잡았다!’

이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밝은 표정은 나타난 것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암기에 맞은 자가 나타났는데, 금장생이 아니라 부활전사단 대원이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이호는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당장 천라은영을 펼쳐라! 기준은 나다.”

이호는 은신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존!”

“존!”

나직한 대답과 함께 숨어 있던 자들이 이호 옆으로 왔다. 그리고 서로 간의 거리를 가늠하더니 곧바로 은신술을 펼쳤다.

‘풋!’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금장생의 입가에 조소가 얹혔다.

천라은영은 다수의 자객이 펼치는 천라지망이다.

은신술을 펼치게 되면 같은 편이라도 할지라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작전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고, 심할 경우 아군끼리 싸우는 일도 생기곤 했다.

그래서 다수의 자객이 은신술을 펼치면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는데, 그게 바로 천라은영이다.

천라은영은 내기를 이용하여 동료 자객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특수한 진식이다.

진식을 펼치다가 적을 발견하면 곧바로 정해진 동료에게 내기를 전이하여 일격 필살의 수법으로 공격한다.

공격이 성공하면 천라은영을 해진하고 본래 위치로 돌아가지만, 죽이거나 제압하지 못하면 계속된다.

내기를 분산해야 한다는 점과, 목표물을 없애기 전까지는 멈추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군을 공격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자객 개인이 가진 능력보다 수십 배 더 강한 힘으로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아주 강하고 은신술에 능한 자를 제압할 때 자주 이용하곤 한다.

‘문제는 나도 천라은영을 알고 있다는 데에 있지.’

아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만일 스스로 천라은영의 표적이 되면 어떻게 할 건지를 연구하기도 했다.

금장생은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의 동작은 아주 느렸다.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는 물론이고 대기 흐름마저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누운 상태에서 옷을 벗었다.

옷을 벗는 동작도 답답하리만큼 느렸다.

속옷은 물론이고 가슴에 차고 있던 적운신갑까지 벗은 후 삼천혼의 끈을 허리에 둘러 묶었다. 삼천혼의 검집이 위치한 곳은 오른편 대퇴부였다.

그는 검집 아래쪽에 있는 끈을 허벅지에 돌려 감아 묶어 움직이지 않게 고정했다.

그런 다음 바타르로부터 받은 마법 주머니를 꺼내 삼천혼 검집 안쪽에 움직이지 않게 묶었다.

‘오랜만이네.’

두 손을 배 위에 대고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지금처럼 이렇게 알몸으로 살행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이 야행복을 준비해 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준비가 제대로 안 되고 적이 터무니없이 강할 때는 야행복을 대신할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알몸뿐이다.

‘아이고, 추워라.’

금장생은 얼른 양극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가 끌어 올린 건 일 성에 불과했다. 최고의 자객들은 대기의 변화만으로도 적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더 이상 끌어 올릴 수 없다.

사실 일 성을 끌어 올린 것도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데우지 않을 수 없는 건, 추위는 근육을 굳게 만들어 반사 신경을 억제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일 성의 내공은 몸을 정상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이었다.

스윽!

금장생은 왼발을 펴 바닥을 짚었다. 그 상태에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직 움직이는 적은 없다.

왼팔에 힘을 주고 몸을 돌려 엎드렸다.

그가 자리를 이동하자 깔고 있던 옷이 드러났다.

―오십팔호, 저기로 가라!

옷이 드러나자 이호는 명령을 내렸다.

부활전사단으로 들어오면서 더 이상 숫자로 부르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은 지금처럼 부르는 게 더 편했다.

휙!

천라은영을 펼치던 자들 중 한 명이 금장생의 옷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오십팔호는 여전히 은신술을 펼친 상태였다.

척!

오십팔호는 금장생의 옷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옷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비록 금장생은 보이지 않지만 속임수일 수도 있어 조심해야 했다.

그의 검은 길이가 한 자가량이고 폭은 반 치(1.5센티미터)로, 자객들에게 최적화된 무기였다.

퍽!

검 끝이 파고들면서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슉!

검은 광채 하나가 허공을 갈랐다.

검은 광채는 정확하게 오십팔호의 목을 훑었다.

턱!

오십팔호는 왼손으로 목을 그러쥐었다.

주르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젠장!’

쿠웅!

바닥으로 쓰러지자 그제야 오십팔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스윽! 슥슥슥! 스윽!

사방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모여드는 곳은 오십팔호 쪽이었다.

스악!

“컥!”

오십팔호의 시체에서 삼 장 떨어진 곳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츄악!

이어 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피만 솟구치는 광경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스악! 스악!

“크윽!”

“커억!”

피가 솟구치는 장소 근처에서 연이어 비명이 흘러나오더니 다른 피가 솟구쳤다.

잠시 후 숨어 있던 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 피가 솟구칠 때 몸이 드러나지 않았던 건 아직 단전이 살아 있고 내기 공급이 끊어지지 않아서였다.

“놈이다! 경계하라!”

이호는 버럭 소리쳤다.

“컥!”

“큭!”

“윽!”

이번에 비명이 들려온 곳은 처음 피가 솟구친 곳 반대편이었다.

츄악! 츄악! 츄악!

또다시 피가 솟구쳤다.

피가 솟구치고 숨이 끊어진 자객들의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 초에서 오 초 정도였다.

그사이 금장생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자객들을 없앴다.

“동요하면 죽는다! 긴장하면 죽는다! 숨을 크게 쉬어도 죽는다! 움직여도 죽는다!”

어둠 속에서 나직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장생의 목소리였다.

부르르!

이호는 온몸을 떨었다.

방금 그 말은 자객 수업을 받을 때 입에 달고 살았던 자객 불문율이었다.

수만 번도 더 듣고 또 소리쳤던 거라 천객 출신이면 누구나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임무에서 그렇게 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이곳저곳에서 동료의 피가 솟구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더 동요하고, 더 긴장하고, 숨을 더 크게 쉬어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있다.

중원 최고 자객 앞에서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건 곧 죽음이다.

“컥!”

“윽!”

“억!”

츄악! 츄악! 츄악! 츄악!

또다시 네 줄기 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으아아!”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자객 한 명이 은신술을 풀고 비명을 내질렀다.

슉!

반투명한 광채가 자객의 목으로 파고들었다.

“컥!”

자객은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

목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이호는 다시 소리쳤다.

―이미 늦었다, 이호. 저들의 평정심은 완전히 깨졌다. 살행 중 평정심이 깨지면 끝이다.

슈아악! 슈아악!

느닷없이 허공 한 지점에서 수십 개의 검이 나타났다.

“차앗!”

“타하!”

“하아!”

귀마존을 비롯한 네 명이 무공을 펼친 건 바로 그때였다.

그들은 맨 처음 사아死牙가 튀어나온 허공을 향해 공격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빈 공간만 갈랐다.

그사이 공간을 단축한 사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억!”

“큭!”

“윽!”

사아가 파고들어 가는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허공에 숨어 있던 자들 수십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기를 회수할 때를 노려라!

귀마존은 이호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를 비롯한 네 명의 마존 역시 전 내공을 양손에 모은 채 금장생이 발출한 무기를 회수하기를 기다렸다.

“커억!”

“크윽!”

“으윽!”

하지만 금장생은 사아를 회수하지 않았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은신해 있는 자객들을 없앴다.

그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고, 허공으로 솟구치는 피 분수의 수가 많아졌다.

“으흠!”

귀마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객의 신분으로 무림십패의 일인이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무인들을 향해 얼마나 모자란 자들이면 자객에게 최강의 자리를 내주냐며 비웃었다.

자객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중원무림 무인들이 한심해 보였다.

그런데 실제로 본 사상의 능력은 가공했다.

사방으로 움직여 다니며 자객들을 없애고 있는데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놈을 없애는 건 고사하고 찾을 수도 없네.

태양마존의 전음이 들려왔다.

―내 생각도 같네.

귀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전사단은 작전을 중단하라!”

그는 이호가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이호는 대답이 없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귀마존은 버럭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 친구도 당신 말을 듣고 싶은 것 같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가 봅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이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호의 목젖에는 붉은색 소검이 대어져 있었다.

소검이 피부를 약간 파고들어 간 듯, 붉은 액체가 실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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