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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23화 (223/524)

황금가 (223)

“인간의 몸으로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데, 말해 줄 수 있어?”

숨을 돌린 무혼이 물었다.

“질문은 내가 먼저 한 것 같은데?”

“어떤 질문?”

“내가 알기론 빙의를 하면 육신은 조금씩 썩어 가야 해. 그런데 너는 완벽하게 네 몸으로 만들었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는 거야.”

“차를 한 잔 대접해 준다면 기꺼이 함께 마실 용의가 있다. 참, 저 자식은 바타르다.”

무혼은 바타르를 가리켰다.

천마는 바타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드래곤을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영광입니다. 일어나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몸 상태가 엉망이라서요.”

천마는 정중하게 말했다.

“바로 알아보는 걸 보니 내가 처음이 아니구나.”

바타르는 천마를 가만히 보았다.

“사흘 밤낮을 싸운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

바타르가 물었다.

“무슨 결과 말입니까?”

“싸움 결과를 말하는 거다.”

“나는 아직 살아 있잖습니까.”

“……그렇구나.”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천마가 말했다.

“일어날 수 있겠느냐?”

바타르가 물었다.

무혼과 천마는 대화를 하면서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일어나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치료해 주기를 바라느냐?”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제 거처로 옮겨 주기만 하면 됩니다.”

“……알았다.”

잠시 천마를 바라보던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마법을 펼쳐 천마와 무혼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리고 마법 공간을 해제했다.

“저 길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천마가 통로를 가리켰다.

바타르는 천마가 가리킨 길을 따라 걸었다.

더 이상 통로에 대해 가르쳐 줄 게 없자 천마는 무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몇 살이지?”

“나이는 왜?”

무혼은 되물었다.

“내가 손해인 것 같아서.”

“무슨 손해?”

“우린 지금 말을 트고 있거든.”

“그러고 보니……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얼굴은 아주 젊어 보이는 것 같은데…….”

꼭 서열을 정하려는 의도보다는, 얼마나 살았는지 궁금했다.

“몰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돼서 모른다는 거냐, 아니면 기억을 못 한다는 거냐?”

“전자야.”

“그렇군. 그런데 중원인?”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다시 물었다.

“영혼은 중원인이지만 몸은 아냐.”

“방문자의 몸속으로 들어간 거냐?”

“거기서 살았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인간은 나 혼자고 드래곤은 두 마리뿐이야.”

“비밀이라는 말?”

“비밀이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야.”

“나는 누군가에게 말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발설할 이유도 없다.”

천마는 누운 상태로 어깨를 으쓱했다.

“설사 말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걸.”

“그렇긴 하겠네. 저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천마는 전면 석실을 가리켰다.

바타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석실에는 천장과 바닥 그리고 사면 벽에 마법진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동 마법진이군.”

바타르가 나직하게 말했다.

“잘 아시는군요.”

천마는 빙긋 웃었다.

“마법을 펼칠 줄 아느냐?”

바타르는 물었다.

“배우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 펼쳐 놓은 걸 이용할 줄은 압니다.”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느냐?”

“나와 잠마, 수라는 총 여덟 명의 스승에게 배웠습니다. 그분들의 무공 중 내가 가장 집중했던 건 바로 십만마도법이었습니다.”

“십만마도법을 새로 정리한 사람이 너구나?”

이번에는 무혼이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맞다.”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그때 사방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에서 푸른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바타르가 이동 마법진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 * *

파앗!

허공에 빛 덩어리가 하나가 생겨났다. 순간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와!”

픽!

금장생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맺힌 순간 바로 어둠이 찾아왔다.

“지랄!”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법을 펼칠 준비가 다 됐다고 하는데도 쉽지가 않았다.

―드래곤이 아닌 이상 한 번에 마법을 펼치는 종족은 없다.

일라일라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마나를 느껴야 한다.

“마나는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하면 빛은 어떤 마나로 만드는지 알겠구나.

“그건…….”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어떤 마나’라는 말은 내기의 세부적인 상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내기를 느끼고는 있지만 그 내기를 구성하는 요소가 어떤 건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너 혹시…….

“왜 그러십니까?”

―마법서를 읽어 본 적 있느냐?

“없습니다.”

―마법서를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마나 서클이 만들어져 있는 거지?

“전에 내가 살던 곳의 지하 무덤에서 몇 가지 기연을 얻었습니다.”

―어떤 기연이냐?

“그러니까…….”

금장생은 북망산 지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그때 얻은 글자가 뭔지 모르겠느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은 하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네가 보았다는 그 사내는 신족이나 마족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던 자가 분명하다. 그리고 네가 흡수했다는 그 글씨들은 마법 주문일 가능성이 높다.

“마법 주문도 알고 있는데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펼치지 못한다는 거군요.”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다.

“그럼 그때 내가 흡수한 글자를 일라일라는 해석할 수 있나요?”

―어떤 글인지 봐야 한다.

“제가 머릿속으로 글자를 떠올리면 알아볼 수 있지 않나요?”

―떠올려 봐라.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북망산 지하 석실에서 봤던 글자를 떠올렸다.

그의 몸속으로 사라졌던 글자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나타났다. 글자는 전부 일천 자였다.

―놀랍구나.

일라일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어떤 글입니까.”

―마법 문자라고 불리는 룬어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글로, 마족이 사용하는 마법 문자다.

“그러면 제가 본 자는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었군요.”

―그런 모양이다. 또 이상한 건 없었느냐?

“특이한 물체를 하나 흡수했습니다.”

―특이한 물체?

“투명했는데, 어떤 모양인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쇳소리가 났습니다.”

―쇳소리?

“네.”

―이봐.

일라일라는 라를 불렀다.

―왜?

라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조금 전 그가 불렀을 때 일라일라가 대답을 하지 않았던 탓이다.

―투명하면서 특별한 형체가 없고 몸속으로 흡수되는 무기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어?

―너 에고족이냐 정령이냐?

라는 물었다.

그에게 급한 건 이상한 무기가 아니라 일라일라의 정체였다.

―나는 정령이다.

―정말?

―그렇다.

―정령이 자아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급 정령 이상이라야 하는데, 어떤 정령이냐?

정령은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정령왕의 계급으로 나뉘는데, 자아는 상급 이상의 정령만 지니고 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다.

―최소한 상급이란 말이구나.

―좋을 대로 생각해라. 그보다, 아느냐?

―가드헬Gad Hell을 말하는 거라면 안다.

―이 녀석 몸속에 있는 그것이 가드헬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가드헬은 마계에서도 전설로만 내려오는 전설의 무기다. 마족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마법이나 가르쳐라.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한번 하자.

―나중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라는 툭 쏘아붙였다.

―야, 자식아, 난…….

“그만하세요.”

―저 자식은 몇 살 처먹었는데?

일라일라는 버럭 소리쳤다.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보다 마법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마나를 느끼는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이미 마나를 느낄 줄 압니다.”

―마나를 느끼긴 하지만 바람, 땅, 불, 물의 마나는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아니냐?

“그건…….”

금장생은 대답을 못 했다.

자신은 심검의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에 내기를 느낀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몸속에 있는 내기를 네 가지 성분으로 구분해 내지는 못한다.

―그걸 구분할 줄 알아야 마나를 느낀다고 말할 수 있고, 마법을 펼칠 수 있다.

“어떻게 느낍니까?”

―느끼는 건 누군가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의 느낌이라는 거군요.”

―그렇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흙을 한 움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씹었다. 흙 맛 말고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금장생은 흙을 뱉지 않았다.

흙이 가루가 되도록 씹고 또 씹었다.

침이 나오면 삼매진화를 일으켜 증발을 시켰다. 입안에는 오직 흙만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

내심 소리쳤다.

‘흙은 대지다. 대지는 모든 걸 포함한다. 물도, 불도 바람도 모두 흙 속에 있다. 흙은 혼돈이다. 혼돈은 시작이다. 시작은 끝이다. 끝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 순간 금장생은 자신이 흙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위아래를 둘러보아도 모두 흙이었다.

‘분리가 아냐. 흙은 합치는 거야.’

문득 든 생각이었다.

모든 걸 내포하고 있는 흙은 특별한 기운이 아니라 모든 걸 내포하는 구성 요소다. 다른 기운과 달리 흙이 움직이지 못한 건 모든 걸 가져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흙은 정靜이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사라랑!

심장의 마나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더니 그의 몸 주위로 황금색 광채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대지의 마나였다.

‘바람은 동動이다. 따라서 불안정하다.’

어느새 대지의 마나가 사라지고 약간 푸른빛을 띤 내기가 금장생의 전신을 감쌌다. 그것은 바로 바람의 마나였다.

대지의 마나와 바람의 마나를 깨닫고 나자 나머지 마나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불의 마나와 물의 마나도 곧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불의 마나와 물의 마나를 만들어 낼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바로 그가 익힌 양극신공이었다.

―그 네 가지 외에는 어둠의 마나, 분노의 마나, 신성의 마나, 번개의 마나 등이 있다. 물론 그것들은 엄밀히 따지면 네 마나에 포함되는 기운이긴 하지만, 워낙 독특하고 강하기 때문에 따로 분류하곤 한다.

일라일라는 마나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마법을 펼칠 준비가 된 겁니까?”

―준비만 됐을 뿐이다. 두 번째로 해야 할 건, 마나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검술을 익히고 있으니까 그건 쉽게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까요?”

―일단 조금 전 펼쳤던 마법을 다시 펼쳐 보아라.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심호흡을 하여 심신을 안정시켰다.

심신의 안정 또한 마법을 펼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몸속의 모든 기운이 호수 표면처럼 잔잔해졌다.

“어둠을 밝히는 힘! 라이트!”

금장생은 마법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마법 지팡이 끝에 달린 보석으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마나는 맹렬하게 뒤섞이더니 곧 주먹 크기의 덩어리로 변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금장생은 빛과 자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자신이 아니라 정확하게 심장의 고리였다.

그곳에서 나온 마나 줄은 몸을 뚫고 나가 허공에 뜬 빛 덩어리와 연결돼 있었다.

그 줄을 통해 마나가 공급되었다.

“일라일라, 성공한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보통 마나 친화력이 뛰어난 자라고 해도 마나를 느끼는 데만 한 달 이상 걸리는데 너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구나.

“제가 원래 그런 쪽에…….”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그가 있는 곳으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얼굴이 눈에 익은 자들이 있었다.

“또 만났구나, 일호.”

금장생을 향해 비아냥댄 자는 천객 이호였다.

“당신은 그날 죽었는데…….”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이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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