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20화 (220/524)

황금가 (220)

천마

“으음!”

나직한 신음과 함께 금장생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캄캄한 어둠이었다.

잠시 후 사물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물컹!

두툼하고 부드러운 살점이 손안 가득 잡혀 들었다.

‘시체?’

그는 시선을 내렸다.

“……?”

그의 눈이 커졌다. 그가 틀어쥐고 있는 물렁물렁한 건 바로 사노왕 불여하의 가슴이었다.

‘이건 도대체…….’

금장생은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상황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수백 개의 화탄이 날아온 손간 불여하의 몸을 감싸면서 호신강기를 펼쳤다. 나머지 팔장군들에게 돌아가라 말할 여유도 없었다.

한꺼번에 떨어진 화탄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폭발했다.

아마도 폭발로 인한 충격으로 기절하기 직전 불여하를 품속으로 끌어들인 모양이었다.

“괜찮아…….”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불여하는 괜찮은 게 아니었다. 입고 있던 옷은 거의 날아가 버리고 반라 상태였다.

자신이 옷 위가 아니라 맨가슴을 그러쥐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문득 갑옷을 벗기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갑옷을 벗긴 건 빗물이나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 인시가 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 보세요.”

가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불여하는 벌떡 일어났다.

금장생은 불여하의 몸을 살폈다. 여기저기 그을린 자국이 보였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이걸 입으세요.”

금장생은 태극선의를 벗어 주었다.

불여하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포를 왜 주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강시라고 해도 알몸으로 다니는 건 그렇잖아요. 새 옷을 구하기 전까지 이걸 입고 계세요.”

금장생은 장포를 불여하 앞으로 내밀었다.

그제야 금장생이 태극선의를 내민 이유를 알아차린 불여하는 태극선의를 받아 들고 걸쳤다. 그런 다음 옆에 놓아두었던 궁을 집어 들었다.

“이제 여기가 어딘지 확인해 볼까요?”

금장생은 다시 주위를 꼼꼼히 살폈다.

“어?”

그의 눈이 커졌다.

주위를 살피는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닥과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운 펜타그램이었다.

펜타그램은 빈 공간 하나 없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것들이 뭔지 아십니까?”

금장생은 소매를 걷으며 물었다.

―내게 물은 거냐?

라가 되물었다.

“네.”

―이동 마법진이다.

“이동 마법진이면, 마법진이 활성화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말인가요?”

―맞다.

“나와 사노왕이 이동돼 온 걸 보면 외부로 나가거나 들어올 때 사용하는 통로인 것 같죠?”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여긴 어딜까요?”

―죽림을 벗어나지 않았고 고대의 성이 있던 장소라고 하였으니까, ‘전사의 성’일 가능성이 높다.

“전사의 성이라면 전노왕은 지리를 알 수도 있겠죠?”

―일단 불러내 봐라.

“어디 있는지를 모릅니다.”

―몰라?

“이곳으로 오기 전에 폭발에 휘말려서 헤어졌거든요.”

―내가 알기론 타이탄은 반경 500미터, 즉 백칠십 장 안에만 있으면 계약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타이탄이 가능하니까 팔장군들도 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가능할 거라고 본다.

“잠깐만요.”

금장생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그리고 의식을 이용해서 팔장군들을 찾아 나섰다.

한참 동안 주변을 헤맨 그의 의식 속에 희미하게 팔장군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팔장군은 돌아가세요.

그는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팔장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움직이지 않네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뭔가 가로막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 것 같아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에 있는지는 아느냐?

“나가서 찾아봐야죠.”

금장생은 불여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석실 밖은 통로였다. 너무 어두워 통로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어둡네요.”

―그 드래곤 녀석이 준 주머니는 뒤져 봤느냐?

라가 물었다.

“아뇨.”

―잘 찾아보면 마법 지팡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마법을 펼치라는 건가요?”

―힘을 지니고 있는데 굳이 썩힐 필요는 없잖느냐.

“그렇긴 하네요. 한번 찾아볼까요?”

금장생은 바타르로부터 받은 가방을 꺼내 입구를 열었다.

“풋!”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어디엔가 빛이 있는 듯, 가방 안쪽은 모든 사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그가 미소를 지은 건 한편에 가득 쌓인 돈 자루가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그는 가방 내부를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잡동사니뿐인데 무혼은 왜 보물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금장생은 왼팔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보다는 라가 살펴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법 지팡이는 마나를 담을 수 있는 마정석이 끝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저기 저놈 보이느냐?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왼편에 막대기 같은 게 하나 보이지 않느냐?

“이거요?”

금장생은 아주 볼품없어 보이는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길이는 한 자가량이었는데, 거무튀튀한 막대에 역시 거무튀튀한 돌 하나가 끝에 달려 있었다.

―맞다. 그거다.

“골동품 같네요.”

―내가 보기엔 최고의 마법 지팡이다.

“하긴 겉모습과 완전히 다른 게 있기는 하니까요.”

금장생은 다시 가방 안을 탐험했다.

―뭐 하는 거냐?

“마법을 펼치려면 주문을 알아야 하잖아요.”

―일단 마법 지팡이에 마나를 주입해 봐라.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심장의 고리에 의식을 집중했다.

곧 심장의 고리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로 반대로 빠르게 돌아가면서 힘을 만들어 냈다.

그 힘은 오른팔을 통해 마법 지팡이로 유입되었다.

파앗!

마법 지팡이 끝에 붙어 있는 거무튀튀한 돌에서 칠색 광채가 흘러나왔다.

‘응?’

금장생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마법 지팡이 안으로 들어갔던 기운이 다시 돌아오더니 온몸을 휘젓고는 다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운은 조금 전 내보낸 기운과 달랐다. 새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

‘이 녀석과도 공명을 이루는 건가?’

문득 전에 마신에 처음 탑승했을 때가 떠올랐다.

마신의 마법 공간에 앉아 운기행공을 하자 마신의 기운이 몸 안으로 유입돼 들어왔다. 마신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마법 지팡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금장생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랐다. 마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팡이에게도 이름을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띠링!

느닷없이 머릿속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런데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그림처럼 눈앞으로 뭔가가 나타났다.

‘저건…….’

그는 눈앞에 나타난 걸 확인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포악성 75

방어력 78

정력 100

도주력 ……

……

총단계 60

“뭐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 나타난 저것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일라일라다.

느닷없이 묵직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누구죠?”

―일라일라다.

“그러니까 일라일라가 누구냐고요?”

―일라일라가 일라일라다.

“혹시 마법 지팡인가요?”

금장생은 지팡이로 시선을 주었다.

―나는 일라일라다.

그 순간 마법 지팡이 끝에 달린 보석이 더 밝아졌다.

“마법 지팡이 맞군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무슨 소리냐?

라가 물었다.

“말하는 지팡입니다.”

―지팡이도 에고족이란 말이냐?

“에고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가 가능한 건 맞습니다.”

―에고족이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무공에도 자신의 기운을 숨기는 방법이 아주 많습니다. 저도 그런 방법 중의 하나를 이용해서 제 실력을 숨기고 다니고요.”

―저 녀석이…….

“일라일라랍니다.”

―일라일라?

“이름 말입니다.”

―이름인 줄은 나도 알아. 나는 다만…… 야!

라는 마법 지팡이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일라일라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 안 해?

라는 버럭 소리쳤다.

“거참!”

금장생은 마법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왜?

라가 물었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네가 뭘?

“라도 그렇고 일라일라도,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왜 인간도 아닌 것들이 네 인생에 꼬이느냐는 말?

“꼬인다고 하는 건 그렇지만, 유독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게 이상해서요.”

―운명을 믿냐?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은 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해하기 쉽겠네.

“팔자라는 겁니까?”

―응.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네가 귀신을 보는 것 때문에 그래.

“귀신을 보는 능력 때문에 두 분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겁니까?”

―맞다. 만일 네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나 저 녀석은 깨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전에는 백사가 흘리는 기운 때문에 깨어났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각성 자체가 네가 차고 있었기에 일어났단 말이다.

“저와 백사의 기운이 합쳐져서 라를 자극했고 깊은 잠에서 깼다는 거군요.”

―맞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마법 지팡이로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마법을 배우고 싶은데 혹시 아십니까?”

―나는 전에 마법 선생이었다.

“마법 선생요?”

―그렇다.

―뭐라고 하느냐?

라가 물었다.

“전에 마법 선생님이었다는데요?”

―마법 지팡이가 마법을 익히고 있다는 거네?

“그런 모양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마법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일라일라에게 물었다.

―마법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마나, 마법 지팡이, 주문이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가장 우선되어야 할 건 마나다. 심장에 서클을 만들지 못하면 절대 마법을 펼칠 수 없다.

“나는 이미 서클이 만들어져 있지 않나요?”

―맞다. 그리고 서클이 만들어졌다는 건 마법을 익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마법을 익힌 상태라고요?”

―그렇다. 이제 너는 마법 지팡이와 마법 주문만 있으면 된다.

“불을 켜는 주문 한 가지만 가르쳐 주세요.”

―주문은 간단하다. ‘어둠을 밝히는 힘! 라이트!’라고 외치면 된다.

“그렇게 간단해요?”

―마법은 복잡한 게 아니다. 의지가 얼마나 강하냐에 달려 있다.

“한번 해 볼까요?”

―해 봐라!

“어둠을 밝히는 힘! 라이트!”

금장생은 마법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강하게 소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