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17화 (217/524)

황금가 (217)

전사의 성

“정신 차리게.”

슈캉!

검붉은 색 낫 하나가 날아와 주육성을 향해 달려드는 본 울프의 목을 잘라 냈다. 타루의 낫이었다.

“고맙네.”

주육승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무혼 뒤편으로 바싹 붙었다.

무혼은 연거푸 수라도법을 펼쳐 본 울프를 없애는 중이었다.

붉은 광채가 통로를 채울 때마다 본 울프 수십 마리가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가루로 흩어졌다.

‘엄청나네.’

주육승은 혀를 내둘렀다.

무혼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림십패나 실전십패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르르!

수라가 말려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육승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통로는 깔끔하게 정리가 돼 있었다.

“이곳 마물은 별로네.”

무혼은 어깨를 으쓱하며 걸었다.

“마물이 약한 게 아니라 네 녀석이 터무니없이 강한 거야.”

바타르가 이죽댔다.

그러자 무혼 뒤에 있던 타루 일행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본 무혼은 그만큼 강했다.

“마누라 하나도 못 지키는 놈이 강하긴 뭐가 강해. 지금보다 더 강해야 해. 적어도 세 배 이상은 강해져야 그놈 앞에서 눈에 힘을 줄 수 있다고.”

무혼은 짓씹듯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저게 무슨 말일까?

괴승 주괴는 타루에게 전음을 보냈다.

―몰라. 그 엄청난 무공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적이 있는 것 같아.

―지금보다 세 배나 더 강해져야 한다면, 적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낸들 알겠는가?

두 사람은 무혼을 따라갔다.

잠시 후 무혼 일행은 통로 끝 석문 앞에 도착했다.

무혼은 석문을 왼편으로 밀었다.

그르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천천히 열렸다.

파앗!

가장 먼저 일행을 반긴 건 불빛이었다.

“영구 마법등이네.”

바타르는 빙그레 웃었다.

중원에서 마법등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법등이라는 건 뭡니까?”

타루가 물었다.

“야명주와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대답은 무혼이 했다.

설명을 하려 들면 말이 길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그렇게만 말해 주었다.

무혼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광장처럼 보이는데 상당히 넓었다. 영구 마법등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일행은 벽 앞에 멈춰 섰다.

벽에는 무기가 잔뜩 걸려 있었다. 무혼은 벽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맨 오른편에 걸려 있는 건 기사들이 팔과 손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건틀릿이었다.

그중 하나를 뽑아 왼팔에 차 보았다.

“파이어!”

왼팔을 앞으로 내밀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붉은 광채가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퍽!

붉은 광채는 벽면으로 파고들었다.

“짝퉁 악마수 같지?”

무혼은 바타르를 보며 물었다.

생긴 건 악마수와 비슷했지만 위력은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저 녀석들처럼 별 볼 일 없는 것들에겐 아주 대단한 물건이 되겠지.”

바타르는 타루 일행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은 이런 게 없어도 돼.”

무혼은 주머니 안에서 가방처럼 보이는 걸 꺼냈다.

“오픈!”

그리고 나직하게 소리치자 검은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혼의 아공간 창고였다.

그는 짝퉁 악마수를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건틀릿은 전부 백 개였다.

건틀릿 옆에는 검이 걸려 있었다. 검 역시 백 자루였다.

검도 전부 아공간 창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검 옆으로는 도, 창, 궁, 방패, 도끼, 유성추, 대검, 상의 갑옷이 차례로 걸려 있었다.

“저 도끼 구경 좀 해도 되겠습니까?”

타루가 벽에 걸려 있는 도끼를 가리켰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가져도 좋아.”

무혼이 말했다.

“아미타불! 그럼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괴승 주괴가 도끼 한 자루를 빼 들었다.

그가 빼 든 도끼는 날의 길이가 두 자고 위는 넓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이었다.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어지는 날을 포함한 전체 길이는 반 장 정도였다.

주괴는 도끼를 좌우로 휘둘러 보았다.

처음엔 두 손으로 휘둘렀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 손으로 휘두르더니 도끼 한 자루를 더 들었다. 그리고 두 자루의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이윽고 주괴의 모습은 사라지고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부강斧罡만 남았다.

‘강하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괴는 원래 파괴적인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목에 걸고 있던 흑주는 어울리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내공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무기를 찾은 것 같았다.

“휴우!”

호흡을 고르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득 채웠던 부강이 스러졌다.

“버디슈다.”

무혼은 나직하게 말했다.

“이 녀석 이름입니까?”

주괴가 도끼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렇다.”

“버디슈라…… 마음에 듭니다, 주공.”

주괴는 싱긋 웃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무기를 전부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이곳엔 무기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공간 가방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은 무혼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광장은 엄청나게 넓었는데 벽에 무기가 걸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탁자나 책장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을 찾아봐.”

무혼은 타루 일행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타루 일행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기 통로가 있습니다.”

잠시 후 왼편 안쪽에서 주육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혼과 바타르는 그곳으로 갔다.

주육승의 말처럼 그곳엔 다른 통로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었다.

“마법이 걸려 있다. 나가는 건 가능한데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바타르가 말했다.

“마법을 해제하는 건 가능하겠지?”

“드래곤이 못 할 게 뭐 있겠느냐? 하지만 가능하면 해제하지 않는 게 좋다.”

“왜?”

“보통 던전에 걸린 마법은 구조물 뼈대와 연동돼 있는 경우가 많다.”

“마법이 해제되면 건물이 무너진다는 것 같은데, 맞아?”

“일반적으로 던전은 그렇게 건설된다는 말이다.”

“그냥 가야 한다는 거네?”

“맞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이나 켜라.”

무혼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 안쪽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일 장가량 걸어간 무혼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라이트!”

바타르의 나직한 외침에 이어 주먹 크기의 빛 덩어리 하나가 통로 앞으로 날아갔다.

무혼은 통로 좌우측을 둘러보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천장과 바닥도 다르지 않았다.

“저 구멍에서 뭔가 나올 것 같지?”

무혼은 벽과 천장에 뚫린 구멍을 가리켰다.

“걱정되느냐?”

바타르가 물었다.

“걱정은 무슨. 궁금해서 그러지.”

“그럼 가자.”

바타르는 통로 안을 걸어갔다.

철컥! 철컥! 철컥!

그가 무혼 앞으로 걸어가자 기관 작동하는 소리가 벽면과 천장에서 흘러나왔다.

“쉴드!”

바타르는 나직하게 소리쳤다.

슉! 슉슉슉! 슉슉슉! 슉슉슉!

투명한 막이 그의 전신을 감싸는 순간 벽면과 천장에서 화살이 튀어나왔다.

텅! 텅텅텅! 텅텅텅! 텅텅!

화살은 바타르의 방어막을 때렸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화살들은 방어막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우리도 가자.”

무혼은 걸음을 옮겼다.

한 번의 작동으로 기능을 다한 듯 화살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주괴는 바닥에 떨어진 화살 하나를 주워 들었다.

“천 년이 훨씬 넘었을 텐데 녹 하나 슬지 않았네.”

주괴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화살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내는 바타르도 놀랍지만 천 년 이상 동안 녹이 전혀 슬지 않은 화살도 놀라웠다.

“중원 기술이 아니라서 그래.”

“다른 세상 기술이란 말입니까.”

“응.”

“다른 세상이면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나랑 다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조급해하지 마.”

크앙!

바로 그때 전면에서 광포한 외침이 들려왔다.

무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후 네 사람은 바타르 옆으로 갔다. 바타르는 널따란 광장 입구에 서 있었다.

“뭐냐?”

무혼은 물었다.

“직접 봐라.”

바타르는 턱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저건?”

무혼의 눈이 커졌다.

광장 안에는 키가 오 장(15미터), 길이가 십 장(30미터) 정도인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

괴물은 살은 전혀 없고 뼈만 남아 있었다.

“저 녀석 와이번 맞지?”

무혼은 말했다.

와이번은 드래곤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는 드래곤의 십분의 일 정도고, 불을 뿜지도 마법을 펼치지도 못하는 공중 몬스터를 말한다.

브레스를 쏘지 못하고 마법도 펼치지 못한다고 해도 강철 같은 피부와 부리, 그리고 쇠에 깊은 자국을 남길 수 있는 강력한 발톱을 가진 와이번은 그 어떤 몬스터보다 강하고, 날아다닌다는 점 때문에 최상급 몬스터로 분류된다.

하지만 와이번은 샤이칸드리아 대륙에만 존재하는 몬스터일 뿐 중원에는 없다.

“정확하게는 본 와이번이지.”

본 와이번은 와이번의 시체를 마법으로 되살려 낸 언데드를 말한다.

보통 언데드와 마찬가지로 빛에는 약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불사의 능력을 지녔다.

“누가 쇠사슬로 묶어 놓았을까?”

무혼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이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본 와이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들은 중원인들이 방문자라고 불렀던 샤이칸드리아 대륙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곳 낭인성은 방문자들과 전쟁을 치르던 여덟 거점 중 한 곳이다. 그렇다면 본 와이번은 이 성을 없애기 위해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본 와이번을 사로잡는 것이 없애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건 정설이다.

그런데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도망치지 못하게 쇠사슬로 묶어 놓기까지 했다.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넘어온 자들은 절대 아니다.”

“그렇겠지.”

무혼은 본 와이번 앞으로 걸어갔다.

크아아아앙!

무혼을 발견한 본 와이번은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앙! 크아앙! 크아앙!

“어?”

무혼은 깜짝 놀랐다.

본 와이번은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안쪽에서도 괴성이 들려왔다.

무혼은 바타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불을 밝혀 봐.”

“알았다. 멀티라이트!”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 주문을 읊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빛 덩어리가 나타나 광장을 환하게 밝혔다.

“허!”

무혼의 눈이 커졌다.

예상대로 본 와이번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널따란 광장에 쇠사슬로 묶인 본 와이번은 열 마리나 되었다.

본 와이번들은 붉은 눈동자를 번득이며 무혼을 쏘아보았다.

“도대체 누가…… 응?”

무혼의 눈이 커졌다.

본 와이번 열 마리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묶여 있었는데, 원 한가운데 단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그 단 위였다.

그 단 한가운데에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무혼은 자신 앞에 서 있는 본 와이번 앞으로 걸어갔다.

크아아앙!

본 와이번의 머리가 무혼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쩍 벌어진 입은 금세라도 무혼의 머리를 잔인하게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았다.

“거기까지.”

무혼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본 와이번의 머리가 허공에 우뚝 멈췄다.

와이번의 머리를 허공에 묶어 놓은 건 무혼이 펼친 허공섭물이었다.

무혼은 본 와이번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크아앙! 크아아아!

나머지 본 와이번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무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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