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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16화 (216/524)

황금가 (216)

살기가 충천하고, 일행의 무기가 쉬지 않고 허공을 갈랐다.

도강과 검강이 충천할 때마다 낭인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일방적인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낭인들은 공격을 멈추지도 늦추지도 않았다. 그들은 절벽을 향해 뛰어드는 여행 쥐처럼, 쉬지 않고 금장생 일행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시체가 쌓이고 쌓여 벽을 이룰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싸움터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특이한 형태의 탑 꼭대기 층이었다.

탑의 높이는 십오 장가량이었는데, 대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굳은 얼굴로 싸움터를 내려다보는 이들은 막거성의 세 아들이었다.

“고수 아닌 자들이 없네요.”

셋째 풍랑혈객 막철군이 말했다.

수백 명의 낭인들이 숨 돌림 틈도 주지 않고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낭인들을 없앤다.

옆에서, 위에서, 쇠사슬에서 적을 향해 달려가는 낭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이 떠올랐다.

“저기 검은 옷을 입은 것들은 강시 같지?”

둘째 막전만이 팔장군 일행을 가리켜며 물었다.

“강시 맞습니다.”

막철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움직임이 사람 같구나.”

“저런 강시를 생시나 활시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생시나 활시는 금강불괴지신이라고 하던데, 아니냐?”

“확인은 못 했지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강시들은 백날 공격해 봐야 소용없겠구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막철군은 큰형 막천후를 보았다.

대낭인살진의 모든 작전 지시는 막천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탄을 던지라고 해라.”

막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막철군은 품속에서 호각을 꺼냈다. 그리고 입에 물고 힘차게 풀었다.

“던져라!”

숲 어딘가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려왔다.

곧이어 검은 물체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저건?”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젠장!”

금장생은 검은 물체가 화탄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화탄입니다, 무 형!

금장생은 무혼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혼 역시 쇠사슬에 몸이 감긴 상태라 정신이 없었다.

―알았어!

무혼은 전 내공을 동원하여 열 겹의 강기막을 펼쳤다.

그사이 일행을 공격하던 낭인들은 재빨리 물러났다.

“쉴드!”

이어 바타르의 입에서도 방어 마법 주문이 흘러나왔다.

콰앙! 쾅! 쾅쾅쾅! 쾅쾅!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수백 개의 화탄이 터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낭인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은 갈가리 찢겨 나갔다.

붉은 화염과 함께 바싹 마른 대나무 잎과 흙먼지가 수십 장 높이까지 솟구쳐 올랐다.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고 화탄이 터진 장소가 나타났다.

화탄이 터졌던 자리에는 지름 십오 장, 깊이 칠 장에 달하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휙! 휘휙! 휙!

구덩이 주변으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의 선두에는 조금 전 탑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막천후 삼 형제가 서 있었다.

“내려가서 살펴라!”

막천후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휙! 휙휙!

그러자 구덩이 주위에 있던 이십여 명이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낭인이 아니라 낭인성 문도들이었다.

그들은 구덩이 안쪽을 꼼꼼하게 살폈다.

“시체는 한 구도 없습니다!”

문도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시체가 없다고?”

막천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자신들이 던진 화탄의 양은 사람 십여 명 정도는 가루로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그건 무공을 전혀 모르는 양민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강기를 자유자재로 펼치는 무인들은 절대 가루로 만들 수 없다.

즉, 가루가 되지 않았다면 갈가리 찢긴 시체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야 한다.

시체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주위를 수색하라!”

막천후는 고함을 내질렀다.

낭인성 무인들과 대낭인살진에 참여한 낭인들은 구덩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구덩이 안을 헤매던 자들도 밖으로 나와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

한편.

폭발에 휘말린 무혼 일행은 기묘한 장소로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기절한 듯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무혼이었다.

무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옆에 바타르가 누워 있고, 앞에는 타루를 비롯한 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시선이 타루 뒤편으로 향했다.

거무튀튀한 공간과 길 그리고 석실로 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냐?”

바타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무혼은 고개를 돌렸다.

“기억 안 나?”

“무슨 기억 말이냐?”

“화탄이 절반 정도 터졌을 때 네가 마법 공간을 발견했다고 했잖아.”

“내가 그랬단…… 아!”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먼저 터진 화탄에 의해 땅바닥에 파였다. 거의 10미터 정도가 파였을 때 특이한 장소를 발견했다.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바위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거길 발견하자마자 무혼과 타루 일행에게 텔레파시를 보냈고, 지체 없이 바위를 향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폭발 후폭풍을 완전히 피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여긴 마법 공간 안쪽이란 말이지?”

“맞아.”

“그런데…….”

바타르는 말끝을 흐렸다.

그의 코를 자극한 건 세월의 냄새가 아니라 지독한 마물 냄새였다.

“왜 그래?”

“여긴 던전이다.”

“중원에 웬 던전?”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바타르를 보았다.

던전은 샤이칸드리아 지하에서 볼 수 있는 고대 무덤이나 건축물 혹은 신전 등을 통틀어 칭하는 말이었다.

보통 던전에는 마법 무구를 비롯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 헌터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지간한 실력자들도 탐험하는 게 쉽지 않은 아주 무서운 장소다. 그건 바로 던전을 지키는 가디언들 때문이다.

던전을 만든 자들은 자신들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가디언을 만들어 풀어 놓곤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어둠의 마나를 먹고 자란 가디언들은 마물로 진화하여 헌터들을 공격하곤 한다.

“혹시 그들의 무덤일까?”

무혼은 문득 싸우기 전에 들었던 천마, 잠마, 수라의 전설이 떠올랐다.

“무덤이 아니라 학교일 수도 있지.”

“학교?”

“무공이라는 걸 배운 장소 말이다.”

“일리가 있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타르에게 불을 켜 달라고 부탁했다.

“라이트Light!”

바타르가 나직하게 소리치자 허공에 빛 덩어리 하나가 나타났다.

환해지자 무혼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금장생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금장생은 물론이고 함께 있던 다크 나이트들도 보이지 않았다.

“들어오지 않을 걸까?”

“들어오긴 했을 거다.”

바타르가 말했다.

“그런데 왜 안 보이는 거지?”

“우리와 같은 입구로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들어온 곳 말고 다른 입구가 또 있다는 거냐?”

“원래 던전이란 곳이 입구가 여러 개라는 건 너도 알잖느냐. 그리고 설사 들어오지 못했다고 해도 데스 나이트가 여덟에, 악마수까지 가지고 있잖느냐. 그 녀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겠지. 이제 여기가 어딘지 한번 알아보자.”

무혼은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좌우 폭은 일 장 반, 높이는 이 장으로 꽤 넓었다.

“여기가 거길까요?”

무혼을 바라보는 타루의 얼굴에는 어떤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절대삼마가 무공을 익힌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고대 낭인성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이곳에 낭인성이 존재했는데 찾지를 못했다면 무너졌거나 지하에 숨겨져 있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바타르가 던전이라고 하였던 이곳은 사라졌다는 낭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천마, 잠마, 수라의 흔적이 이곳 어딘가에 남아 있겠군요.”

“설사 있다고 해도 살아남아야 볼 수 있다.”

바타르가 나직하게 말했다.

“네?”

타루는 놀란 얼굴로 바타르를 보았다.

“마물 냄새가 난다.”

“마물 냄새요?”

슥! 슥슥! 슥슥슥! 슥슥!

느닷없이 앞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감지되었다.

“응?”

타루는 낫을 움켜쥐며 전방을 응시했다.

잠시 후 일행 앞에 붉은색 광채를 뿌리는 눈동자 수백 개가 나타났다.

“뭐지?”

무혼이 물었다.

“보면 알겠지.”

바타르는 오른팔을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빛 덩어리가 전방으로 이동했다.

크아아! 캬아아아! 캬아아악!

느닷없이 괴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세상에.”

“저건?”

타루 일행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전방에는 붉은 눈동자를 가진 동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니, 동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번들거리는 피부에는 털이 전혀 없었다.

없는 건 털뿐만이 아니었다. 살점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뼈대 위에 얇은 가죽을 붙여 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덩치는 상당히 커서,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 장은 족히 돼 보였다.

송곳니를 드러낸 채 이편을 노려보는 마물들의 입에서는 침인지 체액인지 모를 액체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저 발톱도 엄청난 무기가 되겠군.”

주육승이 마물의 발을 가리켰다.

“그러게.”

주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건 고양이 발톱이지만 길이는 한 자나 되었다.

“본 울프다.”

바타르가 나직하게 말했다.

“본 울프요?”

타루가 바타르를 보았다.

“난이도는 중급이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난이도가 중급이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간 수준의 마물이란 뜻이다.”

캬우우!

본 울프들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앙! 크아아아! 캬우우우!

공격 신호인 듯, 본 울프들이 일제히 내달렸다.

그런데 본 울프는 바닥을 통해서만 달려오는 게 아니었다. 바닥과 좌우 벽 그리고 천장을 타고 달려왔다.

“공격해!”

바타르가 고함을 내질렀다.

파앗!

가장 먼저 마물들을 향해 달려간 사람은 무혼이었다.

차르르!

앞으로 달려가는 그의 오른팔에서 수라가 튀어나왔다.

곧 달려오는 본 울프와 마주쳤다.

“차앗!”

무혼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수라가 전방으로 진득한 살기를 부려 놓았다.

캉! 캉캉! 캉캉캉! 캉캉!

마물과 수라가 부딪치자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캥! 캥캥! 캥캥캥! 캥캥!

쇳소리가 나긴 했지만 마물들 피부로 수라를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물들은 통나무처럼 뎅겅뎅겅 잘렸다.

본 울프 사체가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무혼은 수라도법을 펼쳐 본 울프를 없애며 전진했다.

무혼 좌우측에서는 타루 일행이, 무혼이 놓친 본 울프를 처리했다.

“헐!”

처음 본 울프 몸에 도기를 날렸던 주육승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무혼이 아무렇지 않게 잘라 내기에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본 울프의 몸뚱이는 쇳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낫은 보기 좋게 튕겨 나왔다.

“젠장!”

주육승은 백겸에 전 내공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백겸에서 새하얀 광채가 흘러나왔다.

“타하!”

그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고, 새하얀 덩어리가 달려오는 본 울프를 향해 쏘아져 갔다.

슈캉! 스악!

백겸은 본 울프의 이마로 파고들어 가 항문 쪽으로 튀어나왔다.

털썩!

두 조각으로 잘린 본 울프가 쓰러졌다.

푸스스!

“헐!”

주육승은 깜짝 놀랐다. 두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본 울프가 가루로 변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멍한 얼굴로 가루로 변한 본 울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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