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15)
츄악! 츄아악!
머리가 잘려 나간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아미타불!”
괴승 주괴가 불호를 읊더니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풀었다. 그리고 중간 부분의 매듭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염주가 일직선이 되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그는 염주를 사정없이 뿌렸다.
스아악!
수십 개의 염주가 부챗살처럼 퍼지며 쏘아져 나갔다.
퍽! 퍽퍽퍽! 퍽퍽퍽!
염주는 낭인들의 이마로 틀어박혔다.
“크악!”
“아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실전십패라는 말이 공연히 주어진 게 아니었다.
타루, 주육승, 주괴는 가공할 무위로 낭인들을 없앴다. 낭인들은 제대로 대항도 못 하고 죽어 나갔다.
지상으로 내려온 무혼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레이훼일을 휘둘러 낭인들을 없앴다.
그의 도법은 단순했다. 좌측으로 혹은 우측으로 내리긋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낭인들은 무기와 함께 잘렸다.
“나는 할 게 없네.”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크게 한판 벌일 생각으로 묵야와 사백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무혼과 타루 일행의 활약이 너무 엄청나 자신과 팔장군은 할 일이 없었다.
‘그나저나…….’
금장생은 조금 전 광경을 떠올렸다.
낭인들이 펼친 소낭인살진을 한 방에 무너뜨린 건 무공이 아니라 마법이었다.
비록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마법의 위력은 가공했다.
‘나는 몰라도 저들은 움직여야 하지.’
금장생은 팔장군들을 보았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단전이 살아나고, 완벽한 생시가 될 것이다.
생시를 지나 인시가 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어쩌면 자신들의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고, 적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다. 정말 인시가 되는지, 끝까지 가 볼 참이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오세요.”
금장생은 팔장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금장생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팔장군의 신형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그들이 몸을 날릴 때 사용하는 신법은 군림천하보였다.
“능숙하네.”
금장생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
팔장군들은 군림천하보를 완벽하게 펼치고 있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응?”
화노왕 금웅을 바라보고 있던 금장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금웅은 낭인 한 명과 싸우고 있었는데, 상대가 상당한 내가 고수였다.
“단순한 낭인이 아니라는 소린데…….”
그는 묵야와 사백을 집어넣고 자신이 혈잔이라고 부르는 붉은색 소검을 꺼내 들었다.
“수상한 놈은…….”
“피해라!”
낭인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낭인들은 일제히 몸을 날렸다.
슈욱! 슈욱! 슈욱! 슈욱!
대나무 사이로 화살이 쏘아져 왔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강기로 온몸을 둘렀다.
텅! 텅텅텅! 텅텅!
수십 대의 화살이 강기막을 후려쳤다.
그는 혈잔을 다시 집어넣었다.
금웅과 싸우던 자는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살아남은 낭인들도 대나무 숲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가자.”
무혼은 앞장서 걸었다.
잠시 후 일행은 공터를 지나 대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불어온 바람에 대나무 가지가 서로 부딪쳐 서걱서걱 소리를 냈다. 숲 안에는 살기가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일행은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천라지망 비슷하네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천라지망?”
무혼은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다수가 소수을 잡기 위해 펼치는 진식을 말합니다. 일종의 사냥이죠.”
“그럼 우리가 사냥감이 된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냥감이 너무 강하다는 거겠지?”
“맞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낭인성 성주는 판단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휘익!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전방을 보았다.
“잔뜩 휘어졌던 대나무가 펴지는 소립니다.”
금장생은 묵야와 사백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 대나무에는 낭인들이 타고 있겠지?”
“그럴 겁니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파앗!
금장생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수십 명의 낭인들이 쏘아져 왔다.
본래 자신들이 펼치는 신법 속도에 대나무의 탄성이 더해져서 낭인들이 날아오는 속도는 화살처럼 빨랐다.
낭인들은 무기를 앞으로 내민 채 날아왔다.
스악!
무혼 일행의 무기가 일제히 허공을 갈랐다.
“크악!”
“아악!”
“으악!”
철벅! 철벅! 철벅!
잘려 나간 낭인들이 좌우로 떨어졌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또다시 휘어졌던 대나무가 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십 명이 무혼과 금장생 일행을 향해 쏘아져 왔다.
이번에는 팔장군이 나섰다.
퍼억!
가장 먼저 해노왕 혁장운의 유성추가 허공을 갈랐다.
퍽! 퍽퍽퍽!
전면에서 몸을 날려 오던 낭인의 머리를 부순 유성추는 연이어 좌측과 우측 공간을 부쉈다.
뇌수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유성추를 휘두르는 혁장운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스윽!
그런 혁장운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강시가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투구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리는 사노왕 불여하였다.
텅! 텅텅텅! 텅텅!
푹! 푹푹푹! 푹푹!
그녀는 빠르게 움직여 다니며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그녀가 시위를 놓을 때마다 낭인들의 머리가 터지며 피가 튀었다.
‘그러고 보니?’
금장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불여하에게는 전통도 없고 화살도 없다. 그런데 시위를 당기면 화살이 생겨나 달려드는 자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화살촉에 화탄이 달려 있는 것처럼, 화살이 파고든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크악!”
“아악!”
“으악!”
퍽! 퍽퍽!
처절한 비명에 이어 낭인들의 머리가 폭발했다.
―마법궁이다.
라가 말했다.
“저 궁에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건가요?”
―맞다.
“그럼 저 화살은 강기가 아니라는 말이네요.”’
―마나로 만드는 건 맞다. 다만 마나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가 너처럼 단전이 아니라 궁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살을 만들어 내는 게 단전의 내기가 아니고 마법궁이라고 해도, 그녀의 움직임은 엄청났다.
“피부색이 달라졌네요.”
불여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금장생이 말했다.
―누구?
라가 물었다.
“사노왕 말입니다.”
―어떻게 달라졌는데?
“전에는 흑인처럼 검었는데 지금은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본래 몸을 되찾아 가고 있는 거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장군들의 움직임은 산 사람이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장생, 전진하자!”
그때 무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날 호위하세요.”
휙! 휙휙! 휙!
금장생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팔장군들은 금장생을 가운데 두고 둘러섰다.
그 상태에서 무혼을 따라 몸을 날렸다.
팔장군들을 비롯한 금장생이 펼치는 무공은 군림천하보였다.
―사노왕은 내 말 들으세요.
앞으로 나아가면서 불여하에게 전음을 보내 보았다. 그러자 불여하가 움찔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금장생은 전음으로 적신천사마공의 내공심법을 구술해 주었다. 불여하가 알아듣는지 그건 알 수가 없었다.
금장생은 총 열 번을 들려주고 전음을 끊었다.
전음이 끊기자 불여하는 고대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푸른색이네?’
금장생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데스 나이트일 때는 온통 검은색 일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피부가 갈색으로 바뀌고 눈동자도 푸른색으로 변했다.
본래 몸 상태로 돌아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차르르! 차르르!
느닷없이 위쪽에서 뭔가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낭인 수십 명이 대나무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마노, 화노, 전노! 위쪽입니다.”
금장생은 빠르게 소리쳤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세 명은 일제히 바닥을 찼다.
이 장 높이까지 솟구친 세 명은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마노왕 적사월, 화노왕 금웅, 전노왕 묵천야의 검이 허공을 횡으로 갈랐다.
스악! 스악! 스악!
퍼억! 퍼억! 퍼억!
십여 명은 대나무와 함께 허리가 잘려 죽었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해노, 혈노, 철노, 암노는 땅속으로 무기를 박아 넣으세요.”
휙! 휙! 휙휙!
금장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 명은 각자의 무기를 번쩍 들어 지면으로 내리찍었다.
가장 먼저 철노왕의 망치가 바닥으로 파고들어 갔다.
콰앙!
가공할 힘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쿠아앙!
해노왕의 유성추가 그 뒤를 이었다.
그다음에 땅속으로 파고든 무기는 혈노왕 신무의 창과 암노왕 염라의 낫이었다.
픽! 픽픽!
땅속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땅속에 숨어 있던 자들의 몸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잠시 후 금장생 일행이 서 있던 바닥이 땅속에서 솟아나온 피로 인해 붉게 변했다.
파아앗! 파아앗! 파아앗!
하지만 그 공격으로 없앤 자들은 금장생과 팔장군 발밑에 있는 몇 명뿐이었다. 수십 명이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금장생과 무혼을 향해 쇠사슬로 이어진 낫을 내던졌다.
위에서 대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자들 때문에 금장생과 무혼 일행은 몸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금장생은 바로 옆에 있는 불여하를 끌어당겼다.
촤르르! 촤르르!
그 순간 작은 낫은 같은 자리에 있던 불여하와 금장생의 몸을 감아 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팔장군을 비롯한 무혼과 바타르 그리고 타루 일행의 몸도 감아 돌았다.
일행은 쇠사슬을 자르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슉! 슉슉슉! 슉슉슉!
순간 수백 대의 화살이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일행은 화살을 쳐 내느라 쇠사슬을 잘라 낼 겨를이 없었다.
“차하!”
“타하!”
“이얍!”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펴졌다.
“하아!”
“차아!”
“타하!”
그 쇠사슬을 타고 수백 명이 일행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엄청난 공세였다.
낭인들은 대나무의 탄성을 이용해서 몸을 날리고, 대나무를 타고 내려오고, 쇠사슬을 밟고 내달렸다.
금장생과 불여하 삼 장 앞에 도착한 낭인들은 일제히 몸을 날렸다.
휙!
불여하는 시위를 당겼다가 놓으며 금장생 뒤로 갔다.
쇠사슬 때문에 움직이는 게 원활하진 못했지만 뒤로 돌아갈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푹푹푹! 푹푹푹!
그녀의 화살은 낭인들의 이마로 틀어박혔다.
스아악!
그 순간 금장생의 묵야와 사백이 검강과 도강을 부려 놓았다.
검강과 도강은 달려오는 낭인들을 무기와 함께 잘라 냈다.
“컥!”
“큭!”
“윽!”
낭인들은 비명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퉁! 퉁퉁퉁! 퉁퉁!
불여하가 시위 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 대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화살과 같은 수의 낭인들의 머리가 터진 채 쇠사슬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