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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11화 (211/524)

황금가 (211)

낭인성

무혼은 열 명을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공격과 방어를 하기 위한 완벽한 진형이다.

저 상황에서는 공격과 수비가 자유롭다.

무공 실력은 어떨지 몰라도 실전에 있어서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 분명했다.

무혼이 알기론 그런 자들은 용병뿐이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용병을 낭인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누구냐?”

무혼은 물었다.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사내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린 너희를 여기서 처음 본다. 당연히 원수진 적도 없고. 그런데 살기를 흘리면서 다가오니까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다. 너희는 그냥 죽어 주기만 하면 된다. 시작하자!”

사내는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파앗! 파악! 파앗!

사내들은 두 명씩 조를 짜서 중앙과 좌측, 우측 그리고 뒤편으로 이동했다.

무기를 지닌 여덟 명은 공격 자세를 취하고, 무기가 없는 두 명은 좌측과 우측으로 멀찌감치 떨어졌다.

“이렇게 함부로 버려도 될 정도로 자신의 목숨이 하찮은가?”

무혼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시선을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

“우린 너희를 죽이러 왔다!”

사내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살 이유가 없다.”

무혼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랜드크로스 때 수많은 부하들이 죽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갔다. 단지 몇 푼의 돈을 위해 저러진 않았다.

무혼은 오른손을 옆으로 폈다.

촤르르!

팔목에서 튀어나온 수라가 진득한 살기를 부려 놓았다.

무혼 일행은 삼각형 형태를 이루며 서 있었다.

맨 앞에는 무혼이 섰고, 왼편 꼭짓점에는 바타르, 그리고 오른편 꼭짓점에는 금장생이 섰다.

서로 간의 거리는 일 장 정도였다.

“넌 무기 없냐?”

바타르는 금장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거 있잖습니까.”

금장생은 사백死白이라 부르는 무검을 들어 보였다.

“그게 무기라고?”

바타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사백을 보았다.

길이는 30센티미터 정도고, 무기 끝은 뭉툭하다. 손잡이 끝에는 방울이 끼워진 수염 같은 게 달려 있는 모양새가 무기가 아니라 장신구에 더 가깝게 보였다.

“생긴 건 이래도 묵야와 함께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제 걱정은 마시고 적이나 신경 쓰세요.”

“도와 달라는 소리만 해 봐라.”

바타르는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죽일!”

낭인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자신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 세 명의 행동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시작하자!

낭인 중 한 명이 왼편 사내에게 전음을 보냈다.

휙!

전음이 끝나는 순간 왼편에 따로 떨어져 있던 자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슉!

푸른 광채를 뿌리는 물체가 무혼을 향해 쏘아졌다. 바타르나 금장생보다 무혼을 없애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타하!”

“차하!”

“이얍!”

“하아!”

암기가 무혼의 지척에 이른 순간 네 방향에 있던 자들이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렸다.

“어리석은 짓이다.”

무혼은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수라를 강하게 휘둘렀다.

츠츠츠! 츠츠츠츠!

수라에서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료보다 한발 먼저 무혼 앞을 막아선 자가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그는 방어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가 먼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면 반 초 차로 늦게 출발한 동료가 사력을 다해 공격을 가하는 게 이들의 작전이었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둔 이 공격은 그동안 수많은 싸움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낭인들을 살아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다.

반 초의 시간 차를 두고 펼치는 이런 연환 공격은 약한 자들이 펼쳐도 상당한 효과를 본다.

하물며 이들은 절대 경시할 수 없는 강자들. 연환 공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상대가 무혼이 아니었다면 큰 효과를 보았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상대가 무혼이고 무혼의 무기가 자유롭게 구부러지는 연도라는 데에 있었다.

차앙!

낭인의 무기와 수라가 부딪쳤다.

부딪친 곳은 수라의 중간 부분이었다.

총 일 장 길이 중 절반이면 반 장이고, 그 정도만 해도 일반 검보다 훨씬 길다.

슉!

팽팽하게 서 있던 수라가 구십 도로 구부러졌다.

“헉!”

낭인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해 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목을 향해 날아오는 수라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푸욱!

하지만 수라가 박혀 든 곳은 얼굴이 아니라 사내의 목이었다.

“커억!”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텅!

사내의 목에서 빠져나간 수라가 용수철처럼 반대편으로 튕겼다.

“타하!”

무혼의 입에서 기합이 비어져 나온 건 그때였다.

수라가 오른편 앞 공간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이어 혈광이 비처럼 쏟아졌다.

“크아악!”

혈광 안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 온몸이 피로 뒤덮인 사내가 털썩 쓰러졌다.

번쩍!

그 순간 새하얀 광채가 금장생 앞쪽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그 공간 안쪽에서는 낭인으로 보이는 자들 두 명이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리고 이었다.

파고든 광채는 공간을 자르며 계속 나아갔고, 낭인 두 명도 공간처럼 두 쪽으로 갈라졌다.

“큭!”

“윽!”

비명은 그것뿐이었다. 두 쪽으로 나뉜 낭인들은 털썩털썩 쓰러졌다.

푹! 푸욱!

바타르가 있는 곳에서도 섬뜩한 소성이 흘러나왔다. 낭인 두 명은 바타르의 창에 꼬치 꿰듯 꿰여 있었다.

“크악!”

“아악!”

바타르가 두 명을 없애는 순간 좌우측에서 암기를 던졌던 두 명도 무혼에게 죽임을 당했다.

휘익!

두 명을 없앤 무혼은 허공을 날아 금장생과 바타르 앞으로 내려섰다.

“누구라고 생각해?”

무혼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어제 식당에서 당한 자들이 아닐까요?”

“막사웅이라고 했던 녀석?”

“네.”

“우리에게 당한 걸 복수하려고 낭인들에게 청부를 했다는 말?”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이겠구나.”

“그럴 겁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 보자.”

일행은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세 명은 번화가를 빠져나왔다.

“어?”

세 명의 눈이 커졌다.

보통 시장 같은 인력시장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빈민가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마을이 나타났다.

두어 평 남짓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골목마다 아이들 노는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건 음울한 기운과 바닷속 같은 정적뿐이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폭이 삼 장가량 되는 강이 흐르고 강 주변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마치 버려진 땅 같았다.

마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건 중앙을 관통하여 다리와 이어진 대로였다. 무혼 일행이 가는 길이기도 했다.

“퇴촌이 저런 모습일 줄 몰랐네.”

무혼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퇴촌이 뭡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은퇴한 낭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

“쓸쓸하군요.”

금장생은 퇴촌의 집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점심때가 되어 가는데도 연기가 나는 집은 한 채도 없었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지.”

“낭인들에게 노후를 준비한다는 건 사치다.”

나직한 목소리가 오른편에서 들려왔다.

무혼과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꾀죄죄한 몰골의 꼽추 노인이 곰방대를 문 채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허리춤에는 커다란 낫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혈타살겸血駝殺鎌이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처음 뵙습니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꼽추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저치, 유명해?”

무혼이 금장생에게 물었다.

“강호무림에서는 무공을 신공神功과 실공實功 두 가지로 나누곤 합니다.”

“이론과 실전으로 나눈다는 거야?”

혈타살겸이란 별호를 지닌 꼽추 노인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린 무혼이 물었다.

“네.”

“하지만 소위 강자라고 부르는 자들은 다들 신공으로 무공을 익힌 자들이겠지?”

“그렇습니다. 무림십패도 신공을 바탕으로 강해진 자들입니다.”

“그럼 실전의 달인들은 뭐라고 부르지?”

“실전십패實戰十覇라고 부릅니다.”

“실전십패?”

“이도일암삼투이겸일승일색二刀一暗三鬪二鎌一僧一色이라 부릅니다. 이도는 승천마도昇天魔刀 막천광과 마라도魔羅刀 유호, 일암은 적엽赤葉 수수, 삼투는 광마투신狂魔鬪神 건륭, 혈신투마血身鬪魔 서여거, 전투마戰鬪魔 웅사, 이겸은 혈타살겸 타루, 백겸白鎌 주육승, 일승은 괴승怪僧 주괴, 일색은 요색妖色 봉란을 말합니다.”

“그걸 어떻게 다 알지?”

무혼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상급자도 아니고, 자신하고 관계도 없는 사람의 별호와 이름을 다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건만 아는 게 아닙니다. 일왕이검이도일창이장일류일살一王二劍二刀一槍二掌一流一殺로 불리는 무림십패도 모두 알고 이마사악사흉二魔四惡四兇이라 불리는 악인십패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름과 별호뿐만 아니라 특징까지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맞아?”

“그러니까 처음 보는데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겠지요.”

금장생은 타루를 턱으로 가리켰다.

“노후를 준비하는 게 사치라는 건 무슨 뜻이지?”

무혼은 타루를 보며 물었다.

꿈틀!

타루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내가 누군지 못 들었느냐?”

타루는 물었다.

“혈타살겸 타루라고 하던데, 아냐?”

“내가 몇 살인지 아느냐?”

“몇 살인데?”

“그 친구는 예순다섯 살이다, 놈!”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모옥에서 두 명이 더 나왔다.

두 명 역시 타루와 비슷한 연배였다. 한 명은 흰색 낫을 허리에 찼고 다른 한 명은 승려 복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덩치는 상당했다.

“백겸 주육승과 괴승 주굅니다.”

방금 나온 두 사람을 보며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실전십패 중 세 명이 한곳에 살고 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실전십패 같은 강자들이 한곳에 살고 있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건 성공한 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야. 성공을 못 한 자들은 한자리에 모이는 게 당연해. 그리고 거기서 성공한 놈들을 까는 낙으로 살아. 어떤 놈은 무공도 별 볼 일 없는데 부모를 잘 둔 덕에 성공했다는 둥 하면서 말이야. 안 그래?”

무혼은 주육승과 주괴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하는 소리냐?”

주괴가 버럭 소리쳤다.

“여기 너희 말고 누가 있기나 해?”

“죽일 놈!”

파앗!

백겸 주육승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그의 백겸이 허공을 갈랐다.

백겸은 혈타살겸 타루의 낫과는 크기가 달랐는데, 타루의 낫이 두 배 정도 컸다. 백겸 손잡이 끝에는 길이가 일 장에 달하는 쇠사슬이 달려 있었다.

“이크!”

금장생과 바타르는 공격권 밖으로 물러났다.

무혼은 곧바로 수라를 풀어 휘둘렀다.

카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수라와 도끼가 부딪쳤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고, 두 무기가 부딪친 반발력으로 인해 바닥이 푹 꺼졌다.

“어?”

“응?”

“그건?”

타루, 주괴, 주육승 세 사람이 동시에 깜짝 놀랐다.

파앗!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던 주육승은 백겸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물었다.

“수라는 어디서 났느냐?”

주육승은 수라를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 수라라고 했어?”

무혼은 손목으로부터 뻗어 나가 있는 수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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