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09화 (209/524)

황금가 (209)

“이런 촌놈이 뒈지려고 환장을 했나.”

막사웅은 무혼 일행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가는 길목에 앉은 사람은 무혼이 아니라 금장생이었다.

한바탕 드잡이를 하고난 무혼은 양갈비를 잡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금장생은 두 사람의 다툼과는 상관없다는 듯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술잔에 술을 다 채운 그는 왼손으로 양갈비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술잔을 들었다. 술을 마시고 난 후 바로 양갈비를 뜯을 생각이었다.

술잔을 물기 위해 입술을 쭉 내밀었다.

바로 그때였다.

퍼억!

뒤통수에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억!”

쿠웅!

금장생의 얼굴이 식탁 위로 처박혔다.

“이런, 썅! 먹는 데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금장생은 양갈비를 쥐고 있던 왼손을 사정없이 뒤로 휘둘렀다.

퍼억!

양갈비는 정확하게 막사웅의 콧잔등을 강타했다.

“악!”

막사웅은 코를 붙잡고 뒷걸음질 쳤다. 그의 두 손은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여기에 코피 묻었을까요?”

금장생은 양갈비를 무혼에게 보여 주었다.

“너 뭐 하는 거냐, 지금.”

무혼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욕을 해도 비웃어도 비난을 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딱 두 가지 부분에서만큼은 상대가 설사 황제라고 해도 용서를 못 합니다.”

“그게 뭔데?”

“제 돈에 눈독을 들이는 것과 제 음식에 손을 대는 겁니다. 여기서 손을 댄다는 건, 먹는 걸 방해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저 녀석이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어겼구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거 먹어도 안 죽겠죠?”

금장생은 양갈비를 가리켰다.

“나 같으면 버리겠다.”

“여기요!”

금장생은 주인을 불렀다. 주인은 주방에서 불안한 얼굴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주인이 대답했다.

“이거 바꿔 줄 수 있어요?”

“그건…….”

“난 이거 손도 안 댔어요.”

“그래도 그건 안 됩니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손도 안 댔다니까요?”

“저 새끼 죽여!”

막사웅이 금장생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

파앗! 파앗! 파앗!

그러자 막사웅과 함께 왔던 자들 세 명이 무기를 뽑아 들고 일제히 몸을 날렸다.

슉! 슉슉!

무혼 앞에 있던 양갈비뼈가 둥실 떠오르더니 몸을 날려 오는 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헉!”

“억!”

다급한 외침이 사내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사내들은 허겁지겁 무기를 휘둘렀다.

캉! 캉캉!

“윽!”

“억!”

쿵쿵쿵!

세 명은 신음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이건?”

세 명의 눈이 커졌다.

쇠와 뼈가 부딪쳤을 뿐이다. 그런데 쇠를 들고 있는 그들이 내상을 입고 말았다.

‘고수?’

세 명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들은 낭인성 수뇌를 아비로 두어 어릴 때부터 신공을 익혔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패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정식 무공도 아닌 뼈다귀에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빌어먹을!’

사내들은 내심 욕설을 뱉어 내고는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막사웅을 보았다.

“돌아가세.”

막사웅은 금장생과 무혼을 노려보더니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식당을 나갔다.

“어?”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혼은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그냥 가면 안 되는 상황 아닌가요?”

“내가 너무 강해서 도망치는 거잖아.”

무혼이 말했다.

“에이, 설마요.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긴 자기 집이잖아요. 호각만 불면 수천 명이 달려올 텐데, 뼈다귀에 한 대 얻어맞았다고 도망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부하들이 지켜보는 데서 얻어맞으면 더 창피하잖아. 그래서 냅다 도망친 게 맞아. 그보다 우리, 양갈비나 더 시켜 먹자.”

“아,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방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조금 전 막사웅이 코피를 쏟게 했던 그 양갈비가 들려 있었다.

“저기…….”

주인이 금장생을 불렀다.

“이거 바꿔 줄 거요, 말 거요?”

금장생은 조금 거칠게 나가기로 했다.

“한번 나간 음식은 상했거나 잘못 조리된 게 아니면 교환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이 양반 되게 박하네. 솔직히 이번 일은 주인 양반의 책임이 더 크다는 거 아세요?”

“양갈비로 그분이 코를 후려갈긴 분은 손님인 줄 압니다.”

주인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맺힌 게 많았던가 보죠?”

금장생은 주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요?”

주인은 말을 더듬었다.

“그렇다면 그자들 때문에 손님이 다 나가 버렸으니까 울상이어야 하는데, 사장님 얼굴은 마치 앓던 이 빠진 사람 같단 말입니다. 내가 잘못 본 건가요?”

“자, 잘못 본 게 분명합니다. 저는 그분을 절대 미워하지 아, 않습니다.”

“거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보다 이거 바꿔 주면 안 되나요?”

금장생은 다시 양갈비를 주인 앞으로 내밀었다.

“그, 그건 안 됩니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주인! 여기 양갈비 삼 인분 추가해 줘. 그리고 양갈비 구울 때 서비스, 아니 두어 대 더 구워 주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그때 무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입니다, 손님. 세 대 더 구워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곧바로 요리사에게 음식 주문을 했다.

“알겠습니다.”

요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갈비 구울 준비를 했다.

“신선한 양갈비를 매일 구하는 게 가능해요?”

금장생은 주방 한편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 양을 키우고 있습니다.”

“많이 키우나 보죠?”

“자고 나면 수가 늘어나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럼 양갈비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진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섬서성까지도 양갈비를 가져갈 수 있을까요?”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먼저 가부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섬서성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까 가능은 할 겁니다.”

“사장님, 사업 확장해 볼 생각 없나요?”

“사업 확장요?”

주인의 눈이 커졌다.

지금보다 가게를 더 키운다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사업을 확장해 볼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당혹스러웠다.

“네. 여기보다 세 배에서 네 배 정도 큰 가게를 내는 걸 말합니다. 가게를 낼 장소는 이곳이 아니라 섬서성이고요.”

“나는 그럴 만한 돈이 없습니다.”

“사장님은 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은 제가 댑니다. 사장님은 양갈비와 장사 비법만 투자하면 가게 수익금의 삼 할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동업을 하자는 말입니까?”

“이런 데서 말하긴 그렇지만,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내 몫은 삼 할이나 되고요?”

“사장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걸 하지요. 내가 아무리 가게를 크게 낸다고 해도 음식 맛이 없으면 육 개월 안에 망하고 맙니다. 내가 사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장님입니다.”

“수익금의 삼 할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겁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죠. 어떻게, 해 볼 의향이 있습니까?”

금장생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이거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주인은 얼떨떨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사장님께서 한다고 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나는 섬서성 서안에 적당한 건물을 사거나 새 건물을 지을 겁니다. 새로운 가게가 완공되면 사장님은 요리부터 시작해서 장사에 관한 준비를 하면 됩니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설사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사장님은 손해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 자식 뭐 하는 거냐?”

바타르가 금장생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사업하는 모양이다.”

“사업?”

“이 집 양갈비, 맛있지 않았나?”

“입맛 까다로운 내가 반할 정도니까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거지.”

“저 녀석이 흥분한 게 바로 그 때문이야.”

“이 사업을 확장시켜 보겠다는 건가?”

“그런 모양이야.”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인간은 참…….”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최고의 실력을 지녔으면 당연히 검사가 돼야 한다. 그런데 자기 강점을 포기하고 장사를 고집하고 있다.

알다가도 모를 종족이 인간이었다.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그런 거야.”

“추구하는 바가 뭔데?”

“삶의 목표를 말하는 거야.”

“맞아. 인간들에게는 그런 어쭙잖은 게 있었지.”

“어쭙잖은 거?”

무혼은 바타르를 보았다.

“인간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별일도 아닌 거에 목숨을 건다는 거잖아.”

“넌 삶의 목표 같은 거 없냐?”

“그런 게 왜 필요한데?”

“왜 필요하냐고?”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머리가 좋으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닌가?”

“그럼 놈이 여긴 왜 온 건데?”

“유희다.”

“큭!”

무혼은 피식 웃었다.

드래곤의 유희.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놀러 다니는 것 같지만, 드래곤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모든 종족의 최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무한한 생명을 지닌 드래곤들은 헤츨링 때 사냥당하지만 않으면 모두가 일만 년 이상을 산다. 살아가는 도중에 사고로도 죽지 않는 유일한 종족이 드래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견디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유희다.

인간으로, 엘프로, 드워프로 혹은 몬스터로 살면서 타 종족들의 삶을 경험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일만 년을 견딜 수 있는 당위성이나 혹은 의미를 제공해 준다. 즉, 무한한 세월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현재의 바타르는 유희 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크로노마스의 명령만 아니라면 그렇다는 거다.

“설사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상태라도 다르지 않다. 지금 나는 다른 종족의 삶을 살고 있고, 그건 바로 유희다.”

“그렇지.”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로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죠.”

그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식당 주인과 금장생이 나왔다.

“서안에 열 가게 이름은 황금루로 하고 싶은데 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황금루요?”

“황금을 쓸어 담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좋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직원 한 명이 종이와 붓과 먹을 가지고 나왔다.

금장생은 꼼꼼하게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주인에게 건넸다.

“좋습니다.”

계약서를 다 읽어 본 주인은 다시 건네주었다.

“참,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계약자란에 이름을 써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천리라고 합니다.”

“당 씨면, 사천에 유명한 가문이 있는 걸로 아는데 거기와 관계가 있습니까?”

사천당문에 관한 말이었다.

“전에 관련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곳을 나왔단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천당문 출신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작은 사업도 아닌데 비밀을 가진 채 시작할 수는 없잖습니까. 서로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오래갈 수 없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끙! 그럼 나도 이름을 밝혀야겠네요.”

“장생이란 저 이름이 본명이 아니었습니까?”

당천리는 계약서에 써져 있는 금장생의 이름을 가리켰다.

“맨 앞에 금 자가 들어가야 합니다.”

금장생은 장생 앞에 ‘금’ 자를 써넣었다.

“금장생이면 황금전가 셋째 아들 이름인데, 동일인입니까 아니면 동명이인입니까?”

“별걸 다 알고 계시네요.”

금장생은 당천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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