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8)
총관을 얻다
낭인성.
언제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역을 정벌하던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라는 말도 있고, 과거 이곳의 주인이었던 서하 왕국의 왕궁이었다는 말도 있다.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만 한 가지, 소문이 아닌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이곳 낭인성이 감숙성 최강 세력이란 사실이다.
워낙 들고 나는 사람이 많아 낭인성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상주 인원은 일만 오천 명 정도가 될 거라는 게 정설이다.
그 일만 오천 명은 낭인들의 가족과 낭인을 상대로 하는 장사치들까지 포함된 숫자다.
휘이익!
사막에서 불어온 차갑고 메마른 바람이 낭인성 대지를 할퀴었다. 그러자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을씨년스럽네.”
금장생은 추운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용병들 거처답네. 그렇지 않냐?”
무혼은 싱긋 웃으며 바타르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이 뭐죠?”
금장생이 물었다.
“그곳에서는 낭인을 용병이라고 불러.”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들은 왜 온몸을 감싸고 다니는 거지?”
바타르는 잔뜩 웅크린 채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추워서 그러지 왜겠냐?”
무혼이 대답했다.
“이 날씨가 추워?”
“지금 기온이 영하 십 도야.”
“그 정도로 춥다는 건…….”
“너는 가죽이 두껍고 나는 마법 갑옷을 걸치고 있잖아. 당연히 추위를 못 느낄 수밖에 없지.”
“그럼 이 녀석은?”
바타르는 금장생을 보았다.
“저 옷 때문이겠지.”
무혼은 턱으로 금장생의 태극선의를 가리켰다.
“맞아?”
바타르가 물었다.
“맞습니다. 이 태극선의는 한서불침일 뿐만 아니라 물과 불에도 아주 강합니다.”
“마법이 걸려 있단 말이냐?”
“마법이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원래 그런 기능을 가진 물질이 있단 말이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몸 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걸 막아 주고, 불에 타지 않고, 더워지면 몸 안쪽을 시원하게 해 주고, 추워지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마법이네.”
“마법이라고요?”
“자연계에 그런 옷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없단 말입니까?”
“자연계에 있는 물질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은 한 가지다. 동시에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는 그런 특징을 가진 물질이 없을지 모르지만 중원에는 있습니다.”
“어떤 게 있다는 거냐?”
“태극음양석이라는 돌은 양기와 음기를 번갈아 가면서 뿜어냅니다. 오행태극지라는 땅은 화수목금토의 다섯 가지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고요.”
“이곳에도 혼돈의 파편이…… 아!”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돈의 파편이 뭡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우주가 하나에서 시작했다는 건 아느냐?”
“그렇다고 배웠습니다.”
“그 하나에는 세상의 모든 기운이 다 포함돼 있다. 그 상태를 카오스, 즉 혼돈이라고 한다. 혼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또한 혼돈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신이다.”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그 혼돈이 대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그 폭발로 혼돈 물질이 떨어져 나가면서 비로소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나였던 혼돈은 분할하여 각각의 물질이 되고, 그 물질은 세상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분할된 다른 물질과 달리 원래 상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혼돈의 파편이라고 하나 보죠?”
“그렇다. 네가 말한 태극음양석이나 오행태극지 같은 건 바로 혼돈의 파편이다. 그리고 고대 신족이 이곳을 발견하여 통로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혼돈의 파편 때문이었다.”
“혼돈의 파편이 뿜어내는 기운을 따라오다가 중원을 발견했다는 겁니까?”
“그렇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으로부터 혼돈의 파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고대 신족이 어떻게 중원을 찾아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혼돈의 파편이 이곳에도 있다는 말을 듣자,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차원과 차원을 연결해 주는 건 바로 혼돈의 파편이라고 부르는 태초의 물질이었다.
“그럼 내 옷도 그 혼돈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거겠군요?”
금장생은 태극선의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네 옷은 아니다. 그건 마법으로 만든 옷이다.”
“어디에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거죠?”
“옷 전체에 다 걸려 있다. 그리고 영구 마법이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금장생은 묵야를 뽑아 바타르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뭐…… 허.”
바타르는 멍한 얼굴로 묵야를 보았다.
묵야에는 두 가지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하나는 언데드를 없애는 광명의 기운이고, 다른 하나는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는 성스러운 기운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건 어디서 난 거냐?”
“이 옷의 주인이 남긴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금장생은 태극선의를 가리켰다.
“마법과 신성력이 함께 들어 있는 특이한 녀석이다.”
“그래서 언데드가 가루로 변했군요.”
“언데드를 상대한 적 있느냐?”
“전에 일할 때였는데, 그땐 그것들이 언데드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를 만나고 나서야 언데드라는 걸 알았다는 뜻이구나.”
“네.”
“아주 괜찮은 물건이다.”
바타르는 묵야를 돌려주었다.
“괜찮은 물건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저기로 가자.”
무혼은 식당을 가리켰다.
“무 형이 사는 겁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그래, 내가 산다.”
무혼은 금장생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과거에 짠돌이 짓을 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워낙 어렵게 살아 저절로 생겨난 습관이었다.
그런데 금장생 저 자식은 짠돌이 정도가 아니다. 짠돌이, 구두쇠, 수전노가 전부 울고 간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수중에 천만 냥 가까이 있다.
게다가 천주는 하루 오천 병이 팔려 나간다. 그 돈만 해도 일만오천 냥이다.
그리고 도박장도 보유하고 있다.
숨만 쉬어도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도, 제가 돈 내는 게 싫어서 밥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튼 지독한 녀석이었다.
“다른 분이 사는 걸 먹는 건 늘 즐겁습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썰렁한 거리와 달리 식당에는 제법 사람이 차 있었다.
로브 후드를 눌러쓴 바타르와 약간은 이국적으로 생긴 무혼이 들어서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출입구 쪽으로 쏠렸다.
“어서 오세요.”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점심 먹을 거야.”
무혼이 말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점소이는 셋을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 집에서 가장 잘하는 걸로 삼 인분 가져와.”
“우리 집은 양갈비구이가 최곱니다. 괜찮겠습니까?”
“천주도 두 병 주세요.”
금장생이 말했다.
“그걸 꼭 먹고 싶어?”
무혼은 금장생을 보며 눈을 흘겼다.
“내가 먹어 본 술 중 가장 맛있는 건데 당연히 시켜야지요.”
금장생은 다른 사람이 다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제 물건 홍보하는 겁니다.”
“홍보?”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제 술을 마실 거 아닙니까. 그럼 저는 돈을 벌고요.”
“쓰지도 않을 돈을 벌어서 뭐하려고?”
“그러는 무 형은 거기서 황제가 됐을 때 땅을 씹어 먹었습니까?”
“땅을 왜 씹어 먹는데?”
“먹을 것도 아닌 땅은 왜 늘리려고 그렇게 애를 쓴 겁니까? 조금만 있어도 평생 동안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요.”
“그건…….”
“무 형에게 돈은 편한 삶을 위해 지불하는 재화에 불과하지만 제게는 삶입니다. 나는 내 삶에 대해 비난받는 건 싫습니다.”
금장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
무혼은 피식 웃었다.
잠시 후 술과 함께 구운 양갈비가 나왔다. 양갈비는 손으로 잡기 좋게 손질돼 있었다.
셋은 각자 잔에 술을 따르고 양갈비를 한 대씩 집어 들었다.
“음! 맛있네요.”
금장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양고기는 요리를 잘못하면 노린내가 나는데 이 집 양갈비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육질도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워, 이가 부실한 사람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제법 차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간도 적당하네. 향신료도 너무 강하지 않고.”
양갈비 맛이 좋다는 데는 무혼도 동의했다.
그는 흡족하게 웃으며 술과 양갈비를 즐겼다.
“여기로 할까?”
무혼은 바타르를 보며 물었다.
“여기서 방을 잡자고?”
“한 가지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거든.”
“음식 맛이 뛰어난 집이니까 나머지도 괜찮을 거라는 거냐?”
“응.”
“너희 인간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하나를 보고 전체를 평가한다는 거다.”
“그 평가가 맞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금장생이 말했다.
“하지만 완전히 맞진 않지.”
“우린 완전한 건 없다고 배웁니다.”
“너희가 몰라서 그럴 뿐이지, 완전한 건 존재해.”
“그만 따져, 자식이아. 꼭 덜떨어진 것들이 완벽 타령이야. 여기!”
무혼은 피식 웃고는 손을 들었다.
“네, 손님!”
점소이가 다가왔다.
“여기 삼 인분 더 줘.”
“알겠습니다, 손님.”
“더 이상 주문은 안 된다.”
바로 그때 문 앞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점소이는 출입문을 보았다.
‘끙!’
점소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구냐?”
무혼은 점소이를 보며 물었다.
“성주님의 넷째 아들입니다.”
“넷째면 막사웅이겠네. 별호는 흑랑사객黑狼死客이고?”
“그렇습니다.”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막사웅이란 자를 살펴보았다.
흑랑사객이란 별호를 들은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막사웅의 피부는 가무잡잡해 보였다.
온몸은 돌처럼 단단해 보이고 얼굴에서는 강인함이 풍겨 나왔다. 얇은 입술과 가늘고 짝 찢어진 눈에서 고집스러운 성격이 읽혔다.
‘그러고 보니…….’
막사웅을 보자 전에 명사산의 월아천에서 없앴던 막시후가 떠올랐다.
‘형제였네.’
금장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있는 자들은 동작을 멈추고 식당에서 나가라!”
막사웅은 축객령을 내렸다.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던 자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것까지였다.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는 자들의 얼굴엔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안 가요?”
금장생은 무혼에게 물었다.
“내가 왜 가야 하는데?”
무혼은 양갈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일행의 접시에는 아직 네 대의 양갈비가 더 남아 있었다.
“내게서 먹을 권리를 박탈할 권한을 가진 자는 이 세상은 물론이고 저 세상에도 없어. 밥 먹는 시간만큼은 내 거야.”
“먹는 건 나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말도 있잖아요.”
“무슨 말?”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요.”
“난 안 피해.”
무혼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네?”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무혼을 보았다.
“넌 어쩔지 몰라도 난 절대 피해 가지 않아. 난 사정없이 확실하게 밟고 지나가.”
“으! 더러!”
금장생은 양갈비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무혼에게 밟힌 똥이 머릿속에 그려진 거였다.
“야, 거기!”
그때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
막사웅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응.”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막사웅의 눈이 커졌다.
“못 들었다고, 새끼야!”
무혼은 버럭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