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6)
금장생이 양철상을 다시 본 건 그날 오후 천주장에서였다.
양철상은 현금 백육십이만 냥, 땅문서, 집문서 등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차에 싣고 왔다.
“제가 만들 수 있는 금액 전붑니다.”
양철상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길 찾아오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까?”
“몇 번 와 봤던 곳이라 바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두고 가십시오.”
금장생은 양철상을 보며 말했다.
“제 아들은…….”
“조금 전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양철상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올 때는 마차를 타고 왔지만 갈 때는 걸어갔다.
양철상이 떠나고 나자 금장생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타르로부터 받은 가방을 꺼내 입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전날 도박장에서 번 돈 중 천수에게 준 일백만 냥을 제외한 나머지 돈이 들어 있었다.
돈 자루 중에서 전표가 든 자루를 꺼내 백만 냥을 따로 빼놓고, 양철상이 가져온 현금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거요.”
금장생은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마차 천장으로 내밀었다. 마치 천장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천장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받아요.”
이윽고 누군가가 종이 뭉치를 잡아채며 아래로 내려왔다.
금장생 앞으로 내려선 사람은 전날 헤어진 천수였다.
“어젯밤에 도박장에 나타났던 사람과 내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죠?”
“저는 도박꾼이잖아요.”
천수는 나직하게 말했다.
“눈이 날카롭다는 건가요?”
“나는 아무리 작은 특징이라고 해도 한 번 보면 다 기억해요.”
“언제 알았죠?”
“당신이 찻집에서 양철상을 만날 때요.”
“그럼 양철상을 따라다녔군요.”
“그자에게 받아야 할 빚이 있거든요.”
“목숨으로 받아야 하는 빚인가요?”
“네.”
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냥 둔 거죠?”
“목숨을 끊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자는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와서, 지금은 빈털터리예요.”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건 왜 날 주는 거죠?”
천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걸 가리켰다. 조금 전 확인한 그것은 일금의 소유권 문서였다.
“도박장이 생겼는데 나는 전혀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보고 운영하라는 건가요?”
“수익은 칠 대 삼입니다. 물론 칠을 가져가는 사람은 나고요.”
“일금의 원래 주인이 양철상이 아니라는 건 아세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일금을 찾기 위해 다시 올 거예요.”
“건물을 다시 단장하고 이름도 바꾸는 겁니다. 그런 다음 관청으로부터 다시 허가를 받으면, 본래 주인이 온다고 해도 아무 말 못 할 겁니다.”
금장생은 오십만 냥을 꺼내 천수 앞에 놓았다.
“이건…….”
“건물을 단장하고 재허가를 내는 데 필요한 금액입니다. 잘 알겠지만 허가를 받는 데도 돈이 꽤 들어갈 겁니다. 아끼지 말고 쓰세요. 그리고 어젯밤에 보니까, 건달들 중 타구파가 무공이 가장 강하더군요.”
“그자들을 쓰라는 건가요?”
“그들을 영입하면 다른 건달들이 찝쩍대는 걸 막을 수 있고 천금루도 보호할 수 있을 테니까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죠.”
“가게 이름을 천금루라고 할 건가요?”
“마음에 들어요?”
“네.”
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죠.”
금장생은 천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이익을 칠 대 삼으로 나누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중요한 사항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제삼자에게 넘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넘길 때는 반드시 동업자, 즉 내게 넘겨야 합니다. 두 번째로, 내부를 고치거나 사람을 들이는 돈은 운영비로 계상합니다. 루주가 필요해서 들이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이해했습니까?”
“네.”
“그럼 이름을 쓰고 수결하십시오.”
“네.”
천수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바로 옆에 수결을 하고 장인을 찍었다.
“이름이 육자운인가 보죠?”
“십 년 만에 써 보는 본명이네요.”
“그렇군요. 한 부는 루주가 갖고, 한 부는 내가 갖겠습니다.”
금장생은 계약서 한 부를 천수에게 건넸다.
“나도 사장이 된 건가요?”
“그런 셈입니다. 혹시 혼인하셨나요?”
“그건 왜?”
“저는 기본적으로 동업자가 절 배신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을 지자는 주의거든요. 가족이 있다면…….”
“혼인을 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혼자예요.”
“그 혼인과 양철상이 관계가 있나요?”
“그것도 말해야 하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요. 이제 사업에 대한 건은 끝났습니다. 시장에 가면 포투라는 목수가 있을 겁니다. 천주장 사장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 잘해 줄 겁니다.”
“천주장을 만든 사람인가요?”
“네.”
“일을 하더라도 당분간 제 얼굴을 보이지 않을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그걸 제안할 참이었습니다.”
“알았어요. 돈은 전장으로 입금하면 되고, 급한 일이 있을 때 연락은 어떻게 하죠?”
“잠깐만요.”
금장생은 마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나부를 불렀다.
“네.”
마나부는 대답과 함께 마차로 달려왔다.
“이쪽은 천주장의 총책임자인…….”
“전학입니다.”
마나부는 천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육자운이에요.”
“문제가 생기거나 내게 전할 말이 있으면 이 사람에게 말하는 게 가장 빠를 겁니다.”
“알았어요.”
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왕 온 김에, 이거요.”
금장생은 전표 백만 냥이 든 자루를 마나부에게 건넸다.
“뭡니까?”
“어 사장의 가족에게 전해 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마나부는 자루를 받아 들고 자리를 떴다.
“저도 가 볼게요.”
마나부에 이어 천수도 마차를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금장생은 마차에서 나갔다.
“안 가?”
무혼이 금장생 곁으로 가며 물었다.
“제집이 여긴데 어딜 간단 말입니까?”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까 양철상에게 동창과 금의위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지 않았냐?”
“아! 그거.”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안 갈 모양이지?”
“그 사람들은 가급적 만나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습니다.”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양철상 그자가 여기에 처음 왔다고 했다면, 짠해서 한 번은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양철상이 이곳에 왔을 때, 여길 찾는 게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잔 몇 번 와 봐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거하고 네가 금의위와 동창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여기에 몇 번 와 봤다는 건, 제 동업자를 살해하고 이곳을 꿀꺽하려 한 게 양군우 작품이 아니라는 걸 뜻합니다.”
“그러니까 어성연을 도박장으로 끌어들이고 결국엔 살해하여 천주장을 삼키는 일련의 일을 지휘한 자가 양철상이라는 거냐?”
“맞습니다. 그런 자는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모든 걸 잃고 감숙성을 떠나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뭐?”
“죽임을 당하게 될 겁니다.”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거지?”
“글쎄요.”
금장생은 빙그레 웃었다.
“혹시 노리는 게 따로 있는 거 아냐?”
금장생의 목표가 양상태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닌 것 같은데…….”
무혼은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놈들이 온다.
그때 바타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혼은 고개를 돌렸다.
천주장 입구에서 두 명이 이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운영과 권말남이었다.
“오십니까?”
금장생은 고개를 숙였다.
“생산량이 얼마나 되지?”
권말남은 양조장을 둘러보며 물었다.
“월 십만 병 정도 됩니다.”
“엄청나네. 병당 여섯 냥 정도 하던데, 여기선 얼마에 넘기지?”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뭐라고?”
권말남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대신 술은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됐어, 인마. 벼룩의 간을 빼먹지, 집도 절도 없는 녀석의 돈을 빼먹냐?”
권말남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금장생 옆에 있는 무혼과 바타르를 보았다.
“넌 누구냐?”
권말남의 흥미를 끈 자는 무혼이 아니라 로브 후드를 깊게 눌러쓴 바타르였다.
“지금 너라고 했느냐?”
로브 후드 안에서 차가운 광채가 쏘아져 나왔다.
“얼레?”
권말남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과 함께 있었다면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반말을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거나, 죽고 싶은 녀석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내게 한 소리야?”
권말남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럼 너 말고 또 있느냐?”
“이런 죽일 놈이.”
권말남은 벌떡 일어나 바타르 앞으로 갔다.
바타르는 그런 권말남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 번만 더 나를 향해 ‘놈’이라고 하면 넌 죽는다, 계집.”
“지, 지금 계집이라고 하, 하였…… 이런, 씨팔! 야, 이 개자식아!”
권말남은 삿대질을 했다.
턱!
바타르의 손이 번개처럼 올라가 권말남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헉!”
권말남의 눈이 커졌다.
그는 멍한 눈으로 바타르를 보았다.
“손도 마찬가지다, 계집. 앞으로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 분질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이, 이름이 뭐냐?”
권말남은 소리쳤다.
“내 이름은 바타르다!”
바타르는 로브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황금빛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절세 미남이 나타났다.
“다, 당신 서, 서역인이었군요.”
권말남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태어나서 바타르처럼 멋진 남자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둥둥 뛰며 얼굴에 열이 올랐다.
‘마, 말도 안 돼! 난 천하의 권말남이야. 그리고 남자라고!’
권말남은 내심 소리쳤다.
하지만 한번 일어난 열기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이거 놔, 놔요.”
권말남은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그의 손은 바타르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 놓으라니까요?”
권말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바타르 저분,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금장생은 무혼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자식 남자지?
무혼은 되물었다.
―네. 그런데…….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다.
―뭘 소문으로만 들었다는 거죠?
―저 도마뱀 자식이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동안 걱정이 많았겠군요.
―밤마다 검을 베개 밑에 숨겨 두고 잤다. 그런데 바타르 저놈은 그렇다 쳐도, 저 내시 녀석은……?
―아무래도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본성이 바타르 님을 만나면서 튀어나온 모양입니다.
―저 녀석도 취향이 사내라는 거냐?
―지금 눈으로 보고 있잖습니까?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자고로 남의 사랑에는 관심 갖는 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금장생은 시선을 돌려 자운영을 보았다.
자운영의 표정 또한 무혼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는 멍한 얼굴로 권말남을 보고 있었다.
“배후는 밝혀냈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그, 그랬네.”
“어떤 자들이 있었습니까?”
“태양상인이 그자들의 배후였네.”
권말남 때문이 넋이 빠져 버린 자운영은 기밀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말았다.
“그렇죠.”
금장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