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5)
황금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일첩형.”
장팔상은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지부는 알고 있었나요?”
권말남은 정지왕을 보며 물었다.
“저, 전 전혀 몰랐습니다.”
정지왕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정지왕은 금장생이 수감된 사실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까지 말하게 되면 자신은 직무 태만이 되고 장팔상은 권력 남용이 된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았다.
“그럼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바로잡아야겠죠?”
“아, 알겠습니다.”
지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팔상을 보며 엄하게 소리쳤다.
“당장 풀어 주지 않고 뭐 하고 있는가?”
“아, 알겠습니다.”
장팔상은 감옥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열쇠를 가진 옥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옥졸로부터 열쇠를 받아 문을 열었다.
“우흡!”
금장생은 기지개를 켰다.
다리운동을 하고 나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권말남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널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 저를 풀어 주신 건 뭡니까?”
“나는 권력을 이용해서 양민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찾아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제가 수혜자가 됐으니까 은혜를 입은 셈이잖습니까.”
“그럼 너는 나를 위해 뭘 해 주겠느냐?”
“상인에 불과한 자가 동창 제일첩형께 해 드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제게 부탁할 게 있다면 꼭 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냐?”
“저는 상인입니다.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신용이지요.”
“그 말 믿겠다.”
“잠깐 저자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금장생은 당주와 함께 갇혀 있는 양군우를 가리켰다.
“저놈을 알아?”
“어제 추관과 함께 제 사업체로 왔던 잡니다.”
“여기서 사업을 했어?”
권말남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천주장이 제가 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천주장이면…….”
“양조장입니다.”
“그러니까 주류업을 한다는 말이구나.”
“네.”
“그래, 장사는 잘되느냐?”
“그럭저럭 먹고살 만합니다.”
“장사꾼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금세 자리를 잡는구나. 그래, 네 양조장에서는 어떤 술을 만드느냐?”
“천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천주?”
깜짝 놀라 반문한 사람은 듣고 있던 자운영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천주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듣기도 했고 실제로 마셔 보기도 했다. 높은 가격에 걸맞을 만큼 좋은 술이었다.
“마셔 보셨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괜찮은 술이더구먼.”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양군우 앞으로 갔다.
“양조장 문서 검토가 다 끝났으면 그만 돌려주었으면 합니다.”
“그, 그건 내 방에…….”
“누구에게 말하면 됩니까?”
“내 아버지께 말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운영을 보았다.
“그만 나가 봐도 되겠습니까? 하룻밤 여기 있었더니 배도 고프고…….”
“어디로 갈 건가?”
자운영은 물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게 될 것 같습니다.”
“천주장에 있을 거란 말인가?”
“네.”
“알았네.”
자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십시오.”
금장생은 자운영과 권말남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자운영은 멀어지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죠?”
권말남은 자운영을 보았다.
굳이 금장생에게 어디에 있을 건지 물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자운영은 취조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비밀이 많은 녀석 같아서 말이네.”
“그렇게 생각해요?”
“육감은 분명 뭔가 있다고 말하는데, 까 보면 아무것도 없네. 작은 거라도 하나 나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건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단 말이네.”
“그러니까 너무 깨끗해서 이상하다는 거군요.”
“그렇다고 특별한 혐의가 있는 건 아니니까…….”
자운영은 몸을 돌려 감옥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자는 양군우와 함께 있는 당주 전사였다.
“만상!”
자운영은 나직하게 말했다.
“네, 천호!”
대답과 함께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자운영 앞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선이 굵어 전형적인 무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년 사내의 등에서는 검 손잡이로 보이는 물체 일곱 개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자는 금의위 오대고수 중 한 명으로 이름난 오만상으로, 별호는 칠검사야七劍死爺였다. 오만상은 자운영과 함께 다니는 금영대 대주였다.
“저놈을 심문해라.”
자운영은 전사를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천호.”
오만상은 고개를 숙였다.
“야환은 금영대 대주를 돕도록 해.”
이어 권말남이 말했다.
“어느 선까지 할까요?”
눈이 커다랗고 얼굴이 갸름해 보이는 자가 물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 더 깨끗한 피부를 가진 이자는 묵영대 대주 암혼暗魂 야환이었다.
“이곳은 무덤 자리로 쓸 땅이 아주 많더구나.”
“알았어요.”
야환은 빙그레 웃었다.
“야환!”
“네, 첩형.”
“내가 색소 짓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권말남은 야환을 쏘아보았다.
“첩형이 제게 경고한 이후에 전 색소를 지은 적이 없어요.”
“그럼 방금 그건 뭐지?”
“기분이 좋을 때 짓는 미소죠, 뭐겠어요.”
“아무튼 저놈들과 태양상인인가하고의 관계를 알아내도록 해.”
“걱정 마세요. 오늘 저녁 무렵이면 저 녀석 머릿속은 제일첩형 앞에 낱낱이 파헤쳐질 테니까요.”
야환은 혀를 불쑥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헉!’
야환을 보고 있던 자운영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보통은 사내가 저런 모습을 하면 구토가 일어야 하는데 야환은 달랐다. 그가 혀로 입술을 핥자 놀랍게도 뜨거운 기운이 치미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 더 아름답고, 거세를 하고 색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동창쌍미라고 하더니…….’
자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환을 권말남과 함께 동창쌍미라고 부르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야환은 같은 사내마저도 유혹이 가능한 엄청난 색공의 소유자였다.
‘가만…….’
그는 권말남을 돌아보았다.
권말남은 야환과 함께 동창쌍미의 일인이다. 그렇다면 그 역시 사내를 홀릴 정도로 대단한 색공의 소유자란 뜻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다.
“천호는 내 취향이 아니에요.”
자운영의 내심을 짐작한 권말남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암혼이 방금 보인 그 미소는…….”
“야환 저 녀석이 천호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천호는 야환 취향이라는 거지 뭐겠어요.”
“헉!”
자운영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하체를 가렸다.
“호호호! 그렇다고 해도 걱정할 필욘 없어요. 우리 묵영대는 일하는 데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니까요.”
권말남은 교소를 터뜨렸다.
“나가세.”
자운영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한편.
감옥에서 나온 금장생은 부 근처 찻집에서 중년 사내를 만나고 있었다.
납치하듯 금장생을 무작정 끌고 온 사람은 양군우의 아버지 양철상이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모든 걸 변상해 드릴 테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양철상은 이미 사건의 내막을 알아본 후였다.
아들 양군우의 죄목은 살인, 협박, 갈취 세 가지였다.
간밤에 건달들을 공격한 것은, 현장에 있기는 했지만 직접 손을 쓴 게 아니라서 말만 잘하면 무마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천주장을 빼앗기 위해 저지른 일들은 무마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들은 형장으로 끌려갈 게 분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운영이나 말남과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개인적인 부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빌겠습니다.”
양철상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건 ‘운영’과 ‘말남’이라고 칭한 금장생의 말 때문이었다.
성을 빼고 이름을 말한다는 건 그만큼 친하다는 걸 뜻한다. 양철상의 입장에서는 금장생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빼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사형만 당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말은 해 보겠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 동업자였던 어성연의 가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 어느 정도면 되겠습니까?”
“백만 냥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루만 시간을 주시면 바로 만들어 오겠습니다.”
양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금이라야 합니다.”
“전부 현금으로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게도 보상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내 양조장을 빼앗기고 감옥에서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그건 정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입니다. 아마 그 마음에 새겨진 상처 때문에 앞으로 두고두고 가위에 눌리며 살 겁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가주 아드님이 가져간 천주장 문서와, 현금으로 일백만 냥을 주면 깔끔하게 치료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일백만 냥을 더 달라고요?”
양철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준비해야 할 금액은 총 이백만 냥. 전 재산을 정리해도 만들기 힘든 금액이었다.
“전사 그 사람에 대한 심문을 오늘 저녁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그 후엔 양군우를 심문할 겁니다.”
“당장 돈을 마련해 오겠습니다.”
양철상은 벌떡 일어났다.
“나는 천주장에 가 있겠습니다.”
금장생도 따라 일어났다.
양철상이 총관과 함께 찻집에서 나가자 금장생도 찻집을 나왔다.
양조장을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무혼과 바타르가 다가왔다.
“또 보니 반갑네요.”
금장생은 두 사람을 보며 활짝 웃었다.
“뭐 하는 거냐?”
무혼이 물었다.
“뭐가요?”
“그놈에게 마음의 상처 어쩌고 했잖아.”
“아! 합의하는 걸 보셨군요.”
“합의?”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경감받기 위해 피해자에게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함으로써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가 이에 응하는 행위를 합의라고 합니다만.”
“그게 합의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합의는 쌍방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라는 전재가 깔려야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이백만 냥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했어.”
“양철상 그 사람은 기꺼이 만들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뭔들 못 할까?”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부모가 아니지요.”
“나쁜 놈!”
듣고 있던 바타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는 겁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저 자식은 다른 사람의 목을 칠 때도 활짝 웃을 놈이야.”
바타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정이 아주 많은 놈입니다. 죽은 동업자 가족을 챙기는 사림이 흔한 줄 아십니까? 대부분은 동업자가 죽으면 그의 가족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해 버립니다. 하지만 나는 동업자 가족의 평생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이건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네가 얻는 건 백만 냥 이상이지.”
“제가 뭘 얻는다는 거죠?”
“네게 모두 털린 양상태가는 몰락하게 될 테고, 죽은 동업자의 가족까지 챙기는 미담의 주인공은 승승장구하겠지. 천주장은 주류업 이외의 영역까지 사업을 확대할 테고, 머잖아 양상태가를 대신하게 되겠지.”
“어?”
금장생은 놀란 눈으로 바타르를 보았다.
“왜 그러느냐?”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그럽니다.”
“영악한 놈.”
“영악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게 세상입니다. 가만히 있는 자에게는 누구도 밥을 떠 넣어 주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고, 약점을 내보인 자들을 짓밟아야 비로소 한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게 아니라 한 계단입니다. 그런 계단 수백 개를 올라야 비로소 성공이란 계급장을 이마에 붙일 수 있는 겁니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