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4)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양철상은 질겁했다.
“군우가 투옥됐다는 게 사,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단주님.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뭐가 있느냐?”
“간밤에 한 사내가 일금으로 들어와서 일천만 냥과 일금 문서까지 따 갔다고 합니다.”
“확인된 사실이냐?”
“그 소문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마차를 대기시켜라!”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일각 후, 양철상을 태운 마차는 전력을 다해 일금으로 내달렸다.
일금에 도착한 양철상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수가…….”
양철상은 멍한 얼굴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마치 약탈을 당한 것처럼 모든 집기가 뒤집어져 있었다.
그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일 층도 도박장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서랍장은 활짝 열려 있고, 약탈을 당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장주! 장주는 어디 있소!”
양철상은 위층으로 올라가며 소리쳤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장주는 나오지 않았다.
“장주! 장주는 어디 있소?”
그럼에도 양철상은 계속해서 장주를 불렀다.
“그분은 아침 일찍 도망치듯 떠났어요.”
장주에 대한 걸 알게 된 건 이 층에서였다.
이 층과 삼 층은 도박하는 손님들이 쉬는 공간으로, 이십여 명의 여자가 상시 대기하는 공간이었다.
여자들 때문인 듯 이 층과 삼 층은 멀쩡했다.
“어디로 떠났단 말이냐?”
“언뜻 듣기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것 같았어요.”
“도망쳤다는 말이구나.”
양철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장주가 도망쳤다는 건 부하가 말한 것들이 모두 사실이란 뜻이다.
보관 중이던 천만 냥과 일금 소유권은 날아갔다. 아울러 일금을 관리하던 양상태가도 무사할 수 없게 되었다.
“당주는…….”
당주는 이곳의 책임자이고 가장 큰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임조부로 잡혀갔다고 들었어요.”
“제길.”
양철상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여기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건…….”
양철상은 말끝을 흐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일단은 새 주인이 올지도 모르니까 기다려 볼게요.”
“알아서 해라.”
양철상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자식인 양군우를 어떻게 구해 낼 건지 하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황인데 기녀들의 미래에까지 신경 쓸 경황은 없었다.
“가주님!”
그때 한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그는 양상태가 총관 관기영이었다.
“왔는가?”
양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도중에 이야기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거라고 하던가?”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제가 알아요.”
조금 전 양철상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녀가 끼어들었다.
“말해 봐라.”
양철상은 기녀를 보았다.
“그 사내가 들어온 건 술시戌時가량이었어요. 사내는 이 판 저 판을 전전했는데, 앉을 때마다 돈을 땄어요. 그리고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판돈이 십만 냥이 됐어요. 그다음에 그는 투자판으로 옮겨 영판 도수와 겨뤘어요. 몇 판 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판돈은 팔십만 냥으로 늘었죠. 그러자 장주와 당주는 천수에게 판을 맡겼어요. 천수는 여섯 판 만에 돈 천만 냥과 일금 소유권을 잃었어요. 그리고 사내는 떠났고요.”
“그 돈을 찾기 위해 당주가 나섰단 말이구나.”
“네.”
“고맙다.”
양철상은 총관과 함께 바로 일금을 나왔다.
“도련님을 구해야 합니다, 가주님.”
관기영이 말했다.
“먼저 부로 가 보세.”
양철상은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곧바로 임조부를 향해 출발했다.
“어?”
서류를 살피던 자운영의 눈이 커졌다.
“왜 그래요?”
권말남이 자운영을 보며 물었다.
“아는 이름이 있어서 그러네.”
“죄수들 중에 아는 이름이 있다고요?”
“그러네.”
자운영은 간밤에 잡아 온 자들의 신분을 파악하기 위해 죄수들의 신상명세서를 보는 중이었다.
“누군데 그러죠?”
“장생이란 이름이 있네.”
“장생?”
“우리가 만난 그 친구의 이름이 장생이지 않았나.”
“장생이 아니고 금장생이었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보고 싶다고 하는 건 어떤 경우죠?”
권말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네. 그런데 어젯밤에 잡아 온 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양상태가 같은 중소 상단 소속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해요. 그리고 무인들 대부분은 동영인들이에요.”
“양상태가 위에 태양상인이 있다는 건가?”
두 사람은 귀화한 동영인들이 세운 상단이 태양상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울러 태양상인 배후에 혈가라는 무림 단체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아냈다.
그 사실이 이미 동창과 금의위에 보고된 상태였다.
“맞아요.”
“몇 놈 심문해 볼까?”
자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쪽에 백 냥 걸게요.”
“조개처럼 입을 다물 거란 건가?”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래도 일단 보기나 하자고.”
두 사람은 방을 나섰다.
“제일첩형!”
그때 묵영대 대원 한 명이 다가왔다.
“왜요?”
권말남은 대원을 보았다.
“상부에서 이게 왔습니다.”
사내는 붉은색 비단으로 싸인 걸 내밀었다. 일명 적령赤令으로, 최고 등급의 비밀 문건이었다.
“물러가라.”
“그럼.”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떴다.
권말남은 비단을 풀었다. 안쪽에는 밀랍으로 봉한 문서가 들어 있었다. 밀랍을 떼어 내고 문서를 펼쳤다.
삼신회三神會의 실체가 밝혀졌다.
무인들 중 초인삼황이라 불리던 자들이 세운 단체가 바로 삼신회다. 삼신회의 현재 이름은 삼사천가三使天家다.
“맙소사.”
권말남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러나?”
“모든 일의 원흉이 삼사천가라고 나와 있어요.”
“정말인가?”
“삼사천가의 주인이 누군지 아세요?”
“전에 삼사를 지냈던 분들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삼사는 사공司空, 사도司徒, 사마司馬를 합쳐 부르는 말로, 황실 최고 관직이었다.
삼사천가는 같은 시기에 삼사를 지낸 세 사람이 퇴임해서 세운 가문이다.
최고의 권력에서 물러났지만 세 사람은 북경 정계에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다. 삼사천가 또한 북경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외곽에다 세웠다.
처음엔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가는 자들이 꽤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삼사천가는 정계에서 잊혔다.
정계라는 곳은 한번 잊히면 그걸로 끝이다.
현재는 누구도 삼사천가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이 그동안 금의위와 동창이 모든 걸 동원해서 찾던 삼신회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맞아요.”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읽어 보게.”
그 삼사천가가 바로 북경 암살의 배후였다.
아울러 북경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의 정체도 그들로부터 기인했다는 게 영반과 나의 확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체포하여 심문할 수가 없다.
“증거가 없다는 거군.”
자운영이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하위 직급이었다면 증거 여부를 불문하고 체포해서 바로 심문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삼사를 지냈던 세 사람.
아무런 증거도 명분도 없이 그들을 체포할 수가 없다. 그건 황제가 직접 나서도 불가능하다.
제일첩형도 알겠지만 증거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들이 북경 암살에 개입됐다는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린 증거를 얻기 위해 수십 명을 삼사천가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살아 나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자금성보다 더한 용담호혈이었다.
이제 우리가 기댈 자는 사상死商뿐이다. 그 증거를 가진 자가 바로 사상이다.
사상을 찾아라. 그래야만 북경에 낀 먹구름을 걷어 낼 수 있다.
“끙!”
권말남은 얼굴을 찌푸렸다.
결국 사상을 반드시 찾으라는 독촉장이었다.
“이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지.”
자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상의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여기가 한계였다.
활동을 해야 찾는지 말든지 할 텐데, 벌써 일 년 이상 사상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일단 감옥이나 가 봐요.”
“그러세.”
두 사람은 감옥으로 갔다.
부의 감옥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자들이 수감된 탓에 감옥 안은 시끌벅적했다.
“어서 오십시오.”
지부 정지왕과 추관 장팔상이 달려와 인사를 했다.
“양군우와 전사라는 자는 어디 있느냐?”
전사는 당주의 이름이었다.
“저쪽에 있습니다.”
장팔상은 가장 안쪽 감옥을 가리켰다.
“안내해라.”
“네.”
장팔상과 지부 정지왕은 두 사람을 데리고 안쪽으로 향했다.
감옥 안에 있던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자운영과 권말남을 바라보았다.
“여깁니다.”
장팔상은 감옥을 가리켰다.
“어?”
오른편을 바라보던 권말남의 눈이 커졌다.
부의 감옥은 가운데 길을 두고 좌우측으로 감방이 있었는데, 오른편 감방에 얼굴이 눈에 익은 자가 수감돼 있었다.
“당신 금장생 맞지?”
권말남이 손가락으로 금장생을 가리켰다.
“어?”
놀라기는 금장생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바로 전에 가문의 폐허에서 만나 인사를 했던 자운영과 권말남이었다.
“네가 감옥엔 웬일이지?”
권말남은 금장생이 수감돼 있는 감옥 앞으로 가며 물었다.
“가진 게 없는 죕니다.”
“가진 게 없는 죄?”
“제 사연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흠!”
권말남은 뒤편 감옥과 금장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게…….”
금장생은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 아닙니다. 저자가 살인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추관 장팔상이 펄쩍 뛰며 말했다.
“제 동업자가 죽었을 당시 저는 친구와 함께 감숙성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순간 이동하는 기술이 있다면 모를까, 동업자를 살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권말남은 장팔상을 보며 물었다.
“그 동업자의 사인이 뭐더냐?”
“사, 사인요?”
장팔상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번 일을 꾸미는 데에는 어성연의 죽음이면 충분했다. 굳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권말남이 사인을 물어 온 것이다.
“쿡!”
권말남은 피식 웃었다.
권력도 없고 재산도, 연줄도 없는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때 자주 써먹는 방법이다.
자세한 내막은 필요 없다.
죽은 시체 하나를 가져다 놓고 ‘죽기 전에 이자가 범인이 너라고 지목했다.’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죽은 자가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다른 곳에서 왔다거나, 죽일 이유가 없다거나, 억울하다는 하소연은 먹히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가 범인이라고 지목하면 그자는 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동창에서도 그 수법을 자주 써먹기 때문에 권말남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장팔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널 동창으로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고 싶은데, 하겠느냐?”
“네?”
장팔상의 눈이 커졌다.
“죽은 자의 사인도 확인하지 않고 범인을 찾는 재주를 지닌 자가 이런 데서 썩는 건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
털썩!
장팔상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