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2)
만나기 싫은 자들
―당주!
신풍대 대원 한 명이 당주를 불렀다.
―말해라.
―마차는 저기 보이는 창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간 지는 얼마나 됐느냐?
―한 식경 됐습니다.
―나오지 않았느냐?
―네.
―아까 놈을 따라간다고 했던 무인들도 여전히 거기 있느냐?
―그렇습니다.
―놈을 돕는 자는 없느냐?
당주가 이백 명이나 되는 대원들을 모두 부른 건 금장생에게 패거리가 있을 거란 확신에서였다.
―여덟 명이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냐?
―강시 같습니다.
―강시?
―강시 복장을 하고 이마에 부적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럼 강시가 맞다는 건데…….
당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를 방해하는 자는 전부…… 죽여라.
―하이!
사내의 입에서 짤막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사내의 대답은 중원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왜인들이 사용하는 동영어였다.
“공격하라!”
자리를 뜬 사내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신풍대와 살천대 대원들이 마차를 향해 내달렸다.
“쳐라!”
“공격하라!”
“돈을 보호하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장한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뛰어나왔다.
창! 창창창!
“아악!”
“으악!”
“크악!”
곧 처절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건달들은 신풍대와 살천대의 상대가 아니었다.
“마노왕과 화노왕은 오른편으로 가세요.”
싸움을 지켜보던 금장생은 명령을 내렸다.
휙! 휙!
금장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사월과 금웅이 오른편으로 쏘아져 갔다.
“역시!”
달려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금장생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맺혔다.
달려가는 두 사람은 군림천하보를 펼치고 있었다.
“해노왕과 전노왕은 전방으로 가세요.”
다시 명령을 내렸다.
혁장운과 묵천야 또한 벌떡 일어나 전방으로 내달렸다. 그들 역시 달려가면서 펼친 무공은 군림천하보였다.
적사월과 금웅에 이어 혁장운과 묵천야도 군림천하보를 펼친 것이다.
금장생은 나머지도 내보냈다. 그들 역시 몸을 날릴 때 펼친 무공은 군림천하보였다.
강시 복장을 한 팔장군들이 다가오자 신풍대와 살천대 대원들의 공격은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창! 창창창! 창창!
하지만 신풍대와 살천대의 무기는 적사월 일행의 몸을 뚫지 못했다.
“크억!”
“커억!”
“아악!”
공격 실패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그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나갔다.
치열하게 얽힌 양측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입구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무혼과 바타르였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바타르가 무혼을 보며 말했다.
“위험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일단 지켜보자고.”
무혼은 몸을 날려 창고 천장의 대들보로 올라가 앉았다. 그에 이어 바타르도 몸을 날렸다.
대들보에 걸터앉자 아래쪽이 훨씬 잘 보였다.
“너무 어두운데 좀 밝게 해 줄까?”
바타르가 무혼을 보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겠네.”
무혼은 어깨를 으쓱했다.
“라이트!”
바타르는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주먹 크기의 빛 덩어리가 나타나 아래로 내려갔다.
순간 창고 안이 밝아졌다. 모든 게 보일 정도로 밝은 건 아니고 사물을 구분할 정도의 밝기였다.
하지만 싸우는 자들은 창고가 밝아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상대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데스 나이트들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 같은데 네 생각은?”
무혼이 물었다.
“그 보법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데스 나이트들에게서 달라진 건 그것밖에 없잖아.”
“그렇긴 한데…….”
바타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데스 나이트의 검술이 점점 강해진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긴 하지.”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직전 소드 마스터, 즉 강기를 펼치는 검사가 깊은 원한을 가진 상태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 어둠의 마나의 지배를 받는 데스 나이트로 거듭난다.
데스 나이트는 생전보다는 강하지만 실력이 상승하진 않는다.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은 실력이 늘어나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신술이라는 거, 흥미로운 기술인 건 분명하다.”
“풋!”
무혼은 피식 웃었다.
드래곤은 남을 칭찬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 자가 흥미롭다고 했다는 건 대단한 칭찬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적이 너무 강해.”
아래를 바라보던 바타르가 말했다.
팔장군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전세는 급격하게 신풍대와 살천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야. 저들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건달에 불과하거든. 반면에 저자들은 고된 수련을 쌓은 자들이고.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졌다고 봐야 해.”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바타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적을 전부 없앨 생각이었다면 진작부터 나서서 공격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금장생은 마차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이번 일을 벌인 건지 궁금했다.
“그건 나도 궁금해.”
“어, 저놈은?”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공격하는 자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 옆에 눈에 익은 자가 서 있었다. 그는 바로 양상태가 상단주 아들 양군우였다.
“왜?”
무혼은 시선을 내렸다.
“풋!”
곧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도박장의 주인이 양상태가인가 보지?”
바타르가 물었다.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는 자가 그런 양아치 짓으로 천주장을 빼앗을 리가 없어.”
“도박장을 운영하는 자는 어떻게 빼앗아야 하는데?”
“양군우가 천주장값이라며 내놓은 돈이 얼마지?”
“오만 냥이지.”
“그 돈은 양상태가의 돈이 아니라 장생의 부하 마나부가 장생의 동업자에게 준 돈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
“그러니까 네 말은, 양상태가 가주는 천주장을 인수할 때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거야?”
“응.”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으니까 잘한 거 아닌가?”
“그로 인해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 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 사건은, 천주장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인수를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소리네?”
“그렇지. 게다가 양상태가는 무려 천만 냥의 현금을 쌓아 두고 있는 도박장까지 운영하고 있어.”
“천만 냥이 아니고 칠백만 냥이 조금 넘는 돈이지.”
“전표도 현금이나 마찬가지야.”
“전표는 전표일 뿐이야. 절대 현금이 아냐.”
“아무튼 그런 거금을 지닌 자들이 천주장을 인수할 때 보여 준 행태는 삼류 양아치만도 못했어.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아?”
“양아치 짓을 한 것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거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양상태가의 현 위치를 알아낼 수 있어.”
“현 위치?”
“독립적인 상단인지 아니면 거대 상단의 하위 조직인지 알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양상태가는 거대 상단의 하위 조직이라는 거냐?”
“맞아. 그래서 그들은 천만 냥이나 되는 현금을 쌓아 두고도 비열한 방법으로 천주장을 빼앗은 거야.”
“그런데 왜 천주장을 빼앗은 거지?”
바타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 상단의 하위 조직이라면 굳이 천주장에 욕심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마나부가 그랬잖아, 천주장이 생기는 바람에 양상태가 주류 사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수익이 줄면 상부로부터 무능한 자라고 낙인찍히게 되고,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엔 이렇게 되잖아.”
무혼은 손날로 목을 스윽 그었다.
“목이 잘린다는 거냐?”
“응.”
“수입이 줄면 죽이냐?”
“죽이는 게 아니라 자리에서 잘린다고, 인마.”
“그럼 그렇게 말해야지, 새퀴야! 목을 그으면서 잘린다고 하면 죽이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바타르가 버럭 소리쳤다.
“어?”
무혼은 바타르를 보았다.
“왜, 자식아.”
“넌 ‘새퀴’ 같은 저속한 말 안 쓰잖아.”
“네놈과 생활하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화를 내는 것보다 쌍욕을 하는 게 훨씬 속이 시원하다는 거다.”
“대단한 걸 배운 거네.”
“앞으로 각오해야 할 거다, 좀만한 새퀴야.”
“큭큭큭!”
무혼은 키들키들 웃었다.
“계속해라.”
“뭘?”
“아까 수익이 줄면 자른다고 했잖아, 새퀴야.”
“아, 그거. 주인 입장에서 보면 무능한 자를 중요한 자리에 앉혀 놓을 이유가 없잖아. 머리가 더 좋고 능력 있는 자를 앉히려고 할 거라고. 그럼 양상태가 상단주는 자리를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줄어든 수익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아!”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군우가 비겁한 방법으로 천주장을 빼앗은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제 다음은 어떻게 하지?”
지금 상황까지는 모두 이해가 되었다.
도박장으로 가서 천백만 냥 가까운 돈과 도박장까지 땄다. 문제는 잃은 돈과 집문서를 찾겠다고 쫓아온 자들이다.
팔장군들이 그들을 없애곤 있지만 수가 너무 많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없애면 양군우에게 들키고 말 게 분명하다. 그럼 낮에 왔던 추관의 귀에 들어갈 테고, 탈옥죄가 추가 될 것이다.
돈은 벌었지만 천주장을 되찾는 건 더욱 힘들어진다.
“멈춰라!”
바로 그때 입구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횃불을 든 자들 수백 명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활로 무장한 그들은 포졸이었다.
“이런?”
무혼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관리들 중에는 낮에 천주장을 찾아왔던 추관 장팔상도 있었다.
장팔상이 왔다면 저들 또한 양상태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천 명 이상이다.”
“천 명 이상이라고?”
무혼은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그러자 창고 외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수백 명이 창고를 둘러싼 채 활을 겨누고 있었다.
“이거, 추관 정도가 동원할 수준이 아니네.”
무혼은 고개를 갸웃했다.
안으로 들어온 자들까지 합치면 천오백여 명은 될 것 같다. 그런 많은 병력을 추관 혼자 동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추관보다 더 높은 벼슬을 가진 자가 이번 일에 개입됐다는 말이 된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천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지同知는 돼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자는 무혼뿐만이 아니었다. 양상태가 가주 아들 양군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장팔상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더 궁금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양군우는 장팔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양군우의 전음을 들은 장팔상은 깜짝 놀랐다.
―우리 집안의 사활이 걸린 일인데 오지 않을 수가 없잖습니까?
―여기 있으면 안 되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추관께서 여긴 어떻게 오신 거고요?
―투서가 들어왔네.
―투서요?
―무인들이 나타나 이곳 폭력배를 도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네.
―추관에게로 온 투섭니까?
―내게로 왔으면 이렇게 병사를 데리고 왔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지부에게 직접 왔네.
―내가 지부의 얼굴을 아는데, 저자는 지부가 아닙니다.
―저들은 지부에 온 손님이네.
―손님이라면?
―금의위 제일천호 추혼살검 자운영과 동창 제일첩형 옥호리 권말남이네.
그들은 금장생이 폐허로 변한 가문에서 만났던 자들이었다.
―네에?
금의위와 동창 사람이란 말에 양군우는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