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01화 (201/524)

황금가 (201)

‘대단한 자.’

천수는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처음 이곳에 섰을 때 바닥을 먼저 확인했다. 아무런 흠이 없이 완벽하게 미끈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홈이 나 있는 것이다.

통을 밀고 가면서 투자가 홈에 걸리게 하여 숫자를 바꾼 게 분명했다.

‘알려지지 않은 꾼이란 소리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투자는 위에 삼이 있으면 전후좌우로 일, 이, 육, 오 순서로 돼 있다. 통 안의 투자를 한 번 굴려 육을 위로 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걸 해낸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

그때 당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자는 꾼이에요.

―꾼?

―도박꾼 말이에요.

―너와 비슷한 실력을 지녔다는 거냐?

―네.

홈으로 숫자를 바꿨다는 걸 알면서도 천수는 당주에게 말하지 않았다.

―만일 다시 한다면 이길 수 있겠느냐?

―아까는 몰라도 지금은 자신 없어요.

―왜?

―실력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속임수를 쓰는지, 그것도 알 수 없고요. 저자는 도박꾼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전형이에요.

―그래도 넌 해야 한다.

―그게 무슨 말이죠?

―우린 이미 칠백만 냥을 잃었다. 그걸 복구하지 못하면 너와 나와 장주는 목이 달아난다. 계속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한 가지뿐이다.

―신풍대와 살천대를 대기시켜 놓지 않았나요?

―그들은 그야말로 마지막 수단이다. 그들의 개입 없이 끝내는 게 가장 좋다.

―돈은 전표뿐이죠?

―전표에 이 도박장 권리까지 합치면 사백만 냥 정도 된다.

―좋아요, 해 볼게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말해라.

―제가 도박을 할 때 절대 나서지 마세요.

―……알았다.

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음이 끝나자 천수는 금장생을 보았다.

“제게 남은 돈은 전표 삼백만 냥에 이 도박장 권리를 합쳐 사백만 냥이 다예요. 물론 당신이 이 도박장의 권리를 백만 냥으로 쳐주었을 때를 가정해서 한 이야기예요.”

“일단 모두 가져와 보세요.”

“알았어요.”

천수는 뒤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만 냥짜리 전표 삼백 장과 두툼한 종이 뭉치가 도박판 위에 놓였다.

금장생은 전표를 꼼꼼하게 살폈다.

“천하전장 전표군요.”

“전표로 속이진 않아요.”

“그리고 이건…….”

금장생은 도박장 문서를 집어 들었다.

“내가 패하면 당신이 이 도박장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거 멋지네요. 도박장 가치는 얼맙니까?”

금장생은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

“백만 냥이에요.”

“그럼 총 사백만 냥이군요.”

금장생은 사백만 냥에 해당하는 금패를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백만 냥을 더 밀었다.

“그건 뭐죠?”

“나는 도박을 배울 때 더 이상 걸 게 없으면 자신의 머리를 도박판 위에 올려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그, 그러니까 지금 제 머리를 걸라는 건가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백만 냥이나 쳐주다니 고맙군요. 좋아요, 제 목을 걸게요.”

“그리고…….”

금장생은 금패 열두 개를 황천상 옆으로 밀었다.

“이건 뭡니까?”

황천상이 물었다.

“투자 주인들이 바라는 대박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일인당 만 냥씩만 해도 괜찮은 장사 아닌가 싶어서요.”

“투자 주인들에게 주는 돈이란 말입니까?”

황천상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하난 황 대협 거고, 하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분들께 한잔 사는 겁니다.”

“오!”

“와!”

구경꾼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너무 일찍 축배를 드는 거 아닌가요?”

천수가 물었다.

“축배를 드는 게 아니라 땄을 때 인심을 쓰자는 겁니다. 돈을 다 잃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하잖습니까?”

“다 잃고 나면 저 돈도 아쉬울 텐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천수는 투자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 투자로 할 게 아닙니다.”

“네?”

“저것들 하나에 만 냥을 주고 샀는데 그냥 버리긴 아깝지 않습니까.”

“그, 그러니까 투자를 바꾸자고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천상 옆에 있는 투자 중 두 개를 골라 천수 앞으로 밀었다.

천수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이제 막 투자를 파악한 상태다. 그런데 투자를 바꾸자니.

―어떡하죠?

천수는 당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해야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당주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천수는 투자 두 개를 골라 금장생 앞으로 밀었다.

두 사람은 전에 쓰던 투자를 황천상 앞으로 밀어 놓고 새 투자를 통에 넣고 흔들었다.

탁! 탁!

두 사람은 동시에 통을 엎었다.

그러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주위는 침묵에 빠졌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도박장 이름이 일확천금이던데, 일확천금을 벌어 간 사람이 있습니까?”

“일확천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돈을 따 간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부자로 사나요?”

“도박꾼들의 습성을 잘 아시잖아요. 그들은 죽기 전까지 절대 여기를 벗어나지 못해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길 것 같습니까?”

“운이 좋다면 내가 이기겠지요.”

“그렇죠. 운이 좋은 사람이 이기는 내기가 도박이죠. 이제 밀까요?”

“네.”

두 사람은 통을 황천상 앞으로 밀었다.

‘응?’

금장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천수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거긴 자신이 투자를 뒤집기 위해 만들어 놓은 홈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는 건가? 재미있는 여자네.’

“황 대협은 동시에 통을 들어 주십시오.”

금장생은 황천상을 보며 말했다.

“열겠습니다.”

황천상은 양손으로 통을 잡았다.

중인은 긴장한 얼굴로 황천상의 손을 바라보았다.

슥!

“이, 이겼다!”

“저 사람이 이겼다!”

“천수가 졌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우와아!”

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천수는 멍한 얼굴로 투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점수는 구九고 금장생의 점수는 십十이었다.

“혹시 마차 한 대 구해 줄 수 있습니까?”

금장생은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구해 오겠습니다.”

구경꾼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걸로 마차 한 대와 돈 자루를 구해 주십시오. 돈 자루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금장생은 만 냥짜리 전표를 구경꾼에게 건넸다.

“한 식경이면 됩니다.”

구경꾼은 바람처럼 내달렸다.

“여러분은 돈을 밖으로 옮겨 주십시오.”

금장생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구경하던 이들은 수레에 들어 있는 돈을 도박장 밖으로 옮겼다.

구백만 냥 가까이 되는 현금의 양은 엄청났다. 몇 번을 오가고 나서야 다 옮길 수 있었다.

“장주는 어디 있습니까?”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여기 있소.”

일 층으로 올라가는 안쪽 계단에서 장주가 나오며 대답했다.

“내일까지 집을 비워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날 따라오세요.”

금장생은 천수를 보며 말했다.

“왜…….”

“방금 판으로 인해 내가 주인이 됐다는 걸 잊었습니까?”

“……그렇군요.”

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따라가라.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면 놈을 죽여라!

곧 당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자에게 방수가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구백만 냥이나 되는 현금을 혼자 힘으로 가지고 갈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누군가 있을 거란 말이군요.

―눈치채지 않도록 행동해라.

―알겠습니다.

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마차는 이미 대기 중이었다.

금장생은 마차 안에서 자루를 꺼내 돈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기꺼이 금장생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돈이 채워진 자루는 마차에 실렸다.

“당신은 앞에 타세요.”

금장생은 천수에게 마부석에 타라고 말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천수는 마부석에 앉았다. 거기 앉아서 출발 명령을 기다렸다.

금장생이 출발 명령을 내린 건 한 식경 후였다.

―따라가야겠지?

바타르는 무혼을 보며 물었다.

그는 벌써 금장생을 태운 마차가 가는 길목에 적이 은신해 있다는 걸 파악한 상태였다.

―응.

무혼은 걸음을 옮겼다.

마차가 달리는 속도가 느려 금세 따라잡았다.

금장생의 마차를 따라가고 있는 자들은 무혼과 바타르뿐만이 아니었다. 일확천금 당주를 비롯하여, 신풍대와 살천대 대원 이백 명도 은밀하게 따랐다.

―마차를 쫓는 자들이 있습니다.

신풍대 대원 중 한 명이 당주에게 전음으로 보고했다.

―어떤 자들인지 파악했느냐?

―상인들로부터 보호세를 갈취하는 폭력 조직 달영파 일백 명과 거지들 조직인 타구파 쉰 명, 달영파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몽상파 일백 명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파에 속하지 않은 개인들 사오십 명도 있습니다.

―총 삼백 명 정도가 놈을 따르고 있다는 말이구나.

―어떻게 할까요?

―마차가 도심을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라.

원래는 도박장을 벗어나자마자 공격할 참이었다. 그런데 주변에 눈이 너무 많았다.

마차는 천천히, 쉬지 않고 달렸다.

“저 앞에 있는 건물은 뭐죠?”

마부석으로 나 있는 창문으로 앞을 바라보던 금장생이 물었다.

오십여 장 앞에 커다란 건물이 서 있었는데 길이 그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전에 창고로 사용했던 곳인데, 창고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바람에 버려졌어요.”

“저기로 들어가요.”

금장생은 창고를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가면…….”

천수는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눈치가 없는 자가 도박에 능할 리는 없고, 상당히 많은 자들이 마차를 쫓아오고 있다는 걸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뭔가 있다는 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시선이 마주치자 금장생이 말했다.

“알았어요.”

천수는 마차를 몰았다.

잠시 후 마차는 버려진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은 상당히 넓었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거리는 십 장가량이고, 좌우 폭은 백여 장에 달했다. 좌우측 공간에는 과거 곡식을 담아 두었던 걸로 보이는 거대한 통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가요.”

“쫓는 자들이 있어요.”

천수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압니다.”

“알고 있었다고요?”

“현금 구백만 냥을 가진 자가 마차를 타고 가는데 날파리가 꼬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그걸 알면서 여기로 온 건…….”

“이거 받으세요.”

금장생은 자루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뭐죠?”

“백만 냥이면 중원 어딜 가더라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왜 제게 돈을 주는 거죠?”

천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은 내가 홈을 만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는데도 당신 상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당신 상관들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날 도와준 건 분명하잖습니까. 나는 은혜가 됐든 원한이 됐든 반드시 갚는 사람이거든요.”

“그들은 당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대한 조직이에요. 당신은 죽을 거예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피하세요.”

“……알았어요. 그런데…….”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천수는 머뭇거렸다.

“말하세요.”

“어떻게 한 거죠?”

“뭘 말입니까?”

“당신이 도박에 자질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날 넘어설 정도는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도 당신은 한 판도 지지 않았어요.”

당주에게는 금장생이 꾼이라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파악한 금장생은 도박을 제법 잘하는 축에 낄 뿐 도왕이나 도신 칭호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투자를 마음대로 조종했다.

무공을 펼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금장생이 이용한 건 귀신이었다.

하지만 ‘귀신이 날 도와주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군요. 알았어요. 아무튼 고마워요.”

천수는 마차에서 나갔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팔장군은 나오세요.”

천수가 떠나자 금장생은 적사월 일행을 소환했다.

모습을 드러낸 적사월 일행은 마차를 호위하는 것처럼 둘러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