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0)
―어떻게 할까요?
천수는 장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수가 어떻게 할 거냐고 묻습니다.”
장주는 옆에 선 당주에게 말했다.
―도수는 너다, 천수.
당주는 천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투자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 다섯 판이 필요해요.
―지금 통 안에 어떤 숫자가 있는지 모른다는 거냐?
―네.
―나는 네 감을 믿는다. 알아서 해라.
―알았어요.
천수는 자신 앞에 있는 금패 다섯 묶음을 앞으로 밀었다. 그건 금장생이 건 돈의 절반이었다.
“기권이에요.”
“오!”
“와!”
금장생 주변에서 함성이 흘러나왔다.
“네.”
금장생은 황천상에게 눈짓을 했다.
황천상은 먼저 금장생의 통을 들었다. 점수는 이二와 오五로, 총 칠七 점이었다.
금장생의 점수를 확인한 사내는 이번에는 천수의 통을 들어 올렸다.
“와아아!”
“우와아아!”
또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천수의 점수는 십十 점이었다. 금장생은 낮은 점수로 무려 육십만 냥을 따낸 것이다.
“정말 무모한 분이시군요.”
천수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도박판을 적잖이 전전하였고 도박도 많이 했지만, 확신도 없는 판에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무모함이 때로는 대박을 안겨 주기도 하거든요.”
금장생은 금패를 자신 앞으로 쓸어 왔다.
쓸어 온 금패를 열 개씩 한 묶음으로 쌓는 사이 투자가 담긴 통이 앞으로 왔다.
“내 판돈은 총 백칠십만 냥입니다.”
금장생은 옆에 쌓인 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천수는 고개를 돌려 도박장에서 일하는 사내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도박판 옆 천수의 자리에는 새로 가지고 나온 돈을 합쳐 백칠십만 냥이 쌓였다. 아울러 천수 앞에도 금패 백일흔 개가 놓였다.
“계속해 볼까요?”
금장생은 이번에는 금패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모험을 그만할 생각인가 보죠?”
천수는 금패 하나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그리고 통을 흔들었다.
천수가 통을 흔들자 금장생도 천천히 자신의 통을 흔들었다. 모두 숨죽인 가운데 투자가 통에 부딪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탁!
이번에도 역시 통을 먼저 엎은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조금 전에 내가 착각해서 오만 냥을 잃었거든요.”
금장생은 통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오른편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탁!
이어 천수가 통을 엎어 오른편으로 쭉 밀었다. 그리고 물었다.
“뭘 착각했다는 거죠?”
“한 냥을 먼저 걸고 나중에 백십만 냥을 걸었으면 오만 냥을 더 벌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천수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의 말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당신 생각대롭니다.”
금장생은 백칠십만 냥을 앞으로 밀었다.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은 이제 함성도 내지르지 않았다. 너무 엄청난 금액과 금장생의 배짱에 할 말을 잃고 만 것이다.
“이제 당신은 백칠십만 냥을 다 넣고 내 점수를 확인하거나, 아니면 팔십오만 냥을 넣고 죽어야 합니다.”
“팔십오만 냥을 넣을게요.”
천수는 이번 판도 포기했다.
“뒤집지 마세요.”
황천상이 통을 뒤집으려고 하자 금장생이 못 하게 했다.
“이번엔 확인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죠?”
“기권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습니까.”
“조금 전에는 확인하지 않았나요?”
“첫판을 보여 주는 건 구경꾼들에 대한 예의라서요.”
금장생은 천수 뒤편으로 슬쩍 시선을 주었다.
‘이자……?’
천수의 눈빛이 깊어졌다.
시선을 뒤로 향했다는 건 중간에 장주와 당주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냐, 내가 잘못 생각했을 거야. 저자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어. 오직 운이야.’
―뭐 하는 거냐, 천수.
그때 당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확신할 수 없는 패에 돈을 걸지 않는 건 도박의 철칙이에요.
―네가 패했다고 확신하느냐?
“이번에도 하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금장생은 금패 하나를 가운데로 밀었다.
―투자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전에는 그것도 알 수 없어요.
천수도 금패를 밀어 놓았다.
―언제 알 수 있느냐?
―이번 판이 지나면 구 할 이상 파악 가능해요.
―가능하다는 건 점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냐?
―네.
천수는 천천히 통을 흔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금장생의 통에 머물러 있었다.
―놈의 점수는?
―저자의 점수도 마찬가지예요. 구 할 이상 파악했어요.
탁! 탁!
두 사람은 동시에 통을 엎었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밀었다.
“이백만 냥을 걸겠습니다.”
금장생은 금패 스무 묶음을 한꺼번에 앞으로 밀었다.
―네 점수는 몇 점이냐?
당주는 천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최하 칠 점이에요.
―최하 칠 점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
―투자 하나는 완벽하게 파악했어요. 그래서 육 점을 만들었고요.
―저놈은?
―저자 또한 최하 칠 점이에요.
천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당주의 전음 때문에 도박에 집중하는 게 힘들었다.
―어떻게 할 참이냐?
―기권할 생각이에요.
―기권하면 놈의 패도 보지 못한 채 백만 냥을 잃게 된다.
―하지만 확신 없이…….
―도박에서 연속 네 판을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극히 희박해요. 하지만 점수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는 건…….
―연속 네 판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엔 놈의 점수를 확인해라.
당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이번엔 점수를 보고 싶군요.”
천수는 자신 앞에 있던 금패를 전부 앞으로 밀었다.
판돈을 금장생과 맞췄기 때문에 셀 필요가 없었다.
오른편의 현금도 마찬가지였다. 천수 쪽에 있던 모든 돈이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내 걸 먼저 여세요.”
금장생은 통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보며 말했다.
사내는 곧바로 통을 들었다.
“칠七 점입니다.”
사내가 말했다.
“너무 낮아. 아무래도 운이 다한 모양이야.”
주변에 있던 자들이 웅성거렸다.
‘칠七 점이면 최소한 동점이다.’
천수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시선이 도박판 가운데로 향했다. 다행히 이번 판은 돈을 잃지 않은 것 같았다.
“와!”
“오五 점이다!”
“또 이겼다!”
“헉!”
그녀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만든 점수는 최하 칠 점이 나와야 한다.
그녀는 얼른 투자를 보았다.
그녀의 점수는 일一, 사四로, 오五 점이었다.
“운은 영원할지어다.”
금장생은 금패 하나를 들어 입을 맞췄다.
―둘 중 하나는 육六 점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당주는 화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제가 맞힐 확률은 구 할이라고 했잖아요.
천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중하려고 하면 전음을 보내 흐름을 끊어 놓는 사람이 당주였다. 그래 놓고 패배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주둥이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나는 네가 투자 하나는 육六이 확실하다고 해서 다 확인하라고 했다.
―그건…….
면사 아래쪽 천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분명 기권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확인하고 우겨 놓고 이제 와서 발뺌이다.
“그만하실 겁니까?”
그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자는 다 파악했느냐?
바로 당주의 전음이 이어졌다.
흥분을 가라앉힌 듯, 당주의 목소리는 차분해져 있었다.
―네.
―그럼 계속해라.
―알았어요.
천수는 금패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안에서 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고 두 갭니다.”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두 개요?”
“이만 냥을 넣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천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금패 하나를 더 밀었다.
그사이 돈이 나오고 새로운 금패가 천수 앞으로 놓였다.
천수는 통을 흔들었다.
그녀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자신과 금장생의 투자 소리를 들었다.
탁! 탁!
두 사람은 동시에 통을 엎었다.
‘내가 이겼다.’
천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투자는 오五, 육六으로 십일 점이고, 금장생의 투자는 삼三과 육六으로 구 점이었다.
금장생이 졌다는 걸 알아차린 자는 또 있었다. 한편에 서서 두 사람의 도박을 구경하고 있던 바타르였다.
―저놈이 졌다.
―통 안에 있는 숫자가 보여?
무혼은 전음으로 물었다.
―난 드래곤이잖느냐.
―그럼 아까 골패할 때도 상대 패를 다 알고 있었어?
―상대방 패도 모르면서 도박을 하는 미친놈도 있느냐?
―그러니까 전부 알면서 모른 척했다는 거지?
―그래서 돈을 따잖느냐.
―에라, 이 도둑놈 새꺄.
―모르는 놈이 병신이지. 그나저나 저놈에게…….
“사백만 냥을 걸겠습니다.”
금장생은 금패 묶음 마흔 개를 앞으로 밀었다.
―네가 점수를 바꾸는 건 불가능해?
무혼은 바타르에게 물었다.
―통 안에 있는 주사위를 바꾸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 없이 그냥 하다가는 부서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왜?
―저 통 안에 뭔가가 있다.
―귀신이라도 있다는 거냐?
―귀신이 됐건 정령이 됐건, 그놈이 주사위를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럼 저놈도 도둑놈이네.
무혼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도박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운이 따르는지 확인해 보고 싶네요.”
천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맙소사! 파, 판돈이 파, 팔백만 냥이다.”
도박장 안 사람들은 경악했다.
팔백만 냥의 판돈.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엄청난 금액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판돈으로 쏠렸다.
“이제 통을 열어 볼까요?”
천수가 통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통은 저분에게 맡기기로 하지 않았나요?”
금장생은 황천상을 가리켰다.
“아! 그랬죠.”
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을 바로 밀었다.
그녀가 통을 미는 순간 금장생도 통을 황천상 쪽으로 밀었다. 그의 통이 지나가는 곳에 작은 홈이 있다는 걸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왜?
무혼은 전음을 보냈다.
―숫자가 바뀌었다.
―누구 숫자가?
“와! 십일十一 점이다!”
“이번엔 천수가 이겼다.”
“드디어 이름값을 하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분의 통을 열겠습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황천상은 통을 들었다.
“헉!”
가장 먼저 경악한 얼굴을 한 사람은 천수였다.
통 아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 십이十二다!”
이어 구경꾼들이 소리쳤다.
“세상에! 십이十二야! 저 사람이 이겼어.”
“와아!”
구경꾼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시선은 금장생이 통을 민 궤적을 훑고 있었다.
‘저거다.’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금장생이 통을 밀고 간 곳에서 작은 홈을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