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99화 (199/524)

황금가 (199)

도박판 주위엔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 금장생과 천수를 지켜보았다.

천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금장생에게 특이한 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기를 치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이 바뀌면 도박 방식도 바뀌는 건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불리한 건 아니에요.”

“어떤 도박입니까?”

“각기 두 개의 주사위를 가지고 던져서 나온 숫자의 합이 높은 사람이 이기는 단순한 내기예요.”

“그럼 투자를 많이 가지고 논 당신에게 유리하겠군요.”

“원하신다면 투자를 새것으로 바꾸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투자 가지고 계신 분 있습니까?”

“여기 있소.”

“여기요.”

“여기요.”

순식간에 투자 열 개가 금장생 앞에 놓였다.

“무슨 투자가 이렇게 좋습니까?”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모든 투자가 옥이나 상아 등으로 만든 고급품이었다.

“대박을 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지고 다니는 부적이라서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그는 투자를 바라보면서 뒤편의 무혼에게로 전음을 보냈다.

조금 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무혼과 바타르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내 동업자가 도박을 했다고 했거든요. 천주장 근처에 도박장은 여기뿐이고요.

―그놈에 대해 조사를 하러 온 거란 말이냐?

―조사는 아니고,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우리도 조사하러 왔다.

―다른 쪽에 가서 즐기세요.

―방해하지 말라고?

―네.

―나야 상관없지만 이 자식은 안 그런 것 같아.

무혼은 바타르를 가리켰다.

―그분은 도박을 좋아하나 보죠?

―나도 처음 알았다.

―그거 좋은 습관 아닌데.

―드래곤인데 뭐.

“우린 저기로 가자.”

무혼은 바타르를 끌고 골패하는 곳으로 갔다.

“투자를 골라야겠지요?”

천수가 말했다.

“상대방 걸 골라 주기로 하지요.”

금장생은 투자를 바라보았다. 그것들 중 두 개를 골라 천수 앞으로 밀었다.

“음!”

천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섯 면의 고르기다. 완전히 평평해야 원하는 수를 만들 수 있는데, 금장생이 골라 준 건 약간 울퉁불퉁했다.

“그럼 나는 이걸로 할게요.”

천수 역시 투자 중 가장 상태가 나빠 보이는 걸로 두 개를 골라 금장생 앞으로 밀었다.

“돈은 어떻게 겁니까?”

금장생은 투자를 굴려 보며 물었다.

“많이 건 사람을 따라가야 합니다.”

“기권은 있나요?”

“상대방이 건 돈의 절반을 내놓고 기권을 하면 됩니다.”

“판돈이 아니고 그 판에 건 돈의 절반이라는 거죠?”

“네.”

“좋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만 냥을 걸겠습니다.”

천수는 만 냥짜리 전표 한 장을 판 가운데로 밀었다.

“나는 전부 현금입니다.”

“나도 현금으로 하란 말인가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손님이 이긴다면 무거워서 가져갈 수 없을 텐데요?”

“가져가는 건 내 사정 아닌가요?”

“꼭 현금이라야 한다는 거군요.”

“나는 현금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습니다.”

금장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바라본 곳은 지하와 일 층 사이, 장주와 당주가 있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장주는 옆 사내에게 물었다.

“가져다줘.”

사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장주는 고개를 숙이고는 부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신풍대와 살천대는?”

“지금 오고 있답니다.”

“저기 저놈들도 주시하라고 해.”

사내는 골패가 한창인 곳을 가리켰다. 무혼과 바타르가 있는 자리였다.

무혼 앞은 텅 빈 반면 바타르 앞에는 상당히 많은 돈이 쌓여 있었다.

“알겠습니다.”

장주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천수 앞에 금자가 수북하게 쌓였다.

“도박은 이걸로 하고 돈은 옆 사람들이 헤아려 주는 걸로 하는 건 어때요?”

천수는 둥근 패를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금색 패는 도박장에서 현금 대신 사용하는 것으로, 이름은 전패였다.

“패 하나에 얼마로 할 겁니까?”

“금패는 만 냥, 은패는 천 냥, 동패는 백 냥을 나타내요.”

“우린 금패만 있으면 되겠군요.”

“맞아요.”

“좋습니다.”

“저분께 여든한 개를 드리세요.”

천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내는 둥근 패 여든한 개를 헤아려 금장생 앞에 놓았다.

그사이 다른 이들은 작은 수레를 가져와 금장생과 천수가 도박을 벌이는 탁자 옆에 세웠다.

“먼저 일만으로 할게요.”

천수는 금패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그녀가 전패를 내밀자 오른편에 있던 자들이 수레에 금자를 담기 시작했다. 담은 금자의 수는 총 오백 개였다.

“나도 같이 가죠.”

금장생은 금패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엔 금장생의 돈을 수레에 담았다.

수레가 채워지자 도박판 오른편에 놓였다.

두 사람은 투자를 잔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흔들었다.

탁! 탁!

그리고 그의 동시에 통을 엎었다.

금장생은 통을 엎은 상태 그대로 오른편으로 밀었다.

“무슨 뜻이죠?”

천수는 통과 금장생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통을 뒤집는 것도 제삼자가 해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장생과 마찬가지로 통을 오른편으로 밀었다.

“누가 뒤집어 주시겠습니까?”

“허락하신다면 내가 하고 싶습니다.”

구경꾼들 중 한 명이 통 앞으로 갔다.

“아는 분인가요?”

천수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나는 찬성이에요.”

“나도 찬성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황천상입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통은 황 대협이 뒤집어 주세요.”

“영광입니다.”

황천상은 두 사람에게 포권을 취했다.

“점수를 보기 전에 돈을 한 번 더 거는 건 어떻습니까?”

금장생이 제안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좋아요.”

“삼십만 더 갑니다.”

금장생은 금패 서른 개를 앞으로 밀었다.

“와!”

“오! 삼십만 냥이다!”

지켜보던 자들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이제 시작인데…….”

“벌서 투자를 파악했을 리가 없는데…….”

구경꾼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보통 새 투자로 도박을 시작하면 탐색이라는 걸 하게 된다.

탐색은 투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시간이다. 즉, 가장 낮은 수나 높은 수가 나올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자신의 투자는 물론이고 상대 투자까지 파악을 해야 한다.

그걸 모두 파악하려면 솜씨가 뛰어난 자라고 해도 여섯 번에서 열 번은 던져 봐야 한다.

투자 하나로 승부를 가릴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두 개로 승부를 가리는 지금과 같은 도박은 탐색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삼십만 냥을 걸어 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수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한 판을 던졌을 뿐이라 투자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대가 삼십만 냥이라는 거금을 걸어 버린 것이다.

“모험인가요?”

천수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어젯밤 꿈자리가 좋았거든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단지 꿈자리가 좋았다고 삼십만 냥을 거는 건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나는 꿈이나 점을 신봉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대체로 믿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젯밤 꾼 꿈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꾼 어떤 꿈보다 좋았습니다.”

“이겼다고 자신하나 보군요.”

천수는 물었다.

“그랬더라면 삼십만이 아니라 팔십만 전부를 걸었겠지요.”

“그렇군요.”

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첫판인데 죽을 수는 없잖아요. 삼십만 받을게요.”

천수는 금패 서른 개를 도박판 가운데로 밀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그러자 옆에 있던 자들이 금자를 수레에 담았다.

“내 패를 먼저 보이겠습니다.”

금장생은 황천상을 보았다.

황천상은 금장생의 통을 들어 올렸다.

“아!”

안타까운 탄성이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금장생의 투자는 일一과 이二로, 총 삼三 점이었다.

최고 십이 점까지 있는 투자에서 삼 점은 최하위 점수나 다름없었다.

“그러게 모험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천수는 싱긋 웃고는 황천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천상은 바로 천수의 통을 들었다.

“헉!”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어?”

“허!”

이어 놀람에 찬 외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천수의 투자는 일一, 일一로, 총 이二 점이었다.

“내가 이건 것 같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금패를 쓸어 왔다. 그리고 열 개씩 쌓아 정리했다.

그가 금패를 정리하는 사이 수레에 담겼던 금자가 그의 돈이 있는 곳에 쏟아졌다.

“이번엔 십만으로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열 개씩 쌓아 올린 금편을 판 중앙으로 밀었다.

“통이 크시네요.”

천수는 십만 냥에 해당하는 금패를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통에 죽고 통에 사는 놈이라서요.”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투자를 통 안으로 집어넣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통을 흔들었다.

눈빛은 서로를 향해 있지만 두 사람의 모든 감각은 통 안으로 향해 있었다.

천수는 물론이고 금장생도 다르지 않았다.

‘이건 큰 놈이 구르는 소리, 이건 작은 놈이 구르는 소리. 사오, 육이, 삼사, 일육.’

금장생은 계속 숫자를 셌다.

탁!

먼저 금장생이 통을 엎었다. 그러고는 오른편으로 쭉 밀었다.

탁!

이어 천수가 잔을 도박판 위에 엎고 나서 도박판 오른편으로 쭉 밀었다.

투자가 들어 있는 두 통은 한 자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섰다.

“그만 거실 건가요?”

천수가 물었다.

“그럴 수는 없죠.”

금장생은 자신 앞에 있는 금패를 전부 앞으로 밀었다.

“헉!”

“세상에.”

“저럴 수가!”

구경꾼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금장생 앞에는 금패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방금 그가 이번에 건 돈은 백만 냥이었다.

“뭘 믿고…….”

중인은 웅성거렸다.

저들이 도박을 한 횟수는 이제 두 번이다. 그런데 판돈이 백만 냥을 넘어 버린 것이다.

“정말 다 거신 건가요?”

천수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네.”

“이번에도 운을 믿고 모험을 하는 건가요?”

“운이 좋을 때는 뭘 해도 다 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거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백십만 냥은 너무 큰 모험 아닌가요?”

“나는 손해만 보지 않으면 된다는 주의라서요.”

“다 잃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내 본전은 이거 하납니다.”

금장생은 자신 앞에 있는 금패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렇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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