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97화 (197/524)

황금가 (197)

천수

잠시 후 큰소리치던 자와 그의 부하들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나는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장생?”

사내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주머니 안에서 뭔가를 꺼내 금장생 앞으로 던졌다.

“이건 뭡니까?”

사내가 던진 게 전표라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오만 냥이다.”

“오만 냥은 왜…….”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사내를 보았다.

그러자 사내는 글이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내 금장생 앞으로 놓았다.

금장생은 글을 읽어 보았다.

나는 협박에 못 이겨 동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잘되자 그는 오만 냥을 주면서 남은 지분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이 서찰을 가져가는 분께 제가 가졌던 모든 권리를 넘깁니다.

어성연

글의 내용이었다.

“내 동업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금장생은 사내를 보며 물었다.

“죽었다.”

“죽어요?”

“내가 어성연을 발견했을 때에는 거의 죽어 가는 중이었다. 그가 글을 괴발개발 쓴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동업자인 어성연 사장은 죽었고 그가 가진 모든 권리가 댁에게 넘어갔단 말입니까?”

“이해가 빠르구나.”

“어 사장이 모든 권리를 당신에게 남겼다는 걸 증명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나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관복을 걸친 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엮였군.’

내심 든 생각이었다.

관리까지 동원했다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마나부 상.

금장생은 마나부에게 전음을 보냈다.

―말씀하십시오.

―천주를 만드는 비법은 어디 있습니까?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누굽니까?

“나는 임조부臨洮府 소속 추관推官 장팔상이다.”

마나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관리의 입에서 나왔다.

‘지랄!’

금장생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추관은 부府에서 죄인을 심문하는 자로 정칠품이며 순검, 포쾌, 정용을 거느리고 있다.

정칠품에 불과하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라, 위에서부터 내려온 명령이 아니면 그가 곧 법이다.

최고 권력을 지닌 자에게 재수 없게 걸린 셈이었다.

“네가 장생이더냐?”

장팔상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어성연 살해죄로 체포한다. 여봐라!”

그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네!”

그러자 밖에서 포졸들이 뛰어들어 왔다.

“저놈을 포박하라!”

장팔상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포졸들이 우르르 금장생에게로 다가왔다.

“무고한 사람을 포박해 가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추관.”

금장생은 장팔상을 보며 말했다.

“어성연의 유서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뭐 하고 있느냐, 당장 포박하라!”

장팔상은 버럭 소리쳤다.

포졸들은 금장생에게 달려들어 그를 포박했다.

무혼은 금장생을 보았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당장 손을 써 놈들을 없애 버릴 참이었다.

무혼의 내심을 알아차린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거냐?

―제게 계약서가 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무혼은 고개를 갸웃했다.

금장생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다. 손짓 한 번이면 이곳에 있는 자들을 날려 버릴 수 있는데 순순히 포박을 당하고 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는 무인이 아니고 장사꾼입니다. 장사꾼은 장사꾼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해야 하지?

―우리가 상대하는 자들이 바로 무공을 모르는 양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론 맛과 품질을 따집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부정적인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마시질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해도 나쁜 방법으로 만들었다면 사지 않고요. 굳이 그 술이나 그 물건이 아니라도 다른 술이나 물건이 있는 곳이 이 바닥이거든요.

―누구나 인정하는 정당한 방법으로 일 처리를 해야 한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저들은 절대 정당하게 처리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무혼은 사내 일행을 가리켰다.

―먼저 어떤 자인지 알아내야지요.

―그건 내가 하지.

무혼은 걸음을 옮겨 추관 장팔상과 금장생 사이를 가로막았다.

“뭐냐?”

무혼은 내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로 역장이 형성되었다.

“네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는 내 친구는 개미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유약한 사람이다. 만일 이번 일이 모함이거나 누군가의 음모라면 그놈은 내 손에 죽는다.”

“지,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냐?”

장팔상은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협박이 아니라 모든 일이 법대로, 적법한 절차에 맞춰 처리돼야 한다는 거다. 이름이 장팔상이라고 했지?”

무혼은 장팔상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 나는 모든 일을 법대로 처리한다. 그리고 친구가 잡혀서 흥분한 상태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번은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나를 협박하면 공무집행 방해죄 및 공갈죄로 네놈도 체포할 테다!”

장팔상은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금장생은 무혼에게 전음을 보냈다.

―때로는 강력한 힘이 일을 더 악화시키는 걸 막기도 하거든.

무혼은 싱긋 웃었다.

―지금 무 형의 협박이 제게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말까지 더듬는 거 봤잖아. 저놈은 지금 잔뜩 겁먹었어. 아마 추관이라고 밝혔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해 대는 내가 누군지 궁금해 죽을 지경일 거야.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가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라.

―저자가 누군지 알아봐 주십시오.

금장생은 어성연이 쓴 걸 가져온 사내를 턱으로 가리켰다.

―알았다.

“연행하라!”

장팔상은 포졸들에게 소리쳤다.

“일어나라!”

포졸 중 한 명이 금장생의 어깨를 툭 쳤다.

홱!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포졸을 보았다.

“헉!”

포졸은 질겁하며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금장생의 눈빛이 그만큼 강했던 탓이다.

“왜 그래?”

옆에 있던 포졸이 물었다.

“아, 아냐. 이, 일어서라.”

포졸은 다시 금장생에게 말했다.

금장생은 일어났다. 그리고 포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마나부 상!

금장생은 나가면서 마나부에게 전음을 보냈다.

―네.

―일은 계속하세요.

―알겠습니다.

마나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포졸들을 따라 나갔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

사내는 마나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접니다.”

마나부는 손을 들었다.

“주인만 바뀌었을 뿐 너희는 원래 일을 그대로 하게 된다. 아울러 보수도 지금보다 두 배를 더 받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마나부는 고개를 숙였다.

“장부는 어디 있느냐?”

“저기 서랍 안에 있습니다.”

마나부는 서랍을 가리켰다.

“남의 영업 방해 말고 그만 가 보쇼.”

서랍 앞으로 간 사내는 무혼과 바타르를 보며 말했다.

“이름이 뭐냐?”

무혼은 물었다.

“남의 이름은 알아서 뭐하려고?”

사내는 무혼을 빤히 쳐다보았다.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사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사내는 재빨리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 검 손잡이를 쥐었다.

“오늘은 그냥 가지. 하지만 다음엔 말하게 될 거야.”

무혼은 바타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앉은 곳은 양조장 뒤편의 폐가 안이었다. 약간 위치가 높은 곳에 있는 터라 양조장 앞마당이 내려다보였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바타르가 무혼을 보며 물었다.

“조금 전 그놈 정체가 궁금해서.”

“여기 앉아 있으면 그놈이 누군지 알려 주는 자가 오느냐?”

“아니.”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기 있는 놈들 중 한 명을 납치할 거야.”

무혼은 사내의 부하들을 가리켰다.

“그럼 데리고 오면 되지 않느냐.”

“너무 밝잖아. 나는 너처럼 마법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랄!”

바타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무혼을 보았다.

아는 바로는 무혼은 검술도 마법도 궁극의 경지 직전까지 가 있다. 그런 녀석에게 투명 마법은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 쉽다.

그런데 ‘너처럼’이란다.

“앉아, 인마.”

“빌어먹을 자식!”

휙!

바타르의 신형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아무튼 단순함은 극을 달려.”

무혼은 피식 웃었다.

바타르가 자리를 뜬 건 사내의 부하를 잡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어디 보자.”

무혼은 주위를 살폈다.

잠시 후 바타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옆구리에는 사내의 부하 한 명이 끼워져 있었다.

털썩!

바타르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자를 무혼 앞으로 던졌다.

“윽!”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 사내는 정신을 차렸다.

“여긴?”

사낸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무혼과 바타르를 발견했다.

“누구요?”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무혼은 사내 앞으로 갔다.

무혼은 먼저 바타르를 돌아보았다. 그는 눈빛으로 어떤 놈이냐고 물었다.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럼 잘 잡아 왔네.”

무혼은 다시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름?”

“이치익이오.”

사내는 얼른 대답했다.

“소속은?”

“양상태가陽商太家 호위대 대주요.”

“양상태가는 뭐 하는 데지?”

“감숙성에서 가장 큰 상단이외다.”

“가장 큰 상단이라…….”

“가장 큰 상단일 뿐 아니라 무력도 낭인성 다음으로 강하오.”

이치익은 무력이 강하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널 보내 주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 같은데, 맞아?”

“그렇소.”

“어떻게 큰일이 나는데?”

“내가 호위대 대주이긴 하지만 신풍대神風隊 대원들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할 뿐이오. 그들이 나오면 당신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요. 그러니까…….”

“널 보내 주면 없는 일로 해 주겠다는 거냐?”

“그렇소.”

“그거 매력적인 제안이네.”

“그러니까…….”

“그놈 이름과 양상태가에서의 신분을 말해 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하기 싫어?”

무혼은 사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말하면 살려 줄 거요?”

“응.”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양군우고, 상단주의 아들이오.”

“여기 온 목적은?”

“어성연이 우리를 찾아와서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했소.”

“그래?”

무혼은 턱을 쓰다듬었다.

“거짓말이다.”

이치익을 지켜보던 바타르가 말했다.

“나도 알아.”

“아니오, 사실이오. 내 말은 어성연의 가족이 증명해 줄 거요.”

“내 친구 동업자에게 가족이 있어?”

“부인하고 딸이 있는 걸로 알고 있소.”

“지금 어디 있지?”

“양산태가에 있소.”

“그럴 줄 알았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속에서 아주 가느다란 칼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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