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96)
귀마존을 비롯한 네 명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귀마존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죽었다고 하였다. 아니, 마령단을 전부 복용한 이상 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영혼이 차원을 넘어가 황제가 됐단다.
“맞다. 그리고 너희도 알겠지만 이곳의 삼백 년은 그곳의 삼천 년과 같다.”
“그 말씀은, 놈이 삼천 년 동안 살았다는 겁니까?”
“아니다. 놈은 삼천 년 전에 죽었다. 지금 놈은…….”
“부활했군요.”
귀마존이 말했다.
과거였다면 부활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났고 나머지 구마도 모두 삼백 년 이상 살고 있다. 아니, 앞으로 이천 년 이상을 더 살게 될 것이다.
무혼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부활한 게 분명했다.
“맞다. 부활했다. 하지만 그놈은 탈피한 게 아니다.”
“인간인데 부활을 했다는 겁니까?”
“그렇다. 누가, 왜 그놈을 부활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삼천 년 전에 죽은 자를 부활시켰고, 지금은 자기 고향인 중원으로 들어와 있다.”
“클!”
귀마존은 피식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양마존, 빙마존, 풍마존 세 사람은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들의 미소는 순수한 기쁨의 표현이 절대 아니었다.
잊었던 원수를 떠올리고 복수할 수 있게 된 현 상황이 기뻐서 웃는 웃음이었다.
진득한 살기가 실려 있는 차가운 미소.
“그놈을 없애는 임뭅니까?”
귀마존은 물었다.
“그렇다.”
심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귀마존이 말했다.
“아니다. 너희 넷이 모두 가야 한다.”
“그놈 한 명을 없애는 데 우리 넷이 모두 가는 건…….”
귀마존이 의아한 얼굴로 심무극을 보았다.
“놈 옆에는 드래곤이 있다.”
“드래곤요?”
귀마존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은 말로만 들었지 겪어 본 적이 없지?”
심무극은 물었다.
“네.”
귀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고 하는 자들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드래곤이 그렇게 강합니까?”
이곳에서 태어난 구마는 신족이긴 하지만 드래곤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 보면 드래곤에 대해 알게 될 게다.”
“기대가 되는군요.”
귀마존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맺혔다.
“드래곤은 없애지 못하더라도 무혼 그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귀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에 대해서는 엘에게 듣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쉬십시오.”
귀마존 일행은 정자를 나와 호수 밖으로 향했다.
“라헬의 흔적은 찾았는가?”
심무극은 좌무백을 보며 물었다.
라헬은 신족의 네 왕인 사신왕 중 한 명으로, 전란의 시대 때 신족을 배신하고 노예들 편에 섰던 자의 이름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여 아군을 패하게 만든 자.
“수백 년 동안 놈의 흔적을 찾았지만 없었네. 놈은 죽은 게 분명하네.”
“놈이 죽었다면 완벽하게 지워져야 하는데 아직 내 머릿속에는 놈의 잔영이 남아 있네.”
“그건 자네의 선입견일 수도 있네. 그 당시 라헬은 우리의 공격을 받고 모든 능력을 잃었네. 아무런 힘도 없이 수명만 긴 자가 살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좌무백이 라헬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당시 라헬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자신들 세 명의 공격을 받은 라헬은 신족의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에게 남은 건 오천 년, 아니 그 당시 일천오백 살이었으니까 정확하게는 삼천오백 년의 시간뿐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이 그 오랜 기간을 산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을 게 분명하다.
“그랬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심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좌무백과 같은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헬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살아남아서 뭔가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설사 살아 있다고 해도 우리의 상대는 될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좌무백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지.”
“이럴 게 아니라 이왕 모였는데 우리 술이나 한잔할까?”
천우황이 제안했다.
“그러자고.”
심무극은 싱긋 웃었다.
잠시 후 세 사람 앞에 술상이 차려졌다.
한편.
정자를 나온 귀마존 일행은 구천각으로 들어섰다.
“어떤 조직을 데리고 가면 좋겠나?”
태양마존이 귀마존을 돌아보며 물었다.
“부활전사단을 시험해 보라는 명령을 받았네.”
귀마존이 말했다.
“부활전사단은 백 명뿐이라고 아는데?”
“그 정도로 부족하다고 보는 건가?”
귀마존이 물었다.
“나는 늘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짜네. 무혼 그놈은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네. 또다시 당하긴 싫네.”
태양마존은 진저리를 쳤다.
삼백 년 전 일이 떠올랐다.
그 당시 무혼이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시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누굴 데려갔으면 좋겠는가?”
귀마존이 물었다.
“하급 일백 명을 더 데리고 가세.”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귀마존은 풍마존과 빙마존을 보았다.
“찬성이네.”
“나도 찬성일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활전사단 일백 명과 하급 일백 명을 데리고 가도록 하세.”
귀마존은 엘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귀마존과 엘은 모두 상급 신족이지만 신분은 엘이 더 높았다.
“놈들은 감숙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귀마존이 물었다.
“함께 가라는 명령은 없었다.”
“그럼 우리끼리 가야겠군요.”
귀마존은 태양마존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는 엘이 할 말이 있어 따라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제쯤 이야기를 하나 기다렸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본인이 아무 말 없는데 굳이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30분 후 정문에서 만나세.”
귀마존은 세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세.”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잘 다녀와라!”
엘은 몸을 돌렸다.
원래 그가 따라온 목적은 강신술사에 대해 말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귀마존 일행은 아무 걱정 없는데 자신만 걱정하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다가 강신술사가 지금까지 바타르 일행과 함께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차라리 모르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귀마존은 멀어지는 엘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30분 후 귀마존, 태양마존, 빙마존, 풍마존 네 명과 부활전사단 그리고 하급이라고 부르는 자들 일백 명이 정문 앞에 도열했다.
부활전사단에는 금장생에게 죽었다가 살아난 이호와 오호도 끼어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아?”
이호는 오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모릅니다.”
오호는 고개를 저었다.
“천객은 알까?”
“아마도…….”
“천객 때가 그립네.”
이호는 입맛을 다셨다.
만일 아직 천객에 있었다면 상황을 금세 파악했을 것이다.
천객보다 상급 조직으로 들어와 수장이 된 건 엄연한 승진이지만 정보 쪽에서는 천객의 이인자로 있을 때보다 더 어두웠다.
“제가 압니다.”
옆에 있던 다른 자가 말했다.
“어떤 일로 출병하는데?”
“드래곤을 상대하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드래곤?”
이호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었고 그림으로만 보았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책에는 지성을 가진 모든 생명체 중 가장 강한 자들이라고 돼 있었다.
“정말이냐?”
이호는 물었다.
“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군.”
이호는 빙그레 웃었다.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걱정도 되었다.
“나도 과거의 내가 아니니까!”
이호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일호를 놔두고 바로 이곳으로 왔다. 부활체가 돼 돌아온 천객은 일백 명이었다.
곧바로 좌천심황 좌무백을 찾아갔다. 그리고 부활 의식을 치르고 적신천사마공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익혔다.
그 무공을 익히고 나자 등에 두 개의 날개가 생겨났다. 내기로 만들어진 날개였다.
아울러 과거보다 세 배 이상 강해졌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좌천심황 좌무백의 말처럼 절대자까지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만나면 내게 죽는다, 일호.’
이호는 내심 중얼거렸다.
“출발해라.”
귀마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이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출발한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이백 명이 일제히 바닥을 찼다. 그들의 신형이 죽죽 나아갔다.
빠르게 내달린 이백 명은 금세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 * *
정서는 전과 상당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왠지 활기차 보였다.
금장생은 주변을 둘러보며 객잔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여기가 어딘데?”
금장생 옆에서 걷던 무혼이 물었다.
무혼 또한 정서를 지나가야 해서 함께 가는 중이었다. 물론 바타르도 함께였다.
“제 사업체가 있는 곳입니다.”
“사업을 해?”
“제 주업입니다. 와!”
저 멀리 거대한 건물이 보이자 금장생은 헤벌쭉 웃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양조장 건물이 보였다.
양조장에 속해 있는 건물은 총 다섯 채였다. 가장 바깥 건물 위에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천주장이라 글이 새겨져 있었다.
금장생은 사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직원인 듯한 사내가 금장생 일행을 보며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나 마나부 상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장님은 자리에 안 계시고 마나부 상은 있습니다.”
“불러 주십시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내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검게 그을린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창한 중원어가 마나부에게서 흘러나왔다.
“반갑습니다. 나는 장생입니다. 왕부 그 친구로부터 말 들었습니다.”
“장생이면…… 아! 사장님이시군요. 처음 뵙습니다. 마나붑니다.”
마나부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동업자는…….”
“그분은 그만두셨습니다.”
“그만뒀어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한창 사업이 잘되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만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정이 뭔지 혹시 아십니까?”
“도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도박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현금으로 오만 냥을 주면 양조장에 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만 냥을 주었습니까?”
“워낙 다급해 보여서요. 계약서는 여기 있습니다.”
마나부는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금장생에게 건넸다.
금장생은 계약서를 읽어 내렸다.
양조장에 대한 모든 권리를 오만 냥에 넘긴다고 돼 있었다. 물론 넘기는 대상은 금장생이었다.
“이 증서를 작성하는 데 강제적인 힘 같은 게 작용하진 않았겠지요?”
금장생은 마나부를 보며 물었다.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이 증서를 쓸 때만 해도 저는 양조장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두 사장님이 맺은 계약 조건도 알지 못했고요. 아마 절박해 보이지 않았더라면 저는 모르는 일이라며 관여하지 않았을 겁니다.”
“절박해 보였어요?”
“자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자살하면 양조장도 넘어가고 말 거라고 협박도 했고요. 그래서 별수 없이 오만 냥을 내주었습니다.”
“흠!”
금장생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 동업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어성연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돈 관계도 깨끗했다.
그랬던 그가 도박을 했다면 아무래도 갑자기 불어난 돈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실수를 했군.’
“천주를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그분이 비법을 전부 전수해 주어서 맛에는 문제없습니다.”
“여기 책임자 어디 있어?”
바로 그때 밖에서 위협적인 외침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마나부를 보았다.
“저도…….”
마나부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서 여기 사장님이 왔다고 전해!”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