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94화 (194/524)

황금가 (194)

“이제 신족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웬 관심?”

“내가 관심 있는 게 아니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금장생은 무혼을 가리켰다.

“빌어먹을 자식.”

라는 투덜댔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신족은 내분으로 인해 세 세력으로 갈라섰다. 어떻게든 그곳에서 살고자 하는 파는 인간 세계로 떠났고 다른 한 파벌은 마계로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한 파벌은 차원을 넘어 이곳으로 왔다.”

“마계?”

무혼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알고 있다.”

“마계로 간 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거기까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이곳으로 온 자들에 대한 것뿐이다.”

“그럼 이곳으로 온 자들에 대해 말해 봐.”

“이곳에 도착한 신족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주민들, 즉 중원인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처음엔 별것 아닌 자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주민들이 갈수록 강해지더니 신족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원군을 부른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신족은 신세계의 존재를 샤이칸드리아 대륙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들이 들어오면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리겠지만 중원인들에게 멸망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좋은 방법이네.”

“원래 똑똑한 자들이니까. 아무튼 신세계의 존재가 알려지자 마족, 인간, 드워프, 엘프 등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다. 이곳으로 온 자들은 전부 여덟 개의 가문을 이뤘는데, 마족은 마가를 세웠고 신족은 화가를, 인간은 해가, 전가, 혈가, 암가를, 드워프는 철가를, 엘프는 사가를 세웠다.”

‘어?’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백사는 세 종족이 이곳으로 온 게 공멸을 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라는 마천인, 상천인, 중천인이 이곳으로 온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지금도 있지 않나?”

그때 무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귀를 기울였다.

“지금 있는 여덟 가문은 노예들이 주인의 가문을 무너뜨리고 세웠다.”

“그랬군.”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그들은 힘을 합쳐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렀다. 원주민들이 강하긴 했지만 여덟 가문의 힘을 당하지 못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되고 십 년 만에 중원과 조선, 동영은 완전히 여덟 가문의 손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주인이 된 여덟 가문은 다시 고향인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아울러 돌아가게 되면 그쪽에 있는 자들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전쟁 준비를 했겠네?”

“그래서 그들은 무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무기를 만드는 걸 어떻게 숨기느냐 하는 거였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을 떠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그곳과 연락을 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돌릴 방법이 필요했겠네?”

“그래서 동원한 방법이 검투 대회다. 각 가문이 모여 벌이는 검투 대회는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샤이칸드리아 대륙에 있는 자들의 의심을 피하면서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여덟 가문 중 누가 가장 강한지를 검투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일어났다.”

“주객전도?”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보다 최고 가문이 되기 위해 더 힘을 쏟기 시작한 거다.”

“그냥 여기에 정착하기로 한 모양이지?”

“그랬다. 그 바람에 수많은 무기가 만들어졌다. 이 악마수도 그때 만들어진 무기다. 샤이칸드리아 대륙과 마계에서는 새로운 무기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타이탄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타이탄이 들어왔다는 거냐?”

“대륙이 아니라 마계다. 그 당시 마계는 전쟁 중이었다.”

“마계는 왜?”

“세 파벌로 나뉜 신족 중 한 파벌이 마계로 가고 한쪽은 여기로 왔다고 했던 말 기억하느냐?”

“응.”

“바로 마계로 갔던 그들 때문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마계 고위층은 평생 숙적이었던 신족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자 대우를 해 주었고, 그게 하급 마족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불만은 점점 커졌고, 마침내 폭발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마계의 전쟁은 샤이칸드리아로 이어졌고, 샤이칸드리아 또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때 마계에서 만들어진 무기가 타이탄이다.”

“아!”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15미터 키를 가진 거대한 타이탄.

왜 그렇게 크게 만들었나 했는데 마족과 신족이 만들어 낸 거라 그런 모양이었다.

“마계와 샤이칸드리아 대륙이 전쟁에 휩싸였다면 이곳에 있던 자들도 갈등을 했겠네?”

“맞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이 안정돼 있을 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자들이, 고향으로 갈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열망은 점점 커졌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고향으로 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돌아가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들의 갈등은 폭발했고, 돌아가려는 자들과 남고자 하는 자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게 된다. 그 당시 전쟁의 선봉에 섰던 자들이 노예였다. 노예들은 열심히 싸웠다. 각 가문의 수장들은 노예들이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아낌없이 건네주면서 전쟁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모든 노예들이 검 끝을 주인을 향해 돌린 거군.”

“맞다. 전란의 시대라고 부르는 해방전쟁이 시작된 거다.”

“전쟁에 패한 후에는 어떻게 됐지?”

중원인들이 주인이 됐으니까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온 자들은 떠났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샤이칸드리아 대륙에도 신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일부는 돌아가고 일부는 남았다.”

“신족은?”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들은 그 당시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돌아가는 걸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세력을 이루며 아직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무혼은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데 신족이라는 자들 수명이 어떻게 되죠?”

듣고 있던 금장생이 물었다.

“기록에 의하면 고위 신족은 오천 년이고 일반 신족은 삼천 년, 하급 신족은 일천 년 정도를 산다고 해.”

“…….”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무혼을 보았다.

오천 년, 삼천 년, 일천 년.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다.

과연 생명체가 그 정도를 사는 게 가능한 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다른 종족은 얼마나 사는지 가르쳐 줄까?”

무혼은 웃으며 말했다.

문득 과거가 떠올랐다. 자기도 그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나 드워프는 삼백 살에서 오백 살까지 살고 하이엘프는 이천 년, 고위 신족과 고위 마족은 오천 년, 일반 신족과 일반 마족은 삼천 년, 하급 신족과 하급 마족은 일천 년, 드래곤은 일만 년이나 살아.”

“인간의 수명이 가장 짧네요.”

“가장 짧을 뿐 아니라 힘도 가장 약해.”

“그래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샤이칸드리아 대륙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거야.”

“혹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가장 약한 인간이 대륙의 주인이 된 이유?”

“네.”

“많은 학자들이 그 이유에 대해 연구를 해서 이런저런 결론을 내렸어. 어떤 사람은 인간이 가진 질투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호기심이라고, 어떤 사람은 도전 정신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

“무 형 생각은 어떤데요?”

“내가 내린 결론은, 모든 종족 중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거야.”

“멋진 결론이네요.”

“흥!”

바타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된 이유가 뭔데?”

“내가 보기엔 비겁함 때문이야.”

“비겁함?”

“뒤통수치는 능력 말이다.”

“할 말 없으니까 핑계는……. 아무튼 인간이 가장 똑똑한 거 맞아.”

무혼은 술잔을 비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이 대륙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신뢰라는 걸 지녔기 때문이다.

바타르의 말처럼 배신을 잘하긴 하지만, 어떤 경우엔 신뢰와 죽음을 바꾸기도 한다. 그랜드크로스 때 그랬다.

그런 인간의 모습이 세상의 주인으로 남게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이 좋으면 맹목적으로 따랐던 신뢰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걸로 변질되었고, 소위 대의라고 하는 일의 끝에는 자신의 이익이 있었다.

신뢰도, 신의도, 대의도, 숭고한 사명도 없는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만일 다시 한 번 그랜드크로스가 온다면 인간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무혼은 술잔을 비웠다.

“저기, 이거 어떻게 엽니까?”

그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혼은 시선을 돌렸다. 금장생이 바타르에게 아공간 여는 법을 물어보고 있었다.

“모른다!”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풋! 쫀쫀한 새끼!”

무혼은 피식 웃었다.

칠천오백 살이나 먹은 자식이 하는 짓이라니.

“<‘오픈(Open)!’이라고 외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금장생은 ‘오픈!’이라고 소리쳤다.

“어?”

무혼은 깜짝 놀랐다.

오픈이란 말은 중원인이 알 수 있는 주문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카펫을 꺼내기 위해 아공간을 열 때 그 주문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걸 보고 따라 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보기엔 금장생은 너무 자연스럽게 주문을 읊은 것이다.

“됐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주머니 입구가 벌어지면서 입구가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

무혼은 물었다.

“뭘 말입니까?”

금장생은 가방 입구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끙!”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바타르의 말처럼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쌓인 창고였다. 저 안에서 뭔가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왜?”

무혼이 물었다.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쓰레기가 아니라 보물이야.”

“보물이라고요?”

“저것들은 보물 아니면 절대 창고 안으로 집어넣지 않아. 칠천 년 동안 모인 거라서 쓰레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너는 횡재했다고 보면 돼.”

“저 아래쪽에 있는 건 어떻게 꺼내죠?”

금장생은 아래를 가리켰다.

“물건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만 뻗으면 돼.”

“그런 공간도…… 헐!”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혼의 말처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을 뻗자 정말로 물건이 앞으로 다가왔다.

“마법 공간이라서 그런 거야.”

“내가 물건을 집어넣을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하는 장소에 집어넣으면 돼.”

“그렇군요.”

금장생은 아공간 내부 한 곳을 쳐다보며 선반을 생각했다. 그러자 선반 형태의 공간이 생겨났다.

그곳에 마시고 남은 술을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술을 다 집어넣고 난 금장생은 바타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소리냐?”

“좋은 걸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가지고 다닐 방법이 없어서 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멋진 창고가 생겼으니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현금을 마음대로 넣을 수 있게 됐거든요.”

금장생은 신기한 듯 아공간 가방을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들어 있는데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물건을 만들어 내는 마법은 정말 엄청난 기술임에 틀림없었다.

“…….”

바타르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드래곤 중에도 돈을 병적으로 밝히는 자들이 있지만 금장생은 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날이 밝아 오는데 그만 가 볼까요?”

금장생은 아공간 가방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고.”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쪽 하늘이 허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잠시 후 일행은 길을 나섰다.

휙!

무혼 일행이 떠나고 일각 후,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내려섰다.

사내는 바타르처럼 로브를 입고 로브 후드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사내는 로브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새하얀 피부에 은발을 가진 얼굴이 나타났다.

이자는 전에 백리장광을 따라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들어갔던 상천인 엘이었다.

엘은 세 명이 앉았던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드래곤은…….”

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번에 투입한 자들은 드래곤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용이었다. 샤이칸드리아 대륙보다 마나 농도가 약한데도 드래곤은 막강했다.

“하지만 샤이칸드리아와는 많이 다르지. 네놈들을 잡을 무인은 따로 있다, 드래곤.”

이내 피식 웃었다.

이어 그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마나를 끌어 올릴 때만 나타나는 광경이었다.

파앗!

그의 등에서 황금색 날개가 나타났다.

얇은 천처럼 생긴 그것은 한쪽에 네 개씩 총 여덟 개로, 마나로 만들어 낸 날개였다.

엘은 날개로 몸을 감쌌다. 그러자 그의 온몸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휘익!

엘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수백 장 높이까지 올라간 엘은 날개를 활짝 폈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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