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92화 (192/524)

황금가 (192)

천사

퍼억!

무혼은 금장생의 가슴을 밀쳐 적의 공격권에서 벗어나게 했다.

“차하!”

그리고 수라도법을 펼쳤다.

붉은 광채가 그의 전면을 가득 채웠다.

“크아악!”

“아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무혼이 강하긴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천생 무공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겠네.’

설사 그가 무공을 익힌 사실을 무혼이 안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

금장생은 막아 두었던 단전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내공이 쏟아져 나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금장생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비수를 꺼냈다.

그가 꺼낸 비수는 붉은색 사아였다.

“삼천혼이라고 했던가?”

삼천혼이란 글은 표지와 표지 사이에 적혀 있었다. 즉 혈잔, 흑우, 무망 세 초식을 펼치는 무공이 삼천혼이란 말이었다.

그는 붉은색 사아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 천천히 돌렸다.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혈잔은 빙글빙글 돌아 새끼손가락과 약지 사이에서 멈췄다. 그리고 다시 위로 올라왔다.

휙!

바로 그때 전방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복면을 쓴 자 다섯 명이 이편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금장생은 그들을 흘끔 보았다. 움직임으로 보건대 상당히 강자들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택한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위험해, 장생!”

휙!

무혼이 소리친 순간 금장생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슉! 슉슉!

금장생의 손을 떠난 붉은색 사아가 순식간에 다섯 개로 늘었다.

공간을 단축한 사아는 다섯 명의 몸을 뚫었다. 그들은 사아를 막기 위해 무기를 휘둘러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다섯 명의 몸을 뚫은 사아는 하나로 합쳐지더니 금장생에게로 되돌아왔다.

“너 뭐냐?”

금장생이 무공을 펼치는 걸 본 무혼은 깜짝 놀라 물었다.

“친구를 속일 수는 없잖습니까.”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고?”

“보시다시피.”

금장생의 시선이 왼편으로 향하고, 사아가 그의 손을 떠났다.

날아가던 사아는 순식간에 스물네 개로 늘어났다. 그러자 전방에 붉은 폭풍이 일었다.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앞에서 달려오던 자들 이십여 명이 몰살을 당해 버린 것이다.

“끔찍하구먼.”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해 혈잔을 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펼쳐 본 결과 엄청났다.

물론 오 갑자의 공력을 바탕으로 펼쳐야 하는 무공이라 강하지 않으면 말이 된다. 하지만 지금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놀란 사람은 금장생뿐만이 아니었다.

무혼 또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냐, 그건?”

“우연히 얻은 무긴데 생각보다 엄청나서 저도 놀라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방금 그 무공을 처음 펼쳤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 같은 자식!”

“괴물은 내가 아니고 무 형 같습니다만.”

금장생은 조금 전 무혼이 있던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오십여 명이 난자된 채 죽어 있었다. 무혼에게 당한 자들이었다.

무혼이 지닌 연검, 아니 연도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의 연도가 붉은 궤적을 남길 때마다 조각조각 잘린 시체가 십여 구씩 생겨나곤 했다.

무혼은 지금까지 본 무인들 중 가장 강자였다.

“우리가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저놈만 하겠냐?”

무혼은 저 먼 곳을 가리켰다.

황금색 광채에 휩싸인 자가 미친 듯이 사방으로 오가며 죽음을 뿌려 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자가 그의 손에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입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라가 그의 정체를 드래곤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알은체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아냐.”

“사람이 아니면 뭡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오픈!”

무혼은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안에서 카펫을 꺼내 바닥에 깔고 좌탁 하나를 꺼내 카펫 가운데 놓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술과 술잔을 꺼내 놓았다.

“저걸 여태 가지고 있었던 겁니까?”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무혼이 꺼내 놓은 건 조금 전 객잔 식당에서 마시던 천주였다.

“이곳에서 처음 사귄 친구와 마시는 첫 번째 술인데 버릴 수는 없잖아. 앉자.”

무혼은 금장생에게 자리를 권하며 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술잔을 채웠다.

“이 세상에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말 알아?”

“알고 있습니다.”

“바타르도 그런 부류의 하나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류라는 겁니까?”

“응. 짐승인데 인간보다 지적 능력은 더 높고, 힘은 혼자서도 중소 왕국 하나 정도는 초토화시켜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해. 수명은 일만 년 이상이고.”

“그런 존재가…….”

“여긴 없지만 다른 세상에는 꽤 있어.”

“그러니까 중원 출신이 아니란 말이군요.”

“맞아.”

“그럼 어디에서 왔습니까?”

“다른 세상…….”

“다른 세상이 정말로 존재합니까?”

“안 되겠다. 내가 지금부터 설명을 해 줄게.”

무혼은 샤이칸드리아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금장생의 눈은 커졌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 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아니,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작은 얼음 조각이었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와 전설보다 더 놀라운 내용으로 가득했다.

무혼의 이야기는 무려 한 시진 동안 이어졌다.

얼마나 이야기에 몰두했는지, 바타르가 옆에 와 있는 것도 몰랐다.

“이제 대충 이해가 돼?”

이야기를 끝낸 무혼이 물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이분에게 받은 이 주머니가 엄청난 거였다는 사실은 이해했습니다.”

금장생은 바타르를 가리켰다.

“그럼 돌려줄 테냐?”

바타르가 물었다.

“우리 아버지 말씀이 공짜로 받은 물건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돌려주는 자는 등신 중에서도 상등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원하는 걸 주겠다. 내 뼈로 마법검을 만들어 달라면 만들어 줄 테고, 드래곤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만들어 달라면 그렇게 해 주겠다.”

“이 가방 안에 중요한 게 아주 많이 든 모양이네요.”

“중요한 물건은 없지만 소중한 게 들어 있다.”

“그게 뭔지 알 수 있습니까?”

“내 추억이다.”

“추억요?”

“그렇다.”

“그렇다면 생각을 좀 해 봐야겠네요.”

“돌려줄 테냐?”

바타르는 기대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안 되겠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놈!’

―쿡쿡쿡!

그의 귓전으로 무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타르는 고개를 돌려 무혼을 보았다.

―그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는 어디서 배웠냐?

무혼은 웃으며 물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너희 드래곤은 추억 같은 걸 간직하는 그런 족속이 아니잖아, 인마.

―클!

바타르는 피식 웃었다.

―저 안에 뭐가 들어 있기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을 언급한 거냐?

―내가 추억이란 말뜻을 모른다는 거냐?

―뜻은 알겠지. 하지만 어떤 감정을 추억이라고 하는지는 모르잖아, 인마.

―…….

바타르는 할 말이 없었다.

무혼의 말이 틀리지 않다.

드래곤은 추억도 모르고 슬픔도 없다. 드래곤에게는 단 한 가지 감정, 즉 분노만 존재한다.

―뭐가 들었냐?

―나도 모른다.

―그런데 왜?

―왠지 중요한 뭔가를 넣어 놓았을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

―아닐 거야.

―왜 그렇게 생각느냐?

―중요한 거라면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잖아.

―그렇긴 한데…….

―잊어버려. 그리고 줬다가 빼앗는 것처럼 찌질한 건 없는 거야. 더구나 너는 스스로 지상 최강의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 녀석이 쪽팔린 짓을 하면 안 되지.

―끙!

바타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혼의 말이 맞다. 용언으로 내기를 해서 졌고, 맹세를 이행했다. 그럼 그걸로 끝이다.

자꾸 없었던 걸로 하려는 건 쪼잔하고 쪽팔린 짓이다.

“그런데 이거 줄이는 방법 없습니까?”

금장생은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줄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양손을 합치면 된다.”

바타르는 생각 없이 말했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말할 수 있었던 건 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마법이 일상인 드래곤만 가능하다는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렇게요?”

금장생은 가방을 양손으로 잡고 합쳤다.

그의 손에서 새하얀 광채가 흘러나오더니 가방이 주먹 정도 크기로 작아졌다.

“너 마법은 어디서 배웠냐?”

가방의 크기를 줄이는 금장생의 행위가 이상하다는 걸 먼저 깨달은 사람은 무혼이었다.

가방을 줄이는 건 마법적인 힘이 작용해야만 가능하다.

드래곤이야 생활이 마법인 종족이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만 마법사가 아닌 인간은 다르다. 그런데 금장생이 바로 가방의 크기를 줄여 버린 것이다.

“이게 마법입니까?”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마법적인 힘이 아니면 그 가방을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 모여 있는 게 마법적인 힘이란 말이군요.”

금장생은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혹시 갑옷 같은 거 걸쳤느냐?”

바타르가 물었다.

“이건 태극선의란 보의고, 태극선의 안쪽에는 이게 있습니다.”

금장생은 적운신갑을 보여 주었다.

“그건? 헬라간?”

바타르는 깜짝 놀랐다.

“나는 적운신갑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 이름은 헬라간인가 보군요.”

금장생은 바타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헬라간을 어디서 얻었느냐?”

바타르는 물었다.

“내 직업은 시체를 파서 강시로 만들어 운송하는 강신술삽니다.”

“시체에서 얻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 친구 심장이나 살펴봐.

무혼이 전음을 보냈다.

―알았다.

바타르는 곧바로 금장생의 심장을 살폈다.

―일곱 개다.

―뭐가 일곱 개라는 거지?

―고리가 일곱 개가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장생에게는 여섯 개의 고리만 있었고 금장생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한 개가 더 늘어나 있었다.

그 사실을 금장생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마법도 모르는 녀석이 7클래스 마법사가 가질 수 있는 서클을 가졌다는 게 말이 돼?

무혼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안 된다.

―그럼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아는 한 마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서클이 만들어진 경우는, 마법을 익혔는데 자신이 모르는 경우뿐이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마법을 익혀 놓고도 모른다는 거냐?

―그렇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이곳 중원에서는 가능하다.

―그게 무슨 소리지?

―중원에는 과거 너희 선조들이 남긴 유물들이 많이 있다. 그 유물들 중에는 마법이었던 것들이 무공으로 변한 것도 있고, 신족과 마족은 마법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법 서클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그런 걸 얻었다는 거야?

―그렇다. 그리고 녀석의 왼팔에서는 고대의 종족 중 하나인 에고족의 흔적이 감지된다.

―정말?

―확인해 봐라.

―좋아.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금장생을 보았다.

“내게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소매 안에 있는 게 궁금해서.”

무혼은 금장생의 왼팔을 턱으로 가리켰다.

“쿡!”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무혼은 몰라도 드래곤은 라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이 알아차렸을 게다.

‘그런 거였군요.’

―보여 줘라.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건틀릿이 나타났다.

“이거 건틀릿이라고 하던데?”

금장생이 말했다.

“건틀릿은 나도 알아. 그런데 그걸 어디서 얻었지?”

“천산에서 얻은 겁니다.”

“천산?”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대답하는 걸 보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일하던 곳에서 얻은 거라는 것까지는 말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계약을 했던 분이 비밀로 해 달라고 해서요.”

“계속 웅크리고 있을 거냐?”

바타르가 건틀릿을 노려보며 말했다.

―클!

라는 피식 웃었다.

이어 건틀릿에서 희미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이름을 말해라.”

바타르는 말했다.

“아득한 옛날 ‘라’라고 불렸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악마수에서 사람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크게 말하는 게 가능해요?”

금장생은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네 마나, 아니 내기를 소모해야 한다.”

“그 정도가 뭐 어렵다고 그러십니까? 나는 라가 말을 못 하는 줄 알았습니다. 내기 걱정하지 말고 마구 가져다 쓰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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