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91화 (191/524)

황금가 (191)

―너 어쩌려고 그러느냐?

라가 질겁한 목소리라 물었다.

‘왜요?’

―드래곤의 마법이면 데스 나이트를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강시도 가능하다는 건가요?’

―그건…….

‘강시를 제강하는 기본은 무공입니다. 마법과 무공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데스 나이트와 강시는 다르다고 봅니다. 저자는 이들을 부하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냥 하는 건 재미없고, 내기를 하는 건 어떠냐?”

바타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떤 내기를 하자는 겁니까?”

“이것들이 내 말을 들으면 그때부터 내가 주인이 되는 거다.”

“만일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네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마.”

“소원요?”

“그렇다.”

“그거 괜찮은 제안이네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무슨 짓이냐?

무혼은 바타르에게 전음을 보냈다.

―재미있지 않으냐?

―뭐가 재미있다는 거냐?

―저기 여덟 명은 데스 나이트가 분명하다. 그런데 저놈은 아니라고 우기지 않느냐.

―중원인은 데스 나이트가 뭔지 모른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저 녀석은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겪은 많은 중원인들 중 가장 특이한 녀석이다. 심장에 모여 있는 힘도 그렇고.

―그게 뭔지 파악이 안 돼?

―뭔가가 내 의지가 파고들려는 걸 막고 있다.

―그래?

―아무튼 지켜보기나 해라.

바타르는 데스 나이트 앞으로 갔다. 그리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를 보아라!”

데스 나이트들은 일제히 바타르를 보았다.

바타르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어렸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라!”

그는 다시 말했다.

‘당신네들 주인은 납니다. 그자 말은 들을 필요 없습니다.’

금장생은 데스 나이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냈다.

“꿇어라!”

바타르는 재차 소리쳤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들은 멀뚱멀뚱하게 바타르를 바라만 볼 뿐 말을 듣지 않았다.

“풋!”

무혼은 피식 웃었다.

마법종족이자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며 큰소리치는 드래곤이 데스 나이트, 아니 강시 하나 마음대로 못 하는 걸 보니 갑자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꿇어라!”

바타르는 한 번 더 소리쳤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방긋 웃으며 바타르를 보았다.

“젠장!”

바타르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이제 저 친구 소원을 들어줄 차례네.”

무혼은 웃으며 말했다.

“말해라.”

바타르는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나는…….”

―아공간을 달라고 하십시오.

막 말을 하려는데 무혼의 전음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무혼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뱉어 낸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자신의 목숨이나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일만 아니라면 다 들어주지요. 하지만 장 형의 노예가 되라는 요구는 하지 마십시오. 자칫 잘못하면 그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 형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

“아직 생각해 놓은 게 없나 보구나. 그럼…….”

“당신의 아공간을 주십시오.”

“아공간?”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아공간이 있다는 걸 네가 어떻게…… 너군.”

바타르는 무혼을 보았다.

“네게 아공간이라는 멋진 창고가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바타르. 선택은 저 친구가 했다.”

무혼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래도 네가 아니었다면…….”

“중요한 거면 취소하고 다른 걸 말하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장 형. 이 친구는 입으로 뱉은 건 반드시 지킵니다. 기꺼이 아공간을 장 형에게 건네줄 겁니다.”

무혼은 빙긋 웃으며 바타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쁜 자식!”

바타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아공간을 내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아공간에 뭐가 들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많이 넣어 둔 것 같기는 한데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다. 하지만 칠천 년 이상 사용했던 창고를 내주려니 공연히 찜찜했다.

그래도 약속을 했는데 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바타르는 주머니 안에서 황금색 가방을 꺼내 내밀었다.

“이게 아공간이라는 건가요?”

금장생은 가방을 받아 들며 물었다.

가로, 세로, 깊이가 각각 한 자 정도에, 어깨에 멜 수 있도록 기다란 끈이 달려 있었다. 가방을 만든 재질은 가죽으로 보였다.

“맞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여는 거죠?”

아무리 둘러보아도 가방에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걸 가르쳐 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공연한 심통이었다.

“아무튼 나이를 어디로 처먹었는지.”

무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금장생 앞으로 갔다.

“먼저 가방에 손바닥을 대고 마나를, 아니 기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기라면?”

“손바닥을 대기만 하면 가방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래요?”

금장생은 가방 위쪽에 손바닥을 댔다.

처음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가방에서 금빛 광채가 흘러나오더니 금장생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잠시 후 가방은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고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몇 살이십니까?”

“올해가 지나면 이제 스물네 살이 됩니다.”

“이런, 나와 동갑이군요. 같은 나이면 보통 친구 먹는데. 어떠십니까?”

“어떤 뜻인지…….”

“나와 친구가 되는 게 어떠냐는 말이지요.”

“좋습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사실 금장생에게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동영과 조선에서는 바빠서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고, 중원으로 돌아와서는 자객 일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이십사 년 만에 처음으로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말을 놓도록 할게.”

“그렇게 하십시오.”

“어?”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친구끼리는 반말을 하는 거 아냐?”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저는 반말을 못 합니다.”

“반말을 못 해?”

“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됩니다.”

“어떻게 된다는 거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상인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손님이라는 교육을 받습니다. 손님에게는, 그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배우고요.”

“아무리 그렇게 교육받았다고 해도 반말을 못 한다는 건…….”

“억지로 하려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라고.”

“그럼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말문이 막혀?”

“네. 존댓말을 쓰면 한 시진 동안 재잘거리는 게 가능하지만 반말을 하면 대답밖에 못 합니다.”

“정말 그래?”

“네.”

“그건 완전 병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알아서 해. 네가 어떻게 하든 난 반말을 할 거야.”

“내 말투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 친구가 된 기념으로 한잔 어때?”

“친구가 산다면 기꺼이.”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일단 들어가자.”

무혼은 금장생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잠깐만요.”

금장생은 데스 나이트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은 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그러고는 바로 객잔으로 들어갔다.

“중병이네.”

데스 나이트들에게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금장생을 보고 무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먼저 들어가라!”

바타르가 무혼을 보며 말했다.

“알았다.”

무혼과 금장생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문밖에 남은 바타르는 동상처럼 서 있는 데스 나이트들 앞으로 갔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나는 나이가 칠천오백 살이고 지금까지 본 언데드만 해도 수천 구가 넘어. 너희는 분명 데스 나이트야. 내 말이 틀려?”

바타르는 사노왕 불여하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힘을 풀었다.

움찔!

불여하가 반걸음 물러났다.

“네 이름을 말하라!”

바타르는 불여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불여하의 눈에 미미한 공포가 어렸다.

“이게 방해가 되는 모양인데…….”

바타르는 불여하의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 냈다. 그리고 다시 용언의 힘을 끌어 올려 말했다.

“이름을 말하라!”

“부, 불여하!”

어눌한 목소리가 불여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혼, 봐라! 이 계집이 내 질문에 대답을 했다!”

바타르는 안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무혼과 금장생 중 누구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혼!”

바타르는 큰 소리로 불렀다.

“왜?”

무혼의 대답이 들려왔다.

“증명할 수 있다.”

“뭘?”

“여기 있는 이것들이 데스 나이트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이것들이 데스 나이트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니까?”

“증명해서 뭐할 거냐고!”

“그거야…….”

“내 친구는 더 이상 내기를 할 생각이 없대.”

“염병할!”

바타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아공간은 넘겨줬고, 강신술사 녀석과 마나 공명까지 이룬 상태가 되었다.

“들어와서 술이나 처먹어.”

“아, 알았다.”

바타르는 부적을 다시 불여하의 이마에 붙여 주었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아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너희 좀 맞아야겠다.”

바타르는 데스 나이트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주먹을 사정없이 내질렀다.

퍽! 퍽! 퍽! 퍽!

그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데스 나이트들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뭐 하는 거냐?”

안쪽에서 무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풀이하는 중이니까 말리지 마.”

바타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갑자기 하늘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타르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시뻘건 불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객잔을 향해 날아오는 불길은 다름 아닌 불화살이었다.

턱! 턱턱턱! 턱턱턱! 턱턱!

불화살은 객잔 곳곳으로 박혀 들었다.

화르르! 화르르!

곧 객잔 이곳저곳에서 불길이 올랐다.

“뭐야, 이건!”

바타르의 눈이 사정없이 커졌다.

“칠천오백 살이나 처먹은 나이가 아깝다, 인마. 쪽팔린 줄 알아.”

안에서 무혼의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앙! 이동!”

바타르는 괴성을 내지르고는 불화살을 날린 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 나가 봐도 됩니까?”

금장생은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지붕이 불타면서 열기가 아래쪽까지 미쳤다.

“중원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놈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여기서 마시는 건 틀린 것 같고, 나가서 한잔할까?”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

무혼은 주인을 불렀다.

“네.”

“이거면 가게를 다시 지을 수 있겠지?”

무혼은 주머니 안에서 금덩어리 하나를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추, 충분합니다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무혼은 술병을 들고 일어났다. 그사이 주인은 일꾼들과 함께 객잔을 빠져나갔다.

무혼과 금장생도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죽엇!”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무기가 쏘아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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