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90)
황금전가 멸문을 보고 배운 점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많은 수가 아닌 소수 정예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저들과 철갑거인 여덟 기는 최상의 조합이다.
금장생은 다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여덟 명의 데스 나이트들이 금장생을 호위하듯 늘어섰다.
“그런데 저건 뭡니까?”
금장생은 바타르가 만들어 낸 푸른색 막대를 보며 물었다.
―마법으로 만들어 낸 화살이다.
“마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배우고 싶은 게냐?
“어떤 건지 알아야 배울 건지 말 건지 결정할 거 아닙니까?”
―마나와 주문을 이용해서 물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걸 말한다.
“에너지는 힘이라는 뜻이죠?”
―그렇다.
“나도 가능합니까?”
―너는 이미 마법을 알고 있다.
“네?”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이건 무슨 말인지.
지금까지는 마법의 마 자도 몰랐다. 마법이란 말을 들은 것도 오늘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미 마법을 알고 있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네 심장에 생긴 고리가 바로 서클이라 부르는 마법 고리다.
“정말입니까?”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심장에 만들어진 고리가 어떤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법이란 힘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컥!”
“큭!”
“윽!”
자객들이 데스 나이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면서 내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상당히 많은 수를 없앤 것 같은데 자객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머릿속 언어로 데스 나이트들을 조종했다.
―그 고리들이 회전하면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않느냐?
“만들어 냅니다. 서로 상극의 기운이 무한원을 이룬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네게 필요한 건 의지와 주문 그리고 마법 지팡이다.
“마법 지팡이의 용도는 뭡니까?”
―불을 피울 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부싯돌입니다.”
―맞다. 마법을 펼칠 때도 매개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 매개체가 바로 마법 지팡이다.
“그럼 저자는…….”
금장생은 바타르를 가리켰다.
바타르의 마법은 가공하기 그지없었다. 푸른 광채를 흘리는 막대가 나타났다 싶으면 어느새 자객의 심장으로 파고들고 있다.
마치 이기어검술을, 아니 심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드래곤은 마법종족이라 마법 지팡이 같은 게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
“마법에 최적화된 종족이란 말이군요.”
―맞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나도 마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아니까. 너는 저 드래곤에게 그럴싸한 마법 지팡이만 얻어 내면 된다.
“저 드래곤은 그런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나 보죠?”
―아공간 창고를 가지고 있으니까.
창! 창창!
바로 앞에서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노왕 두 걸음 앞으로, 전노왕 한 걸음 뒤로…….”
금장생은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들이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누구냐?”
무혼은 전방을 노려보며 차갑게 소리쳤다. 그 주위엔 자객 수십 명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자객들은 말이 없었다.
극한의 은신술로 몸을 숨긴 채 무혼과 바타르를 노렸다.
무혼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보석이 박힌 지팡이 하나가 들려 나왔다. 크기는 한 자가 약간 넘었다.
지팡이에 마나를 주입하자 끝에 박힌 주먹 크기의 보석이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무혼은 전면을 노려보았다.
살기가 사방에서 옥죄어 왔다.
“누군지 모르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무혼은 차갑게 말하고는 마법 주문을 읊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권능의 힘이여, 나 무혼의 의지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라!”
마법 지팡이의 보석에서 강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희미한 빛들이 보석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둠을 뚫는 빛. 데스 빔!”
나직한 외침과 함께 마법 지팡이가 전방을 가리켰다.
슈아악! 슈아악! 슈아악!
순간 수십 줄기의 녹색 광채가 허공을 뚫었다.
녹색 광채 앞에 있던 갈대들이 무더기로 넘어졌다.
푹! 푹푹! 푹푹푹! 푹푹!
빛줄기가 뭔가를 파고들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적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더 강한 적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바타르!”
“그래 봐야 인간이지.”
바타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강하고 단호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플레임 레인!”
순간 바타르의 가슴에서 황금색 광채가 흘러나왔다.
슈아악! 슈아악! 슈아악! 슈아악!
그리고 하늘에서 붉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푹! 푹! 푹푹푹! 푹푹!
붉은 빗줄기는 무자비하게 지상으로 틀어박혔다.
“맙소사, 저건?”
금장생은 질겁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느닷없이 불길로 이루어진 빗줄기가 수십 장 상공에서 나타더니 지상으로 무자비하게 틀어박혔다.
그 아래쪽에 있는 건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았다. 불줄기는 땅마저도 재로 만들어 버리는 가공할 열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파앗!
검은 물체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은신술로 숨어 있던 자객들이었다.
“스톰 블레이드!”
바타르의 입에서 또다시 단호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푸아아악!
검은색 폭풍이 공간을 장악하며 밀려갔다.
허공으로 떠올랐던 자객들의 눈에 두려운 감정이 얹혔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비명도 없었다. 검은 폭풍에 휩싸인 자객들은 갈가리 찢겨 나갔다.
“디텍션!”
그 순간 무혼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파앗!
그리고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잠시 후 갈대숲 곳곳에서 붉은 광채가 일었다.
“방금 그건 뭡니까?”
금장생은 라에게 물었다.
―디텍션 마법을 말하는 거냐?
“숨어 있는 자들을 찾아내는 마법 같은데 맞습니까?”
―맞다.
“마법이라는 거, 대단하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약점이 있다는 건가요?”
―마법의 필수 요소는 주문이다. 물론 클래스가 높아지면 캐스팅 없이도 마법을 펼치는 게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무공과 비교하면 근접전은 불리하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흥미롭기는 하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이 끝난 듯, 더 이상 자객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금장생은 데스 나이트들을 데리고 무혼과 바타르 옆으로 갔다. 바타르 앞에는 자객 두 명이 너부러져 있었다.
“어떤 자들인지 알아냈습니까?”
금장생은 자객들을 바라보았다.
야행복을 입고 복면을 썼다. 무기 또한 중원 무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것들이라 복장과 무기로 정체를 알아내는 건 힘들었다.
“이제 알아내야지요.”
무혼은 바타르를 보았다.
“기다려라!”
바타르는 두 자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나를 보아라!”
‘윽!’
금장생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머릿속을 강타한 거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타르를 보고 말았다.
“말도 안 돼.”
그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바타르의 목소리를 몰아냈다.
‘방금 그건 뭐죠?’
그는 라에게 물었다.
―용언이라고 한다.
‘용언?’
―룬어는 힘을 간직한 글자라고 했던 거 기억하느냐?
‘네.’
―용언도 비슷한 개념이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말을 용언이라고 하고, 그 힘을 ‘권능의 힘’이라고 한다.
‘용언의 위력은 어느 정돕니까?’
―드래곤이 본체 상태로 용언을 펼치면 정신력이 약한 자들은 바로 죽는다.
‘<‘죽어라!’라고 소리치면 죽는다고요?’
―그렇다.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겁니까?’
―우리 에고족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거다.
‘다른 에고족은 몰라도 영감님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닙니까?’
―…….
‘제 말이 맞군요.’
―아무튼 절대용언에 노출되면 자신의 의지는 사라지고 드래곤의 의지만 남는다는 건 맞다.
‘하지만 자객의 신분을 알아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신분을 밝혀라!”
바타르의 입에서 강한 힘을 내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
자객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널 보냈느냐?”
바타르의 목소리가 더욱 엄해졌다.
스악!
목소리에 실린 힘이 얼마나 강한지, 바닥의 풀이 흔들렸다.
“커억!”
“크윽!”
급기야 자객들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자객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안 되는 모양이구나.”
무혼은 바타르를 보았다.
로브 후드 때문에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당황했다는 게 느껴진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는 용언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자라고 해도 감정이 죽어 버린 자가 아니면 모두 통했다.
그런데 중원 무인에게는 드래곤의 용언이 통하지 않고 있다.
“기다려라!”
바타르는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로브 후드 밖으로 금색 광채가 흘러나왔다. 금빛 눈동자가 내뿜는 광채였다.
“나 바타르 크레아스 이골드의 이름으로 묻겠다. 너희의 주인은 누구냐?”
조금 전보다 더 강한 힘을 내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난…….”
“난……!”
“말하라!”
바타르는 재차 소리쳤다.
퍼억!
퍼억!
두 자객의 머리가 화탄처럼 폭발했다.
“으음!”
바타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설마 그 지경이 돼서도 말을 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자객이라서 그럴 겁니다.”
금장생이 말했다.
“자객?”
바타르는 무혼을 보았다.
“어쌔신을 말한다.”
무혼이 해석해 주었다.
“한낱 어쌔신 따위가 내 용언을 견뎌 낸다는 거냐?”
“글쎄, 그들에 대해서는 나도 설명할 수가 없네.”
무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장 형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 둘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훈련을 받은 자객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죽으면 죽었지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습니다.”
“자객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입니까?”
무혼은 다시 물었다.
“오욕칠정이 제거된 자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감정이 없다는 말이군.”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이 그 호위?”
무혼은 금장생 뒤편에 서 있는 데스 나이트들을 가리켰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스 나이트들이군.”
바타르는 대번에 데스 나이트라는 걸 알아차렸다.
“정말이냐?”
무혼은 바타르를 돌아보았다.
“내가 일반 시체와 데스 나이트도 구분하지 못할 걸로 보이느냐?”
“저들은 중원인이다. 그리고 데스 나이트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만들어진다. 중원은 그런 조건이 맞춰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데스 나이트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냐?”
바타르는 금장생을 보았다.
“나는 데스 나이트가 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들은 내가 제강한 강시입니다.”
금장생은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마라, 인간.”
“사실입니다. 저들은 내가 제강을 했고, 내 말만 듣습니다.”
“다른 이들이 내린 명령은 듣지 않는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데스 나이트는 설사 주인이 있다고 해도 내가 명령하면 훈련받은 개처럼 말을 잘 듣는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들이 데스 나이트라면 당신 말을 들을 거란 말입니까?”
“그렇다.”
“그럼 시험해 보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