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87화 (187/524)

황금가 (187)

“저자가 적사월 같죠?”

금장생은 맨 오른편에 있는 자를 가리켰다.

금장생이 가리킨 자는 다른 자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더불어 전신이 죽음의 기운과 함께 패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높고 입이 컸다. 만약 살아 있다면 상당히 호방한 성격일 것 같았다.

―그런 것 같다.

“당신이 마노왕 적사월 맞습니까?”

금장생은 데스 나이트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는 대답이 없었다.

“안 되겠군요. 전부 옷을 벗으세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 하려고 그러느냐?

“강신술사에게는 데스 나이트보다 강시가 더 궁합이 맞는 것 같아서요.”

―……?

라는 금장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사이 데스 나이트들은 전부 옷을 벗고 섰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전부 사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덟 명 중 일곱 번째 자리에 서 있는 자는 여자였다.

생전에 사내들깨나 울렸을 것 같은 대단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 자리에 누우세요.”

금장생은 강신술을 펼칠 때 사용하는 붓과 주사를 꺼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저들에게 강신술을 펼쳐 보려고요.”

―강시로 만들겠다는 거냐?

“안 될까요?”

―글쎄다. 데스 나이트로 만든 힘과 강시의 힘 중 어떤 게 더 강하느냐에 달려 있지 싶은데. 뭘 원하고 강시로 만들려는 거냐?

“저들에게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영혼뿐이잖습니까.”

―영혼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강시는 동시, 강시, 활시, 생시, 인시로 총 다섯 단계를 거칩니다. 보통은 동시와 강시는 시체 상태라고 하지만 활시부터는 모든 동작이 살아 있는 인간과 비슷합니다. 약간의 인지능력도 지니고 있고요.”

―데스 나이트를 활시 수준으로 보는 거구나.

“아닙니다. 데스 나이트는 활시보다는 높지만 생시보다는 낮습니다. 즉, 활시와 생시 사이에 걸쳐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시는 몸은 죽은 상태지만 머리는 살아 움직이거든요.”

―그럼 인시는?

“인시는 인간과 같습니다. 먹고, 싸고, 자고, 성욕까지 느낍니다.”

―백사가 인시가 된 걸 보고 저들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거구나.

“맞습니다. 백사에게 했던 방법이 저들에게 통할지는 모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금장생은 적사월 앞으로 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누우라는 명령을 내린 후 주문을 썼다.

주문이 몸속으로 스며들 때마다 데스 나이트는 움찔움찔했다.

주문을 다 적고 이혼대법을 펼쳐 영혼을 강화했다.

두 번째 강시대법을 펼친 자는 상당히 가름한 얼굴과 왜소한 체형의 중년인이었다. 키는 첫 번째 사내와 비슷할 정도로 컸다.

금장생의 생각에 이 중년인은 화노왕 금웅 같았다. 무기는 칼날이 불꽃 문양을 이룬 특이한 검이었다.

세 번째로 대법을 펼친 자는 머리가 어깨까지 긴 미남자였다. 여덟 명 중에서 가장 미남이었다. 생긴 것과 달리 무기는 상대의 머리를 깨트리는 유성추였다.

네 번째로 대법을 펼친 자는 수염을 기른 강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무기는 검이었다.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문이 몸 내부로 스며들 때마다 움찔움찔 떨었다.

다섯 번째 중년인은 얍삽한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작은 키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싶었다. 일행 중 키가 가장 작았다.

여섯 번째 데스 나이트는 일행 중 인상이 가장 온화했다.

“이 사람도 무기는 망치네.”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일행 중 가장 미남이 유성추를 무기로 사용하더니, 가장 온화한 인상의 중년인은 망치가 무기다.

즉, 두 사람이 공히 타격 위주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곱 번째로 강시대법을 사용한 사람은 대단한 몸매를 지닌 여자였다.

“여덟 명 중 이 여자분이 가장 강할 겁니다.”

금장생은 주문을 쓸 준비를 하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건 쉽지가 않거든요.”

―강하지 않으면 최고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거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일리가 있구나.

금장생은 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주문은 빠르게 스며들었다.

이혼대법을 끝으로 여자를 강시로 만드는 작업도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왼편 끝에 누운 자에게 주문을 썼다.

일행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고, 인상 또한 험악했다.

“휴!”

작업을 마친 그는 땀을 훔치며 한편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영혼을 살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데스 나이트의 영혼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욱 선명해졌다. 그건 곧 영혼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걸 뜻한다.

“일어나서 옷을 입으세요.”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데스 나이트들은 일제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투구도 쓰세요.”

금장생의 말이 떨어지자 여덟 명은 투구를 썼다.

그 상태에서 다시 데스 나이트들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갑옷도 단순한 게 아니었다. 수많은 ‘룬어’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기다리세요.”

금장생은 내부를 살폈다. 뭔가 얻어 갈 게 있는지 해서였다.

“여기 있네.”

금장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각각의 관 속에 작은 패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꺼내 데스 나이트들과 비교해 보았다.

가장 오른편에 있던 당당한 체구의 중년인은 예상대로 마노왕 적사월이 맞았다. 두 번째 갸름한 얼굴의 중년인은 화노왕 금웅, 세 번째 미남자는 해노왕 혁장운, 네 번째 수염을 기른 중년인은 전노왕 묵천야, 다섯 번째 서 있는 얍삽한 자는 혈노왕 신무, 여섯 번째 온화한 얼굴의 중년인은 철노왕 고태백, 일곱 번째 서 있는 빼어난 몸매의 여자는 사노왕 불여하, 마지막에 서 있는 험상궂은 사내는 암노왕 염라였다.

금장생은 여덟 명을 다시 보았다.

이름과 비슷한 느낌을 주어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이들을 부리는 방법이 적힌 석판으로 시선을 주었다.

우린 철갑거인과 한 몸이나 다름없다. 탑승한 상태에서도 차원의 틈새로 들어갈 수 있다.

보통은 탑승자가 말을 하지 못하면 차원의 틈새로 들어간 철갑거인을 불러낼 수가 없는데 우린 다르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면 우린 철갑거인을 불러낼 수가 있다.

편한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일단 나가 볼까?”

금장생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아홉 명은 호수 밖으로 나왔다.

“철갑거인에 탑승해 보세요.”

금장생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들이 철갑거인을 향해 내달렸다.

“등평도수?”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여덟 명은 마치 등평도수 신법을 펼치는 것처럼 물 위를 내달렸다.

―물 위를 달리는 마법이다.

“마법이라고요?”

―저들이 입고 있는 갑옷에 ‘룬어’가 적혀 있는 거 보지 못했느냐?

“그럼 그것들이……?”

―많은 기능이 있는데 물 위를 달리는 건 그 기능들 중 하나다. 아마 말을 하지 않아도 타이탄을 불러낼 수 있는 것도 룬어 덕분일 게다.

“그렇겠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츄악!

가장 먼저 철갑거인을 향해 솟구친 이는 사노왕 불여하였다.

“저 여자분이 가장 강한 거 맞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철갑거인에 탑승했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철갑거인들의 눈에서 광채가 폭사되었다. 호수 표면에 구멍이 생길 정도로 강렬한 광채였다.

쿠쿠쿠! 쿠쿠쿠! 쿠쿠쿠!

이어 호수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츄아악! 츄아악! 츄아악! 츄아악!

여덟 기의 철갑거인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마치 여덟 개의 줄이 각 철갑거인과 이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 좀 푸세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쿵! 쿵쿵쿵! 쿵쿵쿵! 쿵!

그러자 각 철갑거인들이 숲으로 내려섰다.

우지끈! 와지끈!

수십 그루의 나무가 부러지며 숲이 아우성쳤다.

철갑거인들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무기는 다양했다. 마노왕 적사월이 탑승한 철갑거인의 무기는 검이고, 화노왕 금웅이 탄 철갑거인의 무기는 불꽃 형태의 검이었다. 해노왕 혁장운이 탄 철갑거인은 유성추를, 전노왕 묵천야가 탄 철갑거인은 검을, 혈노왕 신무가 탄 철갑거인은 창을, 철노왕 고태백이 탑승한 철갑거인은 망치를, 사노왕 불여하가 탄 철갑거인은 궁을, 암노왕 염라가 탑승한 철갑거인은 손잡이가 기다란 낫을 들었다.

철갑거인들의 무기 중 가장 섬뜩한 건 암노왕 염라의 철갑거인인 데스퍼의 낫이었다.

“데스퍼가 가진 저건 어떤 무깁니까?”

―사신이 가지고 다니는 낫이다.

“사신이라면 저승사자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

“그쪽 저승사자는 무섭군요. 우리 저승사자는 맨손인데.”

―저승사자는 모름지기 무서워야 하는 법이다.

“그건 문화의 차이라고 해 두죠.”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스악! 스악! 휘이익!

철갑거인들은 사방으로 움직여 다니며 무기를 휘둘렀다.

여덟 기의 철갑거인의 힘은 엄청났다. 무기를 휘두른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천년호 주변은 금세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만하세요.”

금장생은 손을 저었다. 이러다가 천년호가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철갑거인들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전부 들어가세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웅! 웅웅웅! 웅웅웅!

허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더니 철갑거인들이 꺼지듯 사라졌다.

“철갑거인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차원의 틈새라고 불리는 마법 공간이다.

“차원의 틈새는 뭡니까?”

―구멍이나 동굴이 땅에만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닌가요?”

―그건 세상의 한 단면만 보면서 생겨난 선입견이다. 구멍은 땅뿐만이 아니라 허공에도 존재한다. 땅에 난 구멍과 다른 점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마법적인 장치를 하게 되면 주머니처럼 써먹을 수 있다는 거다. 그 허공에 난 구멍은 여러 가지로 이용이 가능한데, 타이탄을 보관하면 차원의 틈새라고 부르고 자신의 창고로 사용하는 경우엔 아공간 혹은 인벤토리라고 부른다.

“철갑거인의 몸에 허공에 나 있는 구멍을 찾는 마법이 걸려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허공에 나 있는 구멍이란 말을 들으니까 대충 이해는 가네요.”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이왕 나왔으니까 감숙성 사업장에나 다녀오려고요.”

―가짜 마누라에게는 말도 안 하고?

“아무리 가짜 결혼 생활이라고 해도 지킬 건 지켜야지요.”

금장생은 차원의 틈새로 들어가 있는 철갑거인을 불러내 데스 나이트들을 나오게 했다.

“낮에 활동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다른 언데드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낮에 활동이 가능하다는 거다.

“그럼 돌려보내지 않아도 되겠군요.”

―굳이 데리고 다니려고 하는 이유가 있느냐?

“먹지도, 싸지도, 자지도 않는 자들이니까 호위로는 최고 아닌가요?”

―단지 그뿐이냐?

“차원의 틈새는 정지된 세계와 비슷하지 않나요?”

―비슷한 게 아니라 정지된 세계다.

“정지된 세계는 곧 죽은 세계라는 뜻이고, 그곳은 어둠의 힘이 더 강하겠죠. 그럼 저들의 영혼은 더욱 어둡게 되겠죠.”

―저들의 영혼에 힘을 불어 넣어 에고족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구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번 시도해 보는 겁니다. 백사나 엘처럼 인시가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지금 엘이라고 했느냐?

“아세요?”

―방금 엘이 인시가 됐다고 한 것 같은데, 맞느냐?

“자기 입으로 엘이라고 하더군요.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여 주겠다고도 했고요.”

―맙소사! 그 악마 같은 놈이 부활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대단한 잔가 보죠?”

―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놈이 있다면 그자가 바로 엘이다. 하지만 놈의 신분은…….

“엘의 신분은 뭐죠?”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아무튼 가장 조심해야 할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엘이라는 걸 명심해라.

“강호무림에 관심이 없는 저와 부딪칠 일이 있겠습니까. 한 가지만 방해하지 않으면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겁니다.”

―그 한 가지가 뭐냐?

“강신술사 일이지 뭐겠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강시를 운구하겠다는 거냐?

“제 일이지 않습니까?”

―미친놈!

라는 피식 웃었다.

전란의 시대 때 만들어진 가장 강한 무기가 바로 악마수다.

아울러 완성하면 날개가 생겨나는 적신천사마공은 신족 최강의 무공 중 하나며, 어떤 경로를 통해 익혔는지는 모르지만 적수마신만마공은 마족 최강 무공 중 하나다.

아울러 이곳에 있던 여덟 기의 타이탄은 전마팔신으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타이탄들이다.

그 모든 것들의 주인이 바로 제 녀석이다.

그런데 시체를 운구하며 살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무도 돈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제 꿈을 막지 못합니다, 영감님. 제 꿈을 막는 놈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맛보게 될 겁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현금을 다 걸고 내기해도 좋습니다.”

금장생은 다짐하듯 또박또박 말했다.

―또라이 새끼!

급기야 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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