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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85화 (185/524)

황금가 (185)

바위가 떨어져 나가고 드러난 모습은 놀랍게도 마신과 비슷한 철갑거인이었다.

물 밖으로 드러나 있는 건 상체뿐이었다.

여러 면에서 마신과 비슷했는데, 마신에게 달려 있는 뿔이 없었다.

창처럼 보이는 기다란 막대가 오른편 등 위로 솟아나와 있는데 무기 같았다. 색은 먹물처럼 검었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금장생은 철갑거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生의 기운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끙! 내가 강신술사라서 그런 거였네.”

그제야 금장생은 철갑거인의 전신에 죽음의 기운이 어려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너 마음에 든다.”

금장생은 철갑거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두 번째 섬으로 향했다.

그 섬의 이름은 사장군도였지만 금장생은 알지 못했다.

사장군도 앞으로 다가간 금장생은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힘을 끌어 올려 주먹을 내질렀다.

그가 장군도의 바위를 떼어 낼 때 펼치는 무공은 마수의 변형이었다. 마신의 주먹은 정확하게 사장군도의 가슴을 쳤다.

쩌억! 쩌억! 쩌억! 쩌억!

또다시 얼음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철갑거인의 상체가 드러났다.

이번 철갑거인은 검붉은 색이었다.

얼굴 생김새는 사람과 비슷했다. 다만 수평으로 길게 뻗은 귀가 사람과 달랐다.

체격은 상당히 왜소해 보였다. 등에는 궁으로 보이는 물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금장생은 세 번째 섬으로 이동하여 같은 작업을 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철갑거인은 회색이었는데 안면이 드러난 투구를 쓰고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었다.

특이한 기호가 새겨져 있는 망치.

그건 완전히 같진 않지만 금장생이 전에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대장장인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철갑거인은 장갑 표면이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었다. 등에는 기다란 창이 걸려 있었다.

붉은색 철갑거인의 가장 큰 특징은 얼굴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철갑거인은 투구를 썼더라도 눈이 보였는데 이 녀석은 그마저도 없었다.

완전한 무면이었다.

“특이한 녀석이네.”

금장생은 다시 자리를 이동했다.

이젠 어디를 어떻게 가격하면 바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금장생은 철갑거인의 가슴 부분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강타한 지점으로부터 사방으로 금이 나더니 곧 바위들이 떨어져 나갔다.

이번에 나타난 철갑거인은 푸른색 장갑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에는 둥글고 눈만 빼꼼 드러나는 투구를 썼는데 완전 전사형이었다.

전사형 철갑거인답게 무기는 대검이었다.

“전에 봤던 기사라고 하던 자들과 비슷하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섬으로 이동했다.

여섯 번째 철갑거인은 녹주석처럼 푸른색이었다. 무기는 쇠사슬로 징이 박힌 철구와 손잡이를 연결한 유성추였다.

유성추의 크기는 어지간한 어른 머리 두 개를 합친 것만 했다.

“맞으면 바로 박살 나겠다.”

금장생은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하고는 장소를 이동했다.

일곱 번째 철갑거인의 외피는 붉은색이었다.

다른 철갑거인에 비해 화려한 투구를 썼는데, 위축될 정도로 강한 느낌이 났다.

철갑거인의 가슴에는 장갑보다 더 붉은 색의 불꽃 문양이 음각돼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네.”

금장생은 북쪽 끝에 있는 섬 앞에 섰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을 천천히 내밀었다.

퍼억!

둔탁한 소성과 함께 철갑거인을 둘러싸고 있던 바위가 쩍쩍 갈라지더니 곧 떨어졌다. 그리고 새카만 색 장갑을 지닌 철갑거인이 나타났다.

이번 철갑거인은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등에 검을 차고 있었다.

“이제 뭔가…….”

금장생은 철갑거인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렇듯 철갑거인을 둘러싸고 있던 바위를 부순 건, 전부 다 모습이 드러나면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쇠로 만든 조각상이었나?”

금장생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

문득 금장생의 눈이 반짝 빛났다.

철갑거인들은 모두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고 고개도 약간 숙인 채였다. 어쩌면 저 모습에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각 철갑거인을 옮겨 다니며 자세하게 살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발견한 건 없었다.

“이러다 해 지겠네.”

금장생은 철갑거인들 곁에서 멀어졌다.

바로 그때 서쪽으로 넘어가던 석양빛이 철갑거인들을 비췄다.

파앗!

철갑거인들의 눈에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 광채들 또한 철갑거인들의 몸 색깔과 같았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의 시선이 바로 무면거인에게로 향했다. 놀랍게도 얼굴이 없는 철갑거인도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네.”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철갑거인들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온 건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 때문이었다.

“가만!”

금장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광채는 철갑거인들의 눈에서만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상태로 서 있는 그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가 물속 한 지점으로 모였다. 그곳에서도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장생은 마신을 돌려보내고 곧바로 잠수했다. 호수 깊이는 육 장 정도였다.

열여섯 줄기의 광채는 물속을 뚫고 한 지점으로 향했다. 금장생은 그 광채를 쫓아 헤엄쳐 갔다.

잠시 후 빛이 모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곳엔 돌처럼 보이는 물체가 하나 박혀 있었다. 돌의 형태는 육각형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사이에 광채가 사라졌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철갑거인들이 뿜어내던 광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태양이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이런 장치를 어떻게 했는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나저나…….’

금장생은 문제의 돌을 바라보았다.

철갑거인의 시선이 저곳으로 향하고 돌 또한 빛을 뿜어냈다면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는 돌을 꼼꼼하게 살폈다.

‘저거네.’

그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돌에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만 했지만 그건 분명 오른손 손바닥 자국이었다.

금장생은 그곳에 손바닥을 댔다. 그리고 심장의 고리로 의지를 보냈다.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오른손에서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릉!

곧 뭔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르릉!

이어 돌이 있던 부분이 좌우로 열리며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는 아래쪽으로 계단이 나 있었다. 그곳 역시 물로 채워져 있었다.

금장생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계단의 깊이는 이 장가량이었다. 계단 끝에는 문이 있었다.

금장생은 문을 살폈다. 어떤 문양이나 흔적은 없었다.

그는 문을 밀었다.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문 안쪽은 공간이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물로 차 있고 문 안쪽은 빈 공간이다. 물과 공간을 분할하고 있던 문이 열리면 물이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마치 문틀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주는 보석인 피수주가 박혀 있는 듯했다.

금장생은 발을 내밀었다. 나아가지 못하는 물과 달리 그의 발은 쑥 들어갔다.

곧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갔다.

금장생은 금방 통과한 통로를 보았다.

문이 있던 자리에서 물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문틀에 피수주가 박혀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피수주로 보이는 물체는 박혀 있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에도 익숙한 특이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저 기호 때문인가 보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알지 모르겠네.’

금장생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를 떠올렸다.

그는 소매를 걷고 건틀릿으로 힘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건틀릿에서 희미하게 광채가 흘러나왔다.

“잡니까?”

금장생은 악마수에 사념을 흘려보냈다.

―막 깨어났다.

“잠을 많이 자나 보죠?”

―잠을 자는 게 아니다.

“그럼?”

―정지 상태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정지 상태라는 게 뭐죠?”

―모든 기능을 멈추는 상태라는 거다.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나는 된다.

“그럼 깨어날 때는…….”

―특이한 자극이 가해지면 깨어나게 된다.

“제가 불어 넣은 힘이 특이한 자극이란 말이군요.”

―그렇다. 그런데 날 깨운 이유가 뭐냐?

“이름이 뭡니까?”

―이름?

“악마수라고 부를 순 없잖습니까?”

―너무 오래전이라…… ‘라’였던 것 같다.

“라요?”

―그렇다. 우리 에고족은 보통 이름이 한 글자다.

“에고족은 뭡니까?”

―너희 말로 번역하면 영혼족이다.

“영혼족이면 영혼 상태로 태어난 종족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그런 종족도 있습니까?”

―정령을 아느냐?

“정확하게 어떤 걸 말하는지는 모릅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체에는 본성이 있고, 그 본성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느냐?

“말은 들었지만 본 적은 없습니다.”

―네가 가진 내공은 어떠냐?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도 이기어검술 단계에 이르면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

물론 완벽하게 독립적인 자아를 갖는 건 아니지만, 이질적인 기운이 들어오면 방어를 하곤 한다. 즉,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자아를 가졌다고 봐야 한다.

―내가 살았던 곳은 마나가 이곳보다 훨씬 농밀하다. 마나도 다른 물체와 마찬가지로 코어, 즉 본성이 있는데 그 본성에는 강력한 자아를 가진 존재가 있다. 그 존재를 일컬어 정령이라고 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정령은 물, 불, 바람, 땅의 정령이다.

“마나가 뭡니까?”

―너희는 마나를 ‘기氣’라 부르더구나.

“그러니까 기에도 본성이 있고, 그 본성에서 태어난 존재를 정령이라 하는 거군요.”

―맞다. 그 네 가지 정령 외에 자연현상의 하나인 어둠과 번개도 정령이 있고, 인간의 감정 중에는 극한의 분노가 마나와 결합되면서 탄생한 분노의 정령이 있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얼마 전 가사 상태와 비슷한 상황에서 뇌신을 보고 대화까지 나눈 상태라 부정할 수가 없었다.

라의 말대로라면 뇌신 또한 정령의 한 종류가 분명했다.

“그럼 에고족은?”

―피동적 자아를 가진 사물의 본성과 영혼이 결합하여 탄생한 종족을 에고족이라고 한다. 우리 에고족의 특징은 나처럼 사물 안으로 들어가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거다.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있습니까?”

―없다.

“그럼 에고족은 불사신이겠네요.”

―우리도 죽는다.

“어떻게 죽는데요?”

―우린 우리가 들어간 물체와 공동 운명체다.

“그 물체가 파괴되면 에고족도 죽는다는 말이군요.”

―그렇다.

“에고족은 주로 어디로 들어갑니까?”

―말하는 거울이 있다는 말을 혹시 들어 봤느냐?

“아뇨.”

―그럼 말하는 문은?

“그것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물체로 다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 종족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무기다.

“그래서 라가 악마수에 들어가 있는 거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죽지 않는 자들도 에고족의 한 부류다.

“정말요?”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죽지 않는 자들은 전에 백사를 데리러 갈 때 겪어 보았다.

그들은 검에 잘려도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잘려 나간 부위가 원래 자리로 붙는 괴물들이었다.

―그렇다.

“그들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십시오.”

―우리는 언데드들을 에고족의 그림자라고 부른다.

“그림자요?”

―그렇다. 언데드라고 불리는 에고족의 그림자에 대해 다 알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건대 머잖아 언데드를 많이 만날 것 같으니까 만날 때마다 설명해 주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문양은 뭡니까?”

금장생은 문틀에 새겨진 기호를 가리켰다.

―‘룬어’다.

“룬어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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