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83화 (183/524)

황금가 (183)

에고족

“네놈은 누구냐?”

파군룡은 금장생을 노려보며 말했다.

“얼굴을 보고도 모른다는 겁니까?”

금장생은 파군룡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네놈을 처음 본다.”

“내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 없습니까?”

“없다.”

“이상하군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 사 형제가 많이 닮았다고들 말하는데.”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사 형제라고? ……혹시?”

파군룡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장주의 짐작이 맞습니다. 나는 서천왕부 마왕 적천영입니다.”

“저, 정말 적천영이란 말이냐?”

파군룡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이곳에 적천영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신네들이 내 형님들과 누이를 살해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당신들을 이렇게 공격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 지금 우리가 적지영 삼 형제를 사, 살해했다는 거냐?”

파군룡은 너무 어이가 없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운기산장은 우리 서천왕부 별장입니다. 어제 거기서 두 형님과 누이를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일 처리가 늦어져 약속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는데 일단의 무리가 시체들을 들쳐 메고 도망치듯 운기산장을 떠나더군요. 느낌이 이상해서 바로 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신네들이 누이와 형님을 해쳤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들쳐 메고 간 게 시체가 분명했기 때문에 조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조사할 방법을 떠올리며 천중전장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데 다섯 명이 자루를 들쳐 메고 나오더군요. 그들을 쫓아 도착한 곳이 여깁니다.”

금장생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모든 상황을 전부 말한 것은 파군룡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여러 말들이 오가다 보면 적지영 일행을 파문시킨 그가 의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저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다.

금장생의 생각대로였다.

“우린 적지영 삼 형제를 살해하지 않았다!”

크게 소리치는 것 말고는 파군룡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곳에 증거가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는군요.”

‘빌어먹을!’

파군룡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전수대는 적지영 일행을 없애지 않았지만,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시체로 변한 세 사람을 들쳐 메고 나온 이들이 전수대고,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

무슨 말을 해도 먹힐 상황이 아니었다.

“내 형님들, 누이와 당신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 형님들과 누이를 살해한 대가는 목숨으로 치러야 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금장생은 묵야를 검집으로 집어넣고 양팔을 편안하게 늘어뜨렸다.

지금부터는 서천왕부 마왕의 신분으로 적지영 일행을 살해한 자들을 처단해야 할 것이다.

양극마신만마권을 끌어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호수를 등지고 파군룡과 제진이 서 있고, 그 앞으로 오십여 명 정도가 포진해 있다.

왼편과 오른편에는 각각 서른 명 정도가 서 있는데, 그들 뒤편으로 지원군이 속속 도착하는 중이었다.

그는 양손으로 내기를 보냈다.

팔목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 갔다.

겉보기엔 검은색일 뿐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른손은 붉은색을 띠었고 왼손은 하얀색 기운이 섞여 있다. 양극마신만마권에서 양극신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많아지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적지영 일행과 싸울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더 강해졌다는 뜻이겠지.’

금생은 내공을 삼 성가량 줄였다.

그러자 양손은 검은색으로 돌아갔다.

‘같은 색이라고 해서 위력까지 같지는 않지.’

금장생은 왼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쩌엉!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수의 적을 공격할 때는…….’

파악!

금장생의 신형이 왼편으로 폭사되었다.

‘전력이 약한 쪽을 먼저 없애는 거지.’

금장생의 양손은 죽음의 광채를 뿌려 댔다.

“쳐라!”

금장생이 움직이자 제진은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차아!”

“타하!”

“하아!”

왼편에 포진해 있던 전수대 대원들은 기합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몸을 날려 가는 전수대 대원들의 얼굴엔 주저하는 빛이 조금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전장에서 돈을 회수하는 하찮은 일을 하고 있지만 원래 신분은 춘추오패의 한 곳인 해림 무인들.

무림 세력도 아닌 가문의 수장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금장생과 일 장 거리를 남겨 둔 순간 전수대 대원들은 무기를 휘둘렀다.

스악! 휘익! 스아악!

섬뜩한 소성이 대기를 갈랐다.

그 검들 중 하나는 금장생의 목을 노리고 나아갔다.

금장생은 왼팔을 강하게 쳐 올렸다.

창!

그의 팔목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수대 대원의 검을 막아 낸 건 왼팔에 차고 있는 건틀릿이었다.

물론 건틀릿이 없는 곳과 부딪친다고 해서 부상을 입거나 하진 않겠지만 굳이 무공 자랑을 할 필요가 없었다.

슈캉!

전수대 대원의 검이 중간에서 뚝 부러졌다.

후욱!

금장생과 전수대 대원 사이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내질렀다.

새카만 색의 장강掌罡이 사내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풀썩!

둔탁한 소성과 함께 사내의 옷이 타올랐다.

“크악!”

비명은 짧았다.

순식간에 검은 숯덩이가 된 사내는 거칠게 나뒹굴었다.

수직으로 세워져 있던 금장생의 오른손이 수평으로 펴졌다.

슉!

순간 손끝에서 검은색 광채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검 형태로 변한 장강이었다.

금장생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오른편 앞에서 세 명, 오른편에서 두 명, 뒤편에서 네 명이 무기를 찔러 오는 중이었다.

휙!

그는 오른편으로 몸을 굴렸다.

몸을 일으키면서 오른손을 횡으로 쓸어 갔다.

금장생을 공격하던 전수대 대원들은 일제히 검을 세웠다. 검 형태로 늘어난 장강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슈캉! 슈캉! 슈캉!

무기와 함께 전수대 대원들의 몸통이 잘렸다.

땅을 딛고 있던 자들은 허리가 잘렸고, 허공에 뜬 자들은 허벅지가 잘렸다.

“크악!”

“아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파앗!

금장생은 군림천하보를 펼쳐 왼편으로 이동했다.

그런 그를 향해 전수대 대원 한 명이 동귀어진 수법으로 달려들었다.

원래는 공격하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금장생이 달려드는 바람에 빠질 기회를 잃어 동귀어진 공격을 감행한 것처럼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빙긋 웃었다.

의도하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자신의 검이 정확하게 금장생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사내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금장생의 왼팔이 벌어지며 검 수십 자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내의 검은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심장을 뚫진 못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손목을 틀어 검을 수평으로 눕힌 후 전력을 다해 잡아당기면 겨드랑이와 함께 심장을 잘라 낼 수 있다.

그는 곧바로 손목을 틀었다.

“……?”

하지만 사내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신 검은 손 하나가 목을 향해 다가왔다.

턱!

“컥!”

잡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온몸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격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 순간 꽉 막혔던 목이 풀렸다.

“크아아악!”

사내는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사내의 등에는 검 세 자루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전수대 대원들이 금장생을 없애기 위해 찔러 넣었던 검이었다.

“크아악!”

“아악!”

“으악!”

동료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던 자들 또한 곧 죽은 동료와 같은 길을 걸었다.

금장생의 마수가 그들의 심장을 할퀴고 지나간 것이다.

파앗!

금장생이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뒤편으로 비스듬히 날아오른 그는 공중제비를 돌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상태가 된 그는 양손을 번갈아 내뻗었다. 그러자 그 아래쪽이 검은 장인으로 들어찼다.

퍽! 퍽퍽퍽! 퍽퍽!

검은 장인은 도장을 찍는 것처럼 전수대 대원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쩌엉! 쩌엉! 쩌엉! 쩌엉! 쩌엉!

“큭!”

“커억!”

“으윽!”

전수대 대원들이 우뚝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끼었다.

전력을 다해 펼치면 얼음 조각으로 부서지겠지만 금장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삼 푼의 실력을 감추는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구해 준다는 무림의 불문율을 어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명이 죽임을 당했음에도 전수대 대원들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차하!”

“타하!”

“하아!”

그들은 악에 받친 기합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금장생도 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전수대 대원들은 당황했다.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면 상대가 물러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 공격은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짠다.

그런데 상대가 방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나와 버리면 머릿속이 혼란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물론 그 순간은 찰나라고 할 정도로 짧다. 하지만 그 찰나가 생사를 가르는 것이 바로 무공이다.

전수대 대원들이 움찔하고 있는 사이, 금장생의 왼손 손가락이 오므려졌다 튕겨졌다.

슉! 슉슉슉!

네 줄기 지풍이 폭사되었다.

마왕의 무공인 군림파천지가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헛!”

“억!”

전수대 대원들은 질겁했다.

지풍이라는 걸 알아차리긴 했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몸을 틀려는 순간 네 명의 이마로 지풍이 파고들었다.

“커억!”

“크윽!”

“으윽!”

네 명은 그 자리에서 뚝 떨어졌다.

이제 남은 자는 한 명이었다.

사내는 검을 더욱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쭉 찔러 넣었다.

그 순간 금장생은 손목을 꺾어 손바닥을 세웠다. 그리고 앞으로 빠르게 내밀었다.

비스듬히 튼 가슴으로 사내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푸욱!

그 순간 금장생의 오른손이 사내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커억!”

사내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넘어왔다.

금장생의 오른손이 파고든 사내의 심장은 순식간에 말라붙으며 흰 연기가 새어 나왔다.

“죽일 놈.”

금장생과 부하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파군룡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그의 눈에는 서천왕부 주인이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보통 무공의 고하를 판단하는 데에는 본인의 무공을 얼마나 능숙하게 펼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무공을 펼치는데 동작이 어색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적천영이란 자는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움직임은 어색하고, 동작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죽임을 당하는 건 전부 전수대 대원들이다.

“하지만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파군룡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만일 적지영 일행이 죽임을 당한 사실을 관아에서 알게 되면 일이 커진다.

게다가 일반 양민도 아니고 황실과 관련 있는 자들이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덤터기를 쓰게 생겼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증거를 인멸해야 할 것이다.

“죽여!”

파군룡은 제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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