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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82화 (182/524)

황금가 (182)

천년호는 가장 긴 곳의 폭이 백 장(300미터), 짧은 곳은 칠십 장(210미터) 정도 되는 호수다.

그리 크지 않은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호수 안에는 여덟 개의 섬이 있다.

바위로 이루어진 섬은 높이가 이 장에서 사 장 정도인데, 멀리서 보면 마치 장수가 서 있는 것 같다고 해서 팔장군도八將軍島라고 부른다.

호수 주위에는 사람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는 어두컴컴하다. 게다가 그 풀과 나무 사이에 폐허로 보이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휙! 휙휙!

이백여 명이 장원 앞으로 날아내렸다.

석조 건물로 이루어진 장원으로, 규모가 상당했다, 하지만 오랜 풍상에 대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제대로 서 있는 건 몇 개 없었다.

무너진 잔해 사이로 내려선 자들은 천중장원을 떠나온 전수대 대원들이었다.

전수대 대원 선두에는 파군룡이 서 있었다.

“저 위로 가시면 호수가 모두 보입니다.”

제진은 건물 꼭대기를 가리켰다.

휙!

파군룡은 바닥을 찼다.

잠시 후 그와 제진은 건물 꼭대기로 올라갔다.

다른 건물은 대부분 무너졌는데 두 사람이 올라온 건물은 멀쩡했다. 꼭대기는 전망대처럼 평평했다.

제진의 말처럼 그곳에 서자 천년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열병하는 병사들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는 섬이었다.

“저건…….”

파군룡은 섬을 가리켰다.

“팔장군도라고 불리는 섬입니다.”

“팔장군도?”

“각 섬들이 장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합니다.”

“장수?”

파군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둥이라면 모를까 장군석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각 섬에는 이름도 따로 있습니다.”

“어떤 이름인데?”

“맨 북쪽부터 마장군도, 화장군도, 해장군도, 전장군도, 혈장군도, 철장군도, 사장군도, 암장군도라고 부릅니다.”

“혹시 저 바위 이름이 전설과 관련이 있는 거냐?”

이름을 듣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예리하시군요. 맞습니다. 저 장군도들은 수천 년 전 천하를 지배하였던 여덟 왕가의 유물이라는 말이 내려옵니다.”

“저 바위기둥들이 유물이라고?”

“네.”

“그 말을 믿어?”

“지금은 믿지 않지만 전엔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확고하게 믿었다는 건 근거가 있었다는 거네?”

“저 장군도들의 높이가 전부 같다면 믿겠습니까?”

“높이가 같다는 건 무슨 뜻이지?”

“물속에서부터 드러난 길이까지 재면 모두가 오 장 크기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물 밖으로 높게 드러난 장군도는 아래쪽 지형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돌로 이루어진 부분은 오 장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말이 되는 건가?”

“네.”

“저 장군도에서 뭔가를 찾아낸 사람이 있어?”

“있었다면 제가 전수대 대주가 됐을 리가 없겠지요. 여기가 이렇게 폐허가 되지도 않았을 테고요.”

“큭! 꿈은…….”

파군룡은 조소를 머금었다.

그는 전설을 믿고 뭔가를 얻으려는 자들을 가장 한심하게 여긴다.

그것은 오로지 운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비급을 읽거나 검을 휘두르는 게 낫다.

그래 놓고 성공하지 못하면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면서 원망을 일삼는다.

한마디로 등신 같은 자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다 가진 당신은 절대 우리 같은 것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파군룡의 조소가 뜻하는 바를 알아차린 제진이 내심 말했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가장자리로 간 제진은 아래쪽에 있는 부하들을 보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전수대 대원들이 소리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먼저 천년호를 완벽하게 포위한 다음 더듬어 나갈 참이었다.

삐익!

수색을 시작한 지 한 시진 후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군룡과 제진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뭐냐?”

제진은 호각을 분 대원에게 물었다.

“여기…….”

대원이 오른편을 가리켰다. 피가 말라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됐느냐?”

“여기 피가 떨어진 건 간밤입니다. 그리고 여기 눌린 자국은 시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대원이 말라붙은 핏자국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군가가 여기 있었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삐이익!

그때 또다시 호각 소리가 들렸다.

“가자!”

파군룡은 바닥을 찼다.

잠시 후 세 사람은 호각을 분 대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으음!”

제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른 대원이 발견한 건 두 구의 시체였다.

“어젯밤에 보낸 자들이냐?”

파군룡은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악!”

“악!”

파앗!

비명이 들려온 순간 파군룡과 제진은 바닥을 찼다. 두 사람은 풀숲을 헤치며 내달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천년호 북단이었다.

거기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 옆에 전수대 대원 두 명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곧 근처에 있던 대원들이 속속 당도했다.

“주변을 수색하라!”

제진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전수대 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시체를 중심으로 반경 삼십 장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살인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변을 살피고 온 제진이 말했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또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이번에 비명이 들려온 곳은 호수 남쪽이었다. 파군룡은 남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직선거리로는 백 장이다.

호수 주위에는 전수대 대원들이 있으니까 그곳으로 이동했다면 누군가에게 발각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암중의 살인자를 발견한 대원은 없었다.

“그렇다면…….”

파앗!

파군룡은 바닥을 찼다.

한 번에 십 장을 날아간 그는 첫 번째 섬인 마장군도 위로 내려섰다.

마장군도 위쪽은 폭이 반 장도 채 되지 않았다. 바닥을 자세히 살폈지만 발자국 같은 건 없었다.

아니, 바위로 이루어져, 설사 딛는다고 해도 발자국이 남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응?”

서 있는 곳에서 왼편을 바라보던 파군룡의 눈이 커졌다.

호숫가 나무 옆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군룡은 재빨리 그 자리에 엎드렸다.

―제진.

그리고 전음을 보냈다.

―네.

제진은 파군룡을 바라보았다.

―왼편 중간 지점에 놈이 있다.

―알겠습니다.

―호수를 통해서 이동해라.

―저도 그럴 참입니다.

제진은 전음을 끊고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전수대 대원 오십여 명이 호수 속으로 들어가 왼편으로 이동했다.

수공을 배운 듯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빨랐다.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 호수 왼편에 도착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보이지 않았지만 전수대 대원들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물에서 나온 대원들은 서로 간의 간격을 넓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그들 시야에 검은 옷을 입은 자의 등이 들어왔다.

―공격해라!

제진은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스윽!

전수대 대원들은 은밀하게 몸을 날렸다.

전수대 대원들이 일 장 뒤편까지 다가왔는데도 검은 옷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스릉!

대원 한 명이 검을 뽑음과 동시에 검은 옷 사내의 등을 향해 찔러 넣었다.

푸욱!

“잡았다…… 헉!”

검을 찔러 넣었던 사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의 검에 찔린 사내는 전날 시체를 버리러 떠났던 부대주 인자홍이었던 것이다.

“이미 죽은 자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검면에 보석이 박힌 검 한 자루가 사내의 목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 검은 금장생의 검인 묵야였다.

묵야의 목표가 된 사내는 전력을 다해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푹!

하지만 검이 더 빨랐다. 전수대 대원의 목에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이 빠져나갔다.

모습을 드러낸 검은 오른편 허공에 검탄강기를 부려 놓았다. 수십 줄기의 검탄강기는 공간을 완벽하게 잘랐다.

“큭!”

“컥!”

“으악!”

“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왼편으로 쏘아졌다.

퍽! 퍽퍽퍽! 퍽퍽!

조금 전 그가 있던 곳으로 암기들이 박혀 들었다.

독을 바른 듯, 모든 암기는 푸른색 광채를 흘렸다.

츠츠츠츠! 츠츠츠!

묵야에서 섬뜩한 소성이 흘러나오고 금장생의 전방이 붉은색 광망으로 들어찼다.

“크윽!”

“커억!”

“으윽!”

혈광 속에서 쉬지 않고 비명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금장생이 혈광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몸을 날려 가는 곳은 제진 일행이 서 있는 호수 쪽이었다.

스아악!

바로 그때 푸른색 검강이 금장생의 가슴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금장생은 묵야를 휘둘러 방어를 했다.

차앙!

두 사람의 검에서 쏟아져 나온 검탄강기가 중간에서 부딪쳤다.

두 사람의 신형이 뒤편으로 튕겼다.

금장생은 일 장을 물러났지만, 파군룡이 물러난 거리는 삼 장이었다.

파군룡은 뒤편을 흘끔 바라보았다. 호수 물이 눈에 들어왔다.

“죽일!”

파군룡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반 장만 더 밀렸더라면 땅이 아니라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갑자기 자존심이 상하면서 열불이 뻗쳤다.

“차앗!”

“타하!”

“하아!”

그사이 제진의 명령을 받은 전수대 대원 다섯 명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하아!”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이어 그가 든 묵야가 붉은 광채를 전면으로 부려 놓았다.

창! 창창! 창창!

묵야로부터 흘러나온 검탄강기가 전수대 대원들의 무기를 튕겨 냈다. 그리고 곧바로 허리춤의 검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와 동시에 왼발이 앞으로 나가며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차하!”

우렁찬 기합과 함께 금장생의 허리춤에서 푸른색 광채가 폭발했다. 동영의 무공인 발도뇌섬류였다.

“컥!”

“큭!”

“윽!”

나직한 비명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금장생을 공격하던 다섯 명의 동작이 약속한 것처럼 우뚝 멈췄다.

스악!

금장생은 땅속으로 파고들었던 발을 뽑아냈다.

그 순간 땅이 살짝 흔들렸다.

툭! 툭툭툭! 툭!

다섯 명의 상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츄악! 츄악! 츄악! 츄악!

그리고 잘린 단면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차, 찾았습니다, 주공.

전수대 대원과 금장생 사이의 싸움을 지켜보던 장하가 질겁한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뭘 찾았다는 거냐?

옥천환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만리만년향 냄샙니다.

―정말이냐?

옥천환의 눈이 커졌다.

―잘못 맡았나 싶어서 비향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만리만년향이 확실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차갑게 변한 옥천환의 눈빛이 금장생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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