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81화 (181/524)

황금가 (181)

적풍영과 적운영을 암살한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그때 금장생은 외부에 있었다. 오 장 떨어진 곳에는 적지영이 서 있었다.

―그래서 급전은 쓰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금장생은 적지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헉!”

적지영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목소리의 주인이 금장생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이곳에 금장생이 나타날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우! 우…….”

그녀는 소리를 지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마혈과 아혈이 동시에 눌려 있어 움직이지도 소리치지도 못했다.

―그리고 너무 욕심을 부렸습니다.

금장생은 손가락을 가볍게 튀겼다.

슉!

투명한 광채가 적지영의 등을 향해 쏘아져 갔다.

금장생이 내던진 건 백색 투명한 소검이었다.

푹!

소검은 적지영의 등으로 파고들어 가 심장에 구멍을 내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모습을 감췄다.

“컥!”

적지영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뒷목을 그러쥔 적지영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개, 개자식!”

그녀의 신형이 거칠게 넘어졌다.

쿠웅!

적지영이 넘어진 순간 근처에 있던 전수대 대원 한 명이 적지영 옆으로 달려갔다.

사내는 얼른 적지영의 목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주, 죽었습니다!”

사내는 커다랗게 소리쳤다.

“무슨 말이냐?”

밖으로 나오던 제진이 물었다.

“적지영이 죽었습니다.”

제진은 적지영이 쓰러진 곳으로 몸을 날려 갔다.

“사인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적지영의 심장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제진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누군가 숨어 있는 인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돌아간다!”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부하가 물었다.

제진은 시체로 변한 적지영을 보았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파군룡은 화를 낼 게 분명하다.

잘못을 해서 욕을 먹는 건 얼마든지 감내하겠지만, 적지영 형제의 죽음은 불가항력이었다.

세 형제의 죽음은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는 시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지고 간다! 그리고 우리가 왔다는 흔적을 지워라!”

제진은 소리쳤다.

전수대 대원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들쳐 메고 주위를 정돈했다.

싸움의 흔적을 없앤 전수대 대원들은 자리를 떴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 잠시 후 금장생이 나왔다.

“어떻게 한다……?”

금장생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적지영 일행을 살해한 죄를 물어 천중전장을 손보는 것이다.

그런데 고민되는 게 있었다. 관아에 맡기느냐 아니면 서천왕부 힘으로 직접 처리하느냐 이게 문제였다.

꿀꺽한 이백삼십만 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처리하는 수밖에.”

파앗!

그는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 * *

“그게 무슨 말이냐?”

파군룡의 눈이 커졌다.

“암습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적지영 일행을 모두 죽였다는 거냐?”

“네.”

“시체는, 시체는 어떻게 했느냐?”

파군룡은 다급하게 물었다.

“가지고 왔습니다.”

“가, 가지고 왔다고?”

“네.”

“어떻게 하려고 시체를 가지고 왔다는 거냐?”

파군룡은 버럭 소리쳤다.

“그게, 그곳을 치워야 해서…….”

‘당신 때문에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럼 시체를 버리고 와야지,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파군룡은 재차 소리쳤다.

“당장 버리고 오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다녀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제진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는 전수대 대원들이 기거하는 건물로 들어갔다.

“젠장!”

그는 의자에 풀썩 앉았다.

“왜 그러십니까?”

얼굴에 흉터가 나 있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다가오며 물었다.

얼굴만 찡그려도 빚쟁이들이 돈을 내놓을 것처럼 험상궂게 생긴 이자는 부대주 인자홍이었다.

“깨졌다.”

“깨져요?”

“시체를 가지고 왔다고 노발대발하셨다고.”

“그래도 시체를 가져와서 그 정도로 끝난 걸 겁니다. 빈손으로 왔다면 대주 이빨 몇 개는 나갔을 겁니다.”

“하긴.”

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홍의 말이 틀리지 않다. 적지영 일행의 시체를 가져왔으니까 욕을 먹는 걸로 끝났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맞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장주께서 시체를 버리고 오라고 하셨다.”

“아무도 모르게 버려야겠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태워 버릴까요?”

“이곳은 번화가다. 세 구나 되는 시체를 태우게 되면 금세 표시가 나고 만다.”

“그럼 아무도 찾지 않는 으슥한 장소에 묻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 장소가 있느냐?”

“천년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

제진의 얼굴이 펴졌다.

천년호는 과거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보다 더 오래됐다는 호수로, 그도 잘 아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만큼이나 내려오는 전설도 많다. 그중 가장 사실에 가까운 전설은 호수 바닥에 있다는 우물에 관한 이야기다.

호수 바닥에는 총 여덟 개의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이 넘쳐 호수가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더불어 그 우물을 판 사람은 수천 년 전 천하를 좌지우지하였던 절대자들이라는 말도 있었다.

세간의 이목을 끈 건 우물이 아니라 절대자들이었다.

실제로 호수 속에 우물 형태의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절대자의 기연을 찾아 이곳으로 향했다.

천년호 근처에서 작은 물건이라도 나오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칼부림으로 이어졌다.

그런 시간이 백 년 이상 계속되면서 천년호는 시체들이 나뒹구는 흉흉한 장소로 변했다.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게 된 것은 오십 년 전이었다. 그리고 이젠 절대자에 대한 전설 대신 귀신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만 들려온다.

시체를 묻기 위한 장소로 거기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거기로 해라.”

“알겠습니다.”

인자홍은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인자홍은 부하 다섯 명과 함께 천중전장을 나섰다.

인자홍이 나가자 제진은 곧바로 파군룡을 찾아갔다.

“지금 시체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느냐?”

파군룡은 물었다.

“천년호 근처에 묻기로 했습니다.”

“천년호?”

“네.”

“거기서 태워 버리면 되겠네.”

천년호는 파군룡도 알고 있었다.

“태워 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묻건 태우건,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

“인자홍이 돌아오면 보고해.”

파군룡이 굳이 보고하라고 한 건 적지영 일행이 전수대 대원이 아니라 암중 인물에 의해 살해됐다는 말 때문이었다.

시체를 태워 없애 버리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진은 물러나 그의 처소로 갔다.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인자홍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보고하란 말이 없었으면 들어가서 자겠지만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나도 인자홍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진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다섯 명을 더 보냈다. 그런데 그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제진은 아침 무렵 파군룡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열 명이 전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냐?”

“네.”

“당장 출병 준비해라.”

파군룡은 벌떡 일어났다.

‘윽!’

순간 파군룡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제진은 깜짝 놀라 파군룡을 부축했다.

“아니다. 괜찮다.”

파군룡은 다리에 힘을 주고 섰다.

몸이 허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견딜 만했다.

“아무래도 보약을 좀 먹어야 할 모양이다.”

“제가 잘 아는 의원이 있습니다.”

“의원은 나중에 가 보기로 하고, 우선 천년호로 먼저 가자. 전수대 대원은 전부 데리고 가도록.”

“이미 모든 대원들이 출병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해.”

“알겠습니다, 장주님.”

제진은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전수대 대원 전원과 제진 그리고 파군룡이 천년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이 떠나고 난 후 사내 한 명이 나타났다.

섭선을 쥐고 있는 이자는 해림 림주 파운양의 제자 신룡 옥천환이었다.

“저 등신 같은 녀석이 왜 저렇게 다급하게 달려가는지 아느냐?”

옥천환은 나직하게 말했다.

“모릅니다.”

옥천환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옥천환이 고개를 돌려 보니 해림 림주의 큰아들 파세룡을 살해한 장하가 서 있었다.

“적지영 형제를 죽인 자 때문이다.”

“적지영 형제를 죽인 자들이 전수대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죽이면 돈을 받아 낼 수가 없지 않겠느냐?”

“생포하려고 했는데 암중 인물에 의해서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는 거군요.”

“맞다.”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누가 적지영 일행을 없앤 걸까요?”

장하가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하면 적지영은 서천왕부 주인이 되면 갚을 생각으로 파군룡에게 거금을 빌렸다. 하지만 주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가문에서 파문을 당하고 말았다.

파군룡이 그들을 생포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빌려준 돈을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들을 잡아 오려는 순간 세 사람 모두 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어떤 자가 그들을 없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른다.”

옥천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 역시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인자홍이 돌아오지 않는 것도 그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거다.”

“천년호로 가면 좀 더 확실한 걸 알게 되겠군요.”

“그렇겠지.”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계집은 처리했습니다.”

장하가 말한 그 계집이란 파군룡에게 선물로 주었던 화홍이었다.

“수고했다. 그리고 놈의 흔적은 찾고 있는 거냐?”

“만리만년향이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건 알아냈습니다.”

만리만년향은 해림에서 만들어 낸 추적용 향이었다.

만리만년향은 호흡과 피부로 흡수되는데, 한번 흡수되면 없어지지 않는다.

물론 아무나 만리만년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향공鼻香功이라는 무공을 익힌 자만이 맡을 수 있고, 그런 무인 쉰 명이 서안 전역을 훑고 다니고 있다.

“장생 그놈이 이곳에 있다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장하는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야지.”

옥천환은 저편으로 시선을 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가 이곳 서안까지 온 것도 만리만년향을 쫓아서였다. 그러다가 림주의 둘째 아들인 파군룡을 방문하였고, 화홍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일거양득이라고 하지. 장생도 잡고 파군룡도 없애고.’

옥천환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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