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78화 (178/524)

황금가 (178)

한참 동안을 밖에서 서성인 그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침실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안에 있습니까?”

금장생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척!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퍼런 물체가 목에 와 닿았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목에 닿아 있는 건 아수수의 백상 끝이었다.

“그분에 대해 숨긴 건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금장생은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마가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게 아니었다는 건가요?”

“네.”

“그걸 어떻게 믿죠?”

“믿지 않아도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돈을 벌 때 편법이나 불법 혹은 남을 짓밟는 짓은 하지 말라고 배웠고, 지금껏 그렇게 해 왔다는 겁니다.”

“믿을 수 없어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과부의 환심을 사서 한밑천 잡으려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대륙황가에서도 공짜에 가까운 계약서를 만들었고, 적지영 일행에게 사백오십만 냥을 받아 놓고도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예요. 당신은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내게 접근했어요!”

아수수는 금장생에게 자신이 먼저 제안했다는 사실마저 잊고 소리쳤다.

“나는 접근한 적 없습니다. 내 집에 먼저 찾아온 사람도 당신이고, 제안도 당신이 먼저 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건…….”

아수수는 할 말이 없었다.

금장생의 말이 맞다. 이번 일의 시작은 자신이었다.

금장생이 돈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건 억지다.

그렇다고 해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미리 말하지 못한 건 제 잘못입니다. 말을 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공연히 아물어 가는 상처를 헤집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못 했습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습니까?”

“혼자 있고 싶어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건물을 나선 그는 정문을 향해 내달렸다.

―어디 가는 거죠?

한참을 달려가는데 귓전으로 사미염의 전음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사미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야행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서천전 방에서 아수수와 금장생이 나눈 이야기를 모두 들은 상태였다.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혹시 술 상대가 필요해요?”

“왜 내가 술을 마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잘못 짚은 건가요?”

“네.”

“그럼 어디 가는 거죠?”

“머리를 식히러 간다고 해 두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죠?”

“뭘 말하는 겁니까?”

“당신과 수수가 만난 상황에 대해서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적수와 마왕패가 당신에게 있다는 건 적천영을 만났다는 말이 돼요. 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전혀 내색하지 않았어요. 수수가 당신에게 배신감을 느낀 건 바로 그런 점 때문이에요.”

“적수와 마왕패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건 아수수 그분에게 말한 그대롭니다. 그리고 마왕패와 적수를 지녔다고 해도 적천영 그분을 만났다고 단정 짓는 건 억측입니다.”

“만나지 않았다는 건가요?”

“네.”

“그럼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네요?”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천왕부와 대륙황가 주인이에요. 그리고 나이는 많지만 몸매가 빼어난 여자고요. 그 정도면 충분한 이유 아닌가요? 더구나 그 부인에게는 자식도 없고요.”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다고 생각한다는 거군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가 여기로 온 건 계획된 게 아니었습니다. 가짜 마왕 자리를 제안한 사람도 아수수 그분이었습니다. 대륙황가가 서천왕부 소유라는 걸 말해 준 사람도 그분이고요.”

“사실 그건 나도 인정해요.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면 가장 먼저 수수를 당신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을 텐데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만약 그것도 계산된 거라면?”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겠지요.”

“내가 무서운 사람인 건 맞습니다. 나는 절대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저급한 방법으로 돈을 벌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수수는 몰라도 나는 당신을 믿어요. 이제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줄래요?”

“제강 때문이었습니다.”

“제강이면, 강시를 만드는 거요?”

“네. 어쩌다가 장의사 사장이 됐는데 장의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총관이 시체를 염하고 매장하는 건 자기네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강신술을 배우라고 하더군요. 먼 곳에 있는 시체를 강시로 만들어 데려오는 건 시체를 묻는 것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게 해 준다면서요. 돈을 번다는데 못 할 게 없었죠. 그래서 이론을 먼저 완벽하게 익히고 실습을 준비했습니다. 실습은 물론 제강입니다. 북망산으로 올라가 가장 최근에 묻힌 시체 두 구를 파 왔습니다.”

“그 두 중 한 구가 마왕이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자가 마왕인지는 몰랐습니다. 몸에 주문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씻겨야 하는데,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허리 피부가 들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피부가 아니고 피부처럼 보이게 해 놓은 거였더군요.”

“마왕패와 적수마신만마공이 거기서 나왔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아수수 그분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내가 처음으로 제강했던 강시의 부인이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군요.”

“수수에게는 내가 잘 말해 볼게요. 그런데 지금 어디 가요?”

“조금 전에 말했잖아요.”

“언제 말했다는 거죠?”

“나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빚지고는 절대 못 사는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며칠 후면 알게 될 겁니다.”

휙!

금장생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쏘아졌다.

“음!”

사미염은 금장생이 사라진 어둠 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미염은 몸을 날렸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사미염은 아수수의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는 술 다섯 병이 들려 있었다.

“그 사람에게 화가 나?”

아수수 건너편으로 앉으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아수수는 대답이 없었다.

“만일 그 사람이 마왕패를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적수를 익히지 못했다면 지금쯤 너는 죽었을 거야. 내 말이 틀려?”

“그랬겠지.”

“그럼 잘된 거잖아.”

“그 사람은 그이를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도 나와…….”

“잤다고?”

“응.”

“그러니까 너는 그 사람이 싫은 게 아니고 너 자신이 싫은 거지?”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그녀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남편 적천영의 얼굴이 자꾸만 희미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금장생에게 더욱 화를 냈는지도 모른다.

“한 잔 해.”

사미염은 아수수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고마워.”

아수수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조금 전에 그 사람 만났어.”

사미염은 자기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뭐래?”

“자기는 명 짧고 돈 많은 과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대.”

“그렇게 말했어?”

“명 짧고 돈 많은 과부라는 말은 내가 한 거야.”

“내가 명 짧고 돈 많은 과부라고?”

“명이 짧을지 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돈 많은 과부인 건 맞잖아.”

“나쁜 년!”

아수수는 자기 술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전에 마시던 그 술이 아니네?”

문득 술맛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술병을 보았다. 천주라는 글이 써 있었다.

“킥!”

아수수는 피식 웃었다.

“왜?”

“그 사람 술이야.”

“그 사람이 누군데?”

“가짜 남편.”

“그 사람이 술도 만들어?”

“응. 주류 사업은 전부터 하고 있었대. 이번에 대륙황가에 유통을 맡겼는데, 운송비가 병당 일 문이야.”

“일 문이면 공짜잖아.”

“그런 셈이지 뭐.”

“사업 수완이 있나 보네?”

“왜?”

“이거 요새 뜨는 술이야.”

“뜨는 술?”

“다섯 냥이나 하는데도 없어서 못 파는 술이라고.”

“그 정도야?”

“응. 양만 받쳐 준다면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래.”

“돈 돈 하더니 소원 풀었네.”

“그렇지. 그리고 그 사람하고 잔 걸로 너무 자책하지 마. 그건 너를 치료하기 위해서 그런 거잖아.”

“그게 전부가 아냐.”

“또 있어?”

“응.”

“언제?”

“며칠 안 됐어. 적지영 일행이 전장에서 융통한 돈이 사백오십만 냥이라는 걸 알아내고 다그치는데 이걸 주더라고.”

아수수는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반지?”

“이것들도.”

이번엔 귀걸이와 목걸이를 차례로 가리켰다.

“엄청난 걸 줬네. 그 정도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천 냥은 줬을 것 같은데?”

“그렇지?”

“응. 그런데 그걸 주면서 널 유혹했어?”

“아니.”

아수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덮쳤어.”

술이 들어가자 감춰 두었던 말이 술술 나왔다.

“……그가 가만있었어?”

“내가 마혈을 눌러 버렸어.”

“진짜?”

“응.”

“그건 강간인데.”

“그럴 생각이 없으면 이런 걸 주지 말았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혈을 누른다는 건…….”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아수수는 사미염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고 그래. 난 절대 그런 생각 안 해. 내가 뭐가 부족해서 마혈을 눌러? 옷만 벗으면 짐승처럼 달려들 텐데.”

“그러니까 내 남편 앞에서 옷을 벗겠다는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것아. 술이나 처마셔!”

사미염은 버럭 소리쳤다.

“아무튼 너 나 따라 하면 죽을 줄 알아.”

아수수는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두 여자 옆으로 술병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런데 그 사람 어디 간다고 하대?”

아수수가 물었다.

“몰라, 이상한 소리만 하고는 내빼 버렸어.”

“이상한 소리?”

“자기는 무서운 사람이래. 그리고 빚지고는 절대 못 사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게 무슨 소리지?”

“모른다니까.”

사미염은 고개를 저었다.

술에 취하는 듯, 그녀의 목소리도 서서히 꼬여 나왔다.

“친구가 있으니까 좋긴 하다.”

아수수는 히죽 웃었다.

“이번에 또 토하면 안 돼.”

“전에도 네가 먼저 토했잖아, 이것아. 쓰레기통만 생각하면 그냥…… 우욱!”

아수수가 입을 틀어막았다.

“입 막아, 이것아. 오늘은 우릴 씻겨 줄 사람도 없단 말이야.”

“아무튼 그 사람의 마혈을 누르면 미염이 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아, 아…… 우엑!”

사미염의 입에서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 * *

“접니다, 장주님.”

총관 목소리에 파군룡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죠?”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군룡은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알몸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가슴이 상당히 풍만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화홍입니다.”

“맞다. 화홍이라고 했지?”

파군룡은 빙긋 웃었다.

몸매가 뛰어난 시비인 화홍은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한 옥천환이 선물이라며 보내 준 시비였다.

“나가 봐라.”

파군룡은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장주님.”

화홍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가 몸을 돌려 옷을 입었다.

“으흠!”

상체를 숙인 뒷모습을 보자 갑자기 파군룡은 피가 뜨거워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화홍을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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