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76)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익상은 깜짝 놀랐다.
익상은 지금까지 이기어검술의 기운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분명 먼저 강기를 분리해서 쏘아 보내는 검탄강기를 펼쳤다.
그랬던 검탄강기가 어느새 이기어검술로 발전한 것이다.
“각주님이야 무림십패의 일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저자는…….”
익상의 시선이 타이탄에게로 향했다.
무공의 단계는 검풍, 검기, 검강, 검탄강기, 이기어검술, 심검, 공령으로 나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내공이 강해져야 하지만, 뛰어난 초식도 있어야 한다, 즉, 내공과 좋은 무공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 말은 곧 검강과 검탄강기를 펼치는 무공이 다르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저들 둘은 검탄강기를 이기어검술로 바꿔 버린 것이다. 무공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아니, 척사랑은 무림십패의 일인이니까 검탄강기를 이기어검술로 변화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철갑거인을 탄 자가 그런 경지까지 올랐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공룡 머리와 부딪친 이리 머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윽! 큭! 억!”
이리 머리가 부서질 때마다 무혼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리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강화强化!”
무혼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공룡 머리와 싸우고 있던 이리 머리들이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이리 머리는 엄청난 속도로 공룡 머리를 들이박았다.
콰앙! 콰앙! 쾅!
“크윽! 커억! 으윽!”
척사랑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녀는 있는 힘껏 검을 그러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천사가 새하얀 색으로 변했다.
그러자 허공에 더 있던 공룡 머리도 검과 같은 색으로 바뀌었다. 크기도 삼 장으로 더 커지고, 날아가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척사랑이 이번에 펼친 무공은 빙하공룡광무의 후삼식 중 일식인 공룡광사세恐龍狂邪勢였다.
쩌엉! 쩌엉! 쩌엉!
후삼식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빙하공룡광무의 진가가 나왔다.
대기 중에 백색의 얼음길이 생겨났다. 백색으로 변한 공룡 머리가 지나간 자리였다.
마른 대기마저 꽁꽁 얼려 조각조각 부숴 버리는 무공.
그것이 바로 공룡광사세였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부딪칠 때마다 이리 머리가 가루가 돼 흩어졌다.
하지만 공룡 머리도 무사하지 못했다. 이리 머리가 전부 없어지자 공룡 머리 또한 먼지처럼 스러졌다.
척사랑과 무혼은 대치한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놀랍군.”
무혼은 감탄했다.
그가 조금 전 펼친 ‘강화’는 무공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이었다.
무공과 마법을 합치는 건 그의 오랜 염원이었다. 하지만 과거엔 합치는 데 실패하였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사십 대 중반에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시 깨어나 보니 두 가지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개발된 게 아니라, 고대의 비법이었다.
수천 년 전에는 마법사와 검사 구분이 없었다. 모두가 마검사였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며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마법사와 검사를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완전히 다른 영역이 되고 말았다.
과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부작용을 극복하고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한 몸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육체가 문제였다. 불완전한 육체는 무공도 마법도 최고의 경지까지 익힐 수 없게 했다.
그렇다고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드래곤 한 마리는 충분히 찜 쪄 먹을 수 있는 실력이다.
‘굳이 마법까지 필요하지 않아. 수라도법이면 충분해.’
무혼은 그레이훼일을 다시 그러쥐었다.
아스와 함께하면 완전체가 될 수 있다. 무공을 극한까지 펼칠 수 있고, 거기에 마법을 더할 수도 있다.
무혼은 다시 내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아스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으음!’
척사랑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자신은 지금까지 전력을 다했고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적은 아직 팔팔했다.
아니, 처음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 두 초식이 더 남았으니까.’
척사랑은 입술을 깨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차앗!”
전 내공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지금 선공을 하지 못하면 수비만 하다가 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척사랑의 수중에서 검이 떠났다.
날아가던 검은 곧바로 새하얀 공룡 머리로 변했다.
“타하!”
그 순간 붉은 기운 속에서 커다란 기합이 터져 나왔다.
아스의 손에서도 그랜드크로스가 떠났다.
그랜드크로스는 아스의 손을 떠나자마자 수십 개의 촉수 형태로 변했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룡 머리를 향해 쏘아져 갔다.
공간을 건너뛴 두 힘은 중간 지점에서 맞닥뜨렸다.
무혼이 그랜드크로스로 펼친 수라도법이 더 강한 듯, 붉은색 촉수가 새하얀 공룡 머리로 파고들었다.
흰색이었던 공룡 머리가 점점 붉어졌다.
콰앙!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커억!”
척사랑이 피를 뿜어내며 가랑잎처럼 날렸다.
“욱!”
무혼 또한 편치는 않았다. 그랜드크로스를 통해 엄청난 힘이 몸 내부로 스며든 것이다.
그는 목까지 넘어온 비릿한 냄새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내기를 끌어 올렸다.
“이동!”
그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번쩍!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아스는 십오 장 떨어져 있는 척사랑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였다.
“헉!”
척사랑은 질겁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얍!”
그녀는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곧 그녀의 머리 위쪽으로 강기 방패가 생겨났다.
“늦었다!”
무혼은 버럭 소리치며 도를 내리찍었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척사랑이 만든 강기 방패가 쩍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를 아스의 그랜드크로스가 무자비하게 파고들어 갔다.
척사랑은 검을 들어 올렸다.
창!
그랜드크로스와 천사가 부딪쳤다.
“커억!”
척사랑의 입에서 피 화살이 뿜어져 나왔다.
“차하!”
척사랑은 온 힘을 다해 그랜드크로스를 밀어 올렸다. 그리고 뒤편으로 몸을 튕겼다.
그녀는 순식간에 십여 장을 날아갔다.
“쿡!”
무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함을 내질렀다.
“기사들은 공격하라!”
드디어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와아아아!”
기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환수각 무인들을 향해 내달렸다.
일천 기의 타이탄이 달려가는 광경은 엄청났다. 환수각으로 달려가는 건 적이 아니라 바로 공포였다.
쿠웅! 쿵쿵쿵! 쿵쿵쿵!
거대한 타이탄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깊은 구덩이들이 생겨났다.
“문도들은 자리를 지켜라! 방어 대형을 구축하라!”
익상은 검을 움켜쥐고 고함을 내질렀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대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환수각 무인들은 무기를 힘껏 그러쥐고 대검을 막았다.
카카캉! 카카캉! 카카캉!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삼 장이 넘는 대검 앞에 그들의 검은 너무 약했다. 부딪치는 족족 무인들의 검이 부러졌다.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대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환수각 무인은 대여섯 명씩 죽임을 당했다.
순식간에 환문 앞 벌판은 시체들로 가득 찼다.
“차앗!”
“타하!”
강기의 경지에 올라선 문도 두 명이 타이탄 다리 앞까지 내달리더니 검을 휘둘렀다.
서걱!
두 사람의 검은 정확하게 타이탄의 발목을 잘랐다.
휘이익!
다리가 잘린 타이탄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쿠웅!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타이탄의 동체가 절반가량 땅속으로 파묻혔다.
그러자 타이탄의 가슴에서 갑옷을 걸친 자가 튀어나왔다. 타이탄 탑승 기사였다.
“아무스, 돌아가라!”
기사는 크게 소리쳤다.
웅! 웅! 웅웅!
대기가 급격하게 왜곡되는 것 같더니 거대한 동체가 모습을 감췄다.
“강기를 펼치면 놈들을…….”
퍽!
퍼억!
“아악!”
“으악!”
타이탄 다리를 잘라 냈던 두 명은 다른 타이탄의 발에 밟혀 죽임을 당했다.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쿠웅! 쿠웅!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거대한 기둥이 넘어지듯 타이탄들이 쓰러졌다.
“각주님! 훗날을 도모해야 합니다! 지금 상태면 전멸하고 맙니다!”
익상이 고함을 내질렀다.
전날 죽지 않는 자들과 싸울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에는 완전히 죽이진 못했지만 물리칠 수는 있었다. 즉 주의만 잘하고, 동료들과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싸우고 있는 자들은 물리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 아군의 검이 부러진다. 간신히 강기를 펼치면 잘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긴 했지만, 자유자재로 강기를 펼치는 문도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장수원의 원로들까지 가담했지만 전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은 더 늘어나고 있다.
“아!”
척사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절망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환수각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환수각 문도들은 각자 살길을 도모하라!”
척사랑은 결국 철수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환수각 무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들은 피를 토하면서도 적과 싸웠다.
“쳐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없애라!”
무혼은 차갑게 소리쳤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는 어떻게 하면 승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쳐야 할 때였다.
“우와아아아!”
“크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타이탄 기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무기를 좌우로 휘둘렀다.
퍼억! 퍽! 퍼억!
“크악!”
“아악!”
“으아악!”
환수각 무인들은 대검에 잘려 죽고 발에 차이고 밟혀 죽었다.
콰앙!
마침내 커다란 환수각 대문이 박살 났다.
일천여 기에 달하는 타이탄들은 해일처럼 밀고 들어갔다.
환수각 무인들은 저항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다섯 기의 타이탄을 쓰러뜨리면 그사이 백여 명이 죽어 나갔다.
“무기를 버리고 자신의 혈도를 누르는 자는 살려 주겠다!”
무혼은 선두에서 내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필요한 건 환수각이지 무인들의 주검이 아니었다. 아울러 일을 해 줄 일꾼도 필요했다.
―풍주!
척사랑은 익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네, 각주님.
―먼저 항복하시오.
―그럴 순 없습니다.
―항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걸로 끝나지 않소. 우리 가족들까지 전부 죽게 될 거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항복하는 수밖에 없소.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소.
―각주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여기에 있으면 각주님은 죽게 될 겁니다.
―떠나라는 거요?
―각주님이 살아 계셔야 환수각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알았소. 난 떠나겠소.
척사랑은 아스를 보았다. 그때 무혼도 척사랑을 보고 있었다.
무혼은 끝내야 할 때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닥을 차며 이동 마법을 펼쳤다.
척사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검을 내리찍으려는 순간, 검은 물체 하나가 척사랑을 잡아채 빠르게 멀어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척사랑을 구해 사라진 사람은 태월령이었다.
“환수각 무인들은 무기를 버려라! 무기를 버리고 각자 혈도를 눌러라!”
척사랑이 떠나자 익상은 무기를 내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턱! 턱턱턱! 턱턱! 턱턱!
그러자 다른 이들도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혈도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