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75)
“집중하라!”
“대열에서 이탈하지 마라!”
“진영을 유지하라!”
각 조의 조장들은 고함을 내질렀다.
캬아아!
키아아!
캬캬캬!
창! 창창창! 창창!
휙! 휙휙! 휙휙휙!
“아악!”
“으악!”
“크악!”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아!”
“타하!”
“이얍!”
척사랑과 태월령을 비롯한 수뇌들은 전력을 다해 다크 나이트들을 없앴다.
하지만 한 번에 모두 없애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의 공격권 밖에 있던 다크 나이트들은 일반 문도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들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은 잠시 후 다시 깨어나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환수각 문도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로 인해 환수각 문도들의 희생은 더욱 많아졌다.
환수각 문도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을 여전히 동료로 여겨 차마 무기를 휘두르지 못한 반면, 언데드로 변한 자들은 무자비하게 환수각 문도를 없애 버린 탓이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은 우리 동료가 아니다. 망설이지 말고 목을 쳐라!”
척사랑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환수각 문도들이 마지막 순간에 무기를 휘두르지 못하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찰나의 순간 주저하고 만 그들의 목이나 심장으로, 언데드가 된 동료의 무기가 날아들었다.
그사이 다크 나이트에 의해 죽임을 당해 언데드가 된 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저들은 우리 동료가 아니다. 망설이지 말고 쳐라!”
“망설이면 너희가 죽는다!”
척사랑과 익상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차하!”
“타하!”
“이얍!”
환수각 문도들은 전력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다.
“이래서는…….”
척사랑은 절망적인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쓰러져 있는 자들은 모두 환수각 문도들이다.
적은 계속해서 살아나니 시체가 없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싸우면 죽은 자가 승자가 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방법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철수뿐이다.
하지만 어디로…….
갈 곳이 없었다.
“내 집이 여긴데 목숨 걸고 지켜야겠지.”
척사랑은 검을 고쳐 쥐었다.
“해가 떠요.”
그때 태월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
“저기요.”
태월령은 동쪽을 가리켰다.
그녀 말대로였다. 동쪽이 환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산등성이로 태양이 솟았다.
쿠어어어!
캬아아아!
언데드들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머리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밀납으로 만든 인형이 위쪽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리는 모습 같았다.
촛농처럼 흘러내린 언데드들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해가 뜨고 일각 정도 지나자 환문 앞 벌판에는 환수각 무인들만 남았다.
만일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들이 아니라면 한바탕 꿈을 꾸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언데드들은 완벽하게 모습을 감춰 버린 것이다.
“휴!”
“아!”
환수각 무인들은 그 자리에 풀썩풀썩 주저앉았다.
적이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누구 하나 환성을 지르지 못했다. 그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척사랑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도 다른 이들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바탕 악몽을 꾸고 난 것 같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척사랑은 익상에게 피해 상황을 파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망자는 이백 명이고, 삼백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기껏 두 시진(네 시간)을 싸웠을 뿐인데.”
척사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밤새도록 싸운 것도 아니고 불과 두 시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백 명이 죽었단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버텨 낼지 알 수가 없다.
“방법을 찾아야 해요, 각주님.”
옆에 있던 태월령이 말했다.
“죽은 자를 상대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보시오?”
“어떤 방법이 됐든 다 동원해 봐야지요.”
“태 소저 생각을 말해 보시오.”
“그 괴물들은 햇빛이 나오자마자 땅속으로 숨었어요. 그건 곧 햇빛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뜻이에요.”
“내 생각도 그렇소.”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아는 것들 중 대낮을 무서워하는 게 뭐가 있죠?”
“귀신이오.”
사실 전엔 귀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금장생을 만나고 난 후부터는 귀신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맞아요. 그리고 귀신을 퇴치하는 방법은 햇빛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귀신을 퇴치하는 방법을 써 보자는 거요?”
“그 괴물들을 없앨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좋소.”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익상을 불렀다.
“풍주!”
“네.”
익상이 척사랑 곁으로 다가왔다.
“귀신을 퇴치할 때 사용하는 걸 전부 모아 오시오.”
“귀신이라면…….”
“퇴마사도 찾아서 데리고 오고.”
“알겠습니다.”
익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저들은 태워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태월령은 낮이 되자 다시 시체로 돌아간 환수각 문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에 다시 깨어날 거라고 보는 거요?”
“아직 겪어 보지 못해 알 수는 없지만, 다른 괴물들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게 합시다.”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쿵쿵!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바로 그때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커다란 기둥으로 바닥을 찍는 소리가 같았다.
숨을 고르고 있던 환수각 문도들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둔탁한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저, 저건?”
환수각 문도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것들의 정체는 키가 오 장(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철갑거인이었다.
“어떻게 저런 게…….”
환수각 무인들은 넋을 잃었다.
거대한 철갑거인은 한두 기가 아니었다. 너무 많아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저 거대한 철갑거인이 전란의 시대 때 사용된 무기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환수각 무인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 타이탄들은 진영을 구축했다.
“내가 앞으로 가겠다.”
무혼은 걸음을 옮겼다.
“뭐라고 생각해요?”
태월령은 척사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무 놀라운 일만 일어나다 보니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척사랑은 고개만 저을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아스가 타이탄 진형 선두로 나왔다.
“저건?”
척사랑의 눈이 커졌다.
방금 선두로 나온 건 유일한 여성체로, 크기가 다른 철갑거인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기는 기운은 가장 강했다.
여성체 철갑거인이 저들의 지휘관이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 환수각을 침입한 목적이 뭔가?”
척사랑은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특별히 너희에게 감정은 없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앞에 너희가 있었을 뿐이다.”
무혼은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샤우트 마법이 걸려 있어 환수각 문도들은 전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중원인인가?”
척사랑은 물었다.
“그렇다.”
“우리가 누군지는 아는가?”
“환수각으로, 중원 최강 세력인 춘추오패의 한 곳이라 들었다.”
“그런데도 우릴 공격한다는 건가?”
척사랑은 물었다.
“<‘그런데도’가 아니라 그래서 공격하는 거다.”
“그래서 공격하는 거라면…….”
척사랑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이곳이 환수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격한다는 건 한 가지 이유뿐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힘을 보유했는지 시험하려는 게 분명했다.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무혼은 그랜드크로스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나머지 타이탄들도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들의 검은 모두 삼 장이 넘었다.
“우!”
“우!”
환수각 무인들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오 장 키를 가진 철갑거인의 위용에 질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이다.
각자 검을 그러쥐고 있기는 하지만 공포에 질린 눈동자에서는 싸울 의지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척사랑은 검을 힘껏 그러쥐었다.
파앗!
그리고 전방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의 표적은 금색과 은색으로 이루어진 여성체 철갑거인이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를 잡지 않으면 문도들은 싸울 의지조차 잃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제일 만만해 보이는 건가, 아니면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함인가? 만일 전자라면 어리석은 판단이고 후자라면 허황된 생각이다.”
파앗!
무혼도 바닥을 찼다.
그러자 아스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이 장의 키가 무색할 정도로 아스의 움직임은 빨랐다.
척사랑과 아스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타하!”
척사랑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검에 자신의 전 내공을 실었다.
쿠어어어!
피처럼 붉은 공룡 머리가 나타나 아스를 향해 쏘아졌다. 공룡 머리의 크기는 이 장에 달했다.
중삼식의 일식인 공룡혈사파恐龍血邪破였다.
“차하!”
무혼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전 내공을 동원해 그레이훼일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그레이훼일은 곧바로 찰나의 순간에 아스의 그랜드크로스와 동조되었고, 그랜드크로스의 궤적을 따라 거대한 동물 머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붉은색 이리였다.
무혼이 펼친 무공은 야수마존의 혈랑도법이었다.
캬우우우!
이리의 입이 쩍 벌어지고 괴성이 터져 나왔다.
드래곤과 이리의 머리 형상을 한 강기가 서로를 향해 쏘아져 갔다.
콰앙!
그리고 곧바로 충돌했다.
“커억!”
척사랑은 비명과 피 화살을 동시에 뿜어내며 뒤편으로 날렸다.
오 장(15미터)여를 날려 간 그녀는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으로 내려섰다.
쿵쿵쿵쿵!
척사랑보다 충격을 덜 받았지만 아스도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음!”
무혼은 신음을 내뱉었다.
비릿한 냄새가 목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그는 얼른 꿀꺽 삼켰다.
“하아!”
척사랑은 입가로 흐른 피를 훔치면서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검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왔다.
“차앗!”
무혼 역시 척사랑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아스가 든 그랜드크로스가 피처럼 붉게 변했다.
캬캬캬캬!
쿠어어어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공룡과 이리 머리 수십 개가 서로를 향해 쏘아졌다.
콰앙! 콰앙! 콰콰쾅!
둔탁한 소성이 터지면서 공룡 머리와 이리 머리가 폭발했다.
바닥이 푹푹 꺼지고 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으윽!”
“크윽!”
이번에도 역시 척사랑은 뒤편으로 십여 장을 날려 가고 아스는 다섯 걸음 물러났다.
두 사람의 상태도 처음과 비슷했다.
“타하!”
척사랑은 무혼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몸을 날리며 공룡혈사혈恐龍血邪血을 펼쳤다.
“그 정도로는 날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텐데.”
무혼은 그레이훼일을 힘껏 그러쥐었다. 그리고 번쩍 들어 올려 내리그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이리 머리가 각 방향에서 나타나 척사랑을 향해 날아갔다.
쩍 벌어진 이리의 입에서는 금세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수십 개의 이리 머리와 척사랑이 펼친 공룡 머리가 맞닥뜨렸다.
공룡 머리는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며 이리 머리를 물어뜯었다.
콰악! 콰악! 콰악!
이리 머리 두어 개가 부서지는 사이 다른 이리 머리들이 공룡 머리를 물어뜯었다.
이리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공룡 머리가 뭉텅뭉텅 뜯겨 나갔다.
“타하!”
척사랑은 내공을 더 주입했다.
쿠어어어!
공룡 머리는 괴성과 함께 이리 머리를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자 이리 머리가 공룡 머리를 쫓아갔다.
머리들이 날아가는 속도는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이기어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