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73화 (173/524)

황금가 (173)

“각주님!”

익상은 척사랑을 보았다.

“우리 환수각은 춘추오패의 한 곳이오. 아울러 찾아온 적을 그냥 보내 줄 정도로 너그럽지도 않소. 전부 없애시오.”

“존!”

익상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도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전부 없애라!”

끼익!

대문이 활짝 열렸다.

“와아아!”

“우와아아!”

환수각 문도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양측은 중간 지점에서 맞닥뜨렸다.

창! 창창창! 창창!

무기와 무기가 부딪쳤다. 그리고 언데드들의 잘려 나간 부위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조금 전에도 그랬지만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언데드들은 환수각 무인의 무기를 받아 내지 못했다.

반 시진도 되지 않아 환문 앞 벌판은 잘려 나간 언데드들로 가득했다.

“서로 붙지 못하게 하라!”

익상은 움직이는 팔 하나를 잡아채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움직이는 부분을 집어 들어 다른 곳으로 던졌다.

“땅을 파고 묻는 건 어떻습니까?”

문도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시행하라!”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 익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수각 문도들은 장력을 쏘아 커다란 구덩이를 팠다. 수십 개의 구덩이가 생겨나고, 그 안으로 언데드들이 던져졌다.

문도들은 빠르게 구덩이를 메웠다. 그들을 다 묻고 나자 언제 싸움이 있었냐 싶게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주변이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수각 문도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은 예리한 눈길로 언데드들을 파묻은 장소를 바라보았다.

“붙는 부분에 흙이 묻었으니까 어쩌면 붙지 않을지도 몰라.”

누군가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근처에 있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생각이 너무 단순했다는 게 드러나는 데는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쑥!

구덩이 속에서 손으로 보이는 물체가 튀어나왔다.

“맙소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기저기서 불호가 흘러나왔다.

파묻었던 것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는 기어 나오고 있었다.

“쳐라!”

익상은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오진은 공격하라!”

“육진은 공격하라!”

“칠진은 공격하라!”

또다시 어둠 속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려왔다.

척척! 척척! 척척! 척척!

그리고 언데드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익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도 그다지 나은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오, 육, 칠진이 또 있다.

앞의 네 개 진을 볼 때 각 진은 오백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럼 천오백 명이 더 공격해 온다는 뜻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다지만 희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팔이나 혹은 목을 잘라 내고 방심하면 곧바로 반격을 당했다.

목이 잘려도 살아 움직이는 적과 달리 환수각 문도들은 적의 무기에 찔리면 바로 죽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이 상태로 나가면 남는 건 전말뿐이야.’

익상은 그를 향해 다가오는 언데드를 보았다.

갑옷을 입었는데 중원에서 사용되는 갑옷이 아니다. 들고 있는 검도 중원의 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눈은 푸른 광채를 뿜어낸다. 강시라면 통통 뛰어야 하는데 걷는 건 보통 사람과 다름없다.

“어딘가에 조문이 반드시 있을 거야. 반드시.”

익상은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언데드의 머리를 향해 일 장을 쏟아 냈다.

퍽!

그의 장력은 언데드의 머리를 쳤다.

전력을 다한 장은 대단했다. 언데드의 머리는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익상은 머리가 날아간 언데드를 지켜보았다.

머리가 가루로 변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움직였다. 다만 머리가 없어서인 듯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가루로 만들면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군요.

그때 척사랑의 전음이 들려왔다.

익상은 고개를 돌렸다.

오 장 떨어진 곳에서 척사랑이 적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녀의 공격이 작렬할 때마다 언데드들은 가루로 변했다.

―임시방편밖에 되지 않습니다. 몸통은 여전히 살아 움직입니다.

―그거라도 어디요.

―하지만 문도들 중 저놈들 머리를 가루로 만들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는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혼자 처리하려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진식을 펼치면 달라지오.

“아!”

익상의 얼굴이 밝아졌다. 너무 당황하여 자신들에게 진식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떤 진식이 좋겠습니까?

―서른 명이 한 조가 돼서 펼치는 혼돈음양진混沌陰陽陣이 좋을 것 같소.

“알겠습니다.”

익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혼돈음양진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하나가 돼 펼치는 절진으로, 최소 인원은 서른 명이었다.

“문도들은 혼돈음양진을 펼쳐서 적을 상대하라! 반드시 머리를 공격하되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서른 명이 한 조가 되는 최소 진식을 펼쳐라!”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환수각 무인들은 진식을 구축했다.

구축한 진식의 수는 일흔 개 정도였다. 진식이 완성되자 각 진식에서 아지랑이 같은 운무가 피어올랐다.

“머리를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라!”

“발진!”

“발진!”

“발진!”

발진이라는 외침과 함께 각 진식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떤 진식은 오른편으로 돌고 어떤 진식은 왼편으로 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회전하는 진식으로부터 강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힘은 정확하게 언데드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푸스스! 푸스스! 푸스스!

거의 동시에 일흔 구의 언데드들의 머리가 가루로 변했다.

그 상황은 곧바로 무혼에게 전해졌다.

“진식으로 언데드를 잡을 수 있다는 거냐?”

무혼은 백리장광에게 물었다.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불능으로 만드는 건 가능합니다.”

“불능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거냐?”

“머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땅속으로 들어가 힘을 비축하기 전에는 완전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가루로 만들라고 한 거였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백리장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타르 네 생각은 어때?”

“알고 싶은 게 뭐냐?”

“내가 알기론 언데드를 소멸시킬 수 있는 건 소멸 마법, 신성력, 정령력 세 가지다. 하지만 이곳엔 그런 힘이 없다.”

“그러니까 너는 이곳 사람들의 능력으로 언데드를 없앨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거냐?”

“그렇다.”

“이론적으로는 없앨 수 있다.”

“어떻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건 정령력이다. 정령력이 뭔지 아느냐?”

“정령의 힘을 말하는 거라면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겠지?”

“물론이다.”

“뭔데?”

“정령력은 정령의 힘이 아니라 순수함, 즉 본성이 지닌 힘을 말한다.”

“극양기나 극음기도 정령력과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거냐?”

“시험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럼 중원의 무공 중 몇 가지는 언데드를 없앨 수 있겠군.”

“그럴 거다.”

“하지만 지금 우리와 싸우고 있는 자들은 그걸 모르지. 따라서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겨.”

무혼은 어둠 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패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본 나이트를 출병시켜.”

“알았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언데드 군단 선두 서 있는 자들을 향해 출병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삼백 명이 앞으로 나갔다.

살이 한 점도 없는 해골에 투구를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이들은 상급 언데드 중 한 종류인 본 나이트였다.

“다크 나이트 쉰 구도 출병시켜!”

무혼은 다시 명령을 했다.

“알았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말을 탄 검은 기사 쉰 명이 전방으로 내달렸다.

다크 나이트는 금세 본 나이트를 따라잡았다.

캬아! 크아아! 캬우우!

다크 나이트들이 다가가자 본 나이트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말을 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 나이트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본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는 곧 전장에 도착했다.

그들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척사랑과 태월령이었다.

“가, 각주님.”

태월령은 질겁한 얼굴로 척사랑을 불렀다.

태월령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언니라고 부르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다른 이들처럼 각주라고 불렀다.

“저건?”

척사랑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먼저 본 자들은 본 나이트였다. 신법을 펼치는 것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해골 병정들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저들이 진짜인 것 같아요.”

태월령의 시선 끝에 있는 자들은 다크 나이트였다.

타고 있는 말은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검은 철갑을 두른 상태였다.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말과 기사의 눈동자에서는 마치 푸른 보석을 박아 놓은 것처럼 푸른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렇구나.”

척사랑 또한 그자들을 알아보았다.

쉰 명뿐이지만 저들을 없애느냐 못 없애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 날 것 같았다.

“저들에 대해서 아세요?”

“아니.”

척사랑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왔을까요?”

“중원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 생각해?”

“언니는 저런 자들이 있다는 문헌이나 기록을 본 적 있어요?”

“없어.”

척사랑은 고개를 저었다.

나름 무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저런 존재가 있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풍기는 기운을 보면 강시가 분명한데, 강시는 절대 저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 녀석은 알지 몰라요.”

“누구?”

“강신술사요.”

“장생?”

“네.”

“어쩌면.”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 앞에 있는 자들 중 생기를 흘리는 자는 아무도 없다. 게다가 죽지도 않는다.

옛말에 죽은 자는 다시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저들은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군대, 아니 죽지 않는 자들로 이루어진 군대다.

“저자들, 낮에도 활동이 가능할까요?”

태월령이 물었다.

“낮?”

“강시는 낮엔 활동을 못 하잖아요.”

“맞아. 강시에는 그런 약점이 있었지.”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강시는 아니지만 어둠의 존재라는 건 다르지 않다.

어둠의 존재의 최대 약점은 햇빛이고, 해가 뜨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사랑은 익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크게 소리쳐 문도들 모두가 알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했다가 해가 떴는데도 사라지지 않으면 문도들은 싸울 의지조차 잃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멸을 당하고 만다.

지금 당장 사기는 오르겠지만 너무 위험한 방법이었다.

일단 책임자만 알고 있는 게 나았다.

“방어 대형을 구축하라!”

“방진을 구축하라!”

“방어 대형으로 바꾼다!”

익상의 전음을 받은 각 진식의 수뇌들은 유지하던 공격 진형을 방어 진형으로 바꿨다.

창! 창창! 창창창!

“크악!”

“아악!”

“으아악!”

휘익! 휙! 휘이익!

처절한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오고, 언데드들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휙!

무인 한 명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떨어지는 언데드 머리를 발로 차 멀리 날려 버렸다.

죽여도 살아나는 언데드들을 처리하는 건 현재로선 그 방법뿐이었다.

언데드는 본능적으로 머리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고, 그사이 환수각 무인들은 다른 언데드를 처리하거나 한숨 돌렸다.

수비 진형으로 바꿨지만 희생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특히 해골로 이루어진 본 나이트들이 뛰어들자 환수각 쪽이 더욱 불리해졌다.

“저들은 내가 맡아야겠지.”

척사랑은 말을 탄 자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명령을 기다리는 건지, 다크 나이트들은 전장을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죽은 자들과 죽은 말이군.”

척사랑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한겨울이다. 그런데 쉰 마리 말 중 입김을 내뿜고 있는 말은 한 필도 없다.

모두 죽은 자들이란 뜻이다.

척사랑은 검을 뽑았다.

푸른 검면을 가진 그 검은 자신의 별호와 같은 천사天邪다.

“내 손에 천사가 들리면 나는 천하무적이다!”

천사랑은 검을 가슴 앞으로 세웠다.

스아악!

그러자 천사 끝에서 푸른색 검강이 솟구쳤다.

다크 나이트 중 한 명이 척사랑을 내려 보았다.

척!

척사랑에게서 뭔가를 느낀 듯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쿠어어!

그러자 전투마가 괴성을 내지르며 앞발을 쳐들었다.

일반 적인 말이 내지르는 소리와는 한참 달랐다. 마치 지옥 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그 말의 괴성이 신호탄이었다.

쿠어어! 쿠어어 쿠어어!

좌우측에 늘어서 있던 말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척! 척척척! 척척!

말들이 똑바로 선 순간 다크 나이트들은 일제히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스스스스! 스스스스! 스스스스!

검은 기운이 그들의 손 쪽으로 모여들더니 곧 사 미터 길이의 기다란 창으로 변했다.

그것은 기사들의 창이라 부르는 랜스였다.

“크아아아!”

다크 나이트 중 한 명이 창을 쳐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다크 나이트를 태운 말 쉰 마리가 일제히 척사랑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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