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70)
폭풍 전야
다음 날.
이른 이침부터 사람들은 대연무장으로 모였다.
승천비무 기간에는 아침을 대연무장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처소에서 식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금장생과 아수수가 자리하자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서늘한 아침 기온 때문인 듯 국물 요리가 주를 이뤘다. 금장생은 먼저 국물을 맛봤다.
“어! 시원하다.”
금장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김이 펄펄 날 정도로 뜨거운데도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해지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시원해요?”
아수수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물세 살 맞아요?
그녀는 전음으로 다시 물었다.
―여기서 나이가 왜 나옵니까?
―스물세 살 때는 국물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뜨거운 목욕물 속으로 들어가서는 ‘어! 시원하다!’라는 말을 못 하는 게 정상이거든요.
―시원한 걸 시원하다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금장생은 다시 국물을 마시며 ‘어! 시원하다.’를 연발했다.
국물을 마시고 포막이라 부르는 밀가루로 만든 딱딱한 빵을 잘게 뜯어 남은 국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빵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수수 앞으로 밀었다.
“저 먹으라고요?”
“포막이 딱딱해서, 잘못하면 손가락 끝이 부르틀 수도 있거든요.”
그러고는 아수수 앞에 놓여 있던 국물과 포막을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섬서성 사람 다 됐네요.
아수수는 빙긋 웃었다.
―왜요?
―섬서 사람만이 포막을 이렇게 잘게 쪼개거든요.
―타지에서 온 사람은 잘게 쪼개지 않는 모양이죠?
―손도 아프고 귀찮기도 하잖아요.
―하긴 그렇겠네요.
“잘 먹을게요.”
아수수는 숟가락으로 포막과 국물을 함께 떠 입으로 가져갔다.
그사이 금장생은 포막을 잘게 쪼개 국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포막은 먹기 좋을 만큼 부드러워졌다.
“이제…….”
금장생은 숟가락 가득 포막을 떴다.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갑자기 북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북소리에 깜짝 놀라는 바람에 들어 올리던 숟가락에서 국물과 포막이 쏟아졌다.
“썅!”
금장생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아수수는 깜짝 놀랐다. 금장생이 욕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난…….”
금장생은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밥 먹을 때 건드는 새끼가 제일 싫어!”
금장생은 고개를 홱 돌렸다.
북을 치고 있는 자는 남천장 천장 적운영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적운영은 북채를 내려놓았다.
“남천장의 천장 적운영, 감히 마왕께 비무를 청합니다!”
적운영은 정중하게 소리쳤다.
“씨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거드는 법인데.”
금장생은 대접과 적운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밥을 먼저 먹기로 결정을 한 듯 숟가락으로 포막과 국물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저기…….”
아수수가 금장생을 불렀다.
“어쩌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다 먹고 나가겠습니다.”
금장생은 음식을 천천히 입안으로 집어넣고 자근자근 씹었다.
“도전을 청합니다, 마왕!”
금장생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적운영은 다시 소리쳤다.
“아무튼 예의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어.”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릇을 들고 단상 앞으로 갔다. 그리고 단상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었다.
연무장과 관중석에 앉아 있던 서천왕부 가솔들은 금장생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거 먹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금장생은 음식을 가리키며 물었다.
“중천장은 무공을 잃었소, 마왕.”
“그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당신이 진짜 적천영이었다면 자신의 형을 절대 폐인으로 만들지 않았을 거요.”
“동생 자리가 탐이 나서 가솔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형은 아무 잘못이 없고, 정당한 대결에서 승리한 나는 잘못했다는 말 같군요.”
“당신은 무공을 파훼하지 않고 끝낼 수 있었소. 아니, 진짜 적천영이었다면 절대로 형의 무공을 파훼하지 않았을 거요.”
“내가 가짜란 말입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소.”
“마왕이 가짜라고 주장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었어야 하는데, 제시할 수 있습니까?”
“내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건 당신의 발이오.”
‘응?’
금장생은 내심 흠칫했다.
설마 발 크기를 들고 나올 줄은 몰랐던 탓이다.
사실 그는 적천영의 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아수수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적운영이 발 크기를 들먹이자, 전에 손금 때문에 사미염에게 들켰던 게 떠올라 공연히 찜찜했다.
“내 발이 어쨌다는 겁니까?”
“내 동생의 발 크기는 한 자가 조금 넘었소. 그런데 당신의 발은 아무리 봐도 한 자에 미치지 못하오. 거기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겠소?”
적운영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금장생에게 가짜라고 몰아붙이는 건 지금 당장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날 밤 적지영이 일단 운을 떼 놓으라고 해서, 먹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억지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
이른바 사전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서천왕부 가솔들은 단 한 번도 마왕을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가솔들은 가짜 마왕이란 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좀 더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면 생각이 변하게 된다.
자신과 적지영이 노리는 건 바로 그 점이었다.
“내가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그런 억지를 부리면 안 됩니다, 남천장. 내 발 크기는 한 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네가 가짜라고 확신하고, 승천고를 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바로 비무대로 나와라!”
적운영은 급기야 반말을 했다.
“어쩔 수가 없군요.”
금장생은 숟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비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금장생과 적운영은 비무대 중앙에 마주 보며 섰다.
“발 크기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금장생은 적운영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적천영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느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내가 적천영이 아니라고 한 사람은 당신네들 삼형제뿐입니다. 그럼 나는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적천영이 되는 거잖습니까?”
“…….”
적운영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금장생의 말이 맞다.
다수가 인정하고,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반박할 수가 없다. 원래 신분이 누구이건 간에 지금은 적천영이다.
“유마환용대법으로 얼굴을 바꾼 거 아니냐?”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유마환용대법은 얼굴과 골격까지 바꿀 수 있는 대단한 무공이긴 하지만, 내공을 끌어 올리지 않으면 본래 얼굴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너는…….”
“밤이고 낮이고 내공을 끌어 올린 것과는 상관없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그렇다.”
“그건 어려운 게 아니니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단전을 하나 더 가지고 있습니다.”
“단전이 하나 더 있다고?”
“네. 그리고 그 단전은 내 의사완 상관없이 꾸준히 내기를 흘려 보내 주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믿어 달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단전에 축기된 기를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것 때문에 패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금장생의 말에 적운영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둘의 이야기를 들은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두 사람 주위도 강기로 둘러싸여 있어, 말이 새어 나가지 않습니다.”
적운영의 내심을 눈치챈 금장생이 말했다.
“철저하구나. 하지만 나는 네놈이 가짜라는 걸 반드시 밝히고 말 것이다.”
적운영은 금장생과 거리를 벌렸다.
둥!
바로 그때 비무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운영은 내기를 끌어 올렸다.
“혹시 내가 팔전의 관문을 전부 통과했다는 걸 아십니까?”
“알고 있다.”
“팔전을 통과한 것만 알았지 그곳에서 무공을 얻었다는 건 몰랐을 겁니다.”
“무공이라고?”
“바로 이겁니다.”
금장생은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린 채 적운영을 향해 폭사됐다.
순식간에 십 장의 거리를 좁힌 그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목전木殿에서 얻은 삼백육십혈부였다.
스아악!
삼백예순 개에 달하는 도끼 형태의 부강斧罡이 비처럼 적운영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차앗!”
적운영은 온 힘을 다해 양팔을 머리 위로 쳐올렸다. 그러자 우산 형태의 강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강기의 지름은 두 자 정도로, 적운영의 몸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카앙! 카앙! 카앙!
부강이 우산 형태의 강기를 때리면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윽! 으윽!”
적운영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금장생이 일 초부터 전력을 다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 있는 마광단 또한 어느 정도 비무가 진행된 후 기회를 봐서 복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마광단을 복용할 시간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카앙! 카앙! 카앙! 카앙!
“으윽! 크윽!”
적운영은 계속해서 신음을 내뱉었다.
―운영아, 거기서 빠져나와라.
적지영이 다급하게 전음을 보냈다.
위에서 내리찍는 부강 때문에 적운영의 다리가 땅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싶소, 누님.’
적운영은 이를 악물고 전 내공을 우산 형태의 강기로 밀어 넣었다.
“이것도 있습니다.”
금장생이 왼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강刀罡이 적운영을 향해 쏘아졌다. 수십 개의 도강이 얽히고설켜 마치 벽이 나아가는 것 같았다.
도전屠殿에서 얻은 소도笑刀를 펼쳐 만든 도벽이었다.
“타하!”
적운영은 발은 그대로 두고 몸을 뒤로 눕히는 철판교 수법을 펼쳤다. 두 발이 땅속으로 파고들어 간 상태라 철판교 수법을 펼치는 건 더 쉬웠다.
등이 땅에 닿을 정도로 드러누운 적운영의 위로 도벽이 지나갔다.
강기 벽이 모습을 감추자마자 적운영은 벌떡 일어났다.
―피, 피해!
또다시 적지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녀의 전음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 저!”
“저건…….”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왜? 허억!”
적운영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수십 개의 부강이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부강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던 우산 형태의 강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강기가…….”
적운영은 절망적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조금 전 강기로 이루어진 도벽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이 만든 우산 형태의 강기를 부숴 버린 것이다.
아직도 수십 개의 부강이 남았는데 자신은 방패를 잃고 말았다.
“피, 피해야…….”
그는 자리를 뜨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땅속에 박힌 발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부강이 들이닥쳤다.
이제 남은 건 맨손뿐이었다.
“차하!”
적운영은 연속해 주먹을 내질렀다.
캉! 캉캉캉! 캉캉!
강기로 감싼 적운영의 주먹에 부강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 정도로는 날 어떻게 할 수 없다!”
적운영은 고함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부강의 수는 너무 많고 떨어지는 속도로 빨랐다. 금장생이 계속해서 삼백육십혈부를 펼친 탓이었다.
“커억!”
어느 순간 적운영이 비명을 내질렀다.
주먹을 감싼 강기가 약해지면서 도끼 형태의 강기가 그의 살을 조금 파고든 것이었다.
그의 양 주먹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운영은 멈추지 못했다. 멈추는 순간 머리가 쪼개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악! 으악! 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양 주먹을 계속해서 내질렀다.
뚝!
비처럼 쏟아지던 공세가 갑자기 그쳤다.
“휴우!”
적운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숨을 내쉰 건 내기가 단전으로 되돌아갔다가 나오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이제 양팔로 내기를 보내기만 하면 싸울 준비가 끝난다.
그렇게 되면 주먹은 다시 완벽한 강기로 둘러싸일 테고, 부강을 방어할 수가 있다.
퍼억!
내기가 두 손으로 들어가는 순간 둔탁한 소성이 단전에서 터져 나왔다.
“크아악!”
적운영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 뜬 채 뒤편으로 날려 가는 그의 입에서 피가 꾸역꾸역 넘어왔다.
휙!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곧 그는 날아가는 적운영 옆에 도착했다. 그는 적운영과 같은 속도로 몸을 날리면서 오른 다리를 번쩍 들었다.
“한창 맛있게 밥 먹고 있는 사람을 건들면 이렇게 됩니다.”
금장생은 들어 올린 발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그의 발뒤꿈치가 적운영의 단전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아!”
조금 전보다 더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