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69)
금장생의 상체는 온통 붉은 멍으로 가득했다. 마치 매달아 놓고 사방에서 몽둥이찜질을 한 것 같았다.
“그자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몸이 이러면 진작 말해서 치료를 하든지 해야지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아수수는 빽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곧 울 것 같았다.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리고 승천비무 시작인데 몸이 조금 안 좋다고 가주라는 자가 자리를 뜨면 되겠습니까. 한 조직의 수장이란 자리는 조직을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고, 몸이 아프다고 혹은 개인적인 볼일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비우거나 떠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고요.”
조직의 수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배운 상단주의 마음가짐이다.
크면서 아버지가 한 그 말은 상단주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조직을 거느린 모든 수장에게 해당되는 거라는 걸 배웠다.
“그,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아수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금장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쯧! 나이가 몇인데 울고 그러십니까. 당신은 울보군요.”
금장생은 아수수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제발 몸조심하세요. 당신이 다치면 난…….”
아수수는 금장생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장생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둘의 입술이 맞닿아 있었다.
움찔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 금장생의 눈을 바라보던 아수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둘의 입술이 하나로 합쳐졌다.
처음 입맞춤은 부드러웠다. 그러다가 서로의 열기에 취해 입맞춤은 격정적으로 변했다.
한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
드르륵!
의자가 한편으로 밀려나고 두 사람은 마차 바닥에 드러누웠다. 여전히 둘의 입술은 하나인 채였다.
금장생의 손이 아수수의 앞섶을 풀었다. 곧 아수수의 상체는 거의 벗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금장생의 손이 자연스럽게 아수수의 가슴을 그러쥐었다. 그사이 아수수의 손도 금장생의 가슴을 더듬었다.
“억!”
서로의 몸을 더듬는 순간 금장생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상체를 더듬던 아수수의 손이 다른 부분에 비해 심하게 멍이 든 부분을 건든 것이었다.
“어?”
그제야 두 사람은 정신을 차렸다.
“아, 아파요?”
아수수는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험! 괜찮습니다.”
금장생은 얼른 아수수의 옷을 여며 주었다.
“킥!”
“풋!”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밖에서 다 듣고 있는데 민망한 일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그러게요.”
“저희는 귀를 막고 있어서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마부석에서 거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험! 아직 멀었습니까?”
금장생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두 분은 좀 더 즐기셔도 됩니다. 이럇!”
거석은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의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그런데 아까 흑철마신 적무황과 무영유마 적보영의 유물이 서천비고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맞아요?”
금장생은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물었다.
“그런 말이 내려오긴 해요. 왜, 찾아보려고요?”
아수수는 되물었다.
“승천비무 끝나면 한번 들러 보려고요.”
“이천 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아무도 찾지 못했다는 거 아세요?”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 그들과 다를 수도 있잖습니까. 아무튼 승천비무 끝나면 나는 서천비고에서 살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일은 누가 하고요.”
“부부는 일심동체란 말 모르세요?”
“저보고 하라는 건가요?”
아수수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네.”
“알았어요. 한번 해 볼게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을 위해서 마가 업무를 배우라는 말이었다.
곧 마차는 서천왕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처소로 올라갔다.
“참! 천장에 있는 녀석들은 다 처리했습니다.”
옷을 벗다 말고 금장생이 말했다. 감시자들을 없앤 사람은 백팔무영비 비주 사미염이었다.
“이제 따로 목욕해도 되겠네요?”
아수수가 말했다.
“맞아요. 그런데 섭섭한 것 같은데요?”
금장생은 아수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 설마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데요. 이제 욕실에서 마음대로 누울 수도 있잖아요.”
“그래요? 나는 아쉬운데.”
“아쉬워요?”
“엄청난 몸매를 감상하고 만지고 안을 기회가 이제 없어지는 거잖아요.”
“풋! 말로만.”
아수수는 피식 웃었다.
말은 음흉하게 하지만 눈빛은 지극히 맑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뿐이다.
“제가 먼저 씻겠습니다.”
금장생은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물을 데운 다음 옷을 벗어 놓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노곤해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곳을 떠나느냐 하는 거였다.
사실 이곳에 올 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아수수가 마왕 역할을 해 달라고 하였고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뿐이다.
이곳에서 와서도 다르지 않다.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았다.
적지영 일행이 알아서 공격을 해 왔고, 막아 내는 도중에 그들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가장 큰 문제였던 아수수의 무공도 석보산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적풍영이 도전을 해 왔다. 이제 두 사람, 적지영과 적운영만 처리하면 완벽하게 정리된다.
물론 부수적인 일들이 남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가는 게 문젠데.”
금장생은 물속으로 머리를 담갔다.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어려운 상황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나갈 수는 없다.
‘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는 거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살하는 건 말이 안 되고, 어디가 아파서 죽는 것도 이상하다.
그나마 좀 나은 건 절벽 같은 데서 떨어져 죽는, 즉 사고로 죽는 건데, 허공답보 신법을 펼치는 절대 고수가 사고를 당한다는 것도 웃기다.
‘제길, 절대 고수는 죽고 싶어도 방법이 없네. 그래도 반드시 죽어야 해. 반드시……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늘씬한 다리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이 시간에 욕실로 들어올 사람은 아수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어?”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수수를 보았다. 그녀 역시 알몸이었다.
―상화를 잊고 있었어요.
아수수는 물속으로 앉으며 전음을 보냈다.
―상화요?
―상화는 제가 당신과 함께 목욕하는 걸 즐긴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함께 목욕을 하지 않으면 상 소저가 의심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네.
―어쩔 수 없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가 한 번 정도만 함께 목욕하면 될 거예요.
―저야 뭐…….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좋다고요?
―흐흐흐!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 음흉한 웃음은 뭐죠?
―제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십니까?
―그러면서 가슴은 왜 보는 건데요?
―그거야 잘 있나 보려고…….
―내 가슴을 당신이 왜 걱정하는데요?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죠?
아수수는 금장생의 하체 쪽으로 시선을 주며 소리쳤다.
―절대 아닙니다. 전 그렇게 음흉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저건 뭔데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하체를 가리켰다.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 제 잘못이라는 건가요?
―그 몸 잘못입니다.
금장생은 턱으로 아수수의 몸을 가리켰다.
―흥!
아수수는 금장생을 흘겨보았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등이나 좀 밀어 주세요.
금장생은 욕조 가운데로 이동해 앉았다.
―알았어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뒤로 돌아갔다.
금장생의 등에도 붉은 멍이 수십 군데 들어 있었다.
“상화야!”
멍을 잠시 바라보던 아수수는 시비를 불렀다.
“네, 마마.”
“여의전으로 가서 타박상에 쓸 약을 달라고 해서 가져와라.”
“타박상이면…….”
“마왕의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하면 될 거야.”
“알았어요, 마마.”
상화는 곧바로 방을 나갔다.
“아프죠?”
아수수는 금장생의 등에 물을 끼얹으며 물었다.
“적풍영 그자는 지금 자살하고 싶을 겁니다.”
“내상을 심하게 입었나요?”
“내상 정도가 아닙니다.”
“그럼?”
“여길 박살 내 버렸습니다.”
금장생은 손을 뒤로 돌려 아수수의 단전을 만졌다.
“저, 정말 무공을 파훼해 버렸어요?”
“네. 그자는 다시는 마왕 자리를 넘보지 못할 겁니다.”
“그럼 시누는 지금 길길이 날뛰고 있겠네요?”
“시누?”
“적지영 말이에요.”
“그럴 겁니다.”
금장생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몸 상태는 어때요?”
“몸 상태는 혈기 왕성하다는 걸 조금 전에 보았잖습니까.”
“제가 말하는 건 발기 능력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아수수는 빽 소리쳤다.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며칠 쉬면 나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적운영이나 적지영이 당신에게 도전하면 이길 수 있어요?”
“그들은 절대 도전하지 못합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건거요?”
“네.”
“그래도 도전을 하면…….”
“그럼 전 훌륭한 사냥꾼이 되겠지요.”
“사냥꾼?”
“덫 하나로 맹수 두 마리를 잡게 되는 거잖습니까?”
“당신은 덫을 놓는 사냥꾼이라는 거네요?”
“하지만 그들은 걸려들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그들은 바보가 아니거든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등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적지영이 길길이 날뛸 거라고 하였던 두 사람의 예상은 맞았다.
“그, 그게 정말이냐?”
적지영은 격앙된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와 적운영이 있는 곳은 적풍영이 누워 있는 옆방이었다. 적풍영은 기절한 상태였다.
“네.”
적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도 불가능하다더냐?”
“단전이 갈가리 찢겼답니다. 공청석유보다 더한 영약이 있다고 해도 치료할 수 없답니다. 형님은 양민이 되었습니다.”
“그 죽일 놈이!”
적지영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놈을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누님.”
“어떻게 하자는 거냐?”
“내일 제가 도전을 하겠습니다.”
“풍영도 못 해 봤던 놈이다.”
“하지만 놈도 내상을 입은 상탭니다. 제가 더 유리합니다.”
“모든 가솔들이 널 비난할 게다. 마왕으로 인정하지도 않을 거고.”
“굳이 제가 마왕이 될 필요가 없지요. 저는 마왕을 이긴다고 해도 마가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면서 물러나면 됩니다. 그 자리로 누님이 올라가면 되고요.”
“네 희생을 딛고 마왕이 되라는 거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린 한꺼번에 죽습니다. 이번에 놈을 죽이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되느냐?”
“누님은 마광단 두 개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두 개?”
“네.”
적운영은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