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67화 (167/524)

황금가 (167)

사냥

“와아아아!”

“우와와와와!”

금장생의 공격이 성공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적풍영은 숨을 몰아쉬며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그만 패배를 시인하고 내려가는 게 어떻습니까?”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다 보여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적풍영은 버럭 소리쳤다.

그의 외침이 퍼져 나가지 대연무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힘으로 걸어 내려가기 힘들어집니다, 중천장.”

“비무대에서 내려갈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너다.”

곧 그의 양손이 붉게 변했다. 마치 핏물 속에 손을 담갔다가 꺼낸 것 같았다.

“저건…….”

서천왕부 가솔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이 시뻘겋게 변하는 무공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적순우와 사사봉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의 무공을 장남에게도 전수해 준 모양이지?”

사사봉이 적순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녀가 말한 장남의 무공이란 적수마신만마공이었다.

“아냐.”

적순우는 고개를 저었다.

“달라?”

“응. 적수마신만마공은 극성에 이르면 오 장 크기의 허상이 생겨나. 그리고 적수는 팔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무공이야. 저 아이처럼 손만 붉게 변하지 않아.”

“그럼 저건 무슨 무공이지?”

“혀, 혈옥수다!”

사사봉의 질문에 대답을 하듯 놀람에 찬 외침이 관중석에서 흘러나왔다.

“맙소사.”

적순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다.

“왜?”

사사봉이 적순우를 올려다보았다.

“맞아.”

적순우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뭐가 맞다는 건데?”

“혈옥수 맞다고.”

“혈옥수가 그렇게 대단한 무공이야?”

“마가삼천수라고 들어 봤지?”

“그건 전설일 뿐이라고 했잖아. 적수의 또 다른 이름이 혈수라고 하였고.”

“아냐.”

적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응. 혈수라고 부르는 혈옥수는 실제로 존재했어. 혈수신마血手神魔 적상이라고 들어 봤어?”

“천백 년 전 무인이잖아. 마가 역사상 가장 강했던 다섯 무인 중 한 명이고.”

“그분이 창안한 무공이 혈옥수야.”

“그래? 그런데 왜 알려지지 않은 거지?”

“실전됐으니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서천장이 찾아냈다는 거네?”

“그런 것 같아.”

적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혈수가 왜 유명해진 거지?”

“마가 가주무공의 하나인 양극마신만마권을 이긴 무공이거든.”

“정말 혈수가 양극마신만마권을 이겼어?”

“양극마신만마권을 창안하신 양극천마 적좌윤 선조를 이긴 건 아니고, 그분의 무공을 익힌 가주를 이건 거야.”

“그럼 저 무공이…….”

사사봉의 시선이 비무대로 향했다.

적풍영의 손은 시뻘겋다 못해 금세라도 피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차앗!”

바로 그 순간 적풍영이 금장생을 향해 내달렸다.

달려가는 사이 그의 양팔은 춤을 주는 것처럼 기이한 호선을 그렸다. 그의 손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붉은 광채가 잔상으로 남았다.

적풍영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오른손을 횡으로 쓸었다.

“와아!”

갑자기 관중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른팔을 횡으로 쓸었을 뿐인데 수십 개의 혈장이 차례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일제히 금장생을 향해 쏘아졌다.

파앗!

혈수가 금장생 앞에 이르기도 전에 적풍영은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라 갔다.

파앗!

금장생 역시 바닥을 찼다.

“타하!”

금장생이 솟구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적풍영은 양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펼친 혈수 수십 개는 줄을 지어 가는 기러기처럼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더 이상 금장생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오른팔과 왼발을 천천히 휘둘러 커다란 원을 그렸다.

그의 팔이 원을 그릴 때마다 검은색 권 수십 개가 생겨났다. 검은 주먹들이 바로 마수의 정수였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지며 주먹 형태의 강기가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주먹 형태의 강기가 나아가는 속도는 가공했다.

퍽!

서로 충돌한 혈수와 마수는 둔탁한 소성과 함께 폭발했다.

퍽! 퍽퍽퍽! 퍽퍽퍽!

이어 수십 개의 혈수와 마수가 부딪쳐 폭발했다. 마치 허공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차아아아!”

“타하하하!”

바닥으로 내려선 두 사람은 혈수와 마수를 쏘며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손을 뻗어 낼 때마다 붉은 손바닥과 검은 주먹이 상대를 향해 쏘아졌다.

팡! 팡팡팡! 팡팡팡!

두 사람은 왼손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오른손으로는 공격을 했다.

공격과 수비가 얼마나 빠른지, 육안으로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놈!”

적지영은 주먹을 힘껏 그러쥐었다.

마치 자신이 금장생과 싸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혈수 하나가 금장생의 단전으로 쏘아져 가자 내심 박수를 쳤다.

“죽일 놈!”

하지만 금장생이 어렵지 않게 방어를 해내자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적지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광단이 있는 이상 오늘의 승자는 적풍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넌 오늘 죽는다!’

퍼억!

“크윽!”

“억!”

적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적풍영이 정신없이 뒷걸음질 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냐?

적지영은 전음을 보냈다.

―모르겠습니다.

―몰라?

―제가 아는 마수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명하기 힘듭니다. 아무튼 놈을 잡겠습니다.

―놈이 적수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야 해. 그래야 이번에 실패한다고 해도 또 다른 기회가 생겨.

―알겠습니…….

바로 그때 검은 광채 하나가 오른편에서 쏘아져 왔다.

피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적풍영은 몸을 최대한 틀었다.

퍼억!

검은 광채는 그대로 옆구리에 작렬했다.

푸스스!

옷자락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그러자 검푸른 물체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적풍영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이었다. 그건 도검을 막아 주는 묵린갑이라는 보물이었다.

“커억!”

적풍영은 비명을 내질렀다.

묵린갑이 상처는 막아 주었지만 내부로 파고드는 기운까지 없애 주지는 못했다.

가공할 한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어 와 극심한 통증과 함께 몸 왼편이 마비되었다.

파앗!

적풍영이 허점을 보이자 금장생은 곧바로 바닥을 차고 쏘아졌다.

순식간에 적풍영 앞까지 다가간 그는 양팔을 번갈아 내질렀다.

새카만 색을 띤 강기 두 개가 적풍영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나아갔다.

“하아!”

적풍영은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

그의 양팔에서도 혈수가 진득한 살기를 흘리며 쏘아져 갔다.

이번에 그가 펼친 혈수는 단 두 개였다. 수십 개가 두 개로 줄어들자 혈수에 내재된 힘도 그만큼 강해졌다.

퍼억! 퍼억!

혈수 두 개와 마수 두 개가 동시에 부딪치며 거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쿵쿵쿵! 쿵쿵!

적풍영은 연거푸 물러났다.

“우엑!”

결국 내상을 입은 그는 피를 토했다.

적풍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혈수는 분명 마수를 이긴 무공이다.

다 익히지 못했다면 모를까, 자신은 혈수를 완벽하게 익혔다. 그렇다면 마수가 혈수 앞에서 맥을 못 춰야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맥을 못 추는 건 마수가 아니라 혈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지막 기횝니다, 서천장. 천장 자리라도 보전하려면 지금이라도 패배를 시인하고 내려가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천장은 모든 걸 잃고 쫓겨나게 될 겁니다.”

금장생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럴 거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놈.”

적풍영은 힘껏 이를 깨물었다.

비무를 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돌아가는 것도 이미 늦었다.

정중하게 비무를 청한 것도 아니고 이놈 저놈이라고 소리쳤음은 물론이고 죽여 버린다고까지 하였다.

승리해서 마왕이 되는 것 말고는 현 상황을 수습할 방법은 없다.

툭!

입안에서 뭔가가 터지고 역한 맛의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건 입안에 넣고 있던 마광단이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마광단은 빠르게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스아아아!

적풍영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크크크!”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솟구치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건 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에서 비롯한 웃음이었다.

내부에서 솟구친 힘이 너무 강력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 같았다.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셨군요. 내가 바라던 바였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금장생은 전음을 보냈다.

“어흥!”

힘을 제어하지 못한 적풍영은 짐승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폭사되어 갔다.

그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먹이를 덮치는 맹수 같았다.

순식간에 금장생 앞에 도착한 그는 오른팔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허공을 긁었다.

퍽!

단지 허공을 할퀴듯 긁었을 뿐인데 금장생의 어깨에서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금장생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만일 태극선의가 아니었다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차앗!”

이번에는 적풍영의 왼팔이었다.

앞으로 내민 팔이 정점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금장생의 몸에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적풍영이 펼치는 혈수는 공간을 건너뛰는 무공이었다.

‘대단하네.’

금장생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적풍영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가 펼치는 무공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칭찬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막아 내는 게 더 중요하지. 막지 못하면…….’

적풍영의 손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스악!

방금 그의 신형이 있던 자리로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혈수가 지나갔다.

―이렇게 피하면 되는 거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퍽!

잠시 방심한 순간 가슴에서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윽!”

금장생은 비명을 내뱉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금장생은 비릿한 냄새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군림천하보를 펼쳤다.

“캬캬캬! 내 앞에서 군림천하보를 펼친단 말이냐!”

적풍영은 더욱 광분하여 양팔을 쳐 냈다.

금장생을 쫓아가면서 그가 펼치는 무공 역시 군림천하보였다.

퍽! 퍽퍽퍽! 퍽!

혈수 대여섯 개가 금장생의 몸에 격중했다.

파앗! 파앗!

금장생은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푹! 푹푹!

방금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수십 개의 구멍이 파였다.

“우엑!”

자리를 이동한 금장생은 피를 토했다.

“죽인다!”

적풍영은 살기 어린 외침을 뱉어 내며 금장생을 향해 양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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