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65화 (165/524)

황금가 (165)

“오늘 바로 도전해라.”

적지영은 적풍영을 보며 말했다.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적풍영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적지영이 제갈휴 일로 인해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아수수 그년의 내공이 팔 갑자란 말 못 들었느냐?”

“그 계집의 내공이 팔 갑자인 것과 그놈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만일 아수수 그 계집이 음양대법으로 내공을 넘겨주면 그땐 어떻게 할 테냐?”

“네?”

적풍영의 눈이 커졌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린 모든 걸 잃는다. 지금 우린 명예 운운할 때가 아니다. 가솔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무조건 놈을 없애고 마왕 자리에 올라야 한다.”

“적수와 마왕패도 보여 달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다. 그건 최후의 패로 남겨 두자. 만일 네 말처럼 놈에게 그게 있다면 도전 명분마저 잃을 것 같다.”

“알았습니다. 오늘 바로 도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받아라.”

적지영은 불그스름한 색의 환丸을 꺼내 내밀었다. 크기는 콩알만 했다.

“이건 뭡니까?”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복용해라.”

“내공을 증폭시켜 주는 약입니까?”

“마광단이다.”

“마광단이라고요?”

적풍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마광단魔狂丹.

마광단은 무림 역사상 등장한 증폭단 중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지녔다고 전해진다.

보통 밤톨 크기의 증폭단에 비해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아 입안에 넣고 있다가 필요할 때 깨무는 것만으로 복용이 가능하다.

문제는 후유증이다.

대부분의 증폭단이 그런 것처럼, 일정한 시간 안에 내공 사용을 멈추지 않으면 생명기라고 할 수 있는 진원지기까지 전부 뽑아낸 끝에 결국에 가서는 무공을 잃거나 폐인이 되고 만다.

“마광단을 복용하고 한 식경 안에 싸움을 끝내면, 한 달만 요양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한 식경이 문제지요.”

“안 될 것 같으면 패배를 자인하고 비무대에서 내려오면 돼.”

“그게…….”

적풍영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싸우다가 패배를 자인하고 그만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광단을 복용하지 않으면 되지 뭐가 걱정입니까?”

적운영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광단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다. 그 전에 끝나 버리면 복용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놈은 부상까지 당한 상태잖습니까. 형님은 아무 걱정 말고 가서 몸 상태 점검이나 하십시오.”

적운영은 적풍영에게 말했다.

“운영이 말이 맞다. 너는 가서 운기행공이나 해라.”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을 나와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은 연공관이었다.

그는 연공관 중앙에 있는 단 위에 가부좌를 했다. 그리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적풍영이 연공관에서 나온 건 해가 훌쩍 떠오른 후였다. 운기행공 덕분인 듯 기분이 상쾌했다.

“좋군.”

그는 심호흡을 해 서늘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갔다.

적풍영과 적운영은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어떠냐?”

“이걸 보십시오.”

적풍영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윙!

그의 손바닥에서 대기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새빨간 색으로 변했다.

안쪽이 약간 비쳐 보일 정도로 반투명한 손바닥에서는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건…….”

적지영의 눈이 커졌다.

동생 적풍영이 익힌 무공인 묵옥마수墨玉魔手는 마가오대 무공 중 마왕에게만 전수되는 적수마신만마공 다음으로 강하다.

청옥靑玉, 묵옥墨玉 이 초로 이루어져 있고 적풍영은 거의 다 익혔다. 하지만 손이 피처럼 붉게 변하는 무공은 없었다.

그런데 적풍영의 손이 손을 대면 붉은 물이 묻어날 정도로 붉게 변한 것이다.

“마가삼천수魔家三天手를 기억하십니까?”

적풍영은 웃으며 물었다.

“설마 그게…….”

적지영의 눈이 커졌다.

적수赤手, 혈수血手, 마수魔手 세 가지를 마가삼천수라고 하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혈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혈수를 적수의 또 다른 말이라 치부하고 말았다.

사실 적수와 혈수는 말만 다를 뿐 붉은 손이란 뜻을 지니고 있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인지도 몰랐다. 적지영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적풍영이 혈수라고 말을 한 것이다.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묵옥마수가 절정에 이르자 비로소 붉게 변하더군요. 그래서 이게 우리가 혈옥수라 부르는 혈수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은 거냐?”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거든요.”

“그럼 지금은…….”

“혈옥수의 완성은 투명도에 달려 있습니다. 너무 붉다 못해 속이 비칠 정도가 됩니다. 이게 바로 완성된 혈옥숩니다.”

적풍영은 턱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조금 전 반투명했던 적풍영의 오른손은 아래가 보일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색은 여전히 붉었다.

“호호호! 우리에게 운이 따르는구나.”

적지영은 활짝 웃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운영이 적풍영에게 물었다.

“식사는 마왕 자리에 앉아서 하자.”

적풍영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연무장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무장을 제외한 모든 장소에는 탁자가 놓였고, 탁자 위는 음식으로 채워졌다. 서천왕부 가솔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술과 음식을 먹었다.

“소생이 검무를 한번 춰 보겠습니다!”

가솔들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치고는 비무대로 몸을 날렸다.

척!

비무대로 내려선 사내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휙! 휙휙!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잘한다!”

“멋지다!”

지켜보던 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사내의 검무는 한 식경가량 이어졌다.

“타하!”

그리고 우렁찬 기합과 함께 검무를 멈췄다.

“소속과 이름을 말하시오!”

술을 마시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소생은 남천장 소속 태을검 윤중하입니다.”

사내는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검무 잘 봤습니다, 윤 대협.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참고로 앞으로 닷새 동안 원하시는 분에 한해서 무공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참입니다.”

단상에 앉아 있던 금장생이 윤중하를 보며 말했다.

“제가 펼치는 초식의 단점을 알고 싶습니다, 마왕.”

“윤 대협 무공에 대해서는 뇌검雷劍 마자홍 원로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금장생은 뒤를 돌아보았다.

“저요?”

마자홍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저보다는 경험이 풍부하신 마 원로께서 말씀해 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까요?”

마자홍은 헛기침을 하고는 앞으로 나왔다.

“오!”

“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탄성을 지르는 자들의 얼굴엔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급이나 중급 무인은 대부분 사부가 없다. 서천왕부 무관에서 가르침을 받기는 하지만 단체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즉, 자신의 무공 중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절대 고수로부터 조언을 받는다는 건 기연에 가까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자네 무공은…….”

마자홍은 윤중하의 무공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다.

어떻게 하는 게 낫겠다는, 마지못해 하는 형식적인 조언이 아니었다. 다시 무공을 펼치게 하여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원로님.”

모든 게 끝나자 윤중하는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우는 건가?”

마자홍은 짠한 얼굴로 윤중하를 보았다.

“너무 감사해서 그만……. 이런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랬구먼. 아무튼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구먼.”

마자홍은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별것 아닌 자신의 지식이 젊은 무인에게 도움이 됐다니 마음이 뿌듯했다.

“기분 좋으신 모양입니다.”

금장생은 마자홍을 보며 말했다.

“뒷방 늙은이 말에 저렇게 기뻐할 줄 몰랐거든요.”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셨단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 볼까요?”

“이런 기회라면…….”

“우리 서천왕부에는 사부 없이 무공을 익힌 가솔들이 아주 많을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고수의 조언은 금과옥조가 되지요.”

“그러니까 마왕의 말씀은, 지금과 같은 기회를 만들어 하급 무인들에게 무공을 지도해 주자는 겁니까?”

“방금 마 원로님이 가르침을 주신 것처럼 해도 되고, 학당을 만들어서 강의를 해도 됩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원로들이 수고를 하셔야 하기 때문에 먼저 원로분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무인을 가르치라는 말씀이시군요.”

“쉽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마자홍은 원로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그거 괜찮을 거 같구먼.”

한 원로가 대답했다.

“밥값도 하는 것 같고.”

“난 찬성일세.”

“나도.”

원로들은 찬성했다.

“저도 좋습니다.”

“그럼 가솔들에게 그렇게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단상 앞으로 갔다.

그러자 가솔들은 일제히 금장생을 보았다.

“방금 윤 대협을 보고 느낀 점이 많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가솔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원로들과 의논하여, 사부가 없어서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총 열 개의 학당을 만들고 각 학당의 당두는 원로들이 맡게 될 겁니다. 학당 입학은 공력이 삼십 년 이하인 가솔부터 먼저 하게 될 겁니다. 서천비고도 개방될 겁니다. 교육 기간은 일 년에 두 번, 삼 개월 과정으로 할 생각입니다. 세부 사항은 좀 더 상의를 해서 정식으로 공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많은 기회를 얻어 재능을 꽃피우길 바랍니다.”

“와아아아!”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연무장과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흘러나왔다.

열광적으로 소리치는 이들의 얼굴엔 감격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하급 무인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그들을 더욱 열광케 한 것은 서천비고 개방이란 말이었다.

지금까지 하급 무인은 서천왕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서천비고 출입 자체가 금지되었다. 배우고 싶은 무공이 있으면 상급자에게 말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결재가 떨어지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하고 최종적으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심사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레 포기하는 자들이 많았다.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 수 없는 기연의 장소. 그곳이 바로 서천비고였다.

그런 곳을 개방한다고 하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로들이 가르침을 베풀고 서천비고를 개방하겠다는 말에 모두가 기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적지영의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마왕이 없는 동안 가솔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자발적인 충성은 받아 내지 못했다.

중도파로 있다가 자신에게로 넘어온 자들은 회유와 협박에 굴복했다.

그런데 가짜 마왕은 몇 마디 말로 회유와 협박에 의해 넘어온 자들은 물론이고 처음부터 서천장, 중천장, 남천장 소속 무인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정녕 네놈이 무덤을 파는구나.’

적지영의 눈동자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함성이 그치고 대연무장이 조용해졌다.

“무관을 만드는 건 나중 일이고, 오늘은 비무대로 나와서 자신의 무공을 보여 주시는 분들께 원로분들의 아낌없는 조언이 계속될 겁니다. 조언을 원하는 분은 비무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휙!

무인 한 명이 비무대로 뛰어왔다.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그때 느닷없이 단상 오른편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서천왕부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북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은 적풍영이었다.

처음에 서천왕부 무인들은 적풍영이 왜 북을 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드, 등천명登天鳴이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비명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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