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63)
“저, 정말 오천 냥입니까?”
금장생은 다시 물었다.
가난하게 큰 것도 아니고 중원 삼대상단의 한 곳에서 자랐다. 하지만 저런 엄청난 금액의 패물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여자에게 선물하는 패물들 중에는 만 냥이 넘어가는 것도 부지기숩니다.”
“만 냥이 넘는 보석을 부인에게 선물해요?”
“아닙니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만 냥 이상 나가는 패물 대부분은 유부남이 애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 갑니다.”
“애인에게 만 냥짜리 선물을 하면 부인에게는 도대체 얼마짜리를 한다는 겁니까?”
“아직 결혼 안 하셨죠?”
“그걸 어떻게 아시는데요?”
“결혼한 분은 절대 그런 질문을 하지 않거든요.”
“무슨 말인지…….”
“부인에게 주는 선물은 백 냥에서 이백 냥 사이입니다.”
“……!”
“남자들은 다 그렇습니다.”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오천 냥이란 말이죠?”
“원래는 이것도 애인용으로 만들어진 패물입니다.”
“만 냥을 받아야 하는데 절반으로 깎아 주겠다는 건가요?”
“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래서 여자를 사귀지 않는 거라고!”
금장생은 버럭 소리쳤다.
“네?”
주인은 뜨악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냥 성의 표시만 하려고 해도 오천 냥이라는 거금이 들어가잖습니까. 댁 같으면 그런 돈을 여자에게 쓰겠습니까?”
“사랑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전 오천 냥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금장생이 살 것처럼 보였는지 주인이 적극적으로 나왔다.
“안 사요. 아니, 못 삽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젓고는 몸을 돌렸다. 공연한 짓을 했다는 듯이.
아무 사이도 아니지 않나. 다만 아수수 덕분에 돈도 벌었고, 전에 객잔에서 반지를 맡기던 모습이 마음에 걸려 하나 사 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격이…….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는 돈 먹는 귀신이야.”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천오백 냥에 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 그 금액이면 거의 원가에 가깝습니다.”
주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천오백 냥으로 바로 깎아 줄 게 아니라 조금씩 떨어뜨리면서 흥정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금장생이 너무 단호하게 나가 버리자 자기도 모르게 최대 할인 금액을 불러 버린 것이다.
“원가라…….”
금장생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하던 그는 주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백 냥.”
“네?”
“오백 냥에는 절대 안 팔겠죠?”
“절대 안 판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주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 물건을 구입할 확률은 십 할이었다. 그건 삼십 년 장사 경력을 걸고 확신한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백팔십도 달라져 구매를 포기해 버린다. 수중에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가진 돈이 그것뿐이라서 그럽니다. 물건이 괜찮은 것 같으니까 임자가 금세 나올 겁니다. 그때는 가격을 아무렇게나 후려치지 말고 만 냥 다 받으세요.”
“그 금액엔 절대 못 팝니다.”
손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헐값에 넘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세공비만 해도 천 냥 가치가 나가는 예술품이고, 녹영錄影이라는 이름도 있다. 오백 냥이면 거저나 다름없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금액에 팔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그의 얼굴엔 거절해 줘서 고맙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구입할 생각이 없군요.”
“내가 잠깐 돌아 버린 모양입니다. 다행히 돈을 지불하기 전에 정신을 차렸으니까 천우신조라 할 수 있죠.”
금장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주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패물이 들어 있는 상자를 금장생 쪽으로 밀었다.
“가져가십시오.”
“지, 지금 제게 파신다는 건가요?”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막대한 손해이긴 하지만 첫 거래를 망칠 수는 없습니다.”
“손해를 보는 거니까 팔지 말라니까요?”
“아닙니다. 오백 냥에 드리겠습니다.”
“끙!”
금장생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포장하겠습니다.”
주인은 곧바로 상자를 비단으로 쌌다. 그리고 비단 끈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건 제가 산 게 아니고 주인장께서 강매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말로 진짜 못 이겨서 사는 겁니다.”
금장생은 그렇게 말하고 돈을 꺼냈다.
그가 가지고 나온 돈은 전부 전표였다. 백 냥짜리 전표 다섯 장을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주인은 전표를 확인하고 상자를 금장생에게 주었다.
“많이 파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주인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금장생은 주인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너무 싸게 산 것 같아서 그럽니다.”
“가짜 같다는 말씀입니까?”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왠지 도둑질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그럼 돈을 더 주시면 되잖습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도둑질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보다 더 싫은 건 강탈당한 기분이 드는 거거든요.”
“제게 돈을 더 주면 빼앗긴 기분이 들 거라는 말씀이군요.”
“네.”
“그럼 가져가야지요.”
“나도 백번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여자에게 선물을 하려니까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거군요.”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에 아는 어떤 분이 그러셨거든요. 혼인할 사람도 아닌데 수백 냥짜리 선물을 사 주는 사람은 등신 중의 상등신이라고요.”
“귀신이네요. 사실 제가 망설인 이유가 바로 그 말 때문입니다. 또 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인장께서 아신다는 그분은 지금 어디 사십니까?”
“글쎄요. 바닷가 쪽으로 가신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한 건 저도 모릅니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제 얼굴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금장생은 주인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엔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오른손을 펴는데 손바닥이 보이더군요. 손바닥에 지문처럼 생긴 흉터를 가진 분은 제가 아는 한 한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을 언제 만났습니까?”
“그분과 제가 처음 만난 건 그분이 일곱 살 때부터였습니다. 그분은 그때부터 세공 일을 배우셨지요. 그 일을 배우다가 세도를 잘못 사용해서 손바닥에 상처가 난 거고요. 마지막으로 그분을 본 건 그분이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이월 달에 제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와서는 반지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지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생신에 선물하기 위해 금장으로 반지를 맞추러 간 기억이 났다.
앞에 있는 주인은 금장의 장주 모금충이었다.
금장생은 가게로 들어선 순간 모금충을 알아보았다.
“언제 돌아오신 겁니까?”
모금충은 물었다.
“올해 왔습니다.”
“그럼 아무것도 모르겠군요.”
“그런 셈입니다.”
“사실 저도 황금전가 몰락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래성처럼 풀썩 쓰러졌으니까요.”
“아버진 아무 언질도 없었어요?”
“그 일이 있기 한 달 전에, 황금전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몸부터 챙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지요.”
“그랬군요. 참, 그때 장주가 만들어 준 그 반지, 어머니가 아주 만족해하셨습니다.”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다행군요. 그런데 돈은 나중에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맞아, 그랬지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갔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일로 가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짐 속에 실려 동영으로 갔다.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식사나 해요.”
금장생은 식당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안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른 사람과 함께 나왔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가게를 봐 줄 사람인 모양이었다.
“가시죠.”
모금충은 앞장섰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니까 장주께서는 제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는 말이죠?”
“상행을 다니는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해 보긴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뭐, 잘 살고 있겠지요. 그보다 장주는 어떻게 된 겁니까?”
“쫓겨났습니다.”
“쫓겨나요?”
“황금전가가 망하고 며칠 후, 주인이 바뀌었으니까 전부 나가라고 하더군요.”
“빈손으로 내쫓긴 겁니까?”
“네.”
“그래도 다행히 가게를 열었네요.”
“모아 둔 돈이 조금 있었거든요.”
“형편도 어려운 것 같은데 제가 너무 싸게 가져가는 거 아닙니까?”
금장생은 폐물 상자를 가리켰다.
“그렇다고 말하면 돈을 더 주시겠습니까?”
“아뇨.”
금장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풋! 역시…….”
모금충은 피식 웃었다.
황금전가 사람들은 돈 계산에 있어서 철저하다. 절대 허투루 낭비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금장생도 다르지 않았다. 과거 일하던 사람이 어렵다고 하면 인정을 베풀 법도 하지만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저도 한번 해 본 소리였습니다.”
그때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식당에서 요리하는 것 중 최고급이었다.
“이거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음식을 보고 모금충이 말했다.
“장주가 사는 거 아니었나요?”
“삼공자께서 시키셨습니다. 저보고 시키라고 했다면 소면과 교자를 시켰을 겁니다.”
“그러니까 시킨 사람이 내라는 건가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겁니다.”
“그럼 각자 내죠, 뭐.”
“네?”
“아침에 돈도 벌었잖아요. 그것도 오백 냥이나.”
“돈을 번 게 아니라 사천오백 냥을 손해 봤습니다. 그리고 공자께서는 금반지값을 아직 주지 않았습니다.”
“다시 물러도 됩니다.”
금장생은 상자를 드는 시늉을 했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모금충은 손사래를 쳤다.
“좋아요. 그럼 이 밥은 제가 살게요. 대신 금반지값은 더 이상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모금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거 골동품인가요?”
상자 속 녹영에 대한 이야기였다.
직접 만들었다면 오백 냥으로는 턱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전체가 은색이었습니다.”
“은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는 건가요?”
“저도 그렇게 알았습니다. 다만 모양이 나쁘지 않아서 구입했습니다. 전직이 세공사라 약간만 손보면 이백 냥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집으로 가져와서 닦고 있는데 금빛이 슬쩍 비치더라고요. 그때 은이 아니라 납이 덧씌워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납을 녹여내니까 그게 나왔다는 건가요?”
“네. 비녀 한편에 보면 녹영이란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녹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납을 입힌 거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아서 살펴보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랬군요. 그보다 장사는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삽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해 볼 생각은 없나요?”
“이것저것 구상해 놓은 건 있는데…….”
“자금이 문제라는 거군요.”
“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구상 중인데요?”
“그게…….”
“말해 보십시오. 어찌 압니까, 사업이 마음에 들면 제가 투자를 할지요.”
“정말 투자를 하시게요?”
“일단 설명부터 해 보세요.”
“알았습니다.”
모금충은 그동안 구상한 사업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한 시진 동안 이어졌다.
“그러니까 최소 사업비가 오십만 냥이고, 자리 잡을 때까지 오십만 냥이 더 필요하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으면 연 삼십만 냥 정도의 수익이 예상되고요.”
“경비는 최대한으로 잡았고 수익은 최소한으로 잡은 겁니다.”
“좋습니다. 그 사업의 자금은 제가 대겠습니다. 수익은 원가 제외하고 칠 대 삼으로 하고,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기 지분을 넘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제삼자에게 팔면 동업자에게 모든 권리가 넘어간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을 겁니다. 괜찮습니까?”
“네.”
“좋습니다. 지금부터 장주와 난 동업잡니다.”
금장생은 품속에서 인장 하나를 꺼내 모금충 앞으로 내밀었다.
“중원전장에서 원하는 대로 찾아 쓰면 됩니다.”
“절 믿습니까?”
모금충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제 아버지 말씀이, 작은 가게 주인이 될 사람은 점포 자리를 보고, 중간 상단의 주인이 될 사람은 미래 가치를 보고, 거대 상단 주인이 될 사람은 자기가 부릴 사람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건 사람 보는 안목이란 말씀도 하셨고요. 저는 제 안목을 믿습니다.”
금장생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