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62)
“허!”
금장생은 어이없는 얼굴로 방 안을 보았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띈 건 빈 술병 십여 개였다.
그 옆에서 아수수와 사미염이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얼마나 취했는지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더 가관인 것 두 사람의 옷차림이었다. 아수수의 옷은 흘러내려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사미염은 아예 상의를 벗어 던진 채였다.
술이 취하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상의를 벗어 버린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장생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수수였다.
“어? 서방님 오셨네.”
아수수는 배시시 웃었다.
“술 못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금장생은 아수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불덩어리 같았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서 못 마셔요.”
“그런 사람이 저렇게 많이 마셔요?”
금장생은 술병을 가리켰다.
두 여자가 마신 건 약한 술도 아니었다. 어지간히 술을 마신다는 자들도 두어 병이 한계라는 독주였다.
그런 술을 둘이서 열 병이나 마시고도 멀쩡해 보인다.
저번에 약왕 유인태와 밤새도록 술을 푼 사건도 그렇고, 아무래도 술을 못 마신다고 하였던 건 거짓말 같았다.
“우리가 마신 거 아니에요. 미염아, 그렇지?”
“그년 말이 맞아요. 우린 각각 한 병씩밖에 안 마셨어요.”
사미염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다른 술병은 다 뭡니까?”
“그걸 우리가 알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마 우리 둘을 훔쳐보던 녀석들이 마시고 도망간 게 분명해요. 보세요, 이렇게 멋진 가슴을 가졌는데 훔쳐보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사미염은 제 가슴을 한껏 내밀고는 두 손으로 받치는 시늉을 했다.
“맞아, 맞아. 우리 둘의 가슴을 훔쳐보던 음흉한 사내 녀석들이 훔쳐 먹고 간 게 분명해.”
“감당도 못 할 술은……. 이제 그만들 마셔요.”
금장생은 술병을 치웠다.
“그런 건 나중에 치워도 되니까 일단 한잔해요.”
아수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금장생을 끌고 가더니 옆에 앉혔다.
“나는 별로 술 생각 없는데…….”
“가솔들 술은 만 잔이나 받아 마셨으면서 우리 술은 못 받겠다는 거예요?”
사미염은 금장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 친구들은 두 분처럼 이렇게 취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못 마신다는 거…… 우욱!”
사미염은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껏 마셨던 술과 안주가 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요, 욕실로 가세요.”
금장생은 얼른 사미염 앞으로 갔다.
“우엑!”
금장생이 바로 앞으로 다가온 순간 토사물이 쏟아졌다. 토사물이 가장 먼저 덮친 곳은 금장생의 얼굴이었다.
“이런 젠장!”
“우엑! 우엑!”
사미염은 계속 토했다.
“야, 야! 이년아! 토하려면 욕실이나 화장실로 갈 것이…… 우엑!”
사미염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나무라던 아수수도 결국 토를 하고 말았다.
두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연신 구역질을 해 댔다. 방 안은 순식간에 토사물 냄새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두 여자는 자신들이 쏟아 낸 토사물 위로 드러누워 버렸다.
“돌아 버리겠네.”
금장생은 일그러진 얼굴로 두 여자를 보았다.
“이제 여기서 오줌만 싸면 완전히 개가 되는 거…… 아미타불!”
금장생은 불호를 읊었다.
드러누운 두 여자 아래쪽으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토사물 냄새가 워낙 지독해 오줌 냄새는 나지도 않았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냐.”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수수와 사미염을 한꺼번에 걸머지고 욕실로 향했다. 바닥에 내려놓고 두 여자의 뺨을 번갈아 가며 때렸다.
정신 줄을 놓아 버린 듯, 두 여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동영에서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는데 ”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두 여자의 옷을 벗겼다.
상체 하체 할 것 없이 토사물로 범벅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벗겨 낸 옷을 한편으로 치워 놓고 욕조 물에 손을 집어넣고 이화태양강으로 데웠다. 물은 금세 따뜻해졌다. 바가지를 가져와 물을 퍼 두 여자 몸에 끼얹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탓에 토사물은 쉽게 씻겨 내려갔다.
문제는 피부에 밴 냄새였다.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는 냄새 제거에 탁월한 조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녹색 가루가 든 병을 꺼냈다. 녹두 가루와 녹차 가루를 반반씩 섞어 만든 조두였다.
“이걸로도 안 되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닙니다.”
금장생은 먼저 조두를 두 여자의 몸에 쏟았다.
그런 다음 물을 머금고 두 사람 몸 위로 품었다. 조두는 물기를 머금고 몸에 달라붙었다.
“수수 당신부터.”
먼저 아수수 위에 걸터앉아 얼굴부터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이 오갈 때마다 거품이 일었다.
얼굴을 다 문지른 손이 아래로 향했다. 목까지는 거침없이 슥슥 문질렀지만 가슴에 이르자 멈칫했다.
“에라.”
멈췄던 것도 잠시, 곧바로 가슴을 그러쥐었다. 다른 곳보다 토사물이 더 많이 묻은 곳이 가슴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거품으로 완전히 뒤덮일 때까지 계속해서 문질렀다. 가슴을 다 문지른 손은 아래로 향했다.
그의 손이 두 번째로 멈춘 곳은 단전 아래쪽에서였다.
하지만 갈등은 잠시에 불과했다. 그의 손은 곧바로 움직여 거품을 냈다.
앞을 전부 하고 나서 허공섭물로 뒤집었다. 그리고 뒤쪽도 꼼꼼하게 닦았다.
아수수를 제대로 눕힌 후 사미염을 닦았다.
보기와는 달리 그녀의 몸은 아수수보다 더 풍만했다.
“나는 이런 게 별로 즐겁지 않다고. 하나도 안 즐겁다고.”
금장생은 신경질적으로 손바닥을 문질렀다. 어느새 사미염도 거품 덩어리로 변했다.
금장생은 코를 킁킁거려 냄새를 맡았다.
들어올 때보다 낫긴 했지만 냄새가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다.
“그 지독한 냄새가 한 번에 진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금장생은 물을 끼얹어 조두 거품을 씻어 냈다.
그리고 다시 한편에 놓여 있던 조두 두 병을 가져와 두 사람 몸에 전부 뿌렸다. 그리고 처음 그랬던 것처럼 손바닥에 물을 묻혀 박박 문질렀다.
거품이 풍성하게 일자 손을 씻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안은 더 엉망이었다. 먼저 허공섭물을 펼쳐 술병과 남은 안주를 한편으로 모았다. 그런 다음 커다란 통과 청소 도구를 가져와 방바닥에 널려 있는 토사물을 쓸어 담았다. 토사물은 통을 절반 정도 채웠다.
“많이도 처먹었네.”
화장실로 가져가 버리고는 물과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바닥을 닦을 때도 조두를 사용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독한 냄새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 번을 닦고 나자 비로소 냄새가 거의 가셨다.
방 정리를 마치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둘은 여전히 인사불성이 돼 곯아떨어져 있었다.
물을 떠서 두 사람의 몸에 남아 있는 거품을 전부 씻어 냈다. 조두를 칠한 채 얼마간 방치한 덕분인 듯 냄새는 모두 잡힌 것 같았다.
두 여자를 허공섭물로 띄우고 천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런 다음 문을 열고 침대로 날렸다. 이 장을 날아간 두 여자는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이제 내 몸을 씻어야지.”
사미염이 그의 얼굴을 향해 토를 한 바람에 그도 엉망이었다. 먼저 옷을 씻어 삼매진화로 말린 후 몸을 씻었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은 후 욕실에서 나왔다.
“풋!”
침대로 시선을 주었던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추운 듯, 아수수와 사미염이 꼭 껴안은 채 자고 있었다.
“둘이 힘을 합쳐 마가를 끌어가야 하니까 친해지는 게 더 좋겠지요.”
그는 두 사람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남은 술 한 병과 낮에 숨겨 두었던 돈 자루를 들고 집무실로 내려갔다. 집무실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돈 자루를 탁자 아래 두고 의자에 앉아 술병을 비췄다. 독하긴 하지만 술은 괜찮았다.
“차라리 여기 주인이 돼 버릴까?”
문득 조금 전 보았던 아수수의 알몸이 떠올랐다.
그녀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엄청난 몸매를 지녔고, 인간성도 좋다. 현모양처의 표본이 그녀다.
나이가 좀 많은 게 흠이긴 한데, 모르고 본다면 이십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다.
아니, 나이나 몸매, 이런 건 볼 필요도 없다.
마가와 대륙황가의 주인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모든 단점을 상쇄할 수 있고, 최고의 신붓감이 된다.
아직은 죽은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과 절대로 경쟁할 수 없다. 언젠가는 산 사람을 사랑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미녀와 돈.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이상의 것도.
금장생은 아수수와 함께 자고 있는 사미염을 떠올렸다.
“정신 차려, 이놈아!”
퍽!
금장생은 주먹으로 제 머리를 세게 쳤다.
“아고야.”
그는 자기가 때린 부분을 가볍게 문질렀다.
“노력 없이 얻은 돈은 만성 독약과 같다. 지금 당장은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돈은 점점 몸과 마음을 좀먹어 결국에 가서는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고 만다. 그게 바로 공짜 돈이다. 자고로 돈은 절대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벌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도 돈이 생기면 어떻게 하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돈이 생기는 경우를 말하는 거냐?”
“네.”
“그땐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관리하게 하면 된다. 너는 절대 그 돈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류 그 양반에게 제 인장을 맡긴 겁니다, 아버지. 앞으로 그 돈은 전부 류 그 양반이 관리하게 될 겁니다.”
금장생의 신조 중의 하나가 ‘남에게 절대 돈을 맡기지 않는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류에게 인장을 준 이유가 바로 불로소득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열심히 살면 되는데 굳이 남의 걸 욕심 낼 이유가 없지.”
금장생은 술병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술은 금세 떨어졌다. 더 이상 술이 없자, 한편으로 가서 드러누웠다.
겨울 초입의 밤 기온은 제법 차가웠지만 태극선의를 입고 있어 춥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코끝이 좀 시렸다.
그는 곧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깬 금장생은 삼 층으로 올라갔다.
아수수와 사미염은 아직 꿈속을 헤매는 중이었다. 심하게 뒤척거렸는지, 이불이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침대 아래쪽에 떨어진 이불을 덮어 주고 다시 집무실로 내려왔다. 그런 다음 봇짐에 돈 자루를 집어넣고 걸머졌다.
시비에게 외출하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을 막 나서는데 거석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거석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분은 마왕입니다.”
“내가 왜요?”
“호위대도 대동하지 않고 서천왕부에서 나가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비에게 말했는데요?”
“말하면 뭐합니까, 호위도 없는데. 절대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오든지요.”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순식간에 수십 장 너머로 멀어졌다. 절정에 이른 축지성촌이었다.
“마왕!”
거석은 금장생은 불렀다. 하지만 금장생은 곧바로 지평선 속으로 사라졌다.
금장생이 도시로 가는 건 돈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이제 여길 떠난다고 해도 손해는 아니겠네.”
전장에 들러 돈을 맡기고 나온 그는 싱긋 웃었다.
이번 돈 역시 중원전장에 맡겼다. 물론 돈을 맡기기 전에 유마환용술을 풀어 본래 자신 얼굴로 돌아갔다.
사인루에서 벌어들인 이백만 냥을 합치면 사백만 냥이 넘는다. 그 정도 돈을 벌었으면 대박을 친 셈이다.
“어쨌거나 돈값은 해 줘야겠지.”
전장에서 나온 금장생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품속에는 오만 냥짜리 전표 한 장이 있었다.
그때 마침 그의 눈에 보석상이 띄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은 재빨리 금장생의 위아래를 훑었다.
“반지를 보고 싶습니다.”
“원하시는 물건이 있습니까?”
“반지 폭은 반 치 정도로 하고, 세공은 아주 정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석은 녹주석이 박혀 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손가락 치수를 아십니까?”
“오 홉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십여 개의 반지를 들고 나왔다.
그 반지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랐다. 녹주석 보석을 박은 게 아니라 한가운데 녹주석 반지를 놓고 좌우측에 금반지를 붙인 특이한 형태의 반지였다.
“그 반지와 함께 만든 귀걸이와 목걸이도 있는데요. 함께 선물하면 부인께서 더 좋아하실 겁니다.”
“한번 봅시다.”
“여기 있습니다.”
함께 가지고 나온 듯, 주인은 바로 상자 하나를 꺼내 금장생 앞에 놓았다.
주인의 말대로였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비녀 중 두 가지 정도만 하면 아주 어울릴 것 같았다.
“두 개 정도만 차면 적당할 겁니다.”
“한꺼번에 다 차면 촌스럽다는 건가요?”
“네.”
“전부 얼맙니까?”
“오천 냥입니다.”
“헉!”
금장생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