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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57화 (157/524)

황금가 (157)

빙마존의 빙극천월강이었다.

그가 빙극천월강을 배운 곳이 바로 이곳 역천영면마진 안이었다.

중원 시간으로는 삼백 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펼치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쩌어엉!

순간 대가가 얼며 수많은 얼음덩어리들이 생겨나 아래로 떨어졌다.

퍽! 퍽퍽! 퍽퍽!

떨어진 얼음덩어리들은 잘게 부서졌다.

“타하!”

무혼은 기합을 내지르며 양팔을 번갈아 내질렀다.

쩌어엉! 쩌어엉! 쩌어엉!

새하얀 광채가 사방으로 쏘아져 나가고 우박이 떨어진 것처럼 바닥이 얼음덩어리로 뒤덮였다.

“엄청나군.”

바타르는 신음을 내뱉었다.

현대의 타이탄에 비하면 아마조네스는 절반의 크기도 되지 않는다. 그런 타이탄이 보여 주는 강함은 가공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했다.

아마조네스가 왜 전설이 됐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울러 무혼이 아마조네스를 개조하지 않은 이유도 알 듯했다. 저렇게 강한 타이탄을 굳이 개조할 이유가 없었다.

척!

아스가 그 자리에 멈췄다.

화르르!

순간 아스의 동체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저건?”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얼마나 뜨거운지, 이십여 미터 떨어져 있는 그의 피부가 뜨거워질 정도였다. 그는 얼른 물러났다.

“차하!”

푸아악!

무혼의 기합이 들려오는 듯하더니 새하얀 광채가 허공을 유린했다. 조금 전에 펼쳤던 것과 같은 색이었지만 내포된 기운은 달랐다.

새하얀 광채가 지나가는 곳에는 진공 터널이 생겨났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태워 버린 탓이었다.

무혼이 펼치는 무공은 태양마존의 이화태양강이었다.

슈악!

진공으로 변한 공기 터널은 주변 대기를 급격하게 빨아들였다. 빙극천월강을 펼칠 때보다 더 강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주변이 진공상태로 변해 가는데도 아스는 쉬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양팔을 내질렀다.

슈악! 슈아악! 슈아악!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인간이…….”

바타르는 할 말이 없었다.

무혼은 드래곤에 버금가는 엄청난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 드래곤보다 더 강했다.

우뚝!

빠르게 움직이던 아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스르릉!

등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검은 무려 오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검신은 왜도처럼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도刀처럼 생겼지만 양쪽 모두 날이 있는 검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 무기를 만든 사람도 무혼이었다.

그의 무기인 그레이훼일과 비슷하게 만든 이 검은 그랜드크로스라 이름 지었다.

척!

아스는 그랜드크로스를 가슴 앞으로 세웠다.

몸 주위에서 혈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파앗!

혈광이 머리 부분에 이른 순간 아스의 동체가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츠츠츠! 츠츠츠! 츠츠츠! 츠츠츠!

곧 아스의 전면이 붉은색 광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방을 휩쓸던 붉은색 광채는 거대한 이리의 머리로 변했다.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손가락 길이의 송곳니를 드러낸 이리는 눈을 부릅뜬 채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순식간에 이리에게 잡아먹힌 공간은 수십 조각으로 분할되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분리된 공간은 곧바로 소멸되었다.

아스가 펼치는 무공은 혈랑도법이다. 붉은 광채로 휩싸인 수십 미터의 공간 속에서 아스는 미친 이리처럼 날뛰었다.

철컥!

어느새 그랜드크로스가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에 아스는 오른팔을 옆으로 폈다.

촤르르!

오른팔 팔목에 차고 있던 팔찌에서 검은색 물체가 풀려나왔다. 길쭉한 천처럼 생긴 그것은 자유자재로 구부려지는 연검이었다.

그 순간 무혼도 오른팔을 옆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의 손에도 검은색 연도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수라였다.

“네가 뽑아 든 그 검 이름이 뭐라고 했지?”

무혼은 아스가 들고 있는 연검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히난시아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억하고 있구나.”

무혼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히난시아.

아줌마라고 불렀던 바람의 정령이다.

바람의 정령이라서가 아니라, 히난시아는 시원한 음료수 같은 정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지.”

무혼은 수라를 힘껏 그러쥐었다. 손톱이 장심으로 파고들어 간 듯, 경미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스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아지랑이는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아스의 동체가 부상하듯 떠올랐다. 여전히 오른팔은 옆으로 쫙 편 채였다.

십 미터까지 솟구친 아스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차르르르!

섬뜩한 소성과 함께 눈앞이 혈광으로 물들었다. 혈광은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십 미터 길이의 히난시아는 악마의 혓바닥이었다. 수백 개의 점이 허공에 찍혔다가 사라졌다.

“나와 계약하겠는가?”

“나와 계약하겠는가?”

“나와 계약하겠는가?”

대폭발 후 다시 아스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검게 그을린 동체, 뭉개진 얼굴, 양팔마저 떨어져 나간 타이탄에게서 계약 여부를 묻는 말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고철이 돼 버린 그 타이탄은 크로노마스에게 당한 아스였다.

처음 만들어지거나 고대 유적에서 발굴된 타이탄은 무적 상태, 즉 주인이 없는 상태다. 그 상태에서 강한 마나를 지닌 검사나 혹은 마법사를 만나면 타이탄은 자신과 계약하겠느냐고 묻는다.

주인 없는 타이탄이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은 신분이나 인간성이 아니라 강함이다. 일정 경지 이상의 마나를 지니고 있으면 상대가 누군지와 상관없이 계약 여부를 묻는다.

그래서 상대가 수락하면 계약이 이루어지고, 마나 공명을 통해 하나가 된다.

그때 아스가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타이탄과 같은 상태였다.

“크로노마스와 함께 죽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영혼 계약을 파기했어. 나를 구하기 위해.”

무혼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왔다.

계약을 파기하면 영혼의 바다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한다는 걸 아스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약을 파기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계약하겠다!”

“내 이름을 지어 주기 바란다!”

“넌 지금부터 아마조네스 드 샤이아다.”

“좋다. 내 이름은 아마조네스 드 샤이아다.”

“앞으로 널 아스라 부르겠다!”

“좋다, 날 부를 땐 아스라 불러라!”

“아스, 지금부터 날 따라 해라.”

“말하라, 계약자여.”

“난 계약자가 아니고, 무혼이다.”

“말하라, 무혼! 따라 하겠다.”

“나, 갈릭 드 무혼은!”

“나, 갈릭 드 무혼은!”

“아냐, 아스. 갈릭 드 무혼 대신에 아마조네스 드 샤이아를 집어넣어야 해.”

“다시 하자.”

“나 갈릭 드 무혼은!”

“나 아마조네스 드 샤이아는!”

“아마조네스 드 샤이아를 아내로 삼아!”

“갈릭 드 무혼을 아내……!”

“남편!”

“갈릭 드 무혼을 남편으로 삼아!”

“영원히 아끼고 사랑하겠노라!”

“영원히 아끼고 사랑하겠노라!”

“우리 둘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것이며!”

“우리 둘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것이며!”

“죽어서도 하나가 될 것이다!”

“죽어서도 하나가 될 것이다!”

“이를 배신한 이는!”

“이를 배신한 이는!”

“영원의 바다에서!”

“영원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 계약을 했다.

부서진 얼굴과 팔을 원래대로 고치고 무기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의 아스가 아니었다. 영혼이 없는 기계장치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아!”

미친 듯이 살기를 뿜어내던 무혼의 입에서 분노에 찬 괴성이 터져 나왔다.

수라가 짙은 혈광을 쏟아 냈다.

사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닥이 푹푹 꺼지고 공간이 소멸되었다.

피보다 더 짙은 붉은 광채에 가려 아스의 동체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혈광 속에서 광기를 머금은 검이 사방을 유린했다.

“널 구할 거야, 아스! 널 살려 낼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어떻게 되어도 좋아! 세상을 없애야만 널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라고!”

무혼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며 수라도법을 펼쳤다.

그런 무혼과 아스를 지켜보던 바타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찌 인간의 몸으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혼을 처음 본 게 오 년 전이고 그 후로 지금까지 함께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가 검술이나 마법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없다.

자신 또한 무혼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가진 마나양으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대륙 최고 레벨의 검사다. 드래곤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검사를 성룡과 비슷한 레벨로 놓는다.

성룡은 드래곤 사회에서 중도적인 역할을 하는 자들을 말한다.

평균 만 년의 수명을 가진 드래곤은 나이에 따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단계는 태어나서부터 구백아흔아홉 살까지의 기간으로, 헤츨링이라 부른다. 드래곤의 삶 중 가장 약한 시기라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헤츨링에 대한 드래곤들의 보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만일 어떤 기사가 헤츨링을 살해했다고 하면, 그 기사뿐만이 아니라 기사가 속한 왕국까지 멸망시켜 버린다. 그 정도로 드래곤들은 헤츨링 보호에 열을 올린다.

두 번째 단계는 천 살부터 이천구백아흔아홉 살까지의 기간으로, 유룡이라고 한다.

헤츨링 때는 보호를 했다면 유룡 때는 통제를 한다. 즉, 성룡이나 고룡으로부터 삶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시기다.

하지만 유룡들은 자신들도 다 컸다는 생각에 일탈을 일삼고, 그러다가 인간 검사에게 죽임을 당해 드래곤 슬레이어나 영웅 탄생에 일조하기도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삼천 살부터 칠천구백아흔아홉 살까지다.

드래곤의 전성기인 성룡이다. 드래곤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드래곤 일족의 명예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신념을 갖는 시기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팔천 살부터 구천구백아흔아홉 살까지다. 현역에서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드래곤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원로들로, 고룡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수명 이상으로 살고 있는 드래곤으로 라그나뢰크라고 부른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본인들밖에 모른다. 아울러 드래곤 사회에 관심도 두지 않고 충고는 물론 조언도 하지 않는다.

신처럼 유유자적 살아가는 자들, 그들이 바로 라그나뢰크다.

드래곤들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수준을 삼천 살에서 오천 살까지의 성룡과 비슷하게 본다.

같은 성룡이라고 불린다고 해도 오천 살이 넘은 드래곤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넘볼 수 없다고 확신한다. 타이탄에 탑승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무혼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검술을 직접 본 순간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혼은 인간의 강함을 초월한 자였다. 아울러 라그나뢰크마저 초월한 존재인 크로노마스가 인질을 잡으면서까지 무혼을 부려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콰쾅쾅! 쾅쾅! 쾅쾅쾅!

아스 주변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땅이 십 미터 깊이까지 푹푹 꺼지고, 재로 변한 흙더미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래도 부족한 듯 아스와 하나가 된 무혼은 미친 듯이 무공을 펼쳤다.

“크아아아아!”

아스가 멈춘 건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턱!

아스는 한편 무릎을 꿇은 자세로 내려섰다.

히난시아라고 부르는 연검은 힘을 잃고 축 늘어진 채였다. 그 상태로 아스는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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