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55)
무혼 이야기
“워프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바타르는 무혼 앞으로 가며 말했다. 워프 마법진은 공간을 건너뛰는 이동 마법진이었다.
“한 번에 이동 가능한 수는 몇 명이냐?”
무혼은 물었다.
“쉰 명이다.”
“이동 시간은?”
“마법진을 발동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총 삼십 분이다.”
“왜 그렇게 늦지?”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는 아무리 길어도 십 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세 배나 더 걸렸다.
“마나가 희박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럼 한 시간에 백 명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거네?”
“마법진 가동도 하루에 열 번으로 제한된다.”
“그것도 마나 때문이냐?”
“그렇다.”
“제약이 많군.”
“그 제약이 엄청난 마나맵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라고 본다.”
중원 무공이 샤이칸드리아 대륙보다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절세 신공이 생겨났다는 거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럼 뒤집어 말하면, 샤이칸드리아에서 마나맵이 발전하지 못한 건 마나가 풍부해서라는 건가?”
“그렇다.”
“내 생각과는 다르네.”
“풍부한 마나 때문이 아니라는 거냐?”
“풍부한 마나도 일부 원인이 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마법 무구의 발달이라고 생각해.”
“마법검 같은 것 때문이란 말이냐?”
“내가 생각하는 건 마법검이 아니라 타이탄이야.”
“네가 삼천 년 전에 전수해 준 마나맵이 발전하지 못하고 사장된 가장 큰 이유가 타이탄 때문이라는 거구나.”
“맞아. 이곳 중원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높이는 유일한 요소가 단전의 크기, 즉 축적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야. 좋은 마나맵이 강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거지. 하지만 샤이칸드리아 대륙 기사들은 달라. 그들은 자신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고, 마나맵은 그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야.”
삼천 년 전 그랜드 크로스 때 그는 로즈 기사단 기사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내공심법을 배운 기사들로 구성된 기사단은 대륙 최강이 되었다.
내공심법을 가르쳐 줄 때 샤이칸드리아 대륙이 중원처럼 되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도 했다.
그래서 다시 깨어났을 때 무공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샤이칸드리아 대륙에는 무공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모든 곳을 다 뒤져 보지 않아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소위 검을 다룬다는 기사들은 익힌 자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굳이 마나맵을 익히지 않아도 더 강해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구나.”
“맞아.”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탄에 탑승하면 기사는 이곳의 무인과 비슷한 실력이 된다. 일반 타이탄이 그렇다는 거고, 가드급이나 라그나뢰크급 타이탄에 탑승하게 되면 강기를 펼치는 무인의 경지 혹은 그 이상까지 올라설 수 있다.
즉, 마나맵이라 부르는 내공심법이 없어도 절대 경지까지 오르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기사들은 마나맵과 타이탄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마나맵을 완벽하게 익히고 타이탄에 탑승하는 거다. 실제 그렇게 하는 기사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기사는 마나맵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보다, 소드 마스터 초급 수준까지만 익히고 바로 타이탄에 탑승해 버린다.
마나맵을 완벽하게 익히기를 바라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완성하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마나맵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나마 기존에 있던 거라도 그대로 보존하면 좋은데, 아버지가 혹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마나맵도 제대로 익혀 내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기 싫어 마나맵이 기록된 비급을 없애 버린다. 그런 다음 자신이 익힌 마나맵이 최고라며 기록을 남긴다.
마나맵이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그럼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총병력은 천 명이 되는 건가?”
“그렇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 명을 이동시키려면 열흘이 걸리는 거네.”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거다.”
“그렇긴 하지. 좋아, 그건 어쩔 수 없고. 여길 우리 본거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그건 안 된다.”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왜?”
“이곳 역천영면마진 안의 마나 밀도는 샤이칸드리아 대륙보다 약간 낮다. 즉, 중원의 마나와 많은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곳에만 머물다가 중원으로 나가면 곧바로 마나 허탈 상태를 겪게 된다.”
“마나 허탈?”
“갑자기 부족해진 마나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는 자기 본연의 실력을 절반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샤이칸드리아 대륙 중력은 중원보다 세 배 정도 강해. 그 말은, 검사들은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보다 세 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뜻하고.”
“중력과 마나 밀도까지 합쳐 계산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총이득은 절반 정도다.”
“절반이라는 건 무슨 뜻이지?”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백 킬로그램을 들었다면 여기선 백오십 킬로그램을 들 수 있다는 말이다.”
“삼백은 아니라는 거네?”
“그렇다. 그리고 그나마도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한다.”
“얼마나 지나야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지?”
“최소한 반년은 생활해야 한다.”
“반년이라……. 그럼 이곳에 적응할 때까지 머물 장소가 있어야겠군.”
무혼은 오른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백리장광이 서 있었다.
“낙양 진가장에 수용 가능한 병력은 일천 명 정돕니다. 그 이상이 되면 관에서 알아차리게 될 테고, 우리에게 병력을 상주시키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겁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하면…….”
“우리가 반역을 준비한다고 생각할 거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낙양은 무리란 말이네. 그럼 제삼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건데, 추천할 만한 장소가 있느냐?”
“감숙성에 있는 전가의 낭인성이나 사천에 있는 환수각이 가장 적당합니다.”
“전가면 팔왕가의 한 곳을 말하는 거냐?”
“네.”
“전가는 어차피 내 전력이 될 자들이다. 굳이 전쟁을 해서 없앨 이유가 없다.”
“그럼 남은 곳은 환수각인데, 거긴 만만한 세력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냐?”
“팔왕가 두 가문을 합쳐야 비슷한 전력이 됩니다.”
“환수각에 대해 파악된 정보가 있느냐?”
“무인의 총수는 오천 명 전후로 알고 있습니다.”
“기껏 오천 명으로 한 지역의 패자가 된단 말이냐?”
무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무혼으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가 평생을 살았던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는 한 지역의 영주만 되어도 이만 명 정도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에 비하면 무림의 주인이라는 자들이 거느린 무인의 수는 너무 적었다.
“비록 오천 명에 불과하지만 병사 오만 명으로도 그들을 어쩌지 못합니다.”
“무림에서 활동하는 무인의 총수는 얼마나 되느냐?”
문득 궁금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정확하게 무림이나 강호가 어디를 뜻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한 번도 조사해 볼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느냐?”
“네.”
“시간 나면 한번 조사해 봐라.”
“알겠습니다.”
“만일 현재 우리 병력으로 환수각을 공격하면 승리하겠느냐?”
“강시와, 아니 언데드와 타이탄을 동원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타이탄을 동원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말이구나.”
“제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바타르!”
무혼은 바타르를 돌아보았다. 타이탄의 소환 여부가 궁금했다.
“타이탄은 소환이 가능하다.”
“능력은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느냐?”
“기사와 마찬가지로 한 배 반 정도다.”
“적응 기간은?”
“기사들이 탑승하는 장소가 타이탄 내부 마법 공간이라 굳이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 않다.”
“좋아.”
무혼은 다시 백리장광을 보았다.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 거라 보느냐?”
“언데드는 밤에만 이동해야 하니까 한 달 보름은 잡아야 합니다.”
“공격 날짜는 정월 초하루 새벽이다, 백리 가주. 그 시간에 맞춰 도착하도록 해라.”
“진가장 무인은 동원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아군이 약하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진가장 무인을 투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만약 진가장 무인을 투입한다면 몇 명 정도나 가능하겠느냐?”
“일이백 명은 의미가 없을 테고, 최소한 일천 명은 돼야 합니다.”
“일천 명의 무인이 갑자기 없어지고 환수각이 누군가에 의해 점령됐다고 하면, 가장 먼저 의심받을 자가 누구겠느냐?”
“그건…….”
백리장광은 말문이 막혔다. 그걸 생각 못 했다.
낙양은 중원 한복판에 있다. 그곳에서 대규모 병력이 사라지면 금세 드러나고 만다.
“우리 전력으로만 환수각을 접수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대공.”
백리장광은 고개를 숙였다.
“바타르!”
무혼은 바타르를 돌아보았다.
“말하라!”
“이진은 언제 도착하느냐?”
“이 개월 후다.”
“기간을 단축하는 건?”
“최대로 단축한 게 이 개월이다.”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좀 걸을까?”
무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그와 바타르는 석옥 밖으로 나왔다.
“너도 봤어?”
“뭘 말하는 거냐?”
바타르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건너오는 도중에 워프 마법진에서 아무것도 못 봤다는 거냐?”
“아! 그거.”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한편 끝에 보석이 달린 지팡이를 꺼냈다.
“오픈!”
그리고 허공에 대고 나직하게 외쳤다.
순간 허공에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은 흐렸지만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는 확실하게 보였다.
그건 바로 수백 미터 높이의 건물이었다.
단면이 직사각형 형태로 돼 있는 건물은 한두 채가 아니었다. 수십 채의 건물이 경쟁하듯 늘어서 있었다. 높이도 제각각이었다.
게다가 문자로 보이는 것들이 건물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건물 아래쪽에는 수십 미터 폭의 대로가 나 있었다.
“그 와중에 영상까지 만들었네.”
“신기루인지 알고 싶어서.”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모른다.”
“우리 샤이칸드리아 대륙엔 저런 거 없겠지?”
“샤이칸드리아 대륙은 물론이고 신계와 마계에도 저런 도시는 없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영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천루로 불러야 마땅할 건물로 가득 찬 저곳은 도시가 분명하다. 그리고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저런 건물을 가지고 있는 자는 마법사뿐이다.
하지만 저 영상 속 건물은 마법사가 살기엔 너무 크다. 수백 명이 살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과시하기 좋아하는 마법사라고 해도 저렇게 큰 건물을 세울 리가 없다.
“저건 뭐지?”
무혼이 영상 속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그건 바로 하늘을 나는 작은 물체였다. 비록 주먹 크기이긴 했지만 모양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모른다.”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처럼 보이는데, 네 생각은?”
“드래곤은 저렇게 작지 않다.”
“넌 원근법을 완전 무시하는구나. 영상상에서는 주먹 크기 정도지만 우리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백 미터가 넘어. 어쩌면 이백 미터가 넘을지도 몰라.”
“하지만 드래곤은 저렇게 날개가 크지 않다.”
그 물체에 대해서는 바타르도 알고 있었다.
그도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드래곤보다 크기는 더 작은데 날개는 크다.
“다른 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와이번이면 모를까 드래곤은 절대 아니다.”
“와이번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보다 건물 아래쪽에 기어 다니는 건 뭐지?”
이번에는 건물 아래쪽 대로를 가리켰다.
‘잘 보이지도 않는구먼, 잘도 찾아내네.’
바타르는 피식 웃었다.
“몰라?”
무혼은 물었다.
“말이 없이 움직이는 마차라는 것밖에는 모른다.”
“마법이 극에 이른 도시인가 보네.”
“그 역시 알 수 없다.”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신계도 마계도 대륙도 아니라면 이 중원과 마찬가지로 다른 차원이란 말인데…… 맞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크로노마스의 작품이겠지?”
“크로노마스가 엄청난 드래곤이긴 하지만 저런 도시를 만들어 낼 능력은 없다.”
“저 도시를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차원의 문을 열지 않았느냐 하는 거야. 그리고 저렇게 희미하게 보이는 건 아직 완전하게 열지 못했다는 걸 뜻하고.”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원래는 없었지.”
“하면?”
“이 중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고대의 비술을 찾아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건…….”
바타르는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