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47)
아시카가 유키
“다녀오세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딜 다녀오라는 거죠?”
“아랫배가 나왔다는 건 방광이 찼다는 걸 뜻합니다. 자객의 죽음 중 가장 쓸모없는 죽음이 오줌 싸다가 혹은 오줌이 마려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당한 경웁니다. 시작하기 전에 뺄 건 빼고 쌀 건 싸 두는 게 만수무강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말 좀 곱게 하면 어디가 덧나요?”
사미염은 입을 삐쭉 내밀고는 몸을 날렸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볼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금장생의 말을 듣자 급격하게 소피가 보고 싶어졌다.
“너무 멀리 가면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흥!”
사미염은 콧방귀를 뀌면서도 멀리 가지 않았다.
금장생의 말처럼 멀리 가서 볼일을 보기엔 운무가 너무 짙었다.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적당한 장소를 골라 연검 요대를 풀었다. 그러자 상의와 하의를 구분하는 선이 나나타났다. 상의 아랫단을 하의 속에 집어넣은 형태였다.
옷자락을 잡고 아래로 내리면서 쪼그려 앉았다.
볼일을 마치고 바로 금장생 앞으로 갔다.
“갑시다.”
금장생은 바로 바닥을 찼다.
계속 직진하자 절벽이 나왔다. 두 사람은 위를 살피면서 절벽을 올라갔다.
십 장가량 올라갔을 때 동굴이 나왔다. 입구는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졌다.
십여 장을 걸어가자 좌우 폭과 천장의 높이가 일 장으로 넓어졌다. 천장에는 오 장 간격으로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난 옛날부터 저걸 하나 갖고 싶었어요.”
금장생은 야명주를 가리켰다.
“어디에 쓰려고요?”
“밤에 책 보고 싶을 때 저 녀석을 사용하면 굳이 등을 켤 필요가 없잖아요.”
“하나 떼 드려요?”
“이왕이면 다 떼 가지고 가죠.”
“혹시…….”
“혹시 뭐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갈 때 전부 떼어 드릴게요.”
팔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꿀꺽 삼켰다.
잠시 후 동굴이 끝나고 널따란 공간이 나타났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동굴의 출구 역시 절벽에 나 있었는데, 이쪽에서 반대편 절벽 끝까지 삼백 장가량이었다. 그 안쪽은 야트막한 언덕과 동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객들이 머무는 집은 절벽 아래쪽 혹은 언덕 아래 등지에 세워져 있었다.
“저기부터 하시죠.”
금장생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좋아요.”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갑니다.”
금장생은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엄청나네.’
사미염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도 자객술을 배웠기에 은신술의 경지를 안다. 최고 경지에 이르면 공기의 파동조차 남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금장생이 그랬다.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는데도 아무런 흔적도 감지할 수 없었다.
가공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도 가야지.”
그녀는 은신술을 펼쳐 절벽을 내려가 금장생이 가리킨 건물로 내달렸다.
금장생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녀의 은신술도 대단했다. 거의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은 총 삼 층이었다. 각 층마다 다섯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침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긴 듯, 경계를 서는 자도 없었다.
‘류가 나왔으니까 깨어 있는 자가 있을 텐데…….’
하지만 이 건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조용했다.
그녀는 조용히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다섯 명이 자고 있었다.
‘벌써 지나간…… 갔네.’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 있다고 해도 숨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건 곧 숨이 끊어졌다는 의미다.
사미염은 침대 옆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누워 있는 자들 중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잠이 든 상태에서 바로 저승행 마차를 탄 모양이었다.
사인은 사혈 파괴였다.
사미염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도 다섯 명이 죽어 있었다. 다른 방도 다르지 않았다.
스물다섯 명이 전부 죽었는데 금장생의 흔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미염은 일 층을 지나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 역시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구조는 일 층과 같았다.
일 층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 역시 다른 방과 다르지 않았다.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숨진 채였다.
사미염은 천장에서 천리지청술로 확인하면서 방을 지나쳐 갔다. 굳이 침대까지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느닷없이 삼 층에서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호각 소리에서 느껴진 첫 느낌은 다급함이었다.
“아아악!”
“으아악!”
“크아악!”
이어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휙!
사미염은 급하게 삼 층으로 몸을 날렸다.
삼 층에서 방 네 개는 조용했다. 그들을 없앨 때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제가 일어난 방은 마지막 방이었다.
사미염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피 냄새가 확 끼쳤다.
“적이다!”
“적이다!”
밖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사미염은 창가로 갔다. 각 건물에 불이 켜지고,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 몸을 날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사미염은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장도에 묻은 피를 침대보에 닦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없앤 겁니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붕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잠시 후 그는 지붕 위로 올라섰다.
각 건물 앞에는 수백 명이 나와 있었다.
“난 마왕이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공이 실려 있어, 사인루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헉!”
“억!”
“마, 마왕!”
여기저기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자객들은 경악한 얼굴로 지붕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놀란 자는 사토의 심복인 야마시타였다.
“맙소사!”
야마시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허겁지겁 사토의 처소로 내달렸다. 잠시 후 그는 사토 처소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비명 소리 때문에 사토도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침대를 벗어나진 않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냐?”
사토는 물었다.
“그, 그자가 왔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그자가 누구냐?”
“방금 그자는 자신을 마왕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왕?”
사토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네. 마왕 적천영이 온 것 같습니다.”
휙!
콰앙!
사토의 신형이 창문을 부수고 쏘아졌다.
그는 곧 금장생이 보이는 장소에 당도했다.
그곳에서는 사인루 주객 수백 명이 금장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자객들이 사토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 중에는 마왕 암살 작전을 주도했던 요시다도 있었다.
“저놈이 마왕 맞느냐?”
사토는 요시다를 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요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냐?”
“저녁 무렵에 청부가 한 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원이 나가 보니 적연만 떠 있고 아무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럼 저놈은 그때 돌아오는 대원을 따라 들어왔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적은 몇 명이냐?”
“……그게, 없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요시다가 대답했다.
“없어?”
사토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 안을 다 뒤졌는데도 저자뿐입니다.”
“정말로 혼자 들어왔다는 말이구나.”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오히려 잘됐구나. 여기서 놈을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다이묘.”
요시다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원들에게로 달려갔다.
“하아!”
“타하!”
“요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수백 명이 금장생이 올라가 있는 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백여 장을 내달린 그들은 벽을 타고 지붕을 향해 쏘아져 갔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그는 지붕을 타고 내렸다.
곧 그의 왜도가 뽑히고 허공에 푸른 광채가 난무했다.
“컥!”
“큭!”
“윽!”
자객들은 비명과 함께 풀썩풀썩 쓰러졌다.
툭! 툭툭!
쓰러진 자객들의 몸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탁탁탁! 탁탁탁!
지붕 끝에 도착한 금장생은 곧바로 아래로 내달렸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벽은 바깥으로 약간 경사가 져 빠른 속도로 달리면 굳이 뛰어내리지 않고 내려갈 수 있었다. 자객들 또한 벽을 타고 내달리고 있었다.
어느새 금장생의 손에는 왜도 두 자루가 모두 들렸다.
“이얍!”
“차아!”
“타하!”
기합과 함께 자객 십여 명이 금장생을 향해 무기를 찔러 갔다.
“하아!”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창! 창창! 창창! 창창창!
“컥!”
“큭!”
“윽!”
왜도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김없이 자객들은 죽임을 당했다.
어떤 자는 허리가 잘리고, 어떤 자는 몸통이 사선으로 잘리고, 또 어떤 자는 목이 잘렸다.
잘려 나간 부위들이 바닥으로 떨어질 즈음이면 금장생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한꺼번에 쳐라!”
요시다는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자객들은 기합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내달렸다.
탁! 탁탁탁!
금장생은 종종걸음 치며 빠르게 달렸다.
“타하!”
기합과 함께 왜도가 허공을 갈랐다.
“커억!”
“앗!”
비명에 이어 놀람에 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자객 한 명의 몸통을 사선으로 가르며 뛰어오른 금장생의 신형이 귀신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맙소사! 이건 이, 인자…….”
스악! 스악! 푸욱! 스악!
“커억!”
“크악!”
“아악!”
“으악!”
네 마디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왔다.
“저기 있…… 억!”
금장생을 가리키며 소리쳤던 자는 깜짝 놀랐다. 또다시 금장생의 신형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허공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크악!”
“아악!”
“으아악!”
“아악!”
자객들 후미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서 금장생을 노려보던 자들의 비명이었다.
“뒤, 뒤다!”
자객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금장생은 이미 허공으로 숨어들어 간 후였다.
“모든 대원들은 인자술을 펼쳐라!”
보다 못한 사토가 고함을 내질렀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자객들은 인자술을 펼쳐 허공으로 몸을 숨겼다.
“내 앞에서 숨는 건 잔재주에 불과할 뿐이다.”
금장생은 귀안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사인루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귀신들이 보였다.
‘숨어 있는 자들을 찾아!’
금장생은 귀신들에게 사념을 보냈다.
―우리가 보, 보여?
‘당장 찾아내지 않으면 소멸시켜 버린다.’
―아, 알았다고. 지금부터 나만 따라오면 돼.
귀신들은 자리를 이동했다. 귀신들이 가리킨 허공에는 어김없이 자객들이 숨어 있었다.
금장생은 자객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향해 왜도를 휘둘렀다.
비명과 함께 자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슉!
푹! 푹푹!
금장생의 공격을 피한 자들을 없앤 건 사미염의 사류였다.
사미염은 금장생 근처에 허공에 숨어 있다가 금장생의 공격을 간신히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자들을 없앴다.
사류는 정확하게 자객들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사류가 파고든 자들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더니 곧 숨이 끊어졌다.
싸움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