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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41화 (141/524)

황금가 (141)

슉!

바로 그때 천장에서 시뻘건 광채 하나가 사내 한 명을 향해 쏘아졌다.

“위, 위험!”

사내의 경고보다 붉은 광채가 더욱 빨랐다.

“커억!”

사내 한 명이 목을 틀어쥐고 풀썩 쓰러졌다.

휘리릭!

붉은 광채는 둥글게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두 번째 사내를 향해 쏘아져 갔다.

“차앗!”

표적이 된 사내는 붉은 광채를 향해 전력을 다한 일 장을 펼쳤다. 하지만 붉은 광채를 없애지 못했다.

붉은 광채는 사내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크악!”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또 다른 사내가 비명을 내질렀다. 석보산에게 당한 자였다.

그사이 심장에서 빠져나온 붉은 광채는 마지막 남은 한 명을 향해 쏘아져 갔다.

“차앗!”

사내는 붉은 광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내의 검 끝에서는 반 자 길이의 광채가 솟구쳐 있었다. 놀랍게도 사내는 검강을 펼치는 고수였다.

사내의 검이 붉은 광채를 치려는 순간, 광채가 빠르게 천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스악!

사내의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그 바람에 가슴 부분에 허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타앗!

푸아악!

석보산의 손에서 불그스름한 광채가 폭사되었다.

퍼억!

“크악!”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내의 가슴을 처참하게 짓이겨 버린 무기는 폭풍륜 중 폭륜이었다.

“빌어먹을!”

석보산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싸우느라 힘이 들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아니, 관처기 일행이 방심한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쉽게 처리했다.

그를 힘 빠지게 한 건, 가족보다 더 믿었던 관처기 일행의 배신이었다.

휙!

그때 천장에 있던 금장생이 내려왔다.

“일 년 반 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위험하다는 서찰을 받았습니다. 황금전가가 몰락한 뒤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가족을 이사시켰거든요. 아는 사람도 몇 명 없어 가짜 서찰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관한 거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아무도 몰래 은밀하게 여길 나갔습니다. 사는 곳 자체를 비밀로 하는 바람에 호위를 데리고 갈 수도 없었지요. 가는 길에 약왕을 도와주었습니다. 산적들의 암수에 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었거든요. 그리고 헤어지고 전 제 길로 가고 약왕 어르신도 갈 길로 갔지요.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안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해 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다가 자객을 만나 공격을 받고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거기서 약왕 어르신을 다시 만나지 못했더라면 죽었을 겁니다.”

“몸을 치료하는 데 일 년 걸린 겁니까?”

“네.”

“나와 비슷하군요.”

“마왕께서는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비슷합니다. 마가에서 나갔다가 공격을 받고, 기억을 잃어버린 겁니다.”

금장생은 최대한 간단하게 줄여 말했다.

“그러셨군요.”

석보산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마왕께서 제게 부탁이 있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냥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석보산은 한편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사적인 부탁이라 그럽니다.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는 거고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크게 신세를 진 친구가 있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전 죽었을 겁니다.”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으신 겁니까?”

“네.”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됩니까?”

“그 친구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다지 사업을 잘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성실해서 초반 위기만 넘기면 크게 성공할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의 사업을 도와 달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어떤 사업입니까?”

“양조업입니다. 술 이름은 천주라고 하더군요.”

“천주요?”

“아십니까?”

“요즘 감숙성에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술이군요.”

“벌써 알려졌습니까?”

금장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양조장을 지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대륙황가 상단주가 알고 있을 정도면 대단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가격도 상당해서 은자 닷 냥을 받고 있더군요. 그런데 지금도 잘되고 있는 것 같던데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그 친구 말로는 하루 오백 병 정도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그걸 더 늘리고 싶어 하더라고요.”

금장생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몇 병으로 늘릴 생각이랍니까?”

“이천 병 정도로 늘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가장 약한 게 다른 지역으로 운반하는 유통 아니겠습니까?”

“우리 대륙황가의 유통망을 이용하게 해 달라는 거군요.”

“물론 완전히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대륙황가에서 제시할 수 있는 최저 가격, 즉 병당 일 문 정도로 계산해서 해 주면 좋겠습니다.”

“일 문요?”

석보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 문이면 은자 한 냥의 이천 분의 일 가격이다. 즉, 이천 병을 운송해야 한 냥이 생긴다는 뜻이다. 거저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네.”

“그럴 바엔 공짜로 해주는 게 낫지 않습니까.”

“공짜로 해 주면 책임감이 결여되기 십상이지 않습니까.”

“책임감요?”

“그리고 운송 도중에 술을 잃어버리거나…… 여기서 잃어버린다는 건 운송하는 자들이 빼돌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보상을 받으려면 운송비를 지불해야 하지 않습니까?”

“보상이라고요?”

석보산의 눈이 커졌다.

“분실하거나 사고로 인해 잃은 술값에, 술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서 그 친구가 잃게 되는 신용도 포함하여 두 배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스무 병이 들어 있는 술 상자 하나를 잃어버리면……?”

“병당 원가가 석 냥 정도 책정됐을 겁니다.”

“예순 냥을 보상해 줘야 한다는 말이군요.”

“네.”

“대신 운송에 성공하면 우린 이십 문을 벌게 되고요.”

“네.”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석보산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조건이 대륙황가에 너무 불리했다.

“보통 표물을 운송하는 데 거는 조건보다 약했으면 약했지 과하지 않다고 보는데요?”

“그게…….”

석보산은 할 말이 없었다.

“기간은 오십 년으로 하고, 운송량에 대해서는 제한을 걸지 않는 걸로 해 주세요.”

“오, 오십 년이나 말입니까?”

“네.”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데 너무 긴 거 아닙니까?”

“주인이 바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주인이 바뀌면 계약이 파기된다는 조항을 집어넣도록 하지요.”

“계약서를 쓰려고요?”

“그럼 말로 하려고 했습니까?”

“마왕의 명령이면 충분히…….”

“사람이란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 친구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지만 십 년만 지나도 잊어버릴 겁니다. 어쩌면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고요. 그럼 구두계약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작성하도록 하지요.”

금장생은 지필묵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체가 있는 이곳에서요?”

석보산은 다섯 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시체가 나뒹구는 이런 곳이 계약서를 작성하기에는 최적의 장솝니다. 왜냐면 계약을 어기면 저 시체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저절로 깨치게 되거든요.”

금장생은 환하게 웃었다.

“끙!”

석보산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금장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필묵을 가져와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 찍은 직인은 석보산 개인의 직인이 아니라 대륙황가 상단주의 직인이었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그 친구가 낙양에 사는데 대장간 업종에 진출하고 싶어 해서요.”

“대장간 업종이라고요?”

석보산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주류 사업이었다. 그런데 주류 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대장간 업종이라니.

“네. 자기 말로는 시절이 하수상할 때는 철광석을 사들이는 게 최고라고 하더군요.”

“하수상하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단주께서는 전쟁의 기운을 읽지 못했습니까?”

“전쟁요?”

석보산은 놀란 눈으로 금장생을 보았다.

중원무림의 공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전쟁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금장생이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말한 것이다.

“낙양 진가장을 아십니까?”

“물론 아다마다요.”

“그러면 진가장의 장주 백리장광이 팔왕가의 한 곳인 해가의 해왕이란 사실도 알고 있겠군요.”

“알고 있습니다.”

“그자가 암역의 통로를 통해 다른 세계로 갔습니다.”

“다른 세계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팔왕가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아십니까?”

“제가 아는 건 믿지 못할 이야기뿐입니다.”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방문자들이 중원을 지배하였고 중원인들이 그들의 노예로 살았다는 그런 이야깁니까?”

“네.”

“맞습니다.”

“맞다고요?”

“잠시 걸을까요?”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여긴 치워야 하겠죠?”

“나갔다 와서 치우도록 하죠. 저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금장생은 지풍을 날려, 관처기의 아혈과 마혈을 제압했다.

이제 관처기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제 시비는…….”

석보산은 침대 위를 보았다. 수혈이 눌린 시비가 잠들어 있었다.

“고향으로 보내 주세요.”

“그럼 여긴 나중에 치워야겠습니다.”

“다녀와서 함께 치우도록 합시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갔다.

금장생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소리쳤다.

“마신!”

웅웅웅! 웅웅웅!

대기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사람 앞에 거대한 덩치 철갑이 나타났다. 철전제일문에서 얻은 마신이었다.

“저, 저게 뭡니까?”

석보산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전란의 시대 때 남겨진 유물입니다.”

“정말로 전란의 시대가 존재했단 말입니까?”

“네.”

“세상에.”

석보산은 마신을 올려다보았다.

오 장이 넘는 키에 붉은 눈동자를 가졌고 머리에는 물소의 뿔처럼 생긴 거대한 뿔이 나 있다. 키는 크지만 몸매는 약간 왜소한 느낌이 든다.

전설에 등장하는 마왕의 모습이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네.”

석보산은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스윽!

그러자 마신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졌다.

“은신술입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신을 보고 석보산이 물었다.

“모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건…….”

“마신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진가장의 장주가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건 방문자들의 이차 침공이 있을 거란 말입니까?”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을 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고,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광석과 대장간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석보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그리고 저희 상단도 대장간과 철광석을 사들여야 하겠습니다.”

“그건 석 단주가 알아서 하십시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서 두 가지 사업의 성공이 보장되었다.

대륙황가 같은 거대 상단이 뒤를 봐주면 망할 리가 없다.

조선에서 사업을 말아먹으면서 배운 건 비빌 언덕을 하나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거고, 비빌 언덕이 클수록 망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거였다.

‘돈은 이렇게 버는 거지.’

금장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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