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40화 (140/524)

황금가 (140)

관처기의 처소는 석보산의 집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백여 장가량 걷자 삼 층 건물이 나왔다.

―저기엔 몇 명이 근무합니까?

금장생은 전음으로 물었다.

―총관의 집무실이며 처솝니다.

―그러니까 총관 혼자 산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호의를 배신으로 갚았네요.

금장생의 말에 석보산은 대답을 못 했다.

―처소가 어딥니까?

―삼 층입니다.

휙!

금장생은 바로 바닥을 찼다.

처마 밑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살피자 천장으로 향하는 통로가 나왔다. 금장생은 그곳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한 곳에 멈춰 섰다.

―여깁니까?

석보산이 물었다.

―지금도 다섯 명이 은신해 있습니다.

―그렇게나요?

석보산은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그러자 금장생이 말한 자들이 걸려들었다.

―찾았습니까?

―네.

―저자들도 제가 들어온 걸 감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있는 건,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메고 있는 자는 누구냐?

감시하던 자들 중 한 명이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금장생은 전음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여자와 열심히 관계를 갖고 있는 사내에게 전음을 보냈다.

―접니다.

그가 전음을 보내자 관처기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무슨 일이냐?”

관처기는 전음이 아니라 평어로 물었다.

―제, 제가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금장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고?”

―그만 석보산에게 기척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둘은 그 자리에서 죽고, 전 그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석보산을 잡아 왔단 말이냐?”

관처기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 아래 깔려 있던 여자 얼굴이 드러났다.

―저런 죽일 놈!

석보산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조금 전까지 관처기와 열락의 신음 소리를 뿜어내며 관계를 갖던 여자는 자신의 처소에서 일하는 시비였다.

―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관처기와 석보산에게 연속해서 전음을 보냈다.

―저기 있는 계집은 제 시빕니다.

―원래 감시하는 자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포섭하는 게 감시의 기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려오너라.”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한편 구석에 나 있는 통로를 이용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바닥으로 내려서기 전에 석보산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내려놔라.”

금장생은 얼른 석보산을 내려놓았다.

석보산은 마혈과 아혈을 제압당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이제야 소원을 이루게 되는구나.”

관처기는 싱긋 웃었다.

“으읍!”

석보산은 혈도를 풀려는 사람처럼 발버둥을 쳤다.

“게 있느냐?”

관처기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네.”

“가서 사처 처장들에게 내가 보잔다고 해라.”

“알겠습니다.”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그만…….”

금장생은 관처기를 보았다.

“올라가 봐라.”

“네.”

금장생은 고개를 숙이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천장으로 올라간 그는 좌우를 살폈다.

―축하한다, 고상.

왼편에서 전음이 들려왔다.

‘이름이 고상인가 보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신술을 펼쳤다.

곧 그의 기척이 완벽하게 지워졌다.

‘어?’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던 자는 의아했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금장생이 느닷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은신술을 펼쳐 사라졌으면 기척이 남아야 하는데 기척도 감지되지 않았다.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냐. 그놈은 이미 죽었어.

‘헉!’

사내의 눈이 커졌다.

느닷없는 전음과 함께 숨이 턱 막혔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목을 누르고 있는 걸 떼어 내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강력한 힘이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 버린 거였다.

금장생이 펼친 허공섭물 수법이었다.

허공섭물 수법은 멀리 있는 물건을 끌어오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응용하면 지금처럼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잘만 이용하면 이용 방법이 무궁무진한 무공이 바로 허공섭물이었다.

잠시 후 사내의 몸이 힘없이 늘어졌다.

숨이 끊어졌지만, 사내의 자세는 조금 전과 다름없었다.

금장생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한 명을 없앴으니 이제 남은 자는 네 명이다.

관처기의 배후를 파악해 내서 공격을 하려면 네 명 모두를 소리 없이 없애야 한다.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관처기를 호위하는 자들이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은신해 있다는 사실이다.

아래쪽 관처기보다, 천장의 각 방향으로 침투해 올지도 모르는 적을 감지하기 위한 포진으로 보였다.

‘그 바람에 나는 일이 쉬워졌네.’

금장생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곧 그는 두 번째 사내 뒤편에 도착했다. 사내는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금장생은 손가락으로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휙!

사내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무기를 뒤편으로 찔러 갔다.

‘헉!’

적이 아닌 동료임을 확인한 사내는 급하게 손을 멈췄다.

그러나 이미 그의 무기는 금장생의 심장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아, 안…….’

퍽!

“헉!”

사내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넌…… 고상이 아니구나.”

사내는 말했다.

“고상이 아니고 사상死商이라고 불렸습니다. 물론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무림십패의 일인이면서 전설의 자객인 그 사상?”

“과거일 뿐입니다.”

금장생은 사내의 볼을 가볍게 쳤다.

“사상이 여긴 왜?”

“지금은 사상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무슨 말인지…….”

사내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무림십패의 일인인 사상이 이곳에 나타나 자신을 향해 살수를 펼치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장에서 소리 없는 죽음의 향연이 펼쳐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금장생의 움직임이 그만큼 은밀했던 탓이다.

“저희 왔습니다.”

아래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일각 정도를 기다렸을 때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죽은 감시자가 말한 오덕소, 양만기, 이척신, 안우현이었다.

“어서 오너라.”

“저자는?”

네 명 중 한 명이 석보산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조직은 어느 정도 장악했느냐?”

관처기가 물었다.

“이자를 없앨 참이십니까?”

“원래는 시간을 좀 더 벌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감시하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둘은 죽고, 고상이 어쩔 수 없이 이놈을 제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거사를 앞당기자는 거군요.”

오른편 사내가 물었다.

“너희만 도와주면 대륙황가를 손에 넣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비록 마가라는 배후가 있긴 하지만 우리에겐 화가가 있다.”

‘허!’

천장에서 듣고 있던 금장생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배후가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곳이 팔왕가의 한 곳인 화가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마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왕만 없어지면 마가 또한 우리 화가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이자를 없애 버려도 되겠군요.”

네 사내 중 한 명이 말했다.

“좀 더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너희를 불렀다. 너희 넷 다 나와 같은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없애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미 발각된 거, 처리해서 살인멸구를 해야 합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네 사람은 모두 석보산을 없애자는 데 찬성 의견을 냈다.

“알았다.”

관처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석보산을 보았다.

“큭큭큭! 큭큭큭!”

그때 석보산은 키들키들 웃었다.

“어이가 없는 모양이구나.”

관처기는 피식 웃었다.

“맞다, 관처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미칠 지경이다. 갈 곳 없는 거지 놈들을 데려다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직업까지 주었더니 이제는 날 죽이려 하는데 얼마나 허탈하겠느냐?”

“우리가 원래부터 거지였는 줄 아느냐?”

“네놈들이 원래부터 거지였는지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관처기. 내가 너희를 거두지 않았다면 너희가 충성을 바치고 있는 화가도 네놈들을 불러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왜냐면 네놈들은 대륙황가로 잠입하라는 임무에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들이니까.”

“하지만 우린 성공했고, 요직에 올랐다, 석보산.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네 잘못이 가장 크다.”

“적지영 일행에게서 돈을 빼돌린 것도 네놈 짓이더냐?”

“물론이다.”

“각 전장에서 대륙황가의 이름으로 오백만 냥을 빌린 것도 네놈 짓이고?”

“그렇다.”

―마가에도 첩자가 있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석보산의 귓전으로 금장생의 전음이 들려왔다.

“조금 전 적지영 운운하는 걸 보니까 마가에도 첩자를 심은 모양이구나.”

“중원 천하에 우리 화가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그 첩자가 누구나?”

“큭!”

관처기는 피식 웃었다.

“왜 웃는 거냐?”

“잠시 후면 저승으로 갈 건데 굳이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그러는 거다.”

“알아야 저승에서 놈을 기다릴 거 아니냐.”

“비밀은 말이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거야. 그리고 대륙황가는 내가 알아서 잘 운영하도록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무덤도 멋지게 만들어 줄게. 매년 한 번씩 제사도 지내고. 그다지 하고 싶진 않지만, 사람들 눈이라는 게 있으니까.”

관처기는 석보산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검붉은 기운이 넘실댔다.

“마가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마가가 대륙황가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최소한 네 명은 알고 있다.”

“마가와 대륙황가가 아무런 상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증언을 해 줄 사람은 사백 명이 넘어, 석보산. 적천영, 적지영, 적풍영, 적운영 그자들이 대륙황가를 자기네들 거라고 우겨 봐야 믿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구나.”

“내가 여기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으니까.”

“그랬구나.”

“잘 가라.”

관처기는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석보산의 신형이 오른편으로 두 자를 이동했다.

“헉!”

관처기의 눈이 커졌다.

퍼억!

그 순간 석보산의 권이 관처기의 단전을 후려쳤다.

“커억!”

관처기는 피를 내뿜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죽어!”

“죽일 놈!”

나머지 네 사람이 득달같이 석보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