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39)
금장생이 돈 버는 법
“알았어요.”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보게.
유인태는 석보산에게 전음을 보냈다.
―말씀하십시오.
―저 사람의 정체가 도대체 뭔가?
―그건…….
석보산은 말끝을 흐렸다.
마가에 대한 걸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말이구먼. 그럼 한 가지만 말해 주게.
―말씀하십시오.
―저기 마 대협과 자네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친구인지 주종 관계인지, 아니면 자네가 빚을 진 건가?
―주종 관계라는 것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마 대인이라고 한 저 사람은 한 세력의 수장이겠구먼.
그 질문에 석보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은 건, 한 세력의 수장도 아닌 자가 대륙황가 같은 거대 상단의 주인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대륙황가를 떠나 있었던 것도 상부와 관련이 있었던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랬구먼.
“직접 가야 하는 겁니까, 아니면 연락만 보내면 됩니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인태는 금장생을 보았다.
“제가 직접 가야 해요.”
“그럼 생사교 앞에서 만나면 되겠군요.”
“알았어요. 바로 떠날게요.”
사미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석보산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이제 우린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금장생은 석보산을 보며 말했다.
“나는 피곤해서 먼저 나가겠네, 단주.”
긴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걸 눈치챈 유인태가 먼저 일어났다.
“어르신은 저와 한잔 어떠세요.”
아수수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인가?”
유인태는 반색했다.
사실 잠이 오지 않았다. 다만 눈치상 옆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자리를 뜬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수수가 술을 한잔하자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먹은 여자가 따라 주는 술이 싫지 않으시다면.”
“그게 무슨 망발인가? 술은 내가 대접하겠네. 가세.”
“두 분은 이야기 나누세요.”
아수수는 곧바로 유인태를 따라나섰다.
“우리도 자리를 옮기지요.”
두 사람이 나가자 석보산이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금장생은 석보산을 따라나섰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들어선 곳은 석보산의 집무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금장생은 천리지청술로 내부를 살폈다.
‘세 명?’
금장생의 시선이 석보산에게로 향했다.
석보산은 숨어 있는 자들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호위들입니까?
금장생은 전음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천장에 세 명이 숨어 있는데 몰랐습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네.
―전혀 몰랐습니다.
―그랬군요.
“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
“화장실요?”
“갑자기 과식을 했더니 배가 좀 아파서요.”
“밖으로 나가면 오른편에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장생은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걸어간 그는 복도 끝에서 위로 솟구쳤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은신술로 몸을 숨긴 금장생은 천장의 대들보를 타고 석보산의 집무실로 갔다.
집무실 천장에는 대들보가 길게 놓였고, 대들보 아래쪽은 널따란 판자로 가로막혀 있었다.
불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천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금장생은 숨결을 골랐다. 그리고 숨어 있는 자들을 찾아보았다.
오른편 끝 모서리에 한 명이 숨어 있고, 다른 한 명은 전면 구석에,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왼편 모서리에 은신해 있었다.
금장생은 세 명의 이목에서 약간 떨어진 곳을 향해 지풍을 쏘았다.
픽!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휙! 휙! 휙!
미약한 소리와 함께 감시자 세 명이 이동했다.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찍!
―쥐다.
왼편에 숨어 있던 자가 동료에게 전음을 보냈다. 두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왼편 사내는 작은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석보산은 같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라리 죽여 버릴 것이지는.’
툭툭!
바로 그때 뭔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자리를 이탈하는 건…… 헉!
사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어깨를 두드리는 자가 동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나, 나다!”
그는 동료에게 소리쳤다.
동료들이 움직이면 등 뒤에 있는 자가 허점을 보일 테고, 그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운이 좋았을 때 이야기다.
하지만 사내의 기대와는 달리 동료들은 이편으로 뛰어오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저들은 당신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대신 감정이 완벽하게 배제된 목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왔다.
‘가, 강자다.’
사내는 절망했다.
소리 없이 움직이면서도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는 그가 아는 한 최고의 자객밖에 없다.
‘언제? 맙소사.’
문득 조금 전 소리를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자리를 떴던 때가 떠올랐다.
뒤에 있는 자는 그 순간에 이곳으로 와 기다린 것이다.
―당신에게 명령을 내린 자를 알고 싶은데 말해 줄 수 있나요?
감시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금장생은 사내의 목을 꺾었다.
우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천장이 워낙 조용해서 주변에 있는 자들의 귀에는 들렸다.
휙!
사내의 숨이 끊어진 순간, 오른편에서 석보산을 감시하던 자가 몸을 날렸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휴우!’
오른편 사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동료가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작은 구멍에 눈을 대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동료의 엉덩이를 가볍게 툭 쳤다.
콱!
순간 목에서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억!”
사내는 비명을 내질렀다.
―당신에게 이곳을 감시하라고 명령을 내린 자를 알고 싶습니다.
귓전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군요.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살기가 사내를 덮쳤다.
가공할 압력에, 사내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마, 말하겠소!”
가족이란 말에 사내는 굴복하고 말았다.
―당신 가족은 손대지 않겠습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네.
“저는…….”
사내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자에 대해 자세하게 털어놓았다.
―그랬군요.
슉!
바로 그때 날카로운 기운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왔다. 그것은 한 명 남은 사내가 던진 암기였다.
금장생은 오른편 사내의 몸을 돌렸다.
“컥!”
암기는 사내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갔다.
휙!
암기를 맞은 사내가 쓰러진 순간 금장생의 허리춤에서 천승이 풀려 쏘아져 갔다.
황토색 천승은 마치 기다란 뱀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사내는 재빨리 천승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천승은 살아 있는 것처럼 구부러져 사내의 무기와 충돌을 피했다. 그리고 사내의 팔을 타고 뱀처럼 타고 올라갔다.
사내는 천승을 풀어내기 위해 왼손으로 잡았다.
휙!
그러자 천승 뒤편이 앞으로 날아가더니 사내의 목을 감아 돌았다.
“컥!”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사내는 왼손으로 잡고 있던 천승을 놓고 목을 감은 부분을 잡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잡아당겼다.
하지만 천승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금장생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자기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사내가 끌려왔다.
사내는 점점 정신이 흐려졌다.
막 정신을 잃으려는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사, 살려 주십시오.”
“당신에게 명령을 내린 자를 알고 싶습니다.”
금장생은 속삭이듯 말했다.
“초, 총관 관처깁니다.”
“관처기와 친한 사람은?”
“오덕소, 양만기, 이척신, 안우현입니다.”
“같네.”
“뭐가 같다는…….”
휙!
바로 그 때 금장생 뒤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조금 전 암기에 당한 자였다. 사내의 손에는 날카로운 무기가 들려 있었다.
사내는 금장생의 등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스윽!
그의 무기가 금장생의 등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금장생이 사라졌다.
푸욱!
무기는 동료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커억!”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자네?”
사내는 자신을 찌른 동료를 보았다.
“빌어먹을!”
찌른 자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사실 조금 전 그는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척한 건 금장생을 없앨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고 확신한 순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런데 금장생이 귀신처럼 피해 버린 것이다. 그건 곧 이 상황을 유도했다는 의미다.
“일부러 살려 주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군요.”
금장생은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 넌…….”
사내는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누구냐!”
바로 그때 석보산이 살기 어린 외침과 함께 장풍을 쏘았다.
과앙!
둔탁한 소성이 들려오고 천장 일부분이 부서졌다.
금장생은 시체들과 함께 아래로 뚝 떨어졌다.
“마, 마왕!”
석보산은 질겁한 얼굴로 금장생을 불렀다.
“천장에 쥐새끼들이 살고 있더군요.”
“맙소사.”
석보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관처기, 오덕소, 양만기, 이척신, 안우현이 이자와 이자의 입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금장생은 감시자 두 명을 가리켰다.
“믿을 수 없습니다.”
석보산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내부에 첩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의 일 년 동안 돌아오지 못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이동 경로를 잘 아는 적―여기서 그가 생각하는 적이란 다른 상단을 말한다.―이 청부를 넣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릇된 생각이었다. 적은 다름 아닌 내부에 있었다.
다른 네 명은 물론이고 관처기까지, 모두가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특히 관처기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그런 그가 배신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이자들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정 미덥지 못하면 확인을 한번 해 보지요.”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마침 내게 좋은 기술이 있습니다.”
금장생은 유마환용대법을 펼쳐 가장 먼저 없앤 자로 변장했다.
“허?”
순식간에 얼굴이 바뀌는 금장생을 보며 석보산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유마환용대법이란 무공입니다.”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이자의 옷을 입으면 완벽해지겠죠. 그리고…….”
금장생은 석보산의 마혈을 눌렀다.
“왜…….”
“배신 여부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확인하는 거잖습니까.”
“어떻게 확인한다는 겁니까?”
“단주는 그자의 처소만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금장생은 석보산을 어깨에 들쳐 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