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38)
아수수는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내공이 네 배나 늘어난 걸 보면 대라합환음양대법은 성공한 게 분명하다. 즉, 대법이 끝났을 때까지는 금장생은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대법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긴장의 끈이 바로 끊어지게 된다. 그럼 참아 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사정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안 했네.”
아래는 깨끗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안도감과 함께 섭섭함이 밀려왔다.
똑똑똑!
바로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수수는 얼른 동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동경은 창가로 스르르 밀려갔다.
동경이 멈춰 서자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금장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사미염이었다.
“괜찮…….”
사미염은 아수수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복 터진 년.”
그녀의 말투에는 질투의 감정이 배어 있었다.
“티 나?”
휙!
대답 대신 사미염은 이불을 홱 걷었다.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아수수는 얼른 손으로 하체를 가렸다.
“가만있어 봐, 이년아.”
사미염은 아수수의 팔을 거칠게 치웠다.
“돌겠네.”
사미염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날 아수수의 몸에서는 수십 개의 암기가 박혀 있었고, 옷은 피로 범벅이었다. 검상을 입은 곳도 수십 군데가 넘었다.
여자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처는 극심했다.
그런데 그 많은 흔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누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은 거봉처럼 우뚝 서 있다. 크기 또한 과거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추워, 이 기집애야.”
아수수는 이불을 잡아끌어 덮었다.
“가만 안 있어?”
사미염은 이불을 다시 잡아 내렸다.
“엎드려 봐!”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왜?”
“시키는 대로 해!”
사미염은 윽박지르듯 말했다.
“아, 알았어.”
아수수는 하는 수 없이 엎드렸다.
“기가 막히네.”
사미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를 가장 먼저 느끼게 하는 건 단연 엉덩이다. 특히 살집이 많은 자신과 아수수 같은 체질은 나이를 먹으면 빨리 처진다. 특히 아수수가 더 심했다.
그런데 안에서 줄을 묶어 잡아당긴 것처럼 올라가 있다. 혈령사왕근에 주안의 효과가 들어 있다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었다.
“내공은 얼마나 늘어난 거야?”
문득 궁금해 아수수 옆으로 앉으며 물었다.
“몰라.”
“모른다고?”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말이야.”
“정말?”
“응. 그런데 어떤 약을 쓴 거니?”
“세 가지.”
“세 가지?”
“지극화령실, 만령옥액, 혈령사왕근이야.”
“지극화령실은 알겠는데 만령옥액과 혈령사왕근은 뭐지?”
“만령옥액은 만년혈군 위로 공청석유가 떨어졌을 때 생겨나는 액체래.”
“혹시 그 말이, 공청석유보다 효력이 더 좋다는 거니?”
“두 배래.”
“맙소사. 어떻게 그런 걸?”
아수수의 눈이 커졌다.
공청석유보다 두 배나 더 좋다면 영약 중의 영약이란 소리였다.
“누, 누가 준 건데?”
“석 단주지 누구겠냐?”
“아무리 상관이라도 그런 영약을 내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수수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상관?”
사미염은 의아한 얼굴로 아수수를 보았다.
“응? 아, 아냐.”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아수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사미염은 아수수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어서 말해!’라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널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맹세를 했어, 수수.”
“아, 알았어, 말할게. 사실 대륙황가의 주인은 우리 마가야.”
“정말?”
“응.”
“그걸 누구누구 알고 있는데?”
“적씨들만 알고 있어. 나는 비밀로 하라는 말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들은 거고.”
“대륙황가가 언제부터 마가 거였는데?”
“대륙황가처럼 크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상단을 운영했대.”
“그 상단이 대륙황가로 발전했다는 거구나.”
“응. 이제 됐어?”
“응.”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부하라고 해도 공청석유보다 더 좋은 영약을 선뜻 내놓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안 그래?”
아수수가 의아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자기가 복용하면 최소 이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는 절대 영약이 공청석유다. 그것보다 두 배나 좋은 영약이 만령옥액이다. 게다가 부작용도 없다고 하였다.
“석 단주가 그걸 쓰지 않고 보관만 한 건 뭔지를 몰라서 그랬대.”
“만령옥액이 뭔지를 몰랐다고?”
“공청석유와 달리 붉은색이거든. 그리고 약왕 어르신 말에 의하면, 만령옥액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는대.”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라는 말이네.”
“그렇지. 그리고 혈령사왕근은 복용해서 완전히 자신의 걸로 만들 수 있다면 이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대.”
이어 혈령사왕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것도 엄청난 영약이네?”
“맞아. 그런데 한 가지 부작용이 있대.”
“어떤 부작용인데?”
“그걸 복용하게 되면 요녀가 된대.”
“요녀?”
“사내는 색마가 되고.”
“설마 음약이라는 거야?”
“음약이 아니고, 최음제 성분이 들어 있대.”
“그러니까 최음제 성분이 들어 있는 그걸 내가 복용했다는 거야?”
“응. 그리고 그 최음제 성분은 피로 녹아들어 가서 없어지지 않는대.”
“믿을 수 없어!”
아수수는 버럭 소리쳤다.
“나도 그래. 아무리 사내 성기처럼 생겼다고 해도 약효 속에 최음제 성분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래서…….”
사미염은 느닷없이 아수수의 가슴을 꽉 그러쥐었다.
“학!”
아수수의 몸이 펄쩍 튀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온몸은 붉게 달아올랐다.
“맙소사.”
사미염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왼편 가슴이 아수수의 약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반응을 보일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아수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반응을 보였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사미염은 웃으며 말했다.
“너 장난치면 죽을 줄 알아.”
아수수는 사미염을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좀 더 쉬지?”
“단주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네 남편에게는?”
“물론 해야지.”
“얼굴 보는 게 어색하지 않겠어?”
“어색하다고 안 보면 점점 더 힘들어져. 이럴 땐 빨리 보는 게 나아.”
“확실히 사내를 다루는 건 나보다 네가 더 나아.”
사미염은 피식 웃었다.
아수수는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다. 아니, 적극적이기는커녕 수동적이며 먼저 나서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런데 자신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는 다르다. 망설이지 않고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한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적천영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옷 좀 가져다줄래?”
“알았어.”
사미염은 밖으로 나가 금장생이 지고 왔던 궤짝을 가지고 왔다.
아수수는 궤짝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그런 다음 사미염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유인태와 석보산, 금장생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몸은 좀 어떤가?”
먼저 유인태가 말을 걸었다.
“약왕 어르신 같은 신의를 만난 저는 운을 타고난 사람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약은 단주가 내고 치료는 부군이 했는데. 다 자네 복일세.”
“하지만 어르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완벽하게 낫지 못했을 테지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수수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석보산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저는 제 선조의 무공과 바꾼 것뿐입니다. 충분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선조의 무공이 중요하다고 해도 영약을 세 개씩이나 내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약왕 어르신 말씀처럼 사람을 구하는 보시가 가장 보람된 일이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건강한 모습을 뵈니까 약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식사부터 하러 가시지요.”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석보산의 안내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이미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금장생과 아수수, 사미염은 음식을 보자마자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진령산맥으로 들어선 후부터 지금까지 먹은 거라고는 이곳에 와서 먹은 차밖에 없었다.
“어서 드십시오.”
세 사람의 눈길이 음식에서 떨어지지 않자 석보산이 말했다.
“염치 불고하고 먼저 먹겠습니다.”
금장생은 음식을 덜어 아수수 앞에 놓고 자신의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젓가락을 놀렸다.
두어 접시를 연속해서 먹고 나자 비로소 허기가 가셨다.
“그런데 누가 세 분을 공격한 겁니까?”
금장생 일행이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자 석보산이 물었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특징 같은 것도 없었습니까?”
“모두 왜도를 들었더군요.”
“왜도요?”
“장도와 단돕니다.”
“검은색 무복 한가운데 원이 새겨져 있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사인루 자객입니다.”
“지금 사인루라고 하였나요?”
아수수가 물었다.
“네.”
“그럼 공격이 아직 끝난 게 아니겠군요.”
사인루 자객에 대해서는 아수수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청부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한다는 점이었다.
“부인 말이 맞습니다. 사인루 자객이 확실하다면 세 분은 계속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될 겁니다.”
“세 분이 아니고 나겠지요.”
금장생이 말했다.
“그럴 겁니다.”
석보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사인루 본거지를 아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만불산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만불산이 어디 있는데요?”
“만불산은 귀주와 사천 호남의 경계에 위치한 산입니다. 산 어딘가에 만불상이 있다는 전설 때문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청부는 어떻게 합니까?”
“만불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생사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 앞에서 적연을 띄우면 사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금장생의 시선이 사미염에게로 향했다.
“왜 날 보죠?”
“부하들을 생사교 앞으로 집결시키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최소한 닷새는 주셔야 해요. 그런데 사인루를 공격할 참인가요?”
“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도 날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생겨날 겁니다. 날 죽이려고 시도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뼛속 깊이 새겨 주어야지요.”
“우린 백여덟 명이 전부에요. 그자들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요.”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나 혼자 합니다. 백팔무영비는 도망치는 자들만 정리해 주면 됩니다.”
금장생은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