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37)
‘요기妖氣네.’
좀 더 바라보자 비로소 붉은 기운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넌 빠져라, 요놈아.’
금장생은 요기를 노려보며 사념을 보냈다.
하지만 요기는 조롱하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다른 내기와 섞였다. 금장생으로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섞여 들어간 요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수수의 움찔거림이 더욱 강해졌다. 이제는 거의 스스로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제길!’
금장생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아수수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쾌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제발 좀 가만있어요.
아수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비록 정신을 잃은 상태라고 하지만 총각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아수수의 움직임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대법을 시전했다.
자신의 내기와 영약 기운이 합쳐져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그 순간 금장생은 돌아오는 통로를 막았다. 그러자 내기는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금장생은 그 내기를 아수수의 단전으로 유도했다.
먼저 들어간 내기들이 다시 돌아 나오려고 했지만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내기가 너무 많아 막혀 버리고 말았다. 그 내기는 다시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수수의 단전은 곧 내기로 가득 찼다.
영약 기운이 대부분인 내기는 아수수의 단전을 자신들이 머물기 좋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단전은 빠르게 복구되었다.
금장생의 눈에도 복구되는 단전이 확연하게 보였다.
하지만 한 번으로 단전을 완전하게 치료한다는 건 무리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내기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금장생은 막아 두었던 통로를 열고 끌어당겼다.
치료하는 데 힘을 소모한 내기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다시 힘을 실어 줘야 했다.
잠시 후 내기가 몸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금장생은 온몸을 잠식해 들어오는 쾌감을 밀어냈다.
차가운 얼음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상상도 하고 눈밭을 뒹구는 상상도 했다.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온몸을 휘감아 돈 내기는 단전으로 들어가 힘을 얻은 후 다시 아수수에게로 건너갔다.
이번에는 곧바로 아수수의 단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 남은 부분을 치료했다.
그 과정은 쉬지 않고 반복되었다.
‘이건 할 짓이 절대 아냐.’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새우잡이 배에서 새우를 잡는 게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스윽!
누워 있던 아수수가 갑자기 상체를 들었다.
금장생은 재빨리 가부좌를 했다.
그러자 아수수는 두 다리로 금장생의 허리를 감았다.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제발 움직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금장생은 간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아수수의 양손을 깍지 끼었다. 완벽한 합일을 위해서였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은 더욱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수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도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수수가 움직여 버리면 참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여기서 참지 못하면 기껏 상승했던 음기가 스러지고 그럼 대법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도대체 어떤 자식이 이런 걸 만들었냐고!”
금장생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심호흡을 하십시오.
그때 귓전으로 유인태의 전음이 들려왔다.
―영감님 변탭니까?
―이대로 두면 실패할 것 같아서 나선 거니까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먼저 성기가 있는 부분까지 숨을 밀어 넣으십시오.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갈!
유인태의 외침이 귓전을 때렸다.
금장생은 얼른 숨을 들이마셔서 아래로 눌렀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방금 그것은 운기행공을 할 때 늘 하는 호흡법이다. 그런데 들끓던 내부가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은 전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금장생은 숨을 들이마셔 아래로 누르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호흡이 운기행공으로 이어져 버린 거였다.
둥실!
삼매경으로 빠지자마자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백무 속에서 붉은 운무가 솟구쳤다.
적색 운무는 금장생을 감쌌고 백색 운무는 아수수의 몸을 둘러쌌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던 운무는 서서히 합쳐졌다. 그 와중에도 아수수의 몸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푸스스!
어느 순간 아수수의 머리카락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살 비늘이 아래로 떨어졌다.
우두둑! 우두둑! 우두둑!
이어 뼈 부딪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환골탈태가 시작되고 있었다.
금장생이 떨어져 나온 건 세 번째 환골탈태가 끝나고 난 후였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이탈되었다.
바닥으로 내려선 그는 몸을 점검했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은 아수수만 치료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몸에서도 환골탈태가 일어났고, 내상이 말끔하게 치료돼 있었다. 내공 또한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았다.
그는 벗어 두었던 장포를 걸치고 아수수의 환골탈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환골탈태는 몇 번에 걸쳐 계속되었다.
몸에서 떨어진 가루가 침대 위와 바닥에 수북하게 쌓였다.
금장생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장풍이 쏘아져 나왔다.
장풍은 가루를 하나로 뭉치더니 창밖으로 내보냈다. 몇 번에 걸쳐 그 작업을 하자 방 안은 다시 깨끗해졌다.
“엄청나네.”
금장생의 얼굴이 경이롭게 변했다.
환골탈태를 여러 번 겪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이 환골탈태하는 건 처음 본다.
머리카락과 살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몸속의 노폐물이 악취와 함께 빠져나가고, 다시 머리카락이 나면서 신체가 재구성되는 광경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그 어떤 광경보다 경이로웠다.
환골탈태가 거의 끝난 듯, 아수수의 몸에서는 희미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도배하듯 온몸에 나 있던 흉터가 모두 없어졌다. 그리고 얼굴에 나 있던 잔주름도 사라졌다.
“젊을 땐 더 예뻤네.”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편에 전신을 비춰 볼 수 있는 동경이 세워져 있었다. 그는 그 동경을 침대 옆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사이 아수수의 신형이 아래로 내려왔다.
금장생은 이불을 덮어 주고 방에서 나갔다.
금장생의 기척이 사라진 순간 아수수는 눈을 떴다.
번쩍!
그녀의 눈에서 푸른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침대 바닥을 짚었다.
둥실!
순간 몸이 두 자가량 떠올랐다.
“어?”
아수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은 평소와 같은 힘을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게…….”
아수수는 얼른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천천히 내려왔다.
그녀는 재빨리 가부좌를 했다. 그리고 몸 내부를 살폈다.
“맙소사!”
그녀의 눈이 커졌다.
과거 그녀의 공력은 이 갑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굳이 수치로 계량화한다면 팔 갑자는 될 것 같았다.
“마, 말도 안 돼.”
그녀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건 자객들의 공격을 받아 온몸에 부상을 입었고, 마지막 순간에 금장생과 사미염이 와서 목숨을 구했다는 것까지였다. 그 후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내공이 네 배나 늘어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시선을 내렸다.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흉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피부를 만져 보았다. 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매끈했다.
“휴, 흉터가 하나도 없어.”
아수수는 넋을 잃었다.
수십 개의 흉터가 만져져야 하는데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침대 바로 옆에 전신 동경이 서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동경 앞에 섰다.
없어진 건 흉터뿐만이 아니었다.
일어섰을 때 조금씩 보이곤 하던 허리 살이 사라지고 없었다. 약간 쳐졌던 가슴도 바짝 붙어 탱글탱글했다. 얼굴에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잔주름도 사라지고 없었다.
놀랍게도 동경 안에는 이십 대의 아수수가 서 있었다.
아수수는 다시 침대로 가 앉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대라합환음양대법을 펼치기 전 금장생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가지고 나름 추측을 해 보았다.
“흉터가 모두 사라지고 공력이 늘어났다는 건 환골탈태를 했다는 말이 되고. 늘어난 공력이 네 배 정도 된다는 건, 단지 영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해. 즉, 어떤 대법이…….”
“대라합환음양대법을 익혔습니다.”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비로소 금장생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을 익혔습니다.”
“그거 도교 비술 아닌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네…….”
“맞아, 대라합환음양대법이었어.”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라합환음양대법에 대해서는 그녀도 들은 적이 있었다.
“음양대법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게 뭐예요?”
언젠가 남편 적천영에게 물었다.
그녀가 음양대법에 대해 물은 건 적천영이 부상을 당했을 때 치료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내상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내상을 치료하는 최고의 치료법은 음양대법이란 구절을 보았다. 단점이라면 부부가 아니면 시전할 수 없다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적천영과 부부이기 때문에 음양대법을 시전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전혀 없었다.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냥 궁금해서요.”
“흠! 가장 좋은 건 음양신선이 남긴 대라합환음양대법이오.”
“음양신선?”
“육백 년 전 무인이었소. 내공 하나로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인데, 음양신선의 내공 근원이 바로 대라합환음양대법이었소.
“그것만 있으면 부상을 치료할 수도 있어요?”
“부상도 치료하고, 영약의 도움이 있다면 순식간에 내공의 절대자를 만들 수 있소.”
“대라합환음양대법은 어디 있는데요?”
“불행히도 대라합환음양대법은 실전되었소. 그리고 설사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절대 대법을 완성할 수 없소.”
“왜요?”
“대라합환음양대법의 요체는 바로 극에 이른 음기와 양기요. 즉, 치료를 하는 사람은 최고조의 흥분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법을 마쳐야 한다는 말이오.”
“만일 절정을 맞아 버리면 어떻게 되죠?”
“그 순간 최고조에 달했던 음기나 양기는 급격히 스러져 버리게 되오. 그럼 대법은 실패로 돌아가고, 더 나쁜 결과를 낳게 되오.”
“마지막까지 참아야 한다는 거네요?”
“그래서 당신은 불가능하다는 거요.”
“참으면 되잖아요.”
“결혼하고 나서 당신이 나보다 오래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거야 당신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서 그런 거지,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니오. 난 지극히 정상이오. 당신이 너무 민감해서 그런 거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하하! 알았소. 아무튼 당신은 불가능하니까, 다른 괜찮은 치료법 하나를 가르쳐 주겠소. 타심회혼괴打心回魂傀라는 추궁과혈수법이오. 대라합환음양대법보다는 못하겠지만 추궁과혈 수법 중에서는 최고요.”
그녀가 금장생에게 시전해 주었던 타심회혼괴를 배운 게 그때였다.
“그런데 대라합환음양대법의 효과는 어느 정도죠?”
타심회혼괴의 구결을 암기하고 난 후 남편의 몸에 펼치면서 물었다.
“참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열 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소.”
“열 배는 너무한 거 아닌가요?”
“물론 과장된 걸 거요. 하지만 열 배라고 과장됐다는 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지 않겠소.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음양신선의 공력이 일천 년이었다고 하오.”
“정말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요.”
“호호호! 그렇군요. 그런데 끝까지 참아야 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요?”
“대법이 끝나도 참아야 하냐고요.”
“대법이 끝났으면 굳이 참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겠소.”
“그러네요.”
최고의 음양대법이라고 하였던 그 대법이 자신의 몸에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