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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36화 (136/524)

황금가 (136)

대라합환음양대법

“이건 또 뭔가?”

유인태는 옥함 하나를 열었다.

옥함 안에는 특이하게 생긴 물체가 들어 있었다. 어떤 식물의 뿌리가 분명한 것 같은데, 생김새가 사내 성기와 비슷했다.

“아시면서 왜 묻는 겁니까?”

“이걸 어디서 구한 겐가?”

“선물로 받은 겁니다. 양기에 좋다며 준 건데, 약왕도 알다시피 제게는 부인이 없잖습니까.”

“이게 혈령사왕근血靈邪王根이라는 걸 알았다는 말인가?”

“그 녀석 때문에 영약에 대해 공부를 좀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만령옥액에 대한 내용은 보지 못한 모양이구먼.”

“도대체 만령옥액이 뭡니까?”

“영약에 대해 나온 책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만령옥액에 대해 몰랐다면 자네와 인연이 없다는 걸 뜻하네. 잊어버리게. 그나저나 이건…….”

유인태는 마지막 옥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꽃 모양의 붉은색 열매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지극화령실이구먼.”

지극화령실은 용암이 흐르는 장소 옆에서 자라는 화양신목의 열매다.

용암의 열기를 천 년 이상 받아야 열매가 열리고, 다시 그 상태로 천 년 이상 지나야 완전한 붉은색이 된다고 하였다.

효과는,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일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일 갑자는 다른 공력 이 갑자보다 더 강하다. 그건 바로 일 갑자의 공력에 내포된 극양기 덕분이다.

“그렇습니다. 일 갑자 공력을 얻을 수 있는 영약인데도 상극인 영약을 구하지 못해서 지니고만 있었습니다.”

지극화령실의 가장 큰 단점은 단독으로 복용하면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고 해도 열기를 견뎌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양기를 제어할 수 있는 영약과 함께 복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석보산은 극음의 기운을 띤 영약을 구하지 못해 보관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랑 같이 복용했으면 자넨 천하제일인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유인태는 만령옥액이 들어 있는 자기병을 들어 올렸다.

“약왕!”

석보산은 버럭 소리쳤다.

“참! 자네 서재에 보니까 대라합환음양대법大羅合歡陰陽大法이란 방중술 책이 있던데, 그것 좀 가져다주게.”

“그건 방중술이 아니고 음양신선이라 불렸던 절대자가 남긴 요상법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합니까?”

“방중술이든 요상법이든, 가져오기나 하게.”

“알겠습니다.”

석보산은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빨리 돌아왔다. 한 식경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엔 엄청나게 빨리 왔구먼.”

유인태가 이죽댔다.

“고민할 게 없으니까 빨리 올밖에요.”

“아까는 고민을 많이 했나 보구먼.”

“평생을 두고 모은 영약인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이 세상에게 가장 큰 보시가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생명을 구하는 거라네. 평생 아니라 조상 때부터 내려온 거라고 해도 생명을 구하는 거라면 기꺼이 내놔야 하는 거네. 마 대협은 이것 받으십시오.”

유인태는 석보산이 가져온 책을 금장생에게 건넸다.

“이건?”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유인태를 보았다.

“다섯 시진 안에 완벽하게 익혀야 합니다. 만일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면 부인을 구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약을 만들러 가겠습니다.”

유인태는 세 가지 약을 챙겨 들고 자리를 떴다. 금장생은 한편으로 물러앉아 책을 펼쳤다.

“끙!”

첫 장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세요?”

조금 전부터 대라합환음양대법에 관심을 보이던 사미염이 물었다.

“전부 글입니다.”

금장생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네?”

“어지간한 경전보다 글이 더 많단 말입니다. 난 글 많은 건 딱 질색인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글을 꼼꼼하게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데 한 시진이 걸렸다.

다 읽고 난 금장생은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이번에 걸린 시간은 반 시진이었다.

그런 다음 책을 덮어 놓고 가부좌를 했다.

‘이름은 개뿔이…….’

눈을 감은 그는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이름이 그럴싸해서 차원 높은 치료술인 줄 알았다.

음양이란 말이 들어 있어 약간 찜찜하긴 했지만, 양극신공도 음양의 기운을 이용한 거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용도 아주 많았다.

그런데 앞부분만 그랬다. 뒤편에는 설명과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거의 춘서 수준이었다.

“이 세상에서 도교를 없애 버려야 해.”

금장생은 잔뜩 골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이게 아니면 아수수를 살리지 못한다는데 익히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대라합환음양대법의 내용을 음미했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의 요체는 생명기였다.

인간의 몸, 특히 여자의 몸에서 생명기가 가장 강해지는 시기는 새 생명의 잉태를 준비할 때라고 하였다. 더불어 잉태를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음양화합이라고도 돼 있었다.

음양화합을 시작하면 음기와 양기가 활성화되고, 두 기운은 서로 화합하면서 생명력을 만들어 낸다. 만들어진 생명력은 잉태를 준비하는 그릇을 완전한 상태로 만들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치료는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즉, 잉태를 위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치료 과정인 것이다. 미리 주입한 영약은 생명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쓰이게 된다.

‘정말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갔다.

그리고 다섯 시진이 지났을 때 유인태는 약 한 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이걸 부인에게 먹이면 됩니다.”

“그런 다음엔…….”

“저 책에 나온 대로 하십시오.”

“난…….”

“남편이 아니었다면 절대 저 책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난 남편이 아니란 말입니다. 일을 해 주기로 계약을 맺은 계약자일 뿐이라고요!’

금장생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 대협께서는 이걸 먼저 복용하십시오.”

“이건 뭡니까?”

“춘약입니다.”

“춘약?”

“부인께서는 지금 정신을 잃은 상탭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발기가 된다면 짐승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발기가 되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하지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가 빠르면 빠를수록 회복도 빨라집니다. 그리고 춘약은 사정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사정해서는 안 됩니다. 끝나고 나서는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삼 층에 있습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씻으십시오. 몸에서 피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욕실은 삼 층에 있었다.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태극선의를 빨았다.

태극선의 안에 입은 옷들은 빨아도 핏물이 빠지지 않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옷을 둘둘 말아 버리고 탈탈 턴 태극선의만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유인태가 서 있었다.

“춘약은 지금 복용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춘약을 입안으로 집어넣고 씹어 먹었다.

“부인이 드실 약은 안에 있습니다. 부인은 마실 형편이 안 되니까, 먼저 마 대협이 입안에 머금고 조금씩 흘려 넣어 주십시오.”

“네.”

“그럼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유인태는 묵례를 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금장생은 곧바로 침실로 들어갔다. 환자 방 같지 않게 내부는 깨끗했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약 냄새가 훅 끼쳤다. 유인태가 달인 약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금장생은 침대를 보았다.

이불을 덮고 누운 아수수의 얼굴은 창백했다. 호흡도 상당히 약해진 것처럼 보였다.

약을 들고 침대 앞으로 가서 이불을 걷었다.

아수수는 알몸이었다. 춘약의 약효가 도는 듯, 아수수의 알몸을 보자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금장생은 얼른 약을 입안에 머금었다.

한 번에 다 마시기엔 양이 많았다. 삼분의 일 정도를 머금고 약 대접을 내려놓은 다음 아수수의 상체를 들어 올리고 입을 맞췄다.

입 밖으로 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금씩 흘려 넣어 주었다. 그렇게 세 번에 나눠 약을 전부 먹였다.

이제는 치료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금장생은 옷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춘약 기운이 정점으로 달리는 듯, 온갖 난잡한 환상이 떠오르며 피가 급격하게 데워졌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느닷없이 아수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라 아수수를 내려다보았다. 아수수가 눈을 뜬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못 깨어날 거라고 하던데…….”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몰래 겁탈하려고요?”

아수수는 금장생이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옷을 벗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말을 한 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금장생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네? 네. 아니, 치료를 하기 위해서…….”

금장생은 횡설수설했다.

“절 치료하기 위해 그런 걸 아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치료법은 있어요?”

“대라합환음양대법을 익혔습니다.”

“그거 도교 비술 아닌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네…….”

아수수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저기…….”

금장생은 아수수를 흔들었다.

하지만 아수수는 깨어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작해야지.”

금장생은 정신을 집중했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의 첫 번째 단계는 온혈溫血이다. 환자의 온몸을 주물러 피를 데워야 한다.

금장생은 대라합환음양대법을 끌어 올렸다. 잠시 후 그의 전신에서 따뜻한 기운과 함께 희뿌연 운무가 피어올랐다.

금장생은 양손을 비볐다. 손바닥이 따뜻해지자 아수수의 몸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아수수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렇게 한 번이 끝나자 이번에는 피부가 눌릴 정도로 강하게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아수수의 몸 내부로 스며들었다.

두 번째 과정이 끝나고 세 번째 과정이 시작되었다.

세 번째 과정은 더 강해, 거의 더듬는 거나 다름없었다.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꼼짝도 않던 아수수의 몸이 반응을 보였다. 꿈틀거림은 약했지만 신음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그건 준비 단계가 끝났다는 걸 뜻했다.

금장생은 곧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결합을 하자마자 내기를 끌어 올렸다. 대라합환음양대법으로 끌어 올린 내기였다.

그 내기를 아수수의 몸 내부로 밀어 넣었다.

‘맙소사.’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아수수의 몸 내부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감지되었다. 마치 동경을 통해 자기 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맙소사, 이건 심안이네.’

놀랍게도 대라합환음양대법에는 진기를 통해 타인의 몸을 관찰할 수 있는 심안의 비법이 들어 있었다.

문득 심안을 이용하면 수백 장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장생은 내기를 아수수의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수수의 단전은 내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은 내가 단전이니까.’

아수수의 단전을 무시하고 바로 운기행공을 했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의 요체는 치료하는 사람이 환자의 단전이 돼야 하는 데에 있다. 완벽한 결합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내기는 거침없이 아수수의 혈도를 타고 돌았다.

금장생은 먼저 소주천으로 부상 때문에 막혀 버린 기혈을 뚫어 정상으로 바꿔 놓았다.

그리고 일주천을 시작했다.

두 개로 나뉜 진기는 독맥과 임맥을 따라 돌았다. 진기가 혈도를 지나칠 때마다 아수수는 몸을 움찔움찔했다.

한 번의 일주천을 끝내고 내기를 회수했다.

“학!”

바로 그때 아수수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잠들어 있던 음기가 발동한다는 신호였다.

금장생은 회수했던 내기를 다시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큰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울러 금장생도 힘들어졌다. 아수수의 음기가 발동하면서 덩달아 그의 양기도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탓이었다.

내기를 밀어 넣고 다시 일주천을 했다.

스아악! 스아아악!

“헉!”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사방에서 엄청난 기운이 그가 밀어 넣은 내기와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의 내기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놓치면 안 돼.’

금장생은 내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합쳐지고 있는 내기는 네 가지였다.

가공할 열기를 머금고 있는 건 지극화령실의 기운이고, 한기를 머금은 기운은 혈령사왕근이 내뿜는 기운이었다. 그리고 두 기운을 부드럽게 감싸는 기운이 있었는데, 만령옥액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건?’

금장생의 심안이 한곳에 머물렀다.

그의 심안이 바라보고 있는 건 요사한 느낌의 붉은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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